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귀환자의 성인용품점(21) (59/120)



〈 59화 〉귀환자의 성인용품점(21)

“설아가 사라졌어요.”

레이첼은 드물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며 내게 사정을 설명했다.

“짐을 챙기러 성인용품점에 간다고 했는데... 찾아가 보니 설아의 흔적이 건물 앞에서 끊겨 버렸어요.”

‘유설아가 워낙 동안이기는 하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유설아가 내 육변기들 중 가장 많을 텐데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네...‘

나는 레이첼의 말에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차피  육변기들의 능력이면 유설아 하나 찾는 것쯤은 일도 아닐 테니까.

“그냥 찾으러 가면 되지, 왜 굳이 나한테 보고를 하는 거야...”

나는 레이첼의 다음 한 마디에서 그녀가 그토록 당황했던 이유를 알아낼  있었다.

“설아는 지금... 적어도 이 세상에는 없어요. 설아의 마나가 사라져버렸어요.”

한 마디로 유설아가 죽었거나 이세계 전이라도 했다는 뜻이었다.

“육변기들 전부 모아.  육변기 관리창에 표시가 된다는 건 유설아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지구로 돌아가서 신시아한테 지금 상황을 얘기해 보자.”

그렇게 황급히 모인 우리는 지구로 돌아갔다.

*

“아빠, 돌아왔네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신시아가 나를 반겨주었다.

“목욕부터 할래요? 밥부터 먹을래요? 아니면....나.부.터?”

“이 꼬맹이가. 먹어도  엄마들을 먹겠지. 아, 이렇게 말하니까 왠지 패드립 같네.”

신시아에게 살짝 딱밤을 쥐어박으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라?  엄마는요?”

신시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엄마를 찾자 나는 어째선지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엘레노어는 아직 육변기로 못 만들었어. 일이 좀 있었거든.”

의외로 신시아는 쿨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미래가 바뀌었으니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겠죠. 그래도 나중에 제 엄마는 꼭 육변기로 삼아주세요.”

제 엄마를 육변기로 삼아달라는 훌륭한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엘레노어도 NTL을 해야  텐데 엘레노어가 사랑하는 이가 있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신시아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세상에는 성적 취향이 조금 특이한 사람도 있다고요? 아빠라면 알아서 잘 하실 거예요, 변태라면 아빠를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

일단 간단한 안부 인사 비스무리한 대화가 대충 마무리 되었으니 본론으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유설아가 사라졌어. 지구로 황급히 돌아온 것도 너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야. 아는 게 있으면 말해줘.”

신시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신시아는 뭔가를 깊게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래에서 지구를 거의 멸망시킨 그 새끼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해요. 일부러 설아 엄마를 다른 세계로 전이시킨 걸 거예요, 아빠와 만나지 못하도록.”

뜬금없는 신시아의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구 멸망? 뭔가 스케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같은데?”

반면 신시아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미약한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아빠도 알아 두셔야겠죠.  들어요,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새끼들.  새끼들의 이름은 순애충이에요.”

순애충, 이름만 들어도 NTL 능력을 가진 나와는 숙명적으로 적이  수밖에 없는 사이 같아 보였다.

“순애충은 마신 □□□의 지시를 받고 아빠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앞으로도 온갖 방해들을 해올 거예요. □□ □□□ □□□□ □□□...”

신시아의 입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치 세계가 그 정보를 검열하듯 그녀의 음성은 내게 전해져오지 않았다. 다른 육변기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아야, 네가 하는 말이 우리한테는 안 들려.”

“아 아마 □□□□가 막고 있는 것 같네요. 인과율이 너무 소모될 테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던 신시아는 이내 한숨을 쉬었다.

“일단 설아 엄마부터 구하는 게 먼저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시아가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나를 향해 미지의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마치 엘레노어와 싸울 그녀가 읊던 용언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설아가 있는 곳을 찾고 있는 거야?”

주문을 완성한 신시아가 해맑게 웃으며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아빠를 죽이려는 거예요. 보이드 블래스트(VoidBlast)."

뒤늦게 육변기들이 내 앞을 막아섰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 우리는 결국 신시아의 마법 앞에서 전부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


[<지구> 세계의 시간이 □□□ ‘나현수’의 능력 ‘육변기 마스터’로 획득한 ‘무한회귀’에 의해 6시간 전으로 되돌려집니다.]

[6시간 이전의 시점에서 □□□ '나현수‘는 해당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강제로 <귀환자의 성인용품점> 세계로 전이됩니다.]

‘아, 맞다. 유설아가  육변기니까 나한테도 무한 회귀 능력이 생겼지.’

신시아의 행동을 이해한 나는 내심 불만을 토해냈다.

‘미리 말해주고 죽이면  것을 일부러 장난치려고 기습한 거야. 딸만 아니었어도 내가 자지로 확 혼내 주는 건데 스읍...’

혼내지 못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나는 유설아를 따먹을  수없이 봐왔던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았다.

‘뭔가 한 곳을 중심으로 세계가 변화하고 있어. 어디지?’

나는 열심히 고개를 돌려  천지개벽과도 같은 이적을 벌이는 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저 사람이다! 누구지?’

성스러운 순백의 실루엣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여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태는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얼굴! 얼굴을 보자!’

내 간절한 기도에 그 여신님은 응답이라도 해주려는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초월적인 미모, 그녀는 이 세상 외모가 아니었다.

여신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나를 향해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열심히 그녀의 입술을 주시해 그녀의 말을 해독했다.

‘기, 다, 릴, 게, 요? 절, 따, 먹, 으, 러, 와, 주, 시, 는, 그, 날, 까, 지?’

음란마귀가 내 눈을 지배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녀의 입술은 내게 그렇게 읽혔다.

‘에이, 내가 하도 정력만 올렸더니 정말 뇌좆이라도 되버렸나 보네.’

나는 이를 내 실수로 치부하고 단순히 넘겨버렸다. 여신이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며 나는 회귀가 완료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

“하아, 하아. 마스터가 나를 봐줬어. 따먹어 달라고 똑똑히 말하는 내 입술을 마스터가 봐줬어. 흐읏!”

방금 하나의 세계를 복구하고 온 시리엘은 볼에 홍조를 띈 채 자신의 클리토리스를매만졌다.

“시리엘, 어째서... 대체 왜! 나현수, 그 새끼를 죽여버리겠어. 어떻게든 죽여버리겠어.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시리엘, 한때 나만을 바라봤던 여인. 어째서 그녀는 그렇게 망가져 버린 것일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날, 시리엘을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니었어. 다 내 잘못이야.”

그렇게 부서진 인연들의 조각이 점점 맞춰져 가고 있었다.

*


“그냥 전부 다 변명이었어. 내가  죄를 고백했는데도 네가 용서하지 못하고 날 경멸의 눈으로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어.”

한채린의 떨리는 두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시라도 바삐 유설아를 구해야 하는 상황,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채린아, 내가 정말 미안해. 사실 내가 방금 미래에서 돌아온 거거든? 너랑 이미 대화를 한차례 마친 입장이라 지금-”

한채린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처로운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렇게까지 싫어? 나랑 말도 섞기 싫을 정도로? 내가 정말 미안해, 다 잘못했어, 용서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저 내게 기회를 줘, 기회를. 현수 네게 속죄할  있는 정당한 기회를 달란 말이야.”

한채린의 말에 대꾸해줄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레이첼이 30분 이내로 와서 유설아의 실종 소식을 내게 알려줬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성인용품점 앞으로 가야할 터.

“아니, 진짜 너랑 말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미래에서 유설아를 구하러 잠시 돌아온 거라니까?”

한채린의 표정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아무래도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내가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안타깝게도 나는 그녀를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따라와, 한채린. 지금 한시가 급하다고.”

한채린의 손을 붙잡은 채로 나는 택시에 올라탔다.

*

“이야, 형님.  년 반반한 것 좀 보이소.”

“상품은 건드리는  아니다. 우리가 받은 돈이 얼만데. 프로의식을  가져라, 프로의식을.”

저기 있다! 내 눈앞에 유설아와 수상한 남자의 무리들이 보였다. 나는 뛰어난 스카우터(S)를 착용한  한채린을 이끌고 유설아의 앞으로 뛰어갔다.

“넌 또 뭐꼬? 여자친구도 꽤나 반반해 보이는데 볼 일 없으면 갈 길이나 가슈.”

뛰어난 스카우터(S)가 말해주는 깡패의 랭크는 무려 SS등급. 그는 신시아가내게 말해주었던 마신의 수하 순애충임이 분명했다.

‘순애충을 화나게 하는 방법제1장. 그것은...’

“둘  내 여자다.”

‘하렘.’

분개한 순애충들은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나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주었다.

“훌륭한 수컷에게 훌륭한 암컷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

이를 바드득 가는 순애충들은 당장이라도 날 죽여 버릴 것만 같았다.

‘내 육변기들과 비등하게 싸운 한채린이라면 SS등급 1명하고 S등급 2명은 처리할 수 있을 거야.SS등급 2명의 합공도 거뜬히 버텨냈는데...’

한채린을 향해 신뢰의 눈빛을 보낸 나는 비릿한 미소를지었다.

‘순애충을 화나게 하는 방법 제2장, 그것은...’

“아, 저 여자는 원래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따로 사랑하던 사람이 있긴 했지. 내 자지로 뺏어버렸지만, 크크큭.”

‘NTL.'

결국 참지 못한 순애충들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채린의 몸에서 검붉은 아우라가 피어나며 일격에 순애충들을 튕겨내 버렸다.

‘뭐야 저번에 아이리스, 레이첼, 그리고 이시연하고 싸울 때보다 훨씬 강한데?’

내 의아함을 느꼈는지 한채린이 자랑스레 자신의 능력을 뽐냈다.

“내 능력은 얀데레, 현수 널 향한 집착... 이 아니라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위력이 끊임없이 강해진다고.”

한채린은 아무래도 사기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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