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비틀린 시간 속의 무협 소설(2)
뒷담화의 현장은 성공적으로 검거되었다. 가장의 위신을 세운 나는 따로 남궁서희를 데리고 장인어른을 뵈러 갔다.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사실 내가 끌려왔지. 장인어른이 내게 한 얘기를 말해주자마자 아주 불같이 화를 내더니...“
가주실로 들어간 남궁서희는 곧장 안에 있는 물건들을 부수며 난동을 피웠다.
“이... 이 무슨 짓이더냐! 서희, 네가 요즘 하도 얌전히 무공을 수련하기에 이아비가 편히 풀어줬거늘...!”
남궁서희는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째려보았다.
“뭐? 헤어져? 나랑 나현수가 어떤 사이인지 정말 몰라서 그래? 아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에서 대놓고 성교라도 해-”
슬쩍 내 눈치를 본 남궁서희가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정정했다.
“뭐 그런 짓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런 뜻이지. 그러니까 나현수는 건드리지 마.”
장인어른은 나를 향해 분노와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이래서 너를 싫어하는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하는 짓이 고작 아내한테 고자질하는 거라니!”
나는 못 들은 척 휘파람을 휘휘 불며 딴청을 피웠다. 원래 남의 집안싸움에는 끼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결국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뒷목을 잡은 채 의자에 쓰러지듯 앉은 장인어른은 나를 건드리지 않겠다 약조하고는 축객령을 내렸다.
“역시, 우리 서희 짱이야!”
이런 와이프라면 기둥서방인생도 좋지 않을까?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남궁서희와 함께 가주실을 나섰다.
*
“확실한 정보인가?”
화음현에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러 왔던 성예설은 이내 무림맹에서 벌어진 참사를 듣고는 흥미를 나타냈다.
“확실합니다. 무림맹에 있는 저희 세작들만 해도 수십 명이 넘는데 그들이 전부 똑같은증언을 했습니다. 현재 그들은 남궁세가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던 용이 실존했다라... 과연 기뻐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일일까? 그 용을 직접 보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역용술을 펼쳐 주거라. 내 직접 남궁세가의 시비로 잠입해 사실을 확인해야겠다.”
그렇게 그녀는 나현수의 전속 시비 성설이 되었다.
*
“설아, 나 먹여줘.”
한시라도 빨리 이 한심한 남자한테서 떨어져 용의 존재를 파악하러 가봐야 하는데 이 남자는 어째선지 나를 놔주지 않았다.
“아앙~”
기어코 빙당호로를 직접 받아먹고 나서야 그는 만족한 듯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현수 공자님, 저는 가주님께서 따로 명하신 중한 임무가 있어 이만 가봐야 할 듯하옵니다.”
그 남자는 내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가봐. 하오문주가 따로 올 정도면당연히 중한 임무가 있어서 왔겠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비수를 날렸다.
*
‘오, 럭키. 공략 치트 스킬이 여기서도 통할 줄이야.’
내가 창조주인 세상이라고 했으니 뭐 공략 치트 스킬이 통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회귀했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미래에 이 세상을만든 뭐 그런 건가?’
나는 복잡한 생각을 미뤄둔 채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공략 치트 스킬로 조사했다.
‘대충 다 살펴 봤네. 그 다음은 저 시비다. 헤이, 시리. 저 시비에 대해서 알려줘.’
[그녀의 가명은 성설로 현재 남궁세가의 시비로 잠입중인 하오문주 성예설입니다.]
‘오, 그래? 남궁세가 안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나?’
[그녀는 화경의 고수로 반박귀진(返朴歸眞)에 이르러 내기와 외기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수준의 여인입니다. 따라서 아직까지 남궁세가의 그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좋고. 그럼 이제 제일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야지. 그녀는 내가 따먹을 만한 미녀인가?’
나만이 비밀을 알고 있는 미녀, 그건 바로 따먹기 플래그였다. 나는 제발 그녀가 미녀이기를 빌었다.
[쳇, 운이 좋으시군요. 그녀는 천하삼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절세미녀입니다. 그래도 좆을 함부로-]
나는 애써 시리엘의 나머지 잔소리를 무시하며 천하삼미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졌다.
‘천하삼미? 그거 완전 나한테는 천하삼미(天下三美)가 아니라 천하삼미(天下三味) 아니야? 천하삼미가 누군지 알려줘 봐.’
[남궁세가의 독녀, 남궁서희. 하오문주 성예설. 그리고 천마 천소하입니다.]
‘천마는 따먹는게 국룰이지! 존나 맛있겠네.’
[풉, 병신.]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 시리엘이 나한테 병신이라고 한 것 같았는데?
‘뭐라고?’
혹시 몰라 시리엘한테 되물어봤으나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분한 마음에 하늘에 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 뿐이었다.
이 꿀꿀한 기분을 어떻게 달래지? 나는 성예설을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뻔뻔하게도 내 입에 빙당호로를 넣어줄 것을 요구했다.
‘대충 성예설이 나가려고 할 때 딱 비밀을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게 멋진 척 허세를 부리는 거지.’
이윽고 성예설이 남궁세가주의 임무니 뭐니 하면서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며 내 곁을 떠나려고 했다.
“그래 가봐. 하오문주가 따로 올 정도면 당연히 중한 임무가 있어서 왔겠지.”
내 다리 사이로 비수 하나가 빠르게 날아와 꽂혔다. 하마터면 나는 오줌을 지릴 뻔했다.
‘좆될 뻔했네. 하만터면 자지가 싹둑...’
끔찍한 상상을 떨쳐낸 나는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한테 평온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앉지,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은데.”
성예설이 묘한 표정을 하며 조심스레 내 앞에 엉덩이를 붙였다.
‘헤이. 시리. 성예설이 알아내려는 정보가 뭐야?’
[그녀는 어제 무림맹에 등장했다는 용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설대로라면 용의 내단은 그녀의 약혼자를 살릴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하늘이 ‘전지전능한 자지를 지닌 나현수님, 제발 성예설을 따먹어주세요.’하고 고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줄 수 있어. 너는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지?”
성예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
당장이라도 이 나현수라는 남자를 붙잡아 분근착골(分筋錯骨)을 해가며 정보를 캐내고 싶었지만 그는 어째선지 남궁세가 내에서도 귀빈 대접을 받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 자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내 정체를 알아챌 정도니 내가 용에 관해 조사를 하기 위해 잠입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과연 알고 있을까?’
고심 끝에 나현수를 살짝 떠보기로 했다.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어찌 대가를 바라십니까?”
나현수는 내 질문에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윽 턱을 매만졌다.
“글쎄... 사람을 구하는 일은 맞지만 아무래도 네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는 느낌이 더 강해서 말이야.”
나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고 이 남자는 내 약혼자에 관한 것까지 전부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제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그이를 살려주세요.”
나는 결국 무릎을 꿇고 그에게 빌기로 했다. 잠깐의 굴욕 따위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견딜 수 있었다.
“모든 것이라? 그럼 내가 하오문을 내게 바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하오문은 개인들의 부귀영화를위해 만들어진 음지의 조직.
“바치겠습니다.”
이 대답으로도 나현수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내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내가 네 처녀를 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옷을 벗을 수 있다는 듯 앞섬을 풀어 헤치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드리겠습니다.”
나현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그는 내 답변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평생 내 노예가 되라고 한다면 될 수 있어?”
이 질문은 나도 고민을 조금 해봐야 했다. 잠깐의 굴욕이 아닌 평생의 굴욕이라...
“노예가 되는 대신 제가 사랑하는 그이가제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내 사랑은 그만큼이나 견고했다. 나는 나현수가 이 대답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째선지 그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호탕한웃음을 내뱉었다.
“푸하하. 그래, 네 뜻은 잘 알겠어. 내가 그를 낫게 해주지, 그래도 거래가 거래인만큼 선금을 조금 받을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그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내 보지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슬쩍 붉히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오늘 밤, 침소로 찾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제 약혼자를 치료해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는 품속에 숨겨두었던 단도를 재빨리 그의 목을 스쳐지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한 위치로 던져버렸다.
“저를 가지고 논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르게 해드리겠습니다.”
내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나현수는 내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성예설은 그 협박이 끝나고도 잠시동안 내게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다가 순식간에 방을 떠나버렸다.
그녀가 떠난 방안에서 나는 피가 살짝 흐르는 내 목을 매만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후, 식겁했네. 그나저나 시리엘, 네가 말한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거겠지? 네 말이 틀리면 난 지금 뒤지게 생겼다고.”
[안타깝게도 제가 드린 말씀은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라는 이상한 수식어가 앞에 붙어있어 살짝 심기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나는 애써 이를 무시하며 아까 공략 치트 스킬로 알아낸 성예설 약혼자의 치료 방법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아이리스의 그레이트 힐(Great Heal)과 엘레노어의 리인카네이션(Reincarnation) 마법을 동시에 쓰면 완전히 낫는다는 거지?”
[마스터도 직접 아이스 스톰(Ice Storm) 마법으로 주위를 감싸셔야 합니다.]
‘아, 맞다. 태양절맥인지 뭔지 그거 참 까다로운 병이네.’
대충 치료 방법을 정리한 나는 천천히 성예설을 완전한 내 육변기로 만들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과연 치료가 끝날 때에도 약혼자 곁에 있겠다고 할지 두고 보자고. 나는 시리엘도 인정한 A급 카사노바니까.’
룰루랄라 신이 난 나는 그렇게 방 안에서 빈둥거리며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
“나왔어.”
한 여인의 고운 음색에 나는 자지가 뻣뻣해짐을 느끼며 흐트러진 옷을 가다듬었다.
‘그래, 빨리 들어와라 성예설. 공략 치트 스킬로 확인한 너는 처녀였지. 오늘 그 먹음직스러운 처녀를 내 손수 뚫어주마!’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나는 밖을 향해 큰 소리로말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여인이...?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 여인은 누군가요?”
내 방에 들어온 두 명의 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결국 그녀들은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지 못했는지 나를 향해 질책의 눈초리를 쏘아댔다.
‘이건 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원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나현수! 나 왔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명의 여인이 더 내 방을 급습했다.
세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나를 째려보는 것을 반복했다. 아마 내가 입을 열 때까지 그녀들은 계속 그 의미없는 행위를 반복할 듯 싶었다.
‘인생...’
아무래도 오늘 밤 내 침실은 개판이 날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