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SSS급 용사는 낮이밤져(1)
헌터들이 각광받는 현대 사회에서 고아 비각성자로 살아가기란 매우 힘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각성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조건을 만족하면 시스템은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능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각성 조건은 각성하기 전까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알아낼 수가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성을 포기한다. 실제로 각성자는 전체 인구에서 0.2%의 비율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서울헌터아카데미는 세계 1위로 인정받는 만큼 남다른 노하우를 통해 비각성자 신입생의 90%를 졸업하기 전까지 무사히 각성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현수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편이어서 수능우수자 전형으로 이곳에 합격했지만 아카데미 등록금이 매우 비싸 등록을 취소해야 할 형편이었다.
*
“자기, 정말 괜찮겠어? 자기가 돈이 많은 건 나도 알지만 이렇게 큰돈을 빌리는 건 마음이 편치 않은데...”
“괜찮다니까! 내가 자기 아카데미 합격하고 나면 깜짝 생일 선물로 주려고 1년 전부터 열심히 모은 거니까 사양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다 아는데 이 정도도 못 도와주겠어?”
그렇다. 정말 약 20년 동안 죽어라 열심히 살았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수능 교재들을 구매해 악착같이 공부했다.
내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우연히 번호를 교환하고 계속 만남을 가져온 우리는 400일이 넘도록 사귀는 중이었다.
한채린, 나보다 한 살 연상의 흑색 단발과 이에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가 매우 인상적인 고양이상의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 길드인 청룡 길드의 독녀로써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나는 언젠가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꼭 강한 헌터가 돼서 그녀에게 멋진 프러포즈를 선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고 악착같이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전부였다.
“자, 여기! 대신 나도 다음 생일 때 기대하고 있을게?”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치는 그녀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매우 처량하게 질질 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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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린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한 달 전이었다. 많이 바쁜지 그녀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편의점을 가기 위해 자취방을 나섰는데 갑자기 영화에서나 볼 법한 양복을 입은 거한들이 나타나 내 양옆을 가로막았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는데 거한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자신의 어깨에 손길이 느껴지더니 뒤에서 사나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갑네, 나현수 군. 나는 청룡 길드의 길드장 한유현이라고 하네. 내 딸과 관련해서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뒤를 돌아보니 어마어마한 덩치의 사내가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걸까-‘하고 당황하며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우물쭈물 열려는 순간 누군가내 몸을 잡아당겨 고급스러운 외제차의 뒷좌석에 태워버렸다.
‘젠장, 이러면 물어본 이유가 뭐냐고 대체. 그냥 빨리 바쁘다고 하고 도망갈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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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앉게나. 김 비서,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커피 좀 부탁해요.”
자신을 한유현이라고 소개한 사내는 이내 의자에 앉아 이마를 한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그의 심기가 왠지 몰라도 불편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내 딸이랑은 무슨 관곈가. 내 딸이 나 몰래 돈을조금씩 모으고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네, 아무래도 재산 관리는 내 비서가 철저히 하고 있으니 말이야. 내 딸이 무슨 기특한 일을 벌일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 돈을 모아다가 어떤 사내한테 홀라당 갖다 바칠 줄이야. 허허,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네만.”
대한민국 헌터 랭킹 2위, 청룡 길드의 독재자, 스킬들이 전부 거대한 불길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해 세간에서는 <불의 거인>이라 불리는 그의 노기 서린 웃음에 나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미래에 장인어른이 될 분한테 안 좋은 이미지로 남을 것 같아 나는 무리해서 용기를 냈다.
“저는 따님과 교제하고 있는 사이입니다. 현재 사귄지 400일이-”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한유현의 눈빛이 나를 향해 죽일 듯이 쏟아졌다.
식은땀으로 흥건해진 나는 그저 한유현의 입이 열릴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대략 5분 뒤, 한유현의 굳건히 닫혀 있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내 딸은 약혼자가 있어. 그것도 내가 정략결혼은 딸의 마음을 무시하는 처사라 생각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혼담을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 딸이 오히려 좋다고 달려들어서 마지못해 수락한 약혼이지. 그게 불과 한 달 전인데-.”
나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
‘낯선 천장...은 아니고 병원인가?’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바로 한채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 지금 어디야?>
<너 우리 아빠 만났다며. 그럼 다 들었을 텐데? 아득바득 사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하고 얼굴도 반반해서 데리고 놀아준 것뿐이야. 너한테 돈 준 것도 있으니까 네 마음의 상처는 그걸로 퉁 치자. 솔직히 너도 나랑 결혼까지 가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심장이 너무 아프다. 그녀의 문자가 비수처럼 내 가슴을 난도질한다.
분명 뭔가 이상하다, 그녀가 나를 가지고 놀았을 리가 없다, 뭔가 오해가 있음이 분명하다. 당장이라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고 오해를 풀면 될 것이다.
나는 평소에 그녀가 매일 가던 헬스장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
막무가내로 헬스장으로 들어간 나는 한채린과 그 옆에 서있는 훤칠한 미남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만연했다. 한채린이 힐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남자한테 뭐라고 속삭였다. 남자는 조용히 키득거리다가 기습적으로 한채린의 입술을 덮쳤다.
한채린은 당황한 듯눈을 크게 떴다가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됐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혀를 깊숙이 들이밀며 몸을 배배 꼬았다.
나는 그저 무너졌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버티지를 못했다. 헬스장을 뛰쳐나간 나는 화장실에서 토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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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정말 쓰레기야. 내가 평생 너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거야. 저질, 쓰레기, 최악.”
“크크큭. 너도 연기인 것 치고는 꽤 격렬하게 키스하던데? 쟤는 네가 뭘 담보로 협박당하고 있는지 평생 모를걸? 너무불쌍한데 선물로 그 비디-”
“그럼 정말 너 죽고 나 죽는 거지. 하고 싶으면 해보던가.”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한채린은 고개를 돌려 나현수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
[축하합니다! 당신은 (각성 조건: NTR 당하기!)를 만족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능력: NTL)이 부여되었습니다!]
토를 하고 나오던 길에 뜬금없이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현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흐흐, 각성 조건 만족시키려고 별 짓을 다해도 각성을 안했는데 이런 좆같은 날에 좆같은 조건을 만족시켜서 좆같은 능력을 얻네. 인생 참 좆같다. 어차피 더 좆같아질 수도 없는데 얼마나 좆같은 능력인지 확인이나 해볼까?”
충격에 빠져 혼잣말을 지껄이던 나는 각성자가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상태창을 소환했다.
“상태창!”
『‘빼앗긴 자’ 나현수 (F)』
□ 레벨 1
□ 능력 [NTL]
□ 힘 [5] 체력 [4] 민첩 [6] 지능 [11] 정신력 [9] 정력 [8]
각성자는 처음에 누구나 공평하게 F급으로 각성하지만 개인마다 초기 스탯의 차이가 존재했다. 일반 각성자의 초기 스탯 평균이 5인 점을 감안하면 내 초기 상태창은 꽤나 우수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초기 스탯이 높다고 엄청난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기 스탯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레벨업을 할 때마다 잠재된 재능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보너스 스탯의 개수가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어떤 이들은 레벨 하나를 올려도 보너스 스탯이 1개만 주어지고, 어떤 이들은 10개가 넘게 주어지기 때문에 그 격차가 레벨업을 할수록 더욱 더 벌어져 등급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나저나 칭호는 왜 저 지랄이고 마나 스탯은 어디로 날려먹었기에 정력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스탯이 있는 거냐.”
상태창에 대한 불만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먼저 각성자에게 제일 중요한 능력을 확인하기로 했다.
『능력: NTL
NTR의 좌절감을 맛본 당신! 즐거운 NTL 라이프를 누리면서 무한히 성장하세요!』
“와우, 여태 알려진 스킬 설명들 중에 제일 참신한데? 일단 하위 스킬들부터 확인해보자. 스킬창!”
□ 세계 구현(EX): 세계의 기록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만 한다면 당신이 바라는 그 어떤 세상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단, 구현하려는 세계에는 반드시 NTL의 타깃이 존재해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지배를 받는 모든 존재들은 자유롭게세계들을 오갈 수 있습니다.
□ 공략 치트(EX): 구현된 세계가 당신에게 임무를 부여합니다. 세계의 의지를 따르는 당신의 성공적인 NTL을 위해 세계는 당신을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 (공략의 타깃이 된 당신은 NTL에 최적화 됩니다. 공략의 타깃이 원래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면 그 대상은 NTR에 최적화 됩니다. 당신은 세계의 모든 정보를 시스템을 통해 손쉽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원래 세계의 배역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세계는 당신의 행동에 걸맞은 보상을 줄 것입니다.)
□ 육변기 마스터(EX): 당신이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육변기들을 모아서 컬렉션을 완성하세요! 명심하세요, 진정한 육변기는 당신을 위해 그 어떤 요구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인의 정당한 권리로써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육변기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육변기의 모든 능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위 에너지인 마나가 상위 에너지인 정력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푸흡, 시스템은 이런 취향이었구나. 설명에 따르면 나는 마법을 정력으로 구현하는 건가? 그나저나 현재 등급이 제일 높기로 알려진 스킬이 SS등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EX등급에 거창하게 세계를 구현하는 스킬이 그것보다 못할 리는 없겠지. 흠, 세계 구현은 아무래도 내가 제일 많이 읽은 웹소설부터 시작하는 게 제일 좋겠지? 용사는 낮이밤져>부터 구현해 봐야겠다.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스킬 써봐야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채린 때문에 깊은 시름에 빠져있던 나현수는 없었다. 이런 행운을 양심 따위로 놓칠 병신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어차피 한채린도 없겠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나는 굳게 다짐했다. 나도 한채린과같은 쓰레기가 되겠다고. NTL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남의 마음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가지고 노는 세계 최강의 쓰레기가 되겠다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급 용사는 낮이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