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16일차 (84/94)



〈 84화 〉16일차

예상을 했는데도 얼굴이 빨개진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큰 소리로 해야한다는 사실이 날 더 부끄럽게 한다.

입을 우물쭈물 하다가 다시 망설였다. 시간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창피함에 고양이 꼬리가 난리를 친다.

"후우."

좋아 해보자. 포기할 수도 없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었다.

"주인님!"

77데시벨이 나왔다. 천천히 해도 괜찮을려나.

"암..."

말을 하려는 순간 맞은편에 오는 엘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작아졌다.

나는 내 뺨을 찹찹 때렸다. 정신을 차려야 빨리 끝낼 수 있다.

"암캐 보지! 쑤셔주세요!"

눈을 꼭 감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와서 이렇게 스스로 소리질러  적이 있었나?

얼굴이 터질  같다.

무조건 사이트에서  클립에 올라갈 것이다.  동안 컴퓨터는 보면 안 되겠다.

다시 눈을 뜨고 확인하자 75데시벨이 나왔다.

잘못하면 한  더 외칠  했다. 식은땀이 살짝 흘렀다.

창피해 하지 말고 크게 크게 소리쳐야겠다.

그 때 다음 대사가 나왔다.

[클리토리스가 빨딱 서서 간지러워요.]

추잡한 대사들로 나를 흔드려는 생각인가 본데, 나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창피함은 어쩔 수 없어서 얼굴은 뜨거워진다. 그래도 이젠 망설임 없이   있다.

"클리토리스가!"

막상 크게 외치는 행위를 하게 되니까 흔들리긴 한다.

사람이 이런 것에 익숙해지게 되면 오히려 큰일 난  아닐까.

"빨딱! 서서! 간지러워요!"

나름 깔끔하게 소리쳤다. 78데시벨로 나쁘지 않게 통과했다.

몇 번이나  외쳐야 하려나. 최대한 빨리 끝내고 다음 미션으로 가고 싶은데.

지금도 다른 사람들은 많은 점수짜리 미션을 깨고 있을 것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더 수치스러운 대사가 있을까?

[세리아 찌찌 빨아주세요.]

있었다.

듣자마자 순간 짜증이 팍 솟구쳤다. 너무 노골적이게 하는 것 아닌가? 이름을 포함해서 소리치게 하는건 선 넘었지.

감정이 폭발하지 않게 이를  깨물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다시 심호흡을 했다. 차라리 눈 꼭 감고 빠르게 끝내는 것이 이득이다.

"세리아 찌찌! 빨아주세요!"

소리치자 멀리서 움직이던 엘리스가 날 보며 얼어붙은게 보였다. 아직도 안 가고 있다니.

나는 온 몸이 뜨거워질 정도로 부끄러웠다.

애써 담담하게 하려 했는데 불가능했다.

세리아가 내 진짜 이름도 아닌데  이렇게 부끄러울까.

계속 불러지다 보니 이젠 내 이름처럼 여기기 시작한 걸까.

74데시벨이 나왔다. 눈 앞이 아찔해 졌다. 꽤 크게 외쳤다고 생각했는데 통과하지 못했다.

순간 부끄러워서 소리가 작아진 모양이다.

창피함을 꾹 참고 눈을 감은  다시 소리쳤다.

"세리아! 찌찌! 빨아주세요!"

도저히 앞을  자신이 없다. 아마 다른 곳에서 미션하는 사람들도  듣지 않았을까.

슬며시 눈을 뜨자 79데시벨이 나왔다. 좋지도 않은 대사를 크게도 했다.

억울한게 순간적으로는 80데시벨도 넘어가는데 평균으로 따지면 낮아진다. 통과하기 위해서는 짧게 짧게 끊어서 소리칠 수 밖에 없다.

다음 대사가 나왔다.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걸까.

[사실 전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어요.]

"..."

아까도 그렇고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걸까. 날 열 받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양이다.

외치기 싫은 마음을 열심히 달랬다. 그냥 미션일 뿐이니까.

단지 시켜서 하는 대사일 뿐이다.

내가 진짜로 여자가 되고 싶었다는게 아니다. 이 사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겠지?

게다가 어차피 1등을 하게 되면 남자로 돌아갈  있다. 그 전에는 무슨 말을 시키던지 다 해줄 의향이 있다.

말 쯤이야 뭐 얼마든지.

나는 1등을 해도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암울한 미래를 생각하면 나던 힘도 죽는다.

무조건 1등은 남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1등을 하자.

힘차게 소리쳤다.

"사실! 전부터!"

막상 이 부분을 외치려니 떨린다. 긴장해서가 아니고 치가 떨린다.

"여자가!"

살짝 흥분해서 콧바람이 씩씩 나온다. 침착하게 하자. 침착하게.

시켜서 하는 대사일 뿐이다.

"되고! 싶었어요!"

76데시벨로 통과했다. 마인드컨트롤에 최선을 다한 덕분이다. 한 번 더 외치라고 했으면 화가 폭발했을 수도 있다.

화가  덕분에 소리가 커진 모양이다.

아직도 더 해야 하나? 이렇게 했는데도 홀로그램은 통과 표시를 띄우지 않았다.

도대체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걸까. 다른 미션들 처럼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없으니까 불안하다.

잠시 후 다음 대사가 나왔다.

[자지 대신 보지가 생겨서 행복해요.]

"아니!"

진심으로 화가 난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이런 대사를 시키다니.

이상하게 이름 넣어서 소리치는 것 보다 더 화난다.

미션이 너무 악질이다.  정신력을 엄청 갉아먹는게 느껴졌다.

이래서 3점짜리인가? 분노로 고양이 꼬리가 바짝 섰다.

이건 진짜 외치기 싫다. 마음을 먹고 소리치려 해도  번이나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그렇게 다짐을 했는데 내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말이 나오니까 망설이게 된다. 전 대사도 엄청 짜증났는데 참고 했더니.

아주 갈 수록 태산이다.

"아니..."

살짝 울렁이는 가슴에 손을 대고 진정시켰다. 거대한 가슴이 만져진다.

이래도 행복하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등이 되어서 나가도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은 버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이건 고민해 봐야 한다.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행복이라고 여겨왔다.

좋은 직장, 좋은 사람을 결정하는게 단지 돈과 외모가 아니듯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려는 이유가 뭐였나. 남은 인생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려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 납치되면서 나의 많은 것들을 빼앗겼다. 사생활, 미래, 인간관계 등등.

과연 애써서 돌아가게 된다면. 처음처럼 그대로 돌려 받을 수 있을까?

"..."

절대 아닐 것이다.

언제 또 이렇게 납치 개조 당할지가 불안하겠지. 아니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녹화된 것 때문에 시달릴 수도 있고.

정신과를 다니거나 우울증 치료를 하러 다닐 수도 있다.

그래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순간 넋을 놓고 진지한 고찰을 해버렸다. 요즘 종종 이런 현상이 생긴다.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향해 움직이느라 바쁜 성격이었는데. 여기 와서 바뀐 모양이다.

바뀐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게  가장 무섭게 한다.

사람은 변한다. 그래서 초심이라는 단어도 있는 거겠지.

그렇게 변한 사람이 초심을 찾기가 쉬울까?

"흡."

다시 뺨을 찹찹 때렸다. 원래 이런 습관은 가끔만 나왔었는데. 여기 와서 엄청 사용한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져서 그런 거겠지.

겨우 미션일 뿐이다. 시켜서 하는 대사지 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되뇌였다.

"하아."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계속 세뇌하듯이 말하니까 살짝 괜찮아졌다. 이상하게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제발 한 번에 소리쳐서 성공 하자.

"자지 대신!"

 것 아닌 대사  줄에 마음이 울렁거린다. 겨우 네 글자 외친건데 목소리가 떨린다.

미묘한 감정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보지가! 생겨서!"

진짜 별거 아닌데. 진짜.

"행복해요!"

마지막까지 외치니 눈 앞이 흐려졌다. 울컥하며 넘어오는 눈물을 보자 어이가 없다. 여태 따로 흘린 적이 없던 눈물이 이 상황에 나온다고?

내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

 와중에 행복하다는 말에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탓에 데시벨이 75를 넘지 못했다.

다시 외쳐야 했다.

 내서 크게 소리쳤다.

"자지! 대신!"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처음부터 막혔다. 갑자기 왜 이렇게 감정이 북받치는 걸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심호흡을 했다.

"후우."

목소리가 계속 흔들린다. 파르르 떨리는 심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  미친듯이 자학했던 것 만큼 의아하다.

스트레스가 이런 식으로도 표출 되는구나.

하필 지금이라니. 이게 무슨 시간 낭비란 말인가.

여자가  탓에 생긴 부작용인가 싶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 눈물이나 짜다니.

모든 여자라고  감상적이진 않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딱 보니 오늘 1등 하기는 글렀다. 생각보다 쉬운 미션에 3점이라고 좋아했더니만. 이렇게 막힐 줄이야.

미션도 사람마다 점수가 다르려나? 힘든 부분들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흑."

눈물을 몇 번 닦고 나니 힘이 없다.

마음이 완전하게 가라앉을  까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 페널티를 받을 수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흐."

헛 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난다며 놀리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정작 지금은 모든 곳이 맨들거리는데.

내가 이러고 고생하는 것을 보고 계시려나? 차라리 안 보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울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다. 창피하긴 하지만.

내가  울었을까.

아마 최대한 붙들고 있던 멘탈이 깨진 모양이다. 대사  줄 때문에 눈물이 흐르다니.

눈물이 그치고 울렁대던 가슴이 가라앉자  다른 창피함이 찾아왔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있었어도 게임을 하다 말고 울 줄이야. 진짜 여자아이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여러 생각을 하며 다시 다짐했다.

이런 놀림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말자. 한 두번 당하는 것도 아니고.

"후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새삼 깨달았다.

행복.

 말이 나를 흔들었다.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도 행복한 사람들이 승자다.

그것도 너무 힘들면 행복하긴 쉽지 않지만.

나도  안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찾아 버티다 보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사처럼 보지가 생겨서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을 추구하기로 했다.

매번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해결책을 찾아 왔다.

그게 피아노를 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것들인줄 알았는데.

본질은 행복이었다.

 안에서 꿋꿋히 버티기 위한 해결책은 바로 행복인 듯 하다.

마리만큼 여자가  것에 행복하기는 힘들겠지만 노력하면 나름의 행복을 찾을 수는 있다.

마음을 고쳐먹으니까 훨씬 평온해졌다.

비온  땅이 더 단단해지듯 울고 나니까 마음이 튼튼해진 기분이다.

이 와중에 편해진 마음과 다르게 고양이 꼬리가 난리를 친다.

다시 일어나서 대사 외칠 준비를 했다. 힘차게 일어났더니 가슴이 출렁인다.

"크흠."

목이 살짝 잠겨서 풀어줬다. 그렇게 펑펑 운 것도 아닌데 그 사이에 잠기다니. 어이가 없다.

"자지! 대신!"

그래도 아까보다 후련하게 나온다.

"보지가! 생겨서!"

앞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할  없다.  모습이 여자가  것은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해요!"

하지만 찾아보니 행복한 일들도 조금은 있다.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따져보면 행복한 일이다.

음식을 포함해 무언가를 먹고 마신다는 행위에 대한 소중함도 깨달았다.

햇빛을 보고, 사생활을 보호받는 것들에 대한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만 깨달아도 1등해서 나갈 수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여기 안에서도 행복한 것들을 조금은 찾을  있다.

얼굴 예뻐진거? 이건  애매하긴 한데 애써서 생각해보면 행복한 쪽 아닐까.

사람이 살면서 맛보기 힘든 쾌감을 맛  것도 살짝은 행복하지 않을까?

몸매나 얼굴이 예쁜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도 행복이다. 본질은 남자였을지 몰라도 겉이 예쁜건 사실이니까.

자기합리화가 극단적으로 성장한 기분이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이게 내 마지막 자기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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