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14일차
"이잉. 제발 가지마 오빠. 응?"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매달렸다. 이잉? 이잉 이라고? 내가 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쫙 돋았다.
"어쩔 수 없다는거 알잖아."
남자는 여자의 뺨을 한 번 쓸어주더니 뽀뽀를 나눴다. 가볍게 쪽 쪽 나누는데 눈쌀이 찌푸려졌다.
왜 상대 역할을 하라고 했는지 알았다. 적어도 뽀뽀를 두 번 해야겠구나.
"오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둘은 입술을 떼고 가까이서 쳐다보며 속삭였다. 여자는 계속해서 아쉬워 하는 모습이고 남자는 살짝 담담해 보이는 표정이다.
여자는 대놓고 표현하고, 남자는 아쉬운데 참는 느낌이었다.
"오빠. 나중에 꼭 만나러 갈께."
"뭘. 내가 오면 되지. 금방 또 올게."
포옹한 상태로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던 둘은 깊게 키스를 시작했다.
얼마나 키스하나 보니까 1분 정도 했다. 둘의 애뜻함은 알겠지만 연기해야 하는 우리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비행기 오겠다."
남자가 말하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 또 조심 해. 몸도 조심하고, 다른 여자도 조심하고. 나한테는 오빠 뿐이니까. 알징?"
그녀의 애교섞인 말에 남자는 환하게 웃었다.
"하핫. 걱정 마."
둘은 뽀뽀를 또 나눴다. 몇 번을 하는거냐 도대체.
한참 애뜻하게 바라보다가 남자는 손을 흔들며 갔다.
"다녀올게."
"으응. 잘 다녀와!"
여자는 또 눈물을 흘리며 배웅한 뒤 남자가 사라지자 자신의 배를 매만졌다.
설마.
"아이는 내가 잘 키우고 있을게."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배를 보며 속삭였다.
이렇게 영상은 끝났다.
우리는 모두 넋이 나갔다. 진짜 멘탈이 금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2시간 안에 이 연기가 가능할까? 그나마 다행인건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벽에 씌여져 있다.
그냥 애인인줄 알았는데 신혼부부 였다니. 난이도가 더 올라갔다.
일단 한 마디를 해봤다.
"오...오쁘아"
도저히 못하겠다. 반사적으로 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바닥에 머리를 쳐박은 채 죽고 싶어졌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 내 뺨을 찹찹 쳤다.
어떤 의미로 최고 난이도였다.
심지어 억지로 모든 대사에 오빠를 넣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다. 이건 100% 노렸다.
자위보다 더 창피한 상황이 생길 줄이야.
"...에휴."
생각해보면 이게 자위보다 창피한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더 쪽팔렸다.
2시간동안 연습은 커녕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사용해야 겠다.
계속해서 별 것 아니라고 되뇌였다. 저번처럼 그저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나마 남자 역할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까는 짜증났었는데 지금 보니까 더 나은 처사였다. 그 때 마리가 내 옆에 왔다.
"세리아."
"응?"
그녀가 무슨 일로 말을 걸었을까? 내가 의문스럽게 쳐다보자 우물쭈물 하더니 말했다.
"같이 연습 할래요?"
"아. 상대역할 해주자고?"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상대 해주는게 확실히 나아 보인다.
혼자서 둘 다 해도 괜찮기는 하지만 상대가 있고 없고도 느낌 차이가 크니까.
"그래."
"핫! 감사합니다."
어차피 서로 해주는건데 뭘 감사 까지야.
"제가 먼저 여자 역할 할게요."
"그래? 알겠어."
먼저 힘든 역할을 자처하다니.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보인다.
마리는 몇 번 심호흡을 하더니 날 똑바로 쳐다봤다.
"시작할게요."
"좋아."
그녀는 첫 번째 대사를 시작했다.
"오빠. 진짜 출장 가야해?"
얼굴이 살짝 붉어지긴 했지만 부드럽게 잘 했다. 의외였다.
저번에도 몰입을 엄청 잘 했던게 기억이 났다.
"미안해."
내가 말하자 마리는 금세 글썽거리더니 눈물을 흘렸다.
"와!"
그녀는 스스로 눈물을 흘리더니 자기 눈물에 놀랐다. 솔직히 너무 잘 흘려서 같이 놀라긴 했다.
"눈물 흘리고 싶다 생각했더니 저절로 나왔어요!"
마리가 놀란 이유는 저것 때문이었나.
나도 한 번 눈물 흘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중을 살짝 하니까 바로 시야가 흐려지더니 눈물이 뚝 흘렀다.
"...그러네."
진짜 신기하다. 슬픈 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흐르다니.
이게 선물 개조의 힘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기술이다. 이걸 나중에 갚으려면 얼마를 내야할까. 상상도 안 된다.
탱크탑을 살짝 당겨 눈물을 닦았다.
마리는 팔등으로 눈물을 쓱 닦고 계속 이어서 했다.
"이잉. 제발 가지마 오빠. 응?"
마리가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매달렸다. 너무 실감나게 해서 당황했다. 눈빛이 다시 돌아온 마리가 눈치를 줬다.
"크흠."
순간 마리에게 미안해졌다. 지금도 실전이라 생각하고 임해야 겠다.
"어쩔 수 없다는거 알잖아."
나는 마리의 뺨을 한 번 쓸어주고 한 마디 더 말했다.
"뽀뽀를 두 번 나눈다."
내 말에 마리가 씩 웃었다. 연습인데 굳이 할 필요는 없지.
그녀는 내 얼굴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오빠. 사랑해."
마리는 그렁거리는 눈빛으로 내게 애원했다. 그녀의 연기에 살짝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탓에 뒤늦게 다음 대사를 말했다.
"나도 사랑해."
아쉬운데 참는듯한 느낌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연기 공부를 한 적이 있어야 바로 알지.
"오빠. 나중에 꼭 만나러 갈께."
마리는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혹시 혼자서 연습을 했나? 의문스러울 정도로 잘했다.
특히 오빠라는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하는게 굉장히 프로처럼 보였다.
"뭘. 내가 오면 되지. 금방 또 올게."
포옹한 상태로 있었더니 마리가 다음 상황을 읊었다.
"1분간 키스한다."
그녀의 얼굴은 붉었다. 상상이라도 한 걸까.
"이제 비행기 오겠다."
내가 말하자 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지만 점점 합이 맞는 느낌이다.
나도 하다보면 몰입하는 타입인가보다. 마리 덕분에 조금 더 몰입하기 쉬웠다.
"조심 또 조심 해. 몸도 조심하고, 다른 여자도 조심하고. 나한테는 오빠 뿐이니까. 알징?"
그녀의 애교섞인 말에 나는 말을 잃었다. 진짜 20세 여성이 내게 애교부리는 느낌이라 순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다음 대사를 못하고 얼어있자 마리의 얼굴도 붉어졌다.
연기를 연기로 넘겼어야 했는데 내 실수다.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하핫. 걱정 마."
애써 웃으며 다음 대사를 이었다. 그러자 마리도 머쓱하게 웃으며 계속 이어갔다.
"뽀뽀를 한다."
맞다. 여기서 뽀뽀가 또 있었지.
이제 포옹을 풀고 나는 손을 흔들며 물러났다.
"다녀올게."
"으응. 잘 다녀와!"
마리는 또 눈물을 흘린 뒤 잠시 후 자신의 배를 매만졌다.
"아이는 내가 잘 키우고 있을게."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배를 보며 속삭였다.
끝까지 몰입하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마리는 쑥쓰러워하며 좋아했다.
"잘한다."
"뭘요. 헤헷."
솔직히 말하면 소름돋았다. 연습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몰입도였다. 그러자 마리가 내게 말했다.
"바꿔서 해볼까요?"
"아. 그래. 잠시만."
그녀의 연기를 보니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자칫 잘못하면 여기서도 5등 하겠다는 느낌이 확 왔다. 무조건 최선을 다 해야 할 듯 하다.
"시작할게."
"넵."
심호흡을 몇 번 해도 얼굴이 계속 뜨거웠다.
"오...오빠. 아. 잠시만."
나는 결국 또 멈췄다. 마리는 천천히 기다려 줬다.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연기는 연기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계속 몰입이 실패한다.
다시 한숨을 내뱉은 뒤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쁘아아... 진짜 출장 가야해?"
간신히 말하자 마리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세리아. 감정이 하나도 안 담겼는데요?"
"그렇지? 나도 느껴지는데 안 고쳐지네."
내가 하고도 머쓱했다. 그녀에 비해 나는 아마추어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감정을 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용기가 안났다. 여태 했던 다짐들 다 어디로 간거냐고.
다시 내 뺨을 찹찹 때렸다. 하기 싫어서 진짜 미칠 것 같다.
"오빠. 진짜 출장 가야해?"
나름 깔끔하게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어색했다. 진심으로 이번 시험은 망한 느낌이다.
"그냥 넘어 갈까요?"
마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연습하는 건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마리는 어떤 역할이든 잘 했다. 내가 문제였지.
눈물은 괜찮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음 대사는 너무 쪽팔려서 할 수 없었다.
"이이익! 제발! 가지마. 오쁘아. 응?"
"흠. 큰일인데요?"
애교는 커녕 대사 전달이 하나도 안 된다. 손발이 오글거려서 정신이 혼미해진다.
마리가 심각하게 날 봤다.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담담하게 잘 할 수 있을까?
이건 여자도 애교 없으면 하기 힘든 대사다. 그런데 남자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이상한게 아니고 집중에서 잘 한 마리가 대단한거다.
"시간 그래도 좀 있으니까 연습해봐요."
"...고마워."
대사를 조용히 읊어봤다.
"이잉. 제발 가지마 오빠. 이잉. 제발 가지마 오빠."
작게 말해도 창피하다. 이걸 진심으로 할 수 있다고? 이잉도 못하겠고 오빠도 못하겠다.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 이 울분을 풀고 싶다.
마리는 그런 나를 씩 웃으며 쳐다봤다. 그녀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할까.
다시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젠 물러설 수 없다.
"좋아. 다시 해볼께."
"넵. 해보세요."
마리가 기대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런 그녀를 보며 눈물을 흘린 뒤 말했다.
"이잉. 제발 가지마 오빠. 응?"
"오! 좋아요."
그 한마디를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지나치게 화끈거려서 피나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