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미래에서 온 육변기들(3)
“어머님...”
아아, 시어머니가 나를 오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오늘 저녁은 뭘 만들거니?”
어떻게 인간은 매일 식사를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인간을 만든 창조주를 만난다면 기꺼이 얼굴에 브레스를 날려줄 자신이 있었다.
“그게... 평소에 나현수가 좋아하던 음식을 한 번 만들어볼까 합니다! 아주 그냥 매일 입에 달고 살던-”
시어머니의 싸늘한 눈빛이 나를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라면이라든가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얘,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니. 요즘 세상에 오래오래 살려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데! 라면에 들어가는 화학 조미료...”
시어머니의 전형적인 공격 패턴, ‘끊임없는 잔소리’ 스킬이 시전되었다.
처음에는 침착하게마나로 귀 주위를 막아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차단했었지만 언젠가서부터 시어머니는 내가 개수작을 부릴 때마다 눈치를 채고는 나를 매서운 눈으로 째려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감이라고 하셨지...’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떤 내게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얌전히 경청하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내뱉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러려고 나현수의 부모님을 모셔온 게 아닌데...’
나는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내 하소연을 들어줄 이는 안타깝게도 아직 나와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적어도 ‘현재’에서는...
나는 금방이라도 흘러나올것만 같은 눈물을 애써 참아내며 저 멀리 허공에 떠있는 조그만 점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
“안녕?”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아이리스였지만 아이리스가 아니였다.
‘결론적으로 진짜 아이리스는 지금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단 말이지.’
내가 내린 판단은 내 눈앞에 있는 아이리스를 꼭 닮은 여자가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능을 지닌 어떠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도플갱어.’
내 눈앞에 있는 존재는 너무나도 익숙한 마나를 내뿜고 있었던 덕분에 나는 후자가 정답임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흐으음... 당신은 누구십니까? 과거가 바뀐 걸까요?”
아이리스의 도플갱어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자 내 직감이 계속해서 내게 미친 듯이 경고를 해대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위험해.’
아이리스는 명백한 강자였다. 내가 원래 알던 아이리스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
그런 아이리스가 마나를 끌어올려 내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가벼운 공격을 쏘아보냈다.
“아쿠아 블래스트(Aqua Blast).”
푸하아아아-
그녀의 기습을 뒤늦게 막은 나는 물 맞은 생쥐 꼴이 되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검붉은 기운이 내 몸을 감싸자 주변의 수분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마신...? 당신은 지금 이 시간대의 카리스인 니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제가 알던 카리스의 모습하고는 뭔가 많이 다른데요?”
아이리스가 혼란스러운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리더니 이내내 몸을 구석구석 관찰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일단은 마신과 모종의연관이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니... 제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있던 미래에서 마신은-”
아이리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비아냥거리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말 손쉽게 죽어버렸답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현수님의 앞길을 방해하려고 나대다 말이죠.”
그 말을 들은 나는 좌절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
“그래? 그럼 잘 됐네. 안 그래도 내가 마신이면 현수가 나를 무서워하거나 그러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차피 내가 네 말대로 그렇게 손쉬운 상대라면 현수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리스는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법... 지금의 나로서는 아마 상대가 안 되지 않을까?’
나는 수련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었으며 더더욱 온힘을 다해 싸워본 적도 없었다.
일전에 아이리스나 다른 육변기들과 싸워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막 각성했을 당시라 힘 자체도 괘나약한 편이었었고...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강한 걸까? 그래도 마신이면 꽤 강한 편이 아닐까...?’
희망적인 생각을 품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까 아이리스가 내게 말해주었던 말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신이 쉽게 당했다라... 정말 내가 마신이라고 해도 승산이 없을 수도...?’
초조함이 극에 달해 손톱을 물어뜯으며 아이리스의 마법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가만히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녀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윈드 월(Wind Wall).”
급하게 바람으로 된 방벽을 펼쳐 내 일격을 막아낸 아이리스가 계속해서 이전에 준비하던 마법을 이어서 영창하기 시작했다.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현수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이미 한계까지 착정당해 실신해 있는 상태처럼보였다.
‘어떡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마법이 아이리스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 거대한 절망 속에서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나현수...’
얼핏 보면 주마등같아 보이겠지만... 이건 주마등 따위가 아니었다.
‘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나현수.’
내 머릿속이 나현수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나현수의 모습을 떠올리자 흥분해버린 내 보지에서는 애액이 질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이리스의 마법이 내 몸에 닿기 직전-
[당신의 끝없는 집착이 능력 얀데레의 대상 (나현수)를 위하는 마음에 힘을 보태줍니다.]
콰콰콰콰쾅-
검붉은 기운이 내 의지를 따라 아이리스의 마법을 완벽하게 막아버렸다.
얼떨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아이리스를 향해다가갔다.
*
‘한채린! 이겨라! 우유빛깔 한채린!’
아이리스한테 더는 착정당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절한 척을 하고 있던 나는 사실 한채린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을 때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오오! 진짜로 이기겠는데?’
한채린의 정체가 마신이니 뭐니 알 수 없는 얘기들이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딴 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지! 이대로 아이리스의 생체딜도로 허무하고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고!’
한채린이 지금 나를 구해주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 내게는 그 사실만이 중요했다.
뚜벅뚜벅 아이리스를 향해 다가가던 한채린이 자신의 오른팔에 검붉은 기운을 점점 더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아이리스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자신의 팔을 앞으로 내밀며 한채린의 행보를 막아버렸다.
“잠깐! 우리 거래를 하자. 너가 마신인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현수를 우리 둘이서만 독차지하는 거야, 어때?다른 육변기년들은 신경쓸 필요도 없다고? 우리 둘만 평생 나현수의 자지를 마음껏 즐기는 거야.”
아이리스의 달콤한 유혹에한채린이 검붉은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씨발, 이러다가 좆되게 생겼는데?’
나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한채린의 모습을 망연자실한 눈빝으로 쳐다보며 나는 다른 탈출 계획을-
푸슉-
방금까지만 해도 전투 의지를 상실해버린 듯 보였던 한채린이 돌연 검붉은 기운을 내뿜어 아이리스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왜...? 대체 왜...?”
아이리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채린을 올려봤다.
“그야 당연히... 너가 없으면 나 혼자 나현수를 독차지할 수 있잖아?”
한채린이 더럽다는 듯 자신의 몸에 튀긴 아이리스의 피를 탁탁 털어내며 바닥에쓰러져있는 아이리스를 등져버렸다.
“미친 년...”
그렇게 미래에서 온 아이리스는 숨을 거두었다.
*
“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위대하고 고귀한 존재, 그야말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블루드래곤 엘레노어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육변기들끼리 나현수 쟁탈전을 벌여야 할텐데... 어째서?”
아까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아이리스의 기운이 뚝하고 끊어져 버렸다. 현재 시간대의 아이리스를 찾아보니 그녀는 멀쩡하게 집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과거가 어느 정도로 바뀐거지? 나현수가 홀로 미래에서 온 아이리스를 제압할 정도로 강해졌을... 리는 없고. 그 섹스밖에 모르는 멍청한 뇌좆새끼가 단련 같은 걸 했을 리가 없으니까.”
실제로나현수는 능력을 얻고 난 뒤에 단련 따위를 할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었다.
“뭔 일만 생기면 육변기 불러다가 해결하는 기둥서방이지 완전... 치마폭에 숨어서 빌빌거리는 새끼.”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나는 나현수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그의 다리 사이에 숨겨져 있는 제3의 다리가...
“나중에 내가 이렇게 기특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분명 마음껏 박아주겠지? 그때가 되면 일단 입으로 몇 발 빼고 나서 엎드린 채로 애널을 박히면서 가슴을...”
온갖 행복한 상상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안타깝게도 시어머니의 부름을 듣고는 단박에 며느리 모드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 수모만 견디면... 나현수가 분명 나를 실컷 박아줄 거야...’
나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며 하루하루 지옥같은 시월드를 버텨나갔다.
*
“이제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뿐이야... 드디어...”
한채린이 광기어린 눈빛을 띄며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좆됐네...’
왜 여자들은 나만 보면 그렇게 생체 딜도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에휴, 이게 다 내 자지가 너무나도 훌륭한 탓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