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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고깃집 안을 한바퀴 돌아보니 예상대로 먼저 들어와 있었다.
구석에 앉아서 아이폰으로 게임이나 하고있다….
…혼자서 뭘 하는거여 이게.
내가 얼굴 바로 옆에 케잌을 흔들어 보이니 그제서야 나를 본건지 성현이 갑자기 흠칫하고 놀라더니 말했다.
"이 씨발새끼야 이제 온…."
아, 당황했다. 당황했어.
내가 웃으며 케잌을 상 위에 올려놓고 상을 사이에 두고 앞에 마주앉자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있다.
"…누구세요?"
이거 너무 재밌다….
"저기…성현씨 맞으시죠?"
"…마, 맞는…맞는데요."
역시나 예상대로 말을 마구 더듬는다. 그렇게 긴장한거냐….
"오늘 생일 맞죠?"
"…아…네, 네…."
"음…뭐라고 해야되지, 태수가 자기 대신 가달라고 해서…생일이라고 하기도 했고 친구 소개시켜 준다길래 왔는데."
내가 내 이름을 타인처럼 부르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성현이는 내 말에 가만히 듣고있더니 갑자기 이마에 손을 짚고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그 미친 새끼…!"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무작정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분명 나한테 걸고 있겠지.
미안하지만 전화기는 꺼 놓고 왔습니다. 실컷 걸어도 문자 날려도 반응 안합니다.
"자, 잠깐만요."
내가 전화를 안받자 갑자기 성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게 밖으로 나간다.
평소 하는 짓을 봐서는 지금 여기저기 전화걸고 있겠지, 나한테 연락되는 놈 없냐고.
미안, 나 방문 잠그고 핸드폰 끄고왔어. 심지어 나올때 기숙사 직원한테 나 오늘 안들어올지도 모르니까 누구 찾아오면 없다고 해달라고 했으니까 누가 찾아가서 기숙사 직원한테 부탁해도 문 열어주거나 하지도 않을거야.
저렇게 말해놓고 다시 숨어들어가서 여자가 된 뒤 옷 갈아입고 다시 숨어서 나왔다.
용의주도한 나에게 건배.
혼자서 건배하며 앞에 놓여진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성현아…생일인데 남자랑 데이트 해서 뭣하겠니…이참에 너도 여자랑 데이트나 하면서 용기좀 얻으렴….
그 여자가 나라는게 문제지만!
아….
갑자기 진짜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타인이 된다는건 생각보다 즐겁다.
온 세상에 사기를 치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그래도 나 자신을 완전히 잊는건 아니기에 가끔씩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모습이 변해도 내면이 완전히 변하는 건 아니니까 당연한 일인가.
내 추측으로는 그 내면도 조금 변화하는것 같기는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이 일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성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한숨을 쉬면서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 저렇게 당황한 채 말을 더듬거릴 걸 생각하니 웃겨져서 혼자서 이상한 사람처럼 웃고있는데, 성현이가 내 옆에 다가왔다.
"아…저기, 그, 그게…저, 전화를 아, 안 받네요…."
"아, 제가 핸드폰이 망가져가지고 나오기 전에 메신저로 대화했는데 안그래도 핸드폰 이상해가지고 수리허러 간다고 했어요."
"아, 그, 그래요? 그러면 다른 연락처라도 남겨놓던가…."
"우선 앉아서 얘기해요."
"아, 아, 네."
엄청 당황하고 있다.
성현이가 이렇게까지 더듬거리는건 처음 본다, 말더듬기 세계신기록이다.
"여기 고기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우선 밥 시킬까요?"
"네? 아, 네. 무, 뭐 드실…아, 여기는 그, 돼, 돼지고기도 맛있는데 소고기가 더 마, 맛있어요."
"음…그럼 추천메뉴 같은거 있어요?"
"제, 제가 시킬께요 그럼."
더듬더듬더듬…엄청 더듬는다.
성현이는 직원을 부르더니 꽃살, 우설을 각각 2인분씩 시켰다.
내가 좋아하는 부위다. 뭐 여기에 성현이랑 왔을때 먹으면서 둘이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은 부위니까 기억하고 있겠지.
괜히 다른걸 시켰다가 맛없는게 나오기보다는 가장 맛있게 먹었던 걸 시키는 건가?
숯불이 바로 올라가고 고기가 하얀 접시에 담겨 나왔다. 해외에서는 숯불을 쓰는 고깃집을 보기 힘든데 여기는 정말 한국 식당처럼 숯불을 올려서 그런지 화력이 좋다.
"화력이 되게 좋네요."
"그, 그쵸. 고기굽는데에는 화력이 중요하니까…."
"저기, 우리 동갑인걸로 아는데 반말해요 반말."
"21살이에요?"
"반말하자니까요."
성현이는 컵에 물 따르는것도 실수해서 테이블 위에 흘려버렸다. 옆에 비치된 휴지로 닦기는 했지만, 긴장한게 너무 티가 난다.
아, 진짜 재밌다….
"아, 땡큐."
젓가락으로 반찬을 하나 짚으니 접시를 들어 내 쪽에 놔줬다.
괜찮은데? 하려면 할 수 있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성현이는 고기가 구워지는동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을 자꾸 더듬게 되니 아예 말을 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 같다.
"아, 다, 다 굽는게 좋으세요? 아니면 야, 약간 덜 구, 구운게 좋으세요?"
소고기다보니 굽는 정도에 따라 맛이 변한다.
"어떤게 좋아요?"
"저, 저는 조금 덜 구운게…."
"그럼 지금 그냥 먹어요, 저도 덜 구운거 좋아해요."
반말을 하자고 했는데도 성현이가 도통 말을 낮추질 않아서 나도 아직 존댓말인 상태다.
…왠지 나까지 긴장되기 시작했다.
방금전까지는 재미있었는데, 너무 긴장하고 있는걸 보니 나한테까지 옮는 것 같다.
"앗."
고기를 먹다가 소스를 한번 찍어봤더니 소스가 가슴 위에 떨어져 버렸다.
휴지, 휴지.
"아, 음…가슴이 크다보니까…아하하…."
난 나름 웃고 넘어가자고 한 말인데…성현이한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 더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모르겠어서 말을 못 하는것 같다.
평소에 안 그래도 말을 더듬는 문제로 자기도 고민하고 있는걸 나한테 말하곤 했었으니 왜 저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음….
그만 놀리자.
생일선물로 미녀랑 데이트 하라는것도 있고, 말좀 덜 더듬게 용기좀 얻어가라하려고 온건데 점점 긴장하는걸 보니 역효과 나지 않을까 두렵다.
"맛 없어요?"
"네?"
"아까부터 아무말도 없잖아요, 생일이면서 왜 그렇게 조용해요."
"아, 그, 그게, 아, 죄송합니다…."
…사과한다.
진짜 긴장한 것 같다.
동정 게이지가 너무 높다. 으음, 이렇게 판에 박힌듯한 동정이라니…왜이리 부끄럼을 많이 탈까.
역시 가슴 때문인가. 가슴이 너무 큰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얼굴하고 가슴밖에는 원인이 없다. 같이 밥을 먹고있다보니 상체밖에는 보이지 않을테니까.
너무 조용하다.
이렇게 조용히 밥을 먹는 성격이 아니였는데 분명…먹으면서 계속해서 맛이 어떻다, 어디가 어떻다, 부위가 어떤 것 같다, 냄새가 어떻다 하고 평가하는 성격이였는데….
나도 입맛이 까다롭다보니 서로 맛있다고 느끼는 곳에 가면 나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어서 같이 밥 먹으러 다녀가지고 잘 안다.
얘가 이렇게 조용히 밥을 먹는 놈이 아닌데.
"맥주 마실래요?"
이럴때는 역시 이놈이 좋아하는 맥주를 시키는게 좋을 것 같다. 맥주 오타쿠 녀석. 네가 좋아하는 맥주 얘기나 실컷 해봐라.
"아, 네, 마, 마시고 싶으시면 시키죠."
네가 좋아하는 맥주 얘기는 어디로 간거야!
'왜이리 벙어리가 됬니 성현아….'
긴장 풀어주러 왔다가 더 긴장시키게 된 것 같다.
안되겠다. 얘가 좋아하는 얘기가 뭐 있을까…그런 쪽 얘기만 잔뜩 꺼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