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13일차 (62/94)



〈 62화 〉13일차

"세리아."

"응?"

그녀는 나를 게슴츠레하게 쳐다봤다.

"진짜 생각 없어?"

"무슨 생각."

얘가 많이 취했나.  무슨 얘길 하려고 뜸을 들이지?

"나랑 사귈 생각."

"..."

뜬금없이 돌직구로 묻자 나는 순간 얼었다. 말 꺼낼 때 부터 살짝 걱정 되더니 이럴 줄 알았다.

정신을 차리고 거절했다.

"그만좀 해. 적어도  달은 있어 보라니까."

내가 쏘아붙이듯 말하자 엘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누군가 1등이 되어 나간다면, 적어도 너나 나 중에  명은 계속 여자로 있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묻는 거지. 내가 보기엔 누가 1등 해도 개조당한 것은 풀기 어려워 보여서."

그녀도 이 상황을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는 모양이다.

아직 2주가 넘게 남았는데 이런 모습이니까. 미래가 암담하긴 하다.

"그래도 1등 해 봐야지 알지 그건."

"그냥 그렇다고."

그러더니 엘리스는 무표정으로 남은 술잔을 한  비웠다.

술에 취하더니 비관적으로 바뀐건가.

"희망을 가져요."

마리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살짝 분위기가 풀어졌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엘리스에게 물어봤다.

"왜 그렇게 사귀고 싶어하는데?"

그래도 서로 남자였는데 그렇게 금방 마음이 바뀔 수 있나? 궁금해서 물어봤다.

"글쎄. 미리 찜하는 기분?"

그러자 엘리스가 매혹적이게 웃으며  쳐다봤다. 순식간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깐 비관적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이론적으로 서로가 괜찮다 해도 그게 맘처럼 바로 되나?  안될  같다.

"다른 사람들은 두고 왜 나한테?"

나만 이상한건가 싶어서 주변을 쳐다봤다. 취기가 살짝 오른 제니퍼는 내가 바라보자 눈을 피했다.

마리나 줄리도 쳐다보니까 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줄리는 술 마셔서 그렇다 쳐도 마리는 왜?

"아니 진심으로?"

내가 모두에게 되묻자 줄리가 말했다.

"오히려 남자일 때 기억이 많이 남아서 괜찮은 것 아닐까? 레즈랑은 또 다르잖아. 엘리스 말대로 우리는 서로가 알맞다는게 맞아."

"다들 너무 취한 거 아냐? 정말 남자끼리 사귄다고?"

엘리스는  말을 바로 정정했다.

"여자끼리 사귀는 게 아니고?  임신도 가능 하다잖아."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너 탈출 한다 해도 몸이 그대로면 남자 만날거야? 아니잖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엄청 괴로울 것이다. 그건  때 고민해야지 지금 할 생각이 아니다.

그것보다 벌써 다들 이 몸으로 살 생각을 한다는게 무서웠다.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럼 1등을 향해 노력하는 이유가 없잖아."

내가 허망하게 말하자 엘리스가 말했다.

"나도 혹시나 하는 희망에 거니까 열심히는 하지. 그래도 1등 조건을 너무 믿으면 나중에 견디기 힘들걸?"

갑자기 적막이 찾아왔다. 저렇게 얘기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

"...1등으로 나가게 되면 몸도 돌려주지 않을까?"

줄리가 말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조용히  빈 술잔에 소주를 따라줬다. 반사적으로 받았다.

"물론 그거만 믿고 다 하는 건데요. 그래도 최악은 항상 생각해야죠."

엘리스도 줄리에게 술을 받으며 말했다. 갑자기 밥맛이  떨어졌다.

제니퍼와 마리까지 자기 마실 것을 따른 후 짠을 했다.

소주가 엄청 쓰게 느껴졌다.

"그럼 나 빼고 짝 지으면 괜찮은거 아냐? 그렇게 사귀고 싶으면 여기 사람 많이 있어."

내가 말하자 엘리스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너가 제일 나아."

"엑!"

마리가 놀랐다는 듯이 대답했다.

"저도 괜찮지 않아요?"

"내 스타일 아냐. 너무 애같아."

엘리스가 튕기니까 마리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제니퍼가 쿡쿡 웃었다.

분위기가 보다 가벼워졌다.

"아! 맞아. 저기... 세리아. 부탁 해도 괜찮을까?"

"무슨 부탁을...아. 알겠어요."

줄리의 부탁에 뭔가 했는데. 이제 생각났다.

자위해야 하는구나. 참. 이 상황에도 안 까먹은게 용하다.

"고마워 정말.  먹고 해도 괜찮겠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줬다. 본인이 까먹으면 벌점을 받아버리니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언제 또 먹을 지 모르니까 싹싹 긁어서 다 먹었다. 개조를 받은게 무슨 효과인지 다들 잘 먹었다.

먹고 마시다 보니 중간 중간 아무렇지 않게 화장실을 갔다. 몸을 일으킬 때 마다 가랑이가 신경쓰인다.

다들 앉아 있기 때문에 살짝 창피했다. 내가 움직일 때 눈길만 줘도 보지가 보일 것이다.

그래도 매너 좋게 서로 쳐다보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일어날 때 가슴이 출렁이면 반사적으로 유두가 선다. 정말 쓸모없는 가슴이다.

조심스럽게 변기 앞을 가니 노팬티라는게 상기됐다.

"에휴."

웃기는건 치마를 내리지 않고 소변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여자들도 치마 입으면 팬티만 벗나?

여자친구라도 뭐 싸는 장면은 잘 안봐서 모르겠다.

거의 보지 가리개 수준이다. 치마를 살짝 올려 입으면 가려지지도 않으니까 가리개도 못 된다.

잘 닦고 나와서 피아노 앞으로 갔다.

아까 나눈 대화 내용 때문에 다시 생각은 많아졌지만 전처럼 머리가 아프진 않았다.

배부른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라 기분은 괜찮다.

아무것도 안 입고 의자에 앉은 기분이다. 애써 무시하며 악보를 봤다.

피아노를 치고 있으니 남은 찌끄레기와 접시들은 다시 내려갔다. 묘하게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도 있겠지.

악보를 보며 치는데 전과 같은 느낌이 아니다.

연주로 스트레스 풀던 것은 예전 방식이다 보니까 완전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 푸는게 더 나았다. 다음에도 음식을 주려나?

"흐으읍!"

줄리가 자위를 마친 것을 보고 연주도 그만 뒀다.

매번 누군가 자위할 때 마다 피아노를 쳐줄 수도 없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설렁설렁 양치도 하고 누웠다.

이불 속에서 못 나올 것 같다고 한게 창피할 정도로 잘 돌아다녔다. 취기 덕분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네 명 다 복장이 비슷해서 괜찮은 걸까.

원래 먹고 바로 눕는 건 최대한 안 했는데 오늘은 그냥 했다.

전에는 먹고 최소 3시간은 움직여야 누워도 괜찮았었는데. 지금은 역류하는 느낌도 없다.

눈을 감고 안대를 쓴 뒤 아까의 대화를 다시 상기했다.

확실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수록 점점 결심이 약해진다.

진짜 적응이란 단어가 확확 와닿는다. 마음가짐 하나 바뀌었다고 내가 이 상황에 익숙해질  있다니. 오늘은 특히 더 체감이 됐다.

그래도 서로를 여자로 보는건 이해가  된다.

몇 달이 지났으면 몰라. 2주도 안됐는데 그게 가능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현실적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란게 느껴졌다.

분명 굉장히 현실적이라 생각했는데.

몸의 변화엔 적당히 노력하면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아."

그래 사귄다 쳐. 그래서 사귀면. 어쩔건데.

이렇게 휴식 시간에도 키스 하려고 그러나? 의도가 궁금하다.

컴퓨터도 보기 꺼려져서  보게 된다. 왜 SNS 안하는 연예인들은 계속 안하는지 이해가 된다.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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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차

알람과 함께 깬다. 평소처럼 이를 닦으러 가는데 가슴이 훨씬 출렁대고 가랑이도 허전하다.

팬티와 스포츠 브라의 역할이 컸구나. 가슴이 두 배는 펌핑된 기분이다.

어제 잔뜩 먹어서일까? 화장실도 급하다. 신기하게 배는 아프지 않았다.

칫솔을 입에 물고 소변을 봤다.

쪼륵 쪼르륵

거세게 나가는 소리가 예상보다 커서 창피하다. 어제 먹은 것도  소변으로 나오는 걸까.

적어도 2주는 익숙해 져야겠지.

이젠 자동으로 앉아서 볼 일을 보는 것 같다.

뭐. 나중에 남자로 돌아오면 다시 서서 쌀 수 있지 않을까.

만화나 글에서 성별이 바뀐 경우엔 습관 때문에 서서 싸려 한다고 본 것 같은데 아니었다.

이 긴 머리나 거대한 가슴을 보고 현실 자각이 안 될 수 있나? 픽션은 픽션이다.

일을 마치고 나와서 몸을 풀었다. 이젠 안 하면 섭섭하다.

바닥에서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차가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팬티의 유무가 이렇게 컸구나. 궁금한 사람 있으면 나체로 운동해보라 해야겠다.

꾹 참고 끝까지 했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어떤 게임이 기다리고 있을까. 또 전에 했던 게임이려나?

스트레스가  풀렸더니 안식을 찾았다. 음식이 내게 주는 영향이 꽤 컸다.

매일 게임에만 집중해서 1등을 하자. 그것만 다짐해도   수 있다.

2주가 지나고 그 이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

하지만 1등을 하지 못하면 모든게 말짱 도로묵이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누워있다.

눈을 뜨려 했더니 눈에 뭔가가 씌여져 있었다.

갑자기 왜 안대를 쓰고 있을까?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더니 묶여있다. 대(大)자로 누워있는 모습이려나?

매달려 있냐 누워 있냐만 다르지 바로 개조실로 온 줄 알았다.

[오늘의 게임은 '인형놀이 게임' 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의아하시죠? 정체는 바로  번 쯤 들어봤을 시체놀이!  게임의 응용 버전입니다!]

뭔가 참고 가만히 있는 게임인것 같다. 벌써 짜증이 확 난다.

[개조를 받은 만큼 신음이나 반응의 차이가 존재하겠죠? 그래서 규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나! 누워서 일어나지 않기! 둘! 안대를 벗지 않기! 셋! 신음을 제외한 말 하지 않기!]

나는 강제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누웠다. 지금 시작한건 아니겠지?

듣다 보니까 어이 없었다. 묶어놓고는 어떻게 일어나라는 건가.

[중간에 고비를 받게 되는데 항복을 외치면 바로 탈락! 한 명이 남을 때 까지 버티면 되는 쉬운 게임입니다!]

한 마디로 인내심 게임이었다. 원래 시체놀이가 인내심 게임 아닌가.

사실상 고문하겠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 같다.

[바로 시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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