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귀환자의 성인용품점(3) (41/120)



〈 41화 〉귀환자의 성인용품점(3)

“당연히 사랑하지.”

죽일 듯이 차갑던 한채린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쯧, 이 년은 대체 왜 미쳐버린 거야? 적어도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전에 이상한 남자랑 키스하던 거라도 해명해보던가. 에휴, 어째 골치 아픈 일들만 늘어난다.’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한채린,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마주하고 있으면 도저히 더 이상 모진 말을  수가 없었다.

방긋방긋 웃으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얼굴을 빤히 구경하는 한채린을 뒤로 하고 나는 일단 공략 치트 스킬을 사용했다.

‘헤이, 시리. 드래곤이 소환되는 조건이 대체 뭐야? 소설 속에서는 유설아가 드래곤 친구가 있다고만 나왔지 그 이상의 내용은 나오지도 않았다고?’

[제 이름은 시리가 아니라 시리엘입니다. 블루드래곤 엘레노어는 유설아와 기어스 맹약을 통해 유설아의 몸을 1시간 동안 가지고 놀게 해주는 대가로 유설아가 부를 때 언제든 소환에 응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시리가 더 부르기 편하잖아.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이 사과 휴대폰 비서랑 비슷하기는 하잖아?’

묵묵부답인 시리를 보며 ‘무반응이라 노잼이.’하고 생각한 나는 이내 유설아를 따먹을 계획을 짜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래도 한채린과의 문제는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한채린이 계속 내 뒤를 쫓아왔고 결국 나는 그녀를 데리고 자취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여, 나 왔다.”

내가 자취방에 들어가자 레이첼, 아이리스, 그리고 이시연은 꽤나 놀란 표정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나를 본 것만으로도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다니...문 밖에 서있는 한채린을 본다면 아주 대경실색하겠네.’

“아르바이트를 벌써 잘리신 건가요?”

어색한 침묵을 뚫고 레이첼이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이시연하고 아이리스가 딱 보면 모르냐며 살짝 그녀를 책망하는 투로 눈치를 주었지만 애초에 난 아르바이트에 잘리거나  게...

“어우, 그러고 보니까 지금 나 무단결근한 거잖아? 미쳐버리겠네.”

생각과 동시에 내 휴대폰 벨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역시나 발신인 이름에는 ‘이준호 사장님’이라고 떡하니 표시되어 있었다.

“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금방 갈게요. 제가 어제 밤에 몸이 너무  좋더니... 아녜요! 지금 가서 일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뼛속까지 알바 근성을 단련한 나는 재빨리 집을 나섰다. 내가 뛰쳐나간 나간  사이로 한채린이 자취방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겠지. 저기 들어가 봤자 지옥이야.’

나는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르바이트에 갈 수 있었다. 어째선지 가는 도중부터 계속 알 수 없는 이유로오한이 들기는 했지만...


*


“어, 우성씨. 몸은  괜찮아요?”

주인공이라는 족속들은 원래 다 사기캐릭터인가보다. 외모부터 일반인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아, 네. 약 먹고 잤더니 부작용으로 늦잠을 잔  같아요. 푹 쉬고 일어나니까 몸이 개운하더라고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허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준호가 몸도 편치 않을 텐데 그러지 말라면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럼 가서 일 해요. 하다가 영 몸이 안 좋으면 내게 말하고. 건강이 원래 제일 중요한 거야. 젊을 때부터 관리해야 돼.”

이준호 특유의 말투로부터 나는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젊은 꼰대다.’

이번 아르바이트, 쉽게 봐서는 안   같았다.


*


한채린에 대한 얘기를 이미 나현수에게 들은 레이첼과 아이리스는 현재 자취방에 태연하게 들어와 있는 한채린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잘못 들어오신 거라면 나가시면 되는데...”

나현수에게 들은 바가 없어 상황 파악을 못한 채 멀뚱멀뚱 한채린을 쳐다보던 이시연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기폭제가 된 듯 레이첼과 아이리스는 그녀를 매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맞아요, 나가줬으면 좋겠는데요. 참으로 염치도 없는 여자네요.”

“현수님한테 그런 짓을 해놓고 이리 뻔뻔하게도 현수님 앞에 나타나다니, 혹시 정신병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인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넘기며 한채린이 황홀한 눈빛을 지었다.

“맞아, 나 정신병 있는  같아. 잠시라도 현수 곁에서 떨어져 있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이게 정신병이 아니면 뭐겠어?”

한채린은 미친년이었고 강적이었다. 아이리스와 레이첼은 입을 꾹 닫은  한채린을 째려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은 이시연의 엉뚱한 발언에 의해 깨져버렸다.

“음... 저도 하루 종일 현수 생각이 나는데 전 그래도 밤에 현수 생각하면서 자위하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뜻밖의 조언에 나머지 세 여인은 이시연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뜬금 없는 그녀의 돌발 행동 덕분에 자취방을 감싸던 날카로운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에휴, 일단 앉아요. 당신이 싫었으면 애초에 나현수 그 새끼가 데려오지도 않았겠죠.”

음, 아니었다. 나현수는 정말로 한채린을 데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정신 상태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여 “에, 어째서  버리는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 현수 따위 필요 없어!” 같은 상태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없이 데려온 것이었다.

오해가 쌓인  여인들은 침대에 둘러앉았다. 크흠하고 헛기침을 한 아이리스가먼저 기품 있는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한채린씨, 일단 현수가 당신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사과는 하셨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야.”

“아니, 사람은 말을 해야 압니다. 다음에 현수한테 사과라도 하시는 편이 현수와 관계를 조금 더 원만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흥,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나현수 그 새끼는... 자존심도 없나, 지를 버렸던 여자를...”

“에? 그럼  사람이 현수씨 전여친이에요?”

여전히 이시연은 상황을 몰라 대화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첼과 아이리스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채린을 쳐다봤다.

“사과를 하라는 조언은  알겠어. 그렇게 하도록 할게. 하지만 나도 사정이 있었어.”

“그러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현수님에게 말은 해봤습니까?”

“아니.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 못했고, 지금은 현수를 귀찮게 하기 싫어서 말 못해.”

“완전 이기적인 여자네요. 현수를 떠나야만 했던 이유도  알려주고 뻔뻔하게 다시 현수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얘기잖아요? 당신도 나현수 못지않은 쓰레기네요.”

레이첼의 질책을 들으며 표정이 더욱 오묘해진 한채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네가 나와 현수 사이의 일에 신경을 쓰는 거야?”

“그야 저는 나현수의... 그래, 애널오나홀이니까요!”

한채린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그럼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나는 현수랑 결혼할 거니까. 결혼하기 전에 너를 비롯해서 현수가 심심풀이로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은 내가 치워 줘야지.”

이 말을 들은 레이첼과 아이리스, 심지어는 이시연까지도 두 눈을 부릅뜨며 한채린을 향한 강한 적개심을 내비쳤다.

“대체 누구 마음대로요? 애초에 우리는 당신을 저희와 같은 육변기로도 아직 인정 못하거든요?”

“현수가 쓰레기기는 해도 자기 여자를 버릴 정도의 쓰레기는 아니야.”

“현수님이 당신 같은 여자의 말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현수님은 저희를 모두 사랑하십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한채린의 눈이 광기로 물들었다.

“현수가... 너희를 사랑... 한다고 말했... 어? 사랑? 정말 사랑? 다른 단어도 아니고 사랑?”

나머지 여인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와중에도 아이리스는 절대 질 수 없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외쳤다.

“그렇습니다. 현수님은 저희 모두에게 사랑한다고말씀해주셨-”

이성이 날아가 버린 한채린이 자취방을 날려 버렸다.

*


“음, 어디선가 멀리서 폭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나는 애써 불안감을 지워내며 한국에서의 알바 경력을 되살려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훌륭하게 완수하고 있었다.

“어, 우성이형! 오늘 늦었다면서요?”

오후 시간에 출근하는 아르바이트 동기인  같았다.나를 형이라고 부를 정도면 사적인 친분이 있는 건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그의 이름을 보고는 곰곰이 생각했다.

‘장유신이라... 어디서 봤는데...’

잠시 버퍼링이 걸려 공략 치트 스킬을 쓰려는 찰나 나는 전에 봤던 엘프사진이 들어있었던 락커에 장유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렸다.

‘오우 그 엘프 년. 무조건 따먹어야지. 그렇다면 걔를 NTL해서 따먹으려면 장유신한테서 뺏어야 하는 건가? 일단 엘프 년이랑 관계부터 알아내야겠어.’

계산을 마친 나는 급하게 락커룸에 들어가는 장유신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친한 척을 해댔다.

“어, 유신아. 어제 네 락커 앞에 떨어져 있는 사진 하나를 우연히 주웠었는데 그 여자는 누구야? 아, 사진은 네거 같아서 네 락커 속에 다시 넣어 놨다.”

장유신은 내 질문에 부끄러운  뺨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도 저를 좋아하는  같고. 썸이라고나 할까요? 형도 지나가면서 몇 번 봤잖아요.”

아, 소설 속에서 고우성이 엘프 년을  번 봤었나 보다. 나는 설정에 맞춰 급히 말을 바꿨다.

“아, 본 건 기억나지. 실물이 훨씬  예뻐서 잠시 사진을 보고 헷갈렸네.”

장유신은 그럴 수도 있다며 아르바이트 준비를 위해 락커룸으로 들어갔다.

‘깐프 년은  좆방망이로 길들여 줘야지.’

엘프 년의 알몸을 상상하자 내 자지가 열심히 껄떡거리고 있었다.

“뭐, 일단 유설아부터 해결해야 되려나...”

다시금 참담한 현실을 떠올린 나는 우울해졌다. 어쩌다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주인공한테 덤벼서... 나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유설아의 입에 자지를 쑤셔 박았던 과거의 나를 질책했다.

‘그냥 보지에다가 바로 박았어야 되는데... 그게 진정한 자박꼼이잖아. 입을 범하니까 유설아  년도 다른 생각을  겨를이 있었던 거야.’

어째 반성의 포인트가 살짝 잘못된  같았지만 나는 일단 아르바이트에 집중했다.

*

“어서오세요, 카페비네입-”

아르바이트가 끝나기 전에 받은 마지막 손님. 그 손님은 하필 유설아였다.

그녀의 고운 눈썹이 올라갔다.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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