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SSS급 용사는 낮이밤져(13)
레이첼은 뭔가 내게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리스를 따먹는 데에 순순히 협조하던 그녀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로빈을 위해 아이리스를 암살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물론 공략 치트 스킬을 써서 레이첼의 속마음을 알아낼 수도 있었지만 내 육변기들의 속마음을 마음대로 엿보는 건 육변기들을 나름 존중해 주기 위해 자제할 생각이었다.
물론 육변기들은 내 소유의 여자들이지만 나는 그래도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해 주는 젠틀한 남자였다.
나는 내 입보지변기를 사용하면서 레이첼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끝내 레이첼이 아이리스를 죽이려고 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한 나는 지인 찬스를 쓰기로 했다.
“내 생각엔 레이첼이 널 암살하려고 한 이유가 따로 있는데 일부러 숨기는 것 같아. 아이리스, 네 생각은 어때?”
자지를 빨던 아이리스가 풋하고 작게 웃고는 나를 놀렸다.
“현수님은 여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정말로 둔감하신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힌트라고 답을 해준 것 같은데 원체 무슨 말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알아듣게 말해 봐. 레이첼은 도대체 왜 관종짓을 한 거야?”
아이리스의 표정이 나름 진지해졌다. 호소력 짙은 진중한 목소리로 마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듯 그녀가 천천히 대답했다.
“현수님을 사랑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관종이 원하는 게 뭐겠습니까? 당연히 관심이죠. 무릇 여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자신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현수님이 옆에 있는데도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현수님도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질투, 독점욕 뭐 그런 건가?”
“현수님의 말들로부터 추측컨대 분명 저보다 먼저 저 여인을 성적으로 굴복시키셨음에도 제가 첫 번째 육변기라는 것은 현수님의 능력이 저 여자를 육변기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말했듯이 내 육변기가 되기 위한 조건이 나를 위해 그 어떤 요구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거든. 근데 레이첼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나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 육변기로 등록이 안 되는 것 같아.”
“제가 저 여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저 여자는 이미 현수님만을 사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수님을 사랑하니까, 현수님이 자신을 봐주기 원해서, 제게 향한 현수님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해서 저를 죽이려고 한 걸 겁니다.”
“뭐, 레이첼이 내 자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건 맞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거나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건 아닌 것 같은데. 나도 한번뿐이지만 나름 연애 경험이 있는 남자라고,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겠어?”
“햔수님, 현실은 소설과 다릅니다. 관능 소설 속에서처럼 정말 자지 없이 못 산다며 자신을 겁간한 이의 성노예를 자처하는 여자가 과연 현실에 있을까요?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제가 현수님을 따르기로 한 이유도 단순히 성적 쾌락 때문만이 아닙니다. 현수님이 세상에서 섹스를 제일 잘하시는 것도 아니고 제가 몸의 쾌락만을 원했다면 단순히 창관을 가면 되지 않았겠습니까?”
“넌 그냥 용사한테 복수하려고 내 육변기가 된다는 거 아니었냐?”
“세상에 어떤 여인이 단순히 현수님이 복수를 대신 해줬다고 해서 현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현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전 정한 바를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현수님의 모습에 반해 현수님을 평생 따르기로 결정하고 기꺼이 입보지변기가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에? 그거야말로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니냐? 현실성이 전혀 없는데? 너가 그냥 특이한 변태라서 그런 거 아니냐? 야한 소설 읽어보면 막 함부로 다뤄지고 그런 거 좋아하는 애들은 막 공중 육변기로 돌림빵 당하는 거 좋아하고 그러던데.”
“하, 용기를 내서 말했는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시면 제가 상처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안하십니까?”
삐진 표정과 함께 나를 노려보며 애꿎은 내 자지를 손에 꽉 쥐는 아이리스의 모습에 나는 급히 사과했다.
“아, 미안해. 진짜 미안. 공중 육변기는 너무했던 것 같네. 아이리스, 너는 무조건 평생 나만의 입보지변기로써 내 좆만 빨면서 살-”
아이리스는 연신 손에 힘을 쥐며 눈을 흘겼다. 점점 휘어지는 그녀의 눈꼬리에 나는 내 답변이 틀렸음을 깨닫고는 빠르게 답안을 수정했다.
“나도 네 예쁜 얼굴하고 꼴리는 몸매에 반해서 너를 내 육변기로 삼기로 결정한 거야. 날 열심히 비난하던 네 입에서 훌륭한 입보지변기의 자질을 느껴서 입보지변기로 임명한 거지!”
맥이 풀린 레이첼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 한탄했다.
“그냥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고민했다. 사랑, 나는 육변기들을 사랑하는가? 잘 모르겠다. 사랑이 한채린에게 느꼈던 설렘과 풋풋함이라면 나는 당연히 NO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했다.
나는 아이리스에게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리스, 너는? 너는 나를 사랑해?”
“현수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째서 제 모든 걸 바치겠습니까? 질문하기 전에 생각 하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급히 둘러대는 아이리스의 양 볼이 붉어졌다. 흔들리는 동공이 그녀의 떨림을 대변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더 보고 싶어서 장난을 쳤다.
“그러니까 넌 나를 사랑한다는 거네?”
“현수님은 물어보셨던 걸 또 물어보는 이상한 습관이 있으시-”
“어째서 나한테는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면서 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거야? 너부터 솔직하게 네 마음을 말해봐.”
대답을 회피하던 아이리스는 두 눈을 찔끔 감으면서 우물쭈물 거리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현수님은 정말 짓궂으십니다. 저는 당연히 현수님을 사... 사... 사랑합... 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난 깨달았다. 나는 내 육변기들을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쓸 의향이 있었다. 내 육변기들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오직 나만의 여자들이었다.
이러한 감정은 이미 내가 육변기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 사랑이 뒤틀린 소유욕으로 표현된 것일 뿐이었다.
나도 그제야 아이리스를 똑바로 쳐다보고 그녀를 진심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도 그녀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도 사랑해, 아이리스. 넌 평생 내 거야.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널 뺏기지 않을 거야.”
깜짝 놀란 아이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딸꾹질을 했다.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향해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능숙해진 몸짓으로 나는 키스를 하며 아이리스를 감싸 안고 그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친 채 그녀의 엉덩이를 나머지 한 손으로 주물렀다. 키스를 하던 입을 떼자 기다랗게 침으로 만들어진 실이 늘어졌다.
서로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던 우리는 그냥 갑자기 웃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지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뭔가 이제야 비로소 정상적인 연인 관계가 된 것만 같았다.
웃음을 마친 우리는 키스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들리지 않았어도.
*
살면서 이토록 비참했던 적은 없었다. 내가 아버지라 여겨왔던 인간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했을 때도, 사랑했던 사람의 손가락이 나 때문에 잘려 나갔을 때도, 지금만큼 비참하지는 않았다.
“나도 사랑해, 아이리스. 넌 평생 내 거야.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널 뺏기지 않을 거야.”
나현수의 목소리가 의식을 되찾은 내 고막을 강타했다. 나는 순간 쇼크에 다시 기절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버텨냈다.
‘거짓말. 뭔가 잘못된 걸 거야. 여자를 성도구 취급하는 파렴치한 쓰레기가 사랑을 입에 담을 리가 없어.’
나현수와 아이리스의 혀가 뒤얽혔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저들은 빌어먹게도 꽤나 잘 어울렸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펑펑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왜 내가 아니야? 내가 먼저 사랑했는데?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 로빈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라고! 조금만 툭 건드려도 바로 넘어가 줄 텐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야? 대체 왜!’
격한 감정이 몰려오자 나는 더 이상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
“깨어났나 보네. 일단 계속 키스하자, 아이리스.”
분위기가 깨진 것이 아쉬웠지만 나는 나름대로 키스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아이리스를 향한 내 진심을 그녀의 몸에 직접 새겨주고 싶었다.
“현수님, 이 정도만 해주셔도 지금으로는 충분합니다. 절 사랑한다는 현수님의 진심은 잘 알았습니다. 자도 현수님과 좀 더 진한 몸의 대화를 나누고 싶긴 하지만 저 여인도 곧 현수님의 육변기가 될 여인 아닙니까? 그럼 저랑 평생 함께 현수님 곁에서 살아갈 텐데 이런 일로 불편해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원래 여인의 뒤끝은 생각보다 오래 간답니다.”
아이리스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내 입을 밀어내고는 흐느끼는 레이첼을 불쌍하다는 듯이 응시했다.
나 역시 아이리스와 좀 더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레이첼에게도 내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나는 평생 그녀를 버리지 않겠다고, 평생 아끼고 사랑해 주겠다고 내 진시을 고백하며 레이첼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나도 진심으로 부딪히고 싶었다.
만약 아이리스의 예상이 틀려서 레이첼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이템을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단념하겠지만 나는 비열한 쓰레기에다가 마침 최면 포스트잇(SSS)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레이첼이 내 애널오나홀이 되는 것은 정해진 결말이었다. 단지 자의냐 타의냐, 그것이 문제였을 뿐.
나는 천천히레이첼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