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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내용수정)
♀ ♂ ♀ ♂ ♀ ♂
"으으으…추워."
나는 여자인 모습 그대로 기숙사를 나서 클럽에 도착했다.
검은색 긴팔 옷에 안에는 회색인 그 어깨가 끈으로 된 나시를 입기는 했지만 역시 춥다.
다행히도 기숙사 직원에게 걸리지는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라운지까지 내려간 나는 일부러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간을 끌고, 다른 사람들이 나갈때 바로 뒤에 붙어 나가 라운지에 있는 직원에게서 시선을 피해 나갔다.
클럽까지 가면서 양 손으로 계속해서 팔을 감쌌다가, 손을 비볐다가 하자 가슴이 모아올려지는게 상당히 거슬렸다.
가슴에 커다란게 달려있다는건 내 생각 이상으로 활동의 자유를 빼앗았다.
'돈은 가져오긴 했는데…입장료가 얼마였더라?'
도착한 시간은 10시 30분 정도. 추위때문에 발이 묶여 느린 걸음으로 걸어왔기에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클럽 안이 따듯하다고 해도 이동중에는 결국 옷을 더 입는게 좋을텐데, 밤의 추위를 너무 얕봤다.
그렇다고는 해도 위에 마땅히 걸쳐 입을만한 옷도 없고…그런 옷은 너무 비싸다. 오타쿠에게는 너무 아까운 소비다.
스쿠터만 탈 수 있어도 잠깐 참으면 도착했을텐데…혹시나 들킬까 하는 생각이 자의식과잉이라는걸 몇번이고 자각하면서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아 시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스쿠터를 하나 더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고 자전거라도 하나 사야하는걸까…?
'클럽 안은 따듯하겠지….'
적어도 춥지는 않을것 같았다. 나는 클럽 주변에 모여있는 한국인, 그리고 약간의 외국인을 무시하고 클럽 입구로 다가갔다.
한국인이 점령해버린거나 다름 없어진 이 클럽에는 입장자의 50%가 한국인, 25%가 기타 외국인, 그리고 나머지 25%가 자국인이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딱 한번 와봤을 때의 느낌상으로는 그랬다.
'얼마더라….'
입장료가 얼마였나 생각하며 청바지 뒷주머니쪽에 손을 넣자 갑자기 직원이 내 한쪽 팔을 잡더니 손에 도장을 찍었다.
"…어? 돈은…."
"여자분은 무료입장입니다."
…진짜?
뭐냐 이 남녀차별은!
클럽이라는게 이런 곳이였나! 불공평하다!
…그치만 지금은 공짜로 들어갈 수 있으니 순순히 들어가 주지!
나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 안으로 들어가자, 반대로 클럽을 나가는 남자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하는것이 느껴졌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다. 심지어 눈이 마주칠 정도로 뚫어져라 보고있다.
"야, 좀더 있다갈까?"
"그럴까?"
…나가려던 애들이 다시 클럽으로 들어가고 있다.
설마 나 때문에 들어가는건 아니겠지.
음…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자의식 과잉이다 자의식 과잉!
그렇지만 지금 내 검은 긴팔 티 밖으로 훤히 드러나는 커다란 가슴 라인이나 전체적인 몸매, 얼굴을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영 없는 것 같지도 않다.
…왠지 게이에게 노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상상한 것과 직접 경험하는건 상당히 다르구나.
입구에서는 돈을 내고 짐을 맡기는 것 같았는데, 짐같은건 가지고 오지도 않았으니 나는 그냥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점점 커져 귀를 때리며 무거운 음파가 몸 속을 박자에 맞춰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좀 재미있다. 뭐라고 해야할까, 몸 안을 울리는 듯한 느낌? 커다란 스피커의 음파에 따라 심장이 뛰는 느낌이다.
아, 이건 확실히 뭔가 특색있는 공간이기는 하다.
중앙 홀? 같은 곳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노래에 맞춰 춤추고있고, 한쪽에는 DJ 같은걸로 보이는 사람이 테이블 같은 것 위에서 손을 움직이고있다. 저런걸 디제잉이라고 하던가.
주변 테이블들에서는 물담배가 한창이였다. 한국에서는 불법일지 모르지만 여기에서는 아니였다. 그러고보니 물담배를 하면 어떤 기분인걸까?
담배는 싫어하지만, 물담배는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니코틴도 없다고 하고 달달한 맛이 난다고도 하고.
일단은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춤 추는 사람들이 어떻게 추는지 관찰하면서, 가까이에서 한번 볼까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 죄송합…."
그러다가 사람하고 부딪혀서 버릇처럼 사과를 했지만 입을 열자마자 시끄러운 음악소리때문에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걸 알아차리고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기 위해서 상대를 보니…흑인이였다.
어두운 곳에서 피부가 검은색이다보니 뭔가 무서운게 밤에 사냥나온 흑표범 같다….
"쏘리…아…안들리나."
내가 시선을 한 곳에 향하다가 부딪힌거니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다.
이 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오고 나서야 알게된것인데, 아무래도 아직 나는 이 여자 몸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방금전에도 전혀 부딪힐 것 같지 않았는데도 부딪혀 버렸는데 그때의 감각이 꼭 내 몸이 아니라 몸에 달아둔 장식이 부딪혀서 걸린 것 같은 느낌이였다.
흑인은 나보다 키가 컸다. 남자일때와 키는 변하지 않아서 동양인 남자들과는 그럭저럭 비슷한 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역시 흑인하고는 상대가 안된다.
그때 갑자기 내가 입을 뻥긋뻥긋 거리기만 하자 흑인이 손을 입에 대고 귓속말을 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대로 흑인은 내 귀에 손을 가져다대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i'm sorry, are you ok?"
으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지옥의 언어…영어다….
명문대라고 영어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게 영어권이 아닌 국가에서 유학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현실이다.
전부 다가 그런건 아니지만, 대학 입학시험에서 유학생은 조금 쉽게 들여다주다보니, 영어시험을 아예 안 치는 전공과목도 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경우고.
그치만 이정도 간단한 회화정도까지 못 알아 정도는 아니니, 나는 흑인에게 귓속말을 하는 대신 손으로 OK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흑인은 다시 내 귀에 손을 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하지만…워낙 주변 소음이 커서 그런지 되려 작게 들렸다.
"~~~~~."
역시 영어는 외계어다.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대체 이 흑인은 뭘 하고싶은 걸까.
내가 귀에 손가락을 대고 양 팔을 교차시켜 X 자를 만들어 안들린다는 뜻을 전하자 흑인은 갑자기 자기 입을 만지더니 다시 내 귀에 손을 대었다.
…세 번이나 당하니 느껴지는거지만, 이거 고의적인 스킨십 아닐까.
클럽이라는 환경은 이런 점에서 스킨십을 증가시킬 수 있는 거로구나. 확실히 이성을 꼬시기에는 좋을지도.
"can you speak englinsh?"
기본회화로 말해줘서 너무 고마워….
쉬운 언어는 알아들을 수 있기에 나는 곤란한 듯 살짝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흑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여기 말은 알아 들어요?"
앗, 영어가 아니다.
조금 발음이 어눌하기는 하지만 내가 현재 유학와 있는 나라의 언어다.
당연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흑인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니 다시 내 귀에 손을 대었다.
몇 번이고 당하니 약간 노골적이게 느껴졌다.
"혼자 왔어요?"
이거 아무리 봐도 나를 꼬시는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당하고 보니 꽤나 당황스럽다.
…게이를 만난 기분이다.
침착하자, 지금 난 여자…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상대해야한다.
뭔가 헌팅을 당하고 있다는게 웃기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여자라는걸 생각한다면 조금 더 나 자신이 여자라고 의식하며 움직이는게 좋을 것이다. 너무 남자같아도 이상할테니까.
"음…네."
나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에다 대고 말해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흑인은 자신의 귀에 손가락을 툭툭 댄다.
귓속말로 해달라는 건가….
"나도 혼자왔는데 같이 놀래요?"
싫어….
흑인 무서워….
친구중에 분명 착한 흑인도 있기는 하지만, 흑인은 역시 조금 무섭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은 너무 무섭다.
한번 길을 가다가 흑인 화내면서 다른 외국인한테 욕을 하더니 주먹질을 하는걸 봐서 그런지 화가 나면 무슨일을 할지 몰라 더 무섭다.
나는 마지막까지 귓속말은 안 해주고, 양 손을 좌우로 흔들어 거부 의사를 보이고는 그대로 합장해 사과를 하는 듯 한 제스쳐를 취한 뒤 다시 등을 돌려 권성민 그 놈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별로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근접하기는 쉬웠다. 세네걸음 걸어가면 닿는 거리까지 다가가 근처에 있던 기둥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서있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한번씩 쳐다보고 가는것이 느껴졌다.
클럽에 와서 춤을 안추고 가만히 서있으니 이상하게 볼 만도 한걸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여자가 된 모습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는건가….
나르시즘 같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 내 몸은 상당히 야릇한 분위기가 풍기니까 가능성을 배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쪽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서있자 몇명의 한국인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왜 또 귓속말이야.
수화로 해 수화로…일부러 귓속말을 하면서 살짝 몸을 부딪히는게 짜증난다…. 아까랑은 다르게 너무 노골적이게 느껴졌다. 귓속말을 해도 되는지 의사를 묻는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몸을 쑥 들이대더니 목을 손으로 잡아서 끌어당기며 하는 말.
게이가 추근대는 기분이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귀찮네.'
"까라마로스 부르다?"
난 그냥 정말로 클럽이 어떤지 체험 할 겸 놀러 온 것 뿐인데 굉장히 많은 애들이 헌팅같은 짓을 해댄다. 한명을
나는 나 자신도 대체 어느나라 언어인지 모를 잡소리를 해 남자들을 쫓아냈지만, 곧바로 그 애들이 차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 처럼 다른 남자들이 다가왔다. 춤을 추는 장소에서는 이게 당연하다는 것 처럼 갑자기 가까이 오더니 옆에서 골반을 맞대고 비벼댄다.
이거 그건가? 부비부비인가 그거?
우와아, 진짜 엄청난 성희롱인데 이거. 이런건 한국에서나 유행하겠지 해외에선 전혀 아닐텐데.
나에게 다가온 놈들 중에서는 처음 입구에서 본 남자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나 현지인도 다가왔지만 같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말이 안통하니 방법이 없다고 느끼겠지. 몇몇은 영어나 현지어를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손을 좌 우로 작게 흔들어 거부의사를 표했다.
확실히 이 모습이 매력적이기는 하다. 어디 잡지나 방송에 나오는 모델 아닌가 싶을정도니까.
개인적으로는 모델보다도 이쁘게 생각되기까지 했다. 인공적으로 노력해 만든 몸매도 예쁘지만, 지금처럼 저절로 색기가 흘러나오는 몸매는 모델 사진에서도 그닥 본 적이 없다.
뭐,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꼴리는 몸매니까…실제로 전에 말했듯 요 몇일 사이에 여자로 변해서 야한 사진을 찍은뒤 남자가 되서 그걸 보면서 자위해 본 적도 있고.
계속해서 춤을 추고있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그냥 자연스럽게 리듬만 타고 있던 내 주변으로 점점 남자들이 모여든다. 분명 조금 한적한 느낌이였던 주변이 사람으로 가득 찬다.
여자들도 있었는데, 왠지 주목이 점점 나에게 몰리는 것 같자 춤이 점점 노골적이게 변해가고 있었다. 장소가 장소여서 그런지 조금 퇴폐적인 느낌이였는데, 예쁘긴 하다. 옷차림도 나랑 나르게 무지 섹시하고.
근처에 있던 여자가 갑자기 대항이라도 하듯 섹시하게 허리를 흔들며 웨이브를 타고, 살짝 앉았다 일어난다. 클럽 안의 사람들이 갑자기 그녀 주변으로 공간을 작게 만들고는 허리를 좌 우로 빠르게 흔드는 모습에 남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소리에도 들릴 정도로 크게.
음악도 갑자기 바뀐다. 조금 더 춤을 추기 좋은 듯한 느낌으로,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내 주변으로도 공간이 빈다.
'어라? 이거 설마 나한테도 춰 보라는 뜻?'
춤의 춤자도 모르는데 대체 뭘 추라는건지. 클럽 초보자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거 아냐?
그런데도 왠지 뜨거운 열기나,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시선을 향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거부하기가 힘들다. 도망치고는 싶은데 왠지 분위기상 여길 피하기 힘들 것 같은 느낌.
'이,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방금 전 여자의 몸놀림을 떠올리며 비슷하게 움직였다. 리듬을 타다가 어깨를 8자를 그리듯 크게 흔들고 살짝 앉아서 야릇한 느낌으로 허리를 위 아래로 두세번 흔든 뒤 일어나 긴 머리를 털었다.
큰 동작에 가슴이 크게 흔들린다. 살짝 제자리 뛰기를 하듯 움직일 뿐인데, 진짜 별 것도 아닌 움직임에, 춤이라고 하기도 힘든데도 반응이 뜨겁다. 작은 이벤트였던양 다시 음악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사람들도 환호성 뒤 다시 자리를 채웠다. 왠지 아까 전보다도 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인구밀도가 올라가있는데, 그 사이에 껴버린 것 처럼 되 버렸다.
'읏?!'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엉덩이를 꽈악 쥐었다.
누구지? 싶어 뒤를 돌아보려 하자 옆에 딱 붙어있던 사람의 몸에 가슴이 그대로 문질러졌다.
그걸 오해라도 한건지 옆사람이 갑자기 몸을 딱 붙혀오며, 커다란 가슴에 밀착한 채 몸을 비빈다. 노골적이게 허리를 붙혀서는 허리를 작게 앞 뒤로 움직이기까지 한다.
"으앗?!"
분위기에 취해 조금 달아올랐던 기분이 팍 하고 가라앉았다. 어디에다가 좆을 비벼대는거야?!
떨어져 보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대체 어느새 이만큼 많아 진 건지 모를 정도로 늘어난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질 않는다.
심지어, 억지로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자 실수인 척 손으로 가슴을, 허리를, 엉덩이를 만진다. 장난인 양 꾹 주무르기도 하고, 실수인양 스치듯이 만지기도 한다. 아예 노골적으로 두세번씩 엉덩이를 만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뭐야 이 성희롱 존?!'
도저히 있을 수 없어 나가려는데 나갈 수가 없다.
어느정도 나가면 갑자기 앞에서 밀어붙혀 다시 안으로 보내진다. 출근시간의 지하철처럼 가고싶은 방향으로 갈 수가 없다.
적어도 이런건 어느정도 비켜주는게 매너 아닌가 싶지만 일부러 그러는 듯 잘 내보내 주질 않는다. 몸에 땀이 나고 열이 날 정도로 애써도 겨우 다섯 걸음밖에 차이가 안난다.
"하아, 하악…."
나는 결국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주변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몸을 위 아래로 흔들자 내 몸도 거기에 휩쓸려 저절로 움직였다.
확실히 조금 이 장소만의 매력은 있는 것 같다. 모두 시끄러우니 나도 시끄러워도 괜찮고, 다들 미친 것 처럼 춤추니 나도 춤 추고.
그렇다고 해도 성희롱은 아니지 성희롱은!
그때, 갑자기 앞에서 뒤쪽으로 툭 미는 바람에 앞사람의 등에 가슴이 부딪혀 나는 중심을 잃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람이 많다보니 넘어지지 않고 뒷 사람에게 부딪히는 정도였다.
"아, 죄송…."
바로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본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곳에서 흑인을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나처럼 흑인을 조금 무섭다고 생각한다면.
뭔가 갱스터 같은 이미지. 잘 보니 아까 봤던 그 흑표범 같이 길쭉하면서도 탄력있어 보이는 몸을 한 흑인이 넘어지려던 내 몸을 양 손으로 어깨를 잡아 받쳐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얼굴이 가까워져서 깜짝 놀랐지만, 몇번인가 겪어보니 이게 말을 하려는 거라는걸 알 수 있어서 나는 가만히 귀를 내밀었다.
"Do you wanna go out?"
나가고 싶냐고…? 보아하니 내가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가려는걸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크니까 시야가 훤했던거겠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시선을 향한다. 뒤쪽에서 나를 안듯이 하고 있는 그에게 내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움직이자 그가 내 어깨 옆에 머리를 대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뭔가 남자가, 그것도 흑인이 이렇게 내 몸에 접촉한다는 것에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Yes! but i can't go out."
"may i help you?"
내 엉망진창인 영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건지 도움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정말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단어로만 말해주는게 느껴진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그대로 스윽 하고 나를 등 뒤로 잡아당겼다. 등으로 사람들을 밀어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헤쳐나간다. 나는 뒤에서 끌어안듯이 한 채 정말 빠르게 걸어나가는 모습에 나는 의문마저 느꼈다.
'뭐야? 나한텐 안 비켜주더니 왜 이렇게 잘 비켜주지?'
마치 길을 일부러 터주는 것 같을 정도다. 순식간에 밖으로 나올 수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뭘 한거지 싶을 정도였다.
여자가 되었을 때 힘이 약해진다면 모를까 여자일 때와 남자일 때의 내 힘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못 나왔다는건 내가 힘이 없는걸까 아니면 이 흑인이 힘이 센걸까?
아니면 혹시 다른 애들도 나처럼 흑인이 좀 무섭게 느껴지나?
"때, 땡큐."
"오, 괜찮아요."
조금 어색해보이는 발음으로 나도 알아들을 수 있는 현지어를 구사한다. 여전히 뒤에서 안겨져 있는 상태이지만, 아까 전의 일부러 노골적으로 허리를 비벼오며, 내 크기를 느껴보라는듯 좆을 가져다 댔던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허리를 뒤로 빼고있기까지 하다.
왠지 매너있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내가 게이는 아니지만 멋진건 멋지다.
흑인이지만 좀 멋있다. 이래서 흑인을 흑형이라고 하는건가.
"춤 추는것도 지치죠?"
"네? 아, 조금요…."
"어때요, 같이 마실래요?"
그치만 이건 다르다. 같이 마시자니…뭐를?!
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자그마치 흑인이다 흑인.
물론 모든 흑인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만…왠지 마약을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마시자고 해놓고 하는게 마약은 아니겠지?
유학생들 사이에서 마약이 국가적으로 금지되어있다고는 해도 모른 척 피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는 말을 한국애들 사이에서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마약을 주로 사는 거래처는 흑인이라고. 현지인은 모르지만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꽤 거래를 많이 한다고 괴담 비슷하게 들어왔기 때문인지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고마운건 고마운거지만, 그야 춤추는 애들 사이에 껴서 지치기도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에? 그, 그게…."
어쩌지, 이걸 어떻게 피해야 하나 하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국인을 발견하고, 그 남자의 팔을 곧바로 잡고는 말했다.
"아, 저기 죄송한데 저 잠깐만 일행인 척좀 해주실 수 있어요?"
"네? 아, 어…네!"
한국인인걸 어떻게 알았냐 싶겠지만 딱 보면 안다. 한국인은 외국에서도 한국인인 척 하고 싶어하는 티가 나서 정말 보기만 해도 저사람 한국인이구나 하는 패션에, 머리스타일. 느낌 자체가 한국인이다.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어로 말하자 남자는 순순히 따라왔다. 시선이 가슴쪽으로 향한 채로 되돌아오지 않다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다. 너무 어색한데.
"그게, 아 미안해요 저 이 사람하고 일행이라."
"오, 음…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뭔가 의심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게 에둘러서 자신을 거절했다고 느끼는건지 화가 날 법도 한데 웃는 얼굴로 잘가라며 손을 흔들어준다.
뭔가 무지 미안해진다. 마약같은건 내 착각일 뿐일텐데.
그런데도 역시 좀 무섭다.
흑인이 다음에 보자며 손을 흔들면서도, 내 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옆의 남자의 손을 잡아당겨서 귀에 대고 말했다.
"저기, 죄송해요. 일단 잠깐만 따라갈께요…."
"아, 저야 좋죠. 가요 가요."
이게 왠 횡재냐는 듯 내 말을 듣자마자 한국인 남자가 내 팔을 끌고 갔다. 흑인쪽을 슬쩍 뒤돌아보니 뭔가 눈 앞에서 먹이를 빼앗긴 맹수마냥 빛나고있는 것이 보인다. 우와 무서워.
전혀 찡그리거나 하고 있지 않은데, 어둠 속에서 보이는 흰자가 굉장히 무섭다.
흑인 공포증이라도 있나.
"한국분이세요? 혹시 어느 대학이에요?"
"아, 대학은 아니고…조금 일이 있어서 왔어요."
"직장인이구나. 저보다 누나겠네요 그럼. 누나라고 불러도 돼죠?"
날 끌고 가게 된 남자는 신이 난 듯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왠지 점점 클럽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노래방처럼 좌 우로 방들이 늘어서 있는 곳 까지 도착했다. 안쪽에는 이런 곳이 있구나.
적당히 대학교 이름도 말해주지 않고, 애매한 대답만 하고 있자 어느새 나는 해외에 일때문에 출장차 나왔다가 직장 스트레스를 풀러 클럽에 놀러온 오피스 레이디가 되어있었다.
클럽 중심과는 달리 여기는 좀 조용하다. 큰 소리로 말하면 옆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왠지 이대로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갈 기세여서 나는
"아 저기 근데 좀…."
"에이~일단 같이 마셔요! 이런것도 인연 아니에요? 누나도 스트레스 풀러 온 건데. 아, 술값 걱정 안해도 된다니까요."
"그래도…."
"제가 아까 도와준거 아니에요? 딱 봐도 그 흑인이 억지로 끌고가려는거 도와줬네. 그러면 술정도 같이 마실 수도 있지. 한잔만 마시고 가요. 한잔! 딱 한잔, 오케이?"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이렇게까지 비는거나 다름 없이 졸라대니 기분 나쁘기도 한대 조금 기분 좋기도 하다. 뭔가 받들여지는 기분이였다.
술이야 나도 양주라는게 무슨 맛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괜찮았지만, 역시 조금 안 내키는데. 그래서 다시 거절하려고 하는데도 끈질기게 나를 놔 주질 않았다.
"그게 저 술을 잘 못마셔서요."
"아, 그럼 이렇게해요. 누나 제 여자친구라고해요. 설마 내 여자친구라는데 애들이 막 술먹이고 하겠어요? 그쵸?"
"아니, 여자친구라니…."
"에이~놀러온건데 그냥 놀다 가요. 오케이?"
결국 나한테서는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못하고 갑자기 문을 열고는 나를 끌고 들어갔다.
이거 범죄 아닌가? 억지로 사람 팔을 끌고 들어가고.
그런데도 왠지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빠져나가려 하니 정말 진심으로 팔을 꽉 잡아오고, 발버둥치자니 그렇게까지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망설여진다.
그냥 좀 적당히 눈치채고 놔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도와준건 사실이기도 하니, 말하는 대로 그냥 한잔만 마시고 화장실로 도망친다음 그대로 나가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도 반쯤 자포자기 상태로 따라 들어갔다.
일단 양주가 무슨 맛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야, 지혁이 왔다. 야~어? 뭐냐 옆에 여자? 와!"
"야 지혁이 존나예쁜여자랑 같이 왔는데?"
"뭐야? 여친이냐?"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간 나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낯익은 얼굴, 어두운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본 얼굴들이 방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는 술병을 잔뜩 늘어놓은 채, 다른 대학 여대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몇명이나 끼여있었지만, 남자들중 3명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였다.
권성민하고, 그 놈을 형형하며 따라다니는 두사람.
'씨발….'
설마 정말로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을 줄이야. 심지어 내가 스스로 따라 들어오다니.
갑자기 기분이 확 나빠졌다.
"이야~ 지혁이 완전 출세했네. 이렇게 섹시한 여친이 있었어?"
"에이 안믿기는데? 진짜 지혁이 여친이에요?"
"지혁쓰! 여친있는거 왜 말 안했어~."
우와, 오글거린다. 지혁쓰으으? 지혀억쓰? 쓰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머리가 빈게 느껴지는 어휘 사용에 감탄할 정도다. 저 여자 분명 얘네들 육변기가 분명해. 처음 봤지만 딱 봐도 골이 빈 게 느껴진다.
머리는 노랗게 물들여서는 얼굴은 좀 볼만 하지만, 옆에 남자가 다리 위에 손을 올려두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앉아있다. 걸레다. 걸레가 분명해.
대충 안을 둘러보니, 나를 데리고 온 지혁이라는 남자 외에는 모두 옆에 여자가 한명씩 있었다. 총 인원 수는 한 9명 정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뭔가 셈이 이상한 것 같아서 다시 세보니 권성민의 여자친구가 없다. 사이사이에 여,남,여,남 식으로 끼어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와 지혁을 합치면 총 11명. 권성민은 뭐 여자친구한테는 말 안하고 클럽에 놀러온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조용히 주변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유추했다.
"야, 이렇게되면 솔로는 성민오빠밖에 없는거 아냐?"
"에이~ 성민오빠가 왜 솔로야, 혜민이있잖아."
"그야 여자친구 있지만 오늘은 솔로지!"
"형! 부킹해드려요?"
"야야, 치워라. 야 지혁이. 와서 착석주나 마셔야지 쌔끼. 여자친구랑 이리 와. 솔로 탈출 축하 기념으로 마셔야지."
대충 파악하자니, 지혁을 제외하면 모두 짝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인척 해달라는게 이런거였나? 다른 애들이 전부 여자친구가 있다보니 내가 도움을 청하자 이게 왠 떡이냐 하고 그대로 온 모양이다. 자존심도 세울 겸, 나도 꼬실 겸.
꼬시는건 반대였지만, 심지어 권성민까지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싫었지만 아무래도 지혁이 날 도와준건 사실이기는 했다. 첫인상이 인상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나는 어차피 권성민도 날 알아 볼 가능성은 0%이니 조금만 도와주다가 도망치자는 생각에 지혁을 뒤따라 가서 앉았다.
"자, 여친 생긴 기념으로 양주."
"어이쿠, 이거 감사합니다 어이쿠야~."
지혁이 오버하며 권성민에게서 술을 받아들자 권성민이 이어서 내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딴 놈한테는 아무리 양주라도 받아먹기 싫어서 안 받고 있자, 주변 눈치가 보인다.
"야, 지혁이 너 뭐 싸우고 데려왔냐? 그럼 안돼지~."
"아, 그게…아하하, 잠깐만 둘이 얘기좀 하고올께요."
"어허! 야! 가려고 해도 이미 둘 다 앉았는데 착석주는 마시고 가야지!"
"착!석!주!"
"착!석!주!"
이야~이 무슨 말도 안되는 규칙일까.
정말 어이없는 말에 황당함까지 느꼈지만 주변 여자애들과 남자들이 전부 맞다는 듯 착석주! 착석주를 외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 병신 파티는?
조금이지만 클럽도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이해 될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내가 이래서 한국인들이 싫다. 정확하게는 유학와있는 한국인들이 싫다.
유학을 간 한국인의 70%정도는 꼴통이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60%가 한계다. 꼴통에 빠져서 꼴통짓을 하는 꼴통 파티들.
오늘 처음 본 상대인 내게, 지혁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한 말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한잔만 마셔주세요."
뭔 미친놈일까 이건. 아무리 도와줬다고는 해도 멋대로 끌고들어와놓고 한잔만 마셔달라고?
언빌리버블!
너무 기분이 안좋아진 나는 그냥 한잔 마시고 나가자는 생각에 순식간에 잔을 들고 확 하고 들이켰다.
"이야~제수씨 화끈하네."
"지혁이 여친 멋지다~."
곧바로 나가려는 나를 보고 지혁도 급하게 한잔을 마시고는 따라나오는데 뒤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권성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남자새끼가 여자한테 휘둘리냐 새끼야!"
그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룸 안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게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권성민에게 뭐라고 하기보다는 분위기를 밝게 바꾸려고 한다.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내가 상관을 할 바는 아니여서 나가니, 지혁이 곧바로 나를 끌고 잡아당기려 해 이번에는 팔을 제대로 뿌리쳤다.
"저기요,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초면인데 여자친구 해달라는것도 그렇고, 착석주? 저 저런 자리 굉장히 불편한데요."
"아~진짜. 저기, 아 저도 아는데…아 진짜 한번만 해 주시면 안돼요? 안 들어갔으면 모르는데 벌써 여자친구라고 해 버렸고."
"제가 왜요? 도와주신건 맞지만 이건 아니죠."
"아니 그래도 저도 자존심같은게 있는데…."
내가 알바인가 그런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와준건 맞긴 맞으니 얘기라도 듣고, 납득을 시켜 준 다음 가자고 생각하고 있으니 지혁이 왠지 흥미로운 얘기를 해왔다.
"하…진짜 죄송해요 근데 아까 술 먹으라고 한 형 기억하죠? 근데 그 형이 맨날 저한테 여친없다고 놀리고 해서, 지금도 여친이 바람피는거같다고 막 애들 불렀는데, 또 애들이 다 저 가지고 얘는 여친도 없잖아 하니까 빡쳐가지고. 진짜 한번만 여친인척 해주면 안돼요? 오늘만요."
응? 그러니까…권성민의 여자친구라면 혜림이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는 얘기지?
저절로 웃어 버릴것만 같아진다. 남의 행복은 나의 행복? 말도 안 돼는 소리, 남의 불행이야말로 나의 행복이다.
바람을 피는 것 같다면 보나마나 그 대상은 뻔하지. 개가 개의 암캐를 뺏어가다니. 이야~역시 재력의 힘이 대단하구만. 남한테서 빌린 돈으로 지랄맞은 짓이나 하는 개새끼지만, 다른 개새끼한테 확실히 쓸모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조금 흥미가 생겼다. 권성민하고 있는 건 싫지만, 이렇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냥 여자로 변해서 하는 일탈 겸, 궁금증을 풀러 온 클럽이였는데 정말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다가 좀 궁금하기도 하다.
여자친구랑 사이가 안좋다니, 흥미가 마구 생긴다.
남자인 나라면 접근 자체를 싫어하겠지만, 뭐 여자인데 어떨까? 애들도 많고 남자만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히 정보만 들어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걸 학교에 다 소문내버려야지! 혜림이한테 얘기해 주는 것도 좋겠다.
아~ 녹음기를 가져올걸. 핸드폰을 잃어버릴까봐 혹시나 해서 안 가져왔는데 가져와서 녹음을 킬 걸 그랬다.
좀 더 여기 있다 가자고 결정한 나는 속으로는 권성민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며 즐겨주자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불쾌하고 도도한 기분을 유지한 채 지혁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권성민이라는 사람이 여자친구가 없다고 무지 놀린다구요? 그럼 그냥 안 만나면 되잖아요."
"하…근데, 그게 좀…저 형이 발이 좀 넒어서…."
그러니까, 괜히 반항했다가는 한국인들의 유학생 사회에서 욕을 잔뜩 먹는다? 그게 무서워서 그냥 똥꼬 핥으면서 살고 있다는 말이다.
뭐 왕따좀 당하면 어때서? 대학까지 와서 그런 시간낭비나 하며 노는 멍청이가 오히려 더 이상하다. 그런 헛소문에 빠져서 자기가 남을 판단할 자주적인 생각도 가지지 못하고 남이 시켜야만 할 줄 알게 되는 피동적인 인간으로 자라는 멍청이들도 마찬가지고.
그치만 그런 나와는 다른건지 지혁은 진짜로 싫으면서도 버티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모양. 그런데도 쌓인건 있어서 내가 좀 도와줘서 정신적인 승리감을 느끼고 싶은 모양이다.
비웃음의 대상, 스트레스 풀이처였던 지혁이 나같이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는걸 알면 기분 나뻐할테고. 아하, 아까 나갈때의 그 남자새끼가 어쩌구 하는 말은 그런 의미였구나? 여자친구에 대한 스트레스랑, 자기가 얕보던 지혁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짜증?
나는 조금 재미있는 유흥거리를 얻은 기분으로, 잠시만 즐기다가 가자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후…30분. 그 정도만 있다가 갈께요."
"네? 아, 그래도…."
"클럽 간다는거 싫어한다고 감시하러 왔다가 싸워서 간다고 해요."
"아…그게, 좀만 더 안돼요?"
처음 본 사람한테 뭐 이렇게 부탁이 많으실까.
아무래도 자기가 자칭 여자친구랑 사이가 좋은 모습을 연출해서 더 약올리고 싶은 모양인데. 아쉽게도 약올리고 싶은건 나도 동감이지만 그렇게까지 해 줄 생각은 없었다.
결국 30분만 있다가 나오기로 하고, 적당히 합의를 본 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다시 기분이 좋아진건지 방 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뭘 한건지 옷을 입은 채 여자애 뒤에서 다른 남자애 하나가 섹스를 하듯, 달라붙은 채 허리를 흔들고 있고 다른 여자애는 얼굴을 손으로 덮은 채 숫자를 세고 있다. 그걸 다른 애들은 전부 폭소하며 바라본다.
"야~! 더 힘내봐 힘! 아하하하!!"
"이야~허리 잘흔드는데?"
"아앙~진짜 가만안둬, 야! 너무 열심히하잖아~!"
한명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재다가, 30초가 되자 알람이 울렸다. 그런데도 남자애는 허리를 흔드는걸 멈추질 않는다.
"야~! 야아~! 멈춰, 야 얘 왜이래~!"
"아하하하! 얘 미쳤어!"
"발정났냐? 야! 멈춰!"
그걸 남자 둘이 달라붙어 떼어내자, 곧바로 떨어진 남자가 힘이 남아돈다는 듯이 발정난 개처럼 붉어진 얼굴을 한 채 바지를 잔뜩 부풀리고는 외쳤다.
"야! 30초만 더 하자!"
"미친새끼아냐 아하하하!"
"이게 벌칙이냐? 상이지!"
아무래도 상 위를 보니 무슨 술게임이라도 하고있던건지 티슈 상자가 중앙에 있고 한 곳에는 술병이 누워있고, 다른 곳에는 나무젓가락같은게 잔뜩 모여있었다.
"어, 지혀기~."
"야 빨리 앉아~."
"여자친구랑은 화해했어?"
"아하하, 네 했죠했죠."
아무래도 지혁은 막내라도 되는 듯 전원에게 다 존대를 쓰고있었다. 그대로 착석을 하자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며 지혁을 바라보던 권성민이 또 다시 잔을 내밀었다.
"임마! 앉을땐 뭐해야되는지 알지?"
"아이구, 마셔야죠 네네. 알죠알죠."
그렇게 지혁에게 술을 내밀더니 곧바로 내게도 잔을 내민다.
"자자, 제수씨도."
"저기, 저 그쪽보다 나이 많은데."
"몇살인데?"
"27."
"아 그래서 뭐 어때? 지혁이 여친이면 내 밑이지. 안그러냐?"
반말은 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하니, 권성민은 완전히 지혁과 나를 깔보는 듯한 말을 했다. 이거 좀 머리가 너무 비어있지 않나? 하면서도 나는 약올려주기 위해서 대답했다.
"오히려 내가 지혁이 여자친구니까 그쪽이 지혁이 밑 아냐?"
"오~."
"쎈데~! 이야~!"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인데 주변사람들이 권성민이 흠칫하던걸 보더니 장난으로 넘기려는 것 처럼 반응했다. 권성민도 주변 눈치를 보는건지 나에게 술을 따르고는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할까? 우리 술게임하고있었는데, 게임에서 먼저 이긴 사람 말대로 하기."
"내가 왜? 처음부터 나랑 지혁이가 그쪽보다 위인데 뭣하러?"
"이야, 지혁이 여자친구 남친 완전 위해준다."
"매력있다!"
등신들은 제발 좀 입좀 닥쳐줬으면 좋겠는데. 그치만 아주 나쁜 기분은 아니다. 거짓말이라고는 해도 권성민이 무진장 기분 나빠하는게 눈에 보이니까.
어이구, 여자친구도 바람피는데 깔보단 찐따가 나같은 미녀를 여자친구라고 데려오니까 약오르세요?
"야~지혁이, 너 여친 완전 멋진데? 일편단심이냐? 완전 부럽다 야."
그렇게 말하면서, 지혁에게 또 술을 따른다. 지혁이 받고나자 곧바로 권성민이 바로 두잔을 들이키는건 무리라는듯 가만히 있던 지혁에게 뭘 하냐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뭐해? 안 마시고?"
그 모습에, 아무래도 나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보니 알아차렸다. 표적을 바꾸시겠다? 그러니까 내가 여자친구일테니 남자친구가 자기한테 완전 설설 기는걸 보여줘서 자존심 상하게 해주겠다 이거지?
와~진짜 쓰레기다 진짜.
정말 기겁을 할 정도로 쓰레기같은 행동이라는걸 나는 연이어서 권성민이 원샷해라, 잔이 비었다 하며 계속해서 채우는 걸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권성민이 실제 모델이 있긴 하지만 실제 모델인 사람이 정말로 저정도까지 쓰레기는 아닙니다.
술마시면 좀 쓰레기가 되긴 하지만 저정도 레벨은 아닙니다.
그냥 술 안마신 맨정신일때 자기 후배들 담배를 통째로 뺏어가거나 하는 정도입니다.
수정후)
아무리 봐도 여전히 개꼴통 주인공이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워 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그렇게 믿습니다.
추신)복학 후 보니 권성민의 모델의 된 놈은 제 생각 이상의 개꼴통이였습니다. 병신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