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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지구에서도 NTL은 이어진다(11) (33/120)



〈 33화 〉지구에서도 NTL은 이어진다(11)

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온갖 무기들과 운동기구들이 즐비했기에 나는 이곳이 생도를 공용 수련장 같은 곳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일어났어요? 자, 여기 이거 마셔요.”

레이첼은 아무래도 날 너무 세게 때린 것이 미안했는지 스포츠 음료 하나를 내게 건네주며  옆에 살포시 앉았다.

“여긴 어디야? 공간은 넓은데 사람이 어째 한 명도 없냐.”

“곧 아이리스랑 이시연 학장님이 여기로 오기로 했어요. 여긴 이시연 학장님 개인 연무장이에요, 저랑 대련을 하는데 이 정도 크기가 아니면 연무장이 날아갈 테니까 여기서 대련을 하기로 했죠. 그나저나 상황 돌아가는 것 보니까 이시연도 주인님 육변기로 삼으신 건가요?”

“아직 아니야. 최면을 걸어서 가지고 놀고 있긴 한데 육변기라고 부르기에는 날 향한 마음가짐이 아직 너무나도부족하지.”

“가지고 논다고 표현하다니, 역시 쓰레기답네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레이첼은 간단한 준비운동 비슷한 동작들을 하면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설마 나 패려고  푸는 건 아니지?”

나는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열어두며 만약 레이첼이 정말 나를 패려고 준비하는 거면 바로 도망가기 위해 바닥에서 살짝 엉덩이를 떼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풋. 저도 패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이 기절한 동안 아이리스랑 이시연이 가볍게 대련을했어요. 당연히 아이리스의 지금실력으로는 비벼보지도 못했고... 어쨌든 이시연은 몸이 풀렸을 테니 저도 미리 풀어두는 거죠.”

그녀는 시선을 내게서 돌려 연무장 벽면에 있는  과녁을 보더니 검을 꺼내고는 그곳을 향해 검기를 발출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당신,나현수, 주인님, 아주 호칭이 제멋대로야. 지 기분 따라 꼴리는 대로 부르네. 아주 그냥 지가 상전이여.’

불만은 많았지만 이 얘기를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결코 그녀가 과녁을 향해 매섭게 날려대는 검기가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

레이첼이 연무장 벽에 있는 과녁들을 모두 파괴한 걸로 모자라 격투 연습용 목각 인형들도 모두 산산조각 내서 이제 연무장에 부술  나 정도밖에 안 남아있을 때쯤 다행히도 아이리스와 이시연이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이시연은 꽤나 긴장한 표정으로 아무  없이 연무장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아이리스는 바로 쫄래쫄래 내게 다가와 내 품안에 쏙 들어왔다.

“바로 시작할 건가요? 저는 몸  풀어놨어요. 그쪽이 편한 대로 하면 되요.”

“네. 바로 시작하죠. 저도 아까 아이리스랑 싸우면서 몸이  풀렸어요. 혹시 선공은 양보해 주실  있나요?”

세계 랭킹 1위가 아카데미 생도에게 선공을 양보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이 진귀한 광경을 나현수는 흥미롭게 쳐다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대련이끝나고 땀범벅인 채로 바로 쓰리썸을 해볼까? 아니지, 아이리스까지 껴서 포썸을 해야지.’

물론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레이첼 나보다 고수다. 검사들이 꿈꾼다는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의 경지. 내 눈앞에 있던 여자는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자루의 검이 되었다.

그녀의 강함을 깨달은 나는 처음부터 내가 할  있는 최선의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연, 지금부터 썬더 블라스트(Thunder Blast)를 레이첼의 좌우로 쏴줘. 나는 그녀의 좌우를 봉한 후에 정면돌파를 할게.’

내 말에 연이 허공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전기를 응집했다. 레이첼이  정령을 보고는 눈에 이채를 띄었다.

‘보였다, 빈틈의 보지!’

내 눈에들어온 그녀의 유일한 약점은 보지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내가 낼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손가락에 뇌기를 실어 그녀의 보지를 향해 발사했다.

‘....!! 어째서 멀쩡한 거지? 아니야, 멀쩡하지는 않아. 어떻게  일이지?’

레이첼이 공격당한 부위에서는   없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죽여 버릴 거야! 어떻게 같은 여자끼리...!”

레이첼의 손에 있던 검이 어느 새 내 코앞에 있었다. 나는 뇌전으로 온 몸을 감싸 보았지만 그녀의 검이 내 뇌전을 뚫고 내 의식을 날려버렸다.

*

“와, 레이첼. 지렸어. 진짜 지렸어. 크크큭. 지렸-”

대련 도중 급소를 맞고 실금한 그녀를 보며 나현수가 언어유희를 뽐내자 레이첼은 귀까지 빨개진 채 바로 그의 복부에 펀치를 꽂았다.

‘다음부터는 레이첼한테 함부로 깝치지 말아야지...’

언제나 다짐만 하는 학습능력 제로의 나현수였다.

*

우여곡절 끝에 대련이 끝나고 우리는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낼  있었다. 전과 같이 이시연과아카데미에서 섹스하고 집에서는 레이첼과 아이리스와 섹스하고,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이시연이 맨날 레이첼한테 대련해 달라고 조른다는 점 정도?

이시연은 레이첼에게 달라붙어 SS급이 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고 레이첼은 그저 ‘소드마스터는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올라야 한다. 내가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이것뿐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한 분야에 극의에 달한자는 환골탈태를 이룬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봐라.’라는 ARS 뺨치는 자동 응답을 내놓았다.

레이첼과 이시연의  대련으로부터 4일 후, 우리는 청룡 길드와의 계약에 따라 던전으로 향했다.


*


A급 보스형 던전. 이곳의 던전은 저번 주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이상하게도 던전은 존재했지만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반적인 보스형 던전은 들어가자마자 보스가 대기하고 있어 바로 레이드에 들어가는 특이한 형식의 던전이었는데 가끔 가다가 대화가 통하는 지성체인 네임드 몬스터가 보스로 나오기도 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우리가 들어가도 되는 걸까?”

솔직히 길드와 계약해서 오기는 했다만 나는 안전제일주의를 지향하는 소시민이었기에 지금 상황이 꽤나 무서웠다.

“에휴, 제가 지켜드릴게요. 현수님 말에 따르면 전 여기서 SS급이라는 존재라면서요?”

한심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레이첼의 모습에 나는 자존감을 잃... 지는 않았다. 박하나조차 나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당당했다.

‘눈나, 너무 멋있어! 애초에 남자가 여자를 지켜야 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옳지 않지.’

자기 합리화로 따진다면 SSS급으로 추정되는 나현수는 오늘도 열심히 현실과 타협하며 안전한 삶을 추구했다.

“자, 들어갈게요. 선발대부터 들어갑니다.”

선발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고기방패 역할이라니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쪽에서 아이리스와 레이첼이 내 팔을 잡고는 던전 속으로 질질 끌고 갔다.

‘오우, 나 선발대였음? 좆 됐네.’

*

“좀 떨어져! 더워 죽겠다고 이 쓰레기야!”

나는 내 유일한 목숨줄에게 매달려 있었을 뿐인데 온갖 경멸의 눈초리들이 날아 들어왔다. 레이첼도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고 계속 내게 떨어지라고 강요했다.

‘너무 수줍어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더 달라붙어 주길 원하면서. 입이 전혀 솔직하지를 못하네.’

설마 레이첼이 정말로 내가 자신에게서 떨어지기를 원하겠는가. 분명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자기 합리화 능력이 SSS급을 넘어 EX급에 도달하고 있을 때쯤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아빠! 아빠! 여기야, 아빠!”

다른 이들은 이 목소리가  들리는 지 그저 묵묵히 걷고 있었기에 나는 슬그머니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파랗고 조그맣고 귀엽다. 날개를 퍼덕이며 내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드래곤 딸이 생겼나 보다.

*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새끼 블루 드래곤을 인지하지 못했다. 던전 조사는 허탕으로 끝났고 우리는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박하나와 저녁 식사를 한 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발견한 순간부터 계속 내 뇌에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입하는  파란 생명체를 급히 처리해야만 했다.

“네 말대로라면 네가 내 딸이라며! 근데 왜 네가 내 자지를 갖고 노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허공에 소리치는 내 모습을 보며 레이첼이 ‘드디어 이 쓰레기가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요? 요양원에 처박아두고 꼴릴 때마다 가서 따먹어야겠네요.’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근친을 저지를 정도의 몰상식한 쓰레기까지는 아니거든?!”

내가 다시 한 번 허공에 헛소리를 지껄이자 아이리스가 ‘근친? 내가 낳은 현수님의 딸이랑 셋이서? 가능. 쌉가능’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살짝 충격을 먹긴 했지만 나는 그래도 애써 무시하며 블루 드래곤을 핍박했다.

블루 드래곤이 뭐라고 작게 웅얼거리더니 몸에서 환한 빛이 났다. 파란머리의 앙증맞은 소녀가 나타나더니 바로 내게 안겨왔다.

“아빠는 언제나 선은 지켜야 한다고 했죠. 하지만  언젠가 넘고 말 거예요.”

아무래도 내 딸이라고 주장하는 이 아이는 먼저 정신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레이첼과 아이리스가 허공에서 나타난 소녀를 바라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칫, 아직요양원은 무리인가요? 아깝네요.‘

레이첼의 중얼거림에서는 진심이 느껴졌기에 나는 애써 화제를 전환하고자 드래곤에게 만난 이후부터 계속 궁금했던 질문을 물어봤다.

“드래곤은 드래곤 모습으로 섹-”

싸늘한 아이리스와 레이첼의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황급히 질문을 바꿨다.

“네가 내 딸이면 네 엄마는 누군데?  엄마 없어?”

드래곤이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와, 저렇게 어린 애한테 패드립... 진짜 심각하네요.”

“현수님은 이제 인간이시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셔서 좀 더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 그런 뜻으로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내 이미지가 바닥을 뚫고 지하 한 500m까지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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