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10일차
억지로 힘을 줘서 막은 뒤에 어정쩡한 자세로 걸어갔다. 팬티를 다리 사이에 걸치고 걷다보니 엄청 치욕스러웠다.
통을 가지러 가는 길에 한 두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휴지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물이 가득찬 배가 출렁거리는 느낌이 정말 엿같았다.
수치스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거지만 배뇨감에 미칠 것 같았다. 싸던걸 중간에 끊으니까 몇 배는 더 괴로웠다.
다시 빈 통을 든 나는 구석까지도 못가고 그 자리에서 나머지 오줌을 쌌다.
조륵 조륵
방 한가운데서 마저 싸고 나니까 시원함과 자괴감이 미친듯이 왔다. 급격히 죽고싶어졌다.
맑은 오줌이 담긴 두 통을 뚜껑까지 닫아서 구석에 갖다놨다.
무엇을 얻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근원론적 고민이 머리속을 가득 채운다.
"에휴."
이미 쌌으니 쓸데없는 고민은 그만뒀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잠시 멍을 때리다가 어쨌든 물을 마시긴 해야 하니까 여섯번째 물통을 들었다.
"흠."
살짝 지린내가 방에 나는 듯 해서 마시지 않고 뿌렸다. 아까 떨어진 오줌방울들도 다 희석시켜 눈 앞에서 없애버렸다.
다른 물통을 들고 마셨다. 웃긴게 소변을 눴다고 또 물이 들어가긴 했다.
물통 6개를 간신히 끝마쳤다. 끄윽 하고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남은 시간을 보니 10분 남았다. 여기서 더 추가로 마실 필요는 없어보인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현자타임이 쎄게 왔다.
"포기."
쿨하게 외친 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1라운드가 끝났습니다! 물 마신 양의 순서는 1등 엘리스, 2등 세리아, 3등 줄리, 4등 제니퍼, 5등 마리입니다! 줄리 5점, 세리아 4점, 제니퍼 3점, 엘리스 2점, 마리 1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엘리스가 다른 사람들을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6통보다 조금 더 마시다니. 내가 딱 6개 마셨으니까 줄리 아래론 다 페널티를 받게 될 것이다.
[줄리, 제니퍼, 마리는 페널티인 '나체'를 받게 됩니다! 그럼 바로 2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다른 페널티를 보다 보니까 나체는 괜찮아 보인다. 나와 엘리스는 미리 정보를 얻은 셈이나 다름없다.
2라운드에서 페널티를 받더라도 3등을 노리는 전법을 써도 될 것이다.
[2라운드는 바로 더위속에서 1시간 참기입니다! 방의 기온이 1도씩 점점 올라갑니다! 기본 시작은 60도! 사우나 온도는 물 온도랑 다른거 모두 아시죠? 최소 조건은 40분입니다!]
최소조건은 100도, 최대 120도까지 올라간다는 뜻이다. 이거 기절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걸까. 그러자 바로 말해줬다.
[기절은 자동 포기로 간주됩니다! 시청자 여러분은 따라 하시면 안되는거 아시죠? 이제 온도를 올려주세요!]
누가 이런걸 따라하고 싶을까. 어이가 없다.
방이 순식간에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1라운드에 이어서 물통이 남아있었다. 이게 이어지는구나!
나는 6개를 마시고 하나를 버려서 3개 남아있었다.
물을 많이 마신 나와 엘리스는 자동으로 물 손해를 얻었다. 페널티 정보를 얻은 대가였다.
"아. 남겨둘걸."
괜히 물 한 통을 쓸데없이 더 써버렸다. 겨우 오줌 닦겠다고 귀중한 물 하나를 버리다니. 아깝다.
그 사이에도 주변의 기온이 잔뜩 올라가서 얼굴이 벌써 얼얼하다. 찜질방이나 사우나를 친구들과 종종 가긴 했지만 이렇게 오래는 아니었다.
5분만에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앞에 온도가 씌여 있어서 1분마다 오르는게 보였다.
나는 앉아서 가만히 숫자를 셌다. 사실 눕고 싶었는데 배가 아직도 출렁거려서 눕지도 못했다.
이번엔 다들 얼마나 버티려나. 아까 물 마신 등수가 지금 생각해보면 키 순서였다. 물론 우연이긴 하지만 맞아 떨어졌다는게 웃겼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해도 시간이 너무 안간다.
10분이 지나자 슬슬 괴롭다. 팬티와 브라가 젖은게 엄청 짜증났다. 괜히 더 찝찝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나체가 페널티가 아니고 더 좋은 조건 같다. 그렇다고 벗을 수도 없었다.
그들은 타의에 의해 벗겨진거고 내가 스스로 벗으면 원해서 노출하는 거니까.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내 뺨을 찹찹 때렸다. 70도에서 이렇게 힘들면 다들 최소 조건까지 버틸 수 있을까?
"후우."
지금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내 코가 석자인데.
그나마 땀이 줄줄 나니까 소변 마려운 생각은 안나서 다행이다.
습습 후후
숨을 내뱉다 보니 머리가 살짝 어지럽다. 내가 이런 것에 약했었나?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오래 있어본 적이 없다보니 알 수가 있나. 살짝 머리가 띵하고 어지러웠다.
시간을 보니 23분 지났다. 아껴놨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물도 따듯해져서 마시기 싫어졌다.
나는 차라리 마시지 않고 머리에다 뿌렸다. 잠시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최소 조건까지만 참고 그만 둬야겠다.
40분만 참아도 3등을 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분명 나만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테니까.
30분이 넘어가자 어지러움이 더 강해지고 속이 울렁거린다. 눈 앞이 핑핑 도는게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예전에 학교에서 단체로 어린이대공원을 놀러간 기억이 떠올랐다.
그 중에 '다람쥐통'이라는 놀이기구가 있다. 진짜 쳇바퀴만한 크기에 앉아있으면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하는 놈이다.
어렸을 적 멋모르고 그걸 탄 뒤 하루종일 멀미한 기억이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그 다람쥐통을 엄청 더운 날 10번은 탄 기분이었다.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예전 기억이 떠오른거 보면 이런게 주마등일까?
가끔 '사우나에 오래 있으면 큰일난다.', '술먹고 사우나에서 죽은 사람이 있다.' 이런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내가 해당될 줄은 몰랐다.
취기나 발정같은 종류와 감각이 달랐다.
심지어 물을 많이 마신 것 때문에 계속 역류하려는 느낌이 엿같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자 나는 망설일 수 없었다.
"...포기."
페널티 '나체' 받고 말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참았을까. 살아있어야 1등도 하고 남자로 여기서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포기를 외치자 마자 방의 온도가 점차 식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 온도가 내려가자 반대로 썰렁한 기분까지 들었다.
누워서 고개만 돌려 시간을 보자 35분이 지나있었다.
눈 앞이 반짝반짝 했다. 빈혈있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면 보인다는 것과 비슷했다.
온몸이 땀 범벅이다. 지끈거리는 머리가 좀 가라앉자 일어나서 남겨놨던 물 2통 중 하나를 마셨다.
배는 아직 출렁거렸지만 목이 너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
"크야."
미지근한 물인데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역시 포기 하기를 잘했다. 아까 상태로는 절대 5분 더 못 버텼다.
마음이 진정되자 땀으로 젖은 브라와 팬티가 찝찝하게 느껴졌다. 온 몸이 땀 때문에 매끈거린다.
먼저 다른 사람이 포기했기를 바라며 결과를 기다렸다.
20분이 더 지나고 MC의 말이 나왔다.
[2라운드가 끝났습니다! 사우나를 오래 버틴 순서는 1등 줄리, 2등 제니퍼, 3등 엘리스, 4등 마리, 5등 세리아입니다! 엘리스 5점, 제니퍼 4점, 마리 3점, 줄리 2점, 세리아 1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에휴."
결과가 절망적이다. 다들 7점으로 점수가 같고 내가 5점, 마리 4점이다. 이대로라면 가슴개조가 확실해진다.
유일한 방법은 3라운드에서 내가 3등을 하고 마리가 2등을 하는 경우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거의 확률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짜 저 경우가 나올 수 있을까?
웃기는게 가능성이 0프로가 아니라니까 또 기대하게된다. 사람이 가장 밑바닥이 되면 희망적인 경우를 생각하는게 맞나보다.
안 될걸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다니.
그래도 열심히 3등을 노려봐야겠다.
[세리아는 페널티인 '나체'를 받게 됩니다! 그럼 바로 3라운드 시작하겠습니다!]
심지어 나만 40분을 못버텼다. 생각보다 자괴감이 심하다.
스포츠 브라와 팬티를 벗어 바닥에 놓자 슥 하고 사라졌다. 이렇게 바닥이 막 내려가고 올라오는거 보면 정말 비싼 세트장이 분명했다.
나체가 되자 나도모르게 팔로 가슴과 중요부위를 가렸다. 안가리고 당당히 있어보려 했는데 예상보다 더 창피하다.
[마지막 3라운드는 소변 1시간 참기입니다! 마지막 라운드니 만큼 최소 조건은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라고 외치는 것 대신에 직접 보시면 됩니다!]
진짜 이것들이 미쳤나.
스트레스가 확 올라온다. 처음부터 계속 빌드업이 있었다. 나와 엘리스는 물을 엄청 마셨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아까 볼 일을 보지 않았다면 무조건 지금쯤 마렵겠지.
심지어 1라운드 때 안 마셨더라도 사우나를 마친 뒤에는 물을 분명 마셨을 것이다.
거기다 포기라고 외치는 것 대신에 소변을 눠야 한다니 참 악질이다.
그 때 였다.
벽에 다른 사람들 모습이 나타났다.
"앗!"
나도 모르게 뜨악 하고 몸을 움츠렸다. 매번 개조할 때 마다 벗은 몸을 보긴 하지만 자유로운 몸 상태에선 확실히 부끄럽다.
역시나 엘리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저 속옷이 부러워 보일 줄이야.
이곳은 생각보다 더 악질이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모습은 보였다. 마리에게 2등까지 버텨보라고 소리치려 했는데 바로 무산됐다.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졌다.
그나마 다들 보여주니까 3등을 노릴수는 있게 되었다. 완전히 운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방식이 너무 창피했다.
대기하고 있다가 2명 싸고나면 바로 소변을 누라는 얘기 아닌가. 상상만으로도 쪽팔린다.
일단 다들 참는 모습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꽤 오래 갈 듯 하다.
한 10분 지나자 줄리가 안절부절했다. 다리를 배배 꼬고 몸을 비틀었다.
사우나를 끝까지 버티더니 물을 많이 마신 모양이다.
그녀는 잠시의 갈등 끝에 물통을 들고 구석으로 갔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구석으로 향하는건 사람의 본능인가 보다.
가슴이랑 음부를 가리던 손을 내려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보지를 조준하고 다른 손으로 통을 받친 모습이 엄청 음란해 보였다.
줄리는 사우나 후에 싸서 그런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끄러움에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공개처형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이와중에 그녀를 보며 한 통으로 분명 부족할 거란 생각을 했다.
역시 그녀도 싸다보니 500mL의 부족함을 느낀 모양이다.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급하게 끊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빈 통을 가지러 갔다. 나와 하는 짓이 똑같아서 웃겼다.
그러다 도중에 땀인지 물인지를 밟고 넘어지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리를 거의 찢듯이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지리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그녀의 표정을 끝으로 줄리의 화면은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