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복수의 시간(12) (116/120)



〈 117화 〉복수의 시간(12)

“야, 그만 울어.꼴사나우니까.”

내 싸늘한 말투에 장난감 1호가 애써 히끅거리며 눈물을 멈추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에휴,  잠시 어디 갔다 올테니까 얘 좀 달래놓고 있어라.”

밤금 남편을 자기 손으로 죽여놓고 달래놓으라고 하는 내 말에 갑자기 내게 지목을 당한 장난감 2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터벅터벅 방을 걸어나가버렸다.

“이시연, 저기 안에서 내가 따먹은 년들 빼고 나머지는 싹 다 처리해줘.”

내 잔혹한 명령에도 이시연은 눈 한번조차 깜빡이지 않고 묵묵히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내가 너무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들어?”

호기심에 건넨 질문, 이시연은 나를 쳐다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S급 헌터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활동할 당시 내게 이런 힘이 주어진 건 이 세상의 약자들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믿었었어. 모든 사람들의 목숨은 평등하니까, 약자나 강자를 전혀 가리지 않고 목숨이란 목숨은 하나라도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었지.”

이시연이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회상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데 너를 만나고 깨달았어. 모든 목숨의 가치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네 자지 하나 덕분에 행복해하는 수많은 여자들을 봐. 한심한 실좆은 딸이나 치면서 자기 스스로밖에 기쁘게 하지 못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네 목숨은 그런 실좆 새끼보다 적어도 몇십 배는 가치있는 거지.”

이시연의 위로 덕분에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래, 그런 거야. 내 자지가 없어지면 슬퍼한 여인들이 몇 명인데, 당연히 내 목숨이 조건우 같은 새끼들보다는 훨씬 더 가치가 있지.”

평소와 다름없이 좆논리로 자기합리화를 마친 나는 애써 불안함을 떨쳐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엘리베이터에 탄 내가 누른 버튼은 바로 7층이었다.

‘7층, 청룡 길드의 길드장실이 있는 곳이지.’

나는 지금 한유현을 죽이러 가고 있었다.

*


“왔나?”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애써 펼친 인비저빌리티(Invisibility) 마법을 해제하고는 거만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한유현을 노려보았다.

“앉게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아니냐.”

분명 한채린은 내게 한유현이 나에 대해 모른다고 했는데... 어째선지 한유현은 이미 나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한유현의 말대로 소파에 몸을 뉘인 나는 삐딱한 말투로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왜, 대체 왜 내 부모님을 버리고 도망간건지... 사실 내 원망의 대상이 S급 보스 몬스터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는 한유현을 질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S급 보스 몬스터는 죽었고... 한유현은 살아있으니까.’

나는 여태 불행했던 내 삶을 전부 한유현의 핑계로 탓해버렸다.

내가 고아로 자라 빈곤한 삶을 살아온 것도, 부모님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온 것도 전부 한유현의 탓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래, 너는 진실을 알 자격이 있겠지...”

어째선지 한유현은 나를 씁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듯...

“너의 부모님은 아직도 살아계신단다. 아주 멀쩡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내게 전해져왔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유현의 멱살을 움켜쥐며 그를 째려보았지만 그는 그저 무덤덤하게 내 시선을 받아넘기며 천천히 입을 열뿐이었다.

*


“여기가 S급 던전, 블루 드래곤의 레어인가?”

나는 웅장한 신전 모양의 건축물을 경이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양옆으로 돌려 항상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두 사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들어가지.”

그렇게 우리 셋은 평소와 같이 던전 레이드에 임했다.

카앙- 캬앙-

검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던전 안을 가득 메웠고,

화르륵- 파앙-

온갖 마법들이 난무하는 소리가 던전 안에 울려퍼졌다.

“쟤가 보스인가 보네.”

모든 몬스터들을 소탕한 우리를 기다리는 건,

크와와와왕-

 마리의 거대한 블루 드래곤이었다.

“침착해. 저 정도면 우리 힘으로 충분히-”

갑자기 블루 드래곤의 입에서 엄청난 피어가 쏟아져나왔다.

"크아아아아“

드래곤중에서도 최강의 블루드래곤이 울부짓었다.

”음? 그대들에게서는 어째서 나현수의 냄새가 그토록 짙게 나는 것이냐?“

블루 드래곤이내 두 동료들을 흥미에 가득찬 눈으로 쳐다보았다.

”인간, 너한테는 볼 일이 없으니 꺼져라.“

블루 드래곤의 손짓과 함께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나를 향해 쏟아졌고 나는 그대로 던전에서 추방당해버렸다.

”아아... 안 돼... 안 돼! 안 돼!!!“

내 눈앞에서 던전이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에도, 나는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대한민국의 S급 헌터 한유현, 자신의 두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다?]

이런 제목의신문이 길거리에 나돌기 시작했다.

청룡 길드의 힘으로 순식간에 언론을탄압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비겁자이자 도망자라고 칭했으며,

”맞아. 나는 어찌 됐든 동료와 생사를 함께하지 못한 쓰레기지...“

나는 그날 이후로 일선에서 물러나 길드의 대소사를 결정하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세우기 시작했다.

”나현수... 그 아이를 내가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을꼬?“

한숨을 내쉬우며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나현수와 관련된 조사 자료들을 화르륵 태워버렸다.

”정말... 정말 미안하다...“

나는 도저히 나현수를 찾아가 그를 직접 만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의 말대로 그저 비겁한 도망자였다.

*

”그렇게 된거였다. 나도 사실 너를 처음에 장성한 너를못 알아볼 뻔했지만 다행히도 네가 네 애비를 꼭 빼닮아 조사를 해보니 네가 그들의 아이임을 알아낼  있었지.“

한유현의 말이 끝나자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머리를 맹렬히 회전시켰다.

‘블루드래곤... 아무래도 내 부모님을 만난  엘레노어가 아닐까? 그리고 부모님의 생사여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라... 그럼 내 부모님은 살아계신 건가?’

온갖 추측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한정된 정보로는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거의 없었다.

‘하여튼 한유현  사람은 그렇게 나쁜 새끼가 아니였군. 한채린한테도 잘 얘기하면 좋게좋게 넘어갈 수 있겠어.’

한유현 같은 사람은 원래 정의감이 투철하고 책임감이 넘쳐 모든 짐을 짊어지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우직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지.  부모님이 이 사람과 함께 활동을 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야.’

한유현을 꽤나 높이 평가한 나는 이내 길드장실까지 무단으로 침입한 데에 별 소득이 없었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히려 골칫거리들만 잔뜩 늘어난 것 같네... 에휴...’

한유현과의 오해가 어느정도 풀린 나는 긴장을 풀고는 소파에 조금 더 깊숙이 몸을 뉘이며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뭐, 한유현씨 말은 잘- 아, 그냥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도 되죠?“

내 말에 기껍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유현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저씨가  말은 잘 알아들었는데... 그 이후로 제 부모님의 시체를 찾아본다거나 아니면 생존 여부를 확인해본다거나 그런 부차적인 노력은 해보지 않으신 건가요?“

내 질문이 타당하다고 생각됐는지 한유현은 자신의 턱을 스윽 매만지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나는  날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네 부모님의 행방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어. 마나 탐지 능력자들까지 총동원해가면서  부모님의 마나를 탐색해보았지만 마치  세계에서 사라져버린 듯이 네 부모님의 마나의 흔적이 이미 사라져버린 상태였어.“

죽었거나, 이세계로 전이됐거나. 한유현이 현재 하는 말은 그뿐이었다. 단지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세계의 존재를 모르니까 그저  부모님이 죽었을 거라고 추측한 거겠지.

‘그렇다면 내 부모님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커. 특히나 그 블루드래곤이 엘레노어 본인이거나 그녀와 관계가 있는 다른 드래곤이라면 더더욱.’

희망적인 생각을 품은 나는 부모님의 행방에 대해서  더 면밀히 조사해보기로 다짐을 한 뒤 한유현의 처우를 정하기 위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한유현이 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자신의 양 팔을 벌리며 지그시 눈을감았다.

”나는 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죗값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네. 사실 보스 몬스터를 만나기 전에 네 부모님들은 느낌이 좋지 않다며 밖에 지원 요청을 하자고 했지. 하지만 내가 막무가내로 공략을 강행하는 바람에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야.“

한유현의 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눈물을 본 나는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나중에내가 한유현을 내 손으로 죽인걸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실 거야.’

결국 한유현을 이대로 방치하기로 결심한 나는 등을 돌려 방에서 나가버리려고 했다.

”음...? 저 사진은 채린이가 어렸을 때 찍은 건가요?“

 질문에 한유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인자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렇다네. 채린이도 어렸을 때는 저렇게 귀여웠는데... 어쩌다가 지금은 이렇게 쌀쌀맞은 숙녀가  됐는지, 허허.“

뭔가이상했다. 내가 한채린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이유는-

‘저 사진은 가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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