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8일차
8일차
다시 개조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날이 밝았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니 이젠 자연스럽게 제니퍼가 따라온다. 양치를 하고 있는데 줄리가 일어나서 우리쪽으로 왔다.
제니퍼가 놀라서 치약을 잘못 먹었는지 컥컥 댔다. 그제야 줄리도 자신의 옷차림이 생각난 모양이다.
재빨리 다시 이불로 들어가 숨었다.
아침부터 분위기가 민망해졌다. 줄리는 생각보다 더 덜렁대는 모양이다. 어제 그녀의 자위로 인해 모두가 어색해진 상황인걸 모르진 않을텐데.
줄리가 고개만 내밀어 보라빛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눈을 피했다. 이제 창피해졌나 보다.
오늘 게임 내내 어떻게 버티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당당하게 갈꺼면 당당하게 가고 아니면 끝까지 숨겨야지 애매하게 하니까 답답하다.
양치를 끝내고 스트레칭을 했다. 몸이 이렇게 변하니까 힘은 엄청 줄었지만 유연성은 많이 늘었다. 불행중 다행이었다.
역시 근육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에 들면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 치유하는게 아닐까.
개조 후유증도 없고 자위를 성공했는지도 체크하는데 뭘 못하겠나 싶었다.
몸을 풀고 있으니 제니퍼도 따라했다. 나를 계속 따르는게 느껴지니까 살짝 부담스러웠다.
10분정도 남아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눈을 떠보니 오랜만에 다같이 모여있었다. 줄리는 바로 몸을 웅크리며 앉았다. 옆모습은 더 헐벗고 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마리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했다. 계속 눈이 줄리에게 가는 것을 참는 모양이다.
엘리스는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오늘도 반갑습니다! 매번 새로운 게임을 들고올 때는 두근두근 하네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 게임 제목은 바로 '불균형 순발력 게임'입니다!]
또다시 피지컬 게임이 나왔다. 줄리는 더 울상이 됐다. 여기서 운 게임이라도 나와 줬어야 그나마 나았을텐데.
[그러나 그냥 순발력을 가지고 게임하게 된다면 결과가 뻔히 보이겠죠? 그래서 불균형이란 말이 붙은 겁니다! 규칙 설명 들어갑니다!]
어떤 식으로 게임을 진행할지 궁금해졌다. 솔직히 피지컬은 프로게이머 준비생인 제니퍼나 체육계 엘리스가 탑인건 맞으니까.
[총 3라운드로 구성되며 놀랍게도 팀전입니다! 팀을 구성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둘 셋을 외쳤을 때 앉은 사람들끼리, 일어난 사람들 끼리 팀입니다. 매우 간단하죠?]
일단 5명이니까 2:3으로 불균형이긴 하다. 그래도 2명 쪽에 제니퍼와 엘리스가 간다면 질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2:3 말고 1:4도 가능합니다. 그 다음 게임을 진행해서 이긴 팀은 승점을, 진 팀은 페널티를 받는 게임입니다! 어떤 게임인지는 팀이 나눠지고 라운드가 시작되면 공지하겠습니다!]
역시나 페널티가 있다. 그나마 줄리는 표정이 좀 풀려졌다. 팀에게 기댈 수 있는 확률이 생겨서 다행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자! 그럼 5분 뒤에 자리를 잡고 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제니퍼가 내 옆에 살짝 다가왔다.
"세리아. 일어날꺼죠?"
소근대며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확실히 잘 짜서 한 명을 계속 보내는 것도 방법이긴 했다.
예전에 내가 마리를 보냈듯이 제니퍼는 날 설득하는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인데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고 이렇게 물러졌다는게 우스웠다.
제니퍼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스에게 갔다. 그런데 제니퍼를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나를 따르는 경우가 많아졌고 친분을 꽤 쌓았다고 해도 게임은 별개다. 애초에 내가 선을 그어놓은 장본인이다.
멀리서 보니까 엘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제니퍼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상황으로 보였다.
이름이 불균형이라고 해서 여럿이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약에 혼자가 유리한 순발력 게임이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제니퍼는 꿋꿋이 마리와 줄리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다. 둘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5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우리는 일렬로 앉았다.
[하나 둘 셋 하면 일어나거나 앉아주시면 됩니다. 자! 하나! 둘! 셋!]
MC의 구령에 맞춰 나는 일어났다. 일단 제니퍼의 말을 들어주는게 낫겠다고 여겼다.
누가 일어났을까 하고 옆을 보자 제니퍼만 일어나 있었다. 나와 제니퍼 둘이 팀을 짜게 되었다.
[그럼 각 방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시야가 가려지더니 잠시 후 나와 제니퍼 둘만 하얀 방으로 옮겨졌다. 제니퍼가 내게 말했다.
"세리아. 그래도 제 말 들어 주셨네요?"
"고민좀 했어."
그녀는 날 보며 애매하게 살짝 웃었다. 나는 궁금해서 제니퍼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무슨 말을 한 거야?"
제니퍼는 우물쭈물 하더니 멋쩍어하며 말했다.
"다 똑같이 말했어요. 일어나서 같은 팀 하자고. 그런데 세리아만 제 말을 들어줬네요. 전 이정도였나 봐요."
의외였다. 누구는 앉으라 그러고 누구는 일어서라 그런 줄 알았는데 다 똑같이 말해줬다니. 내가 제니퍼 말을 안 들어줬으면 혼자 팀 될 뻔 했다.
"그랬구나."
"저는 제 말 안들어 주는 사람이 혼자 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가 혼자였네요. 믿어줘서 고마워요."
나는 아무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처음 순발력 게임은 '사격'입니다! 순발력 게임이니 만큼 속도가 중요하겠죠? 이 방 벽에 나타나는 과녁중 목표를 빠르게 맞춰주시면 됩니다!]
옆을 보니 권총 두개가 있었다. 만져보니 장난감 총이었다. 내심 나는 실제 권총이 있을 거라 예상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실제 총이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안좋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안좋은 생각은 날리고 게임에 대해 고민해봤다.
그냥 하얀 방인데 뭘 쏘라는 걸까 궁금해하자 갑자기 하얀 벽에 알록달록한 도형들이 마구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목표구나.
나와 제니퍼는 권총을 한 자루씩 들고 일어섰다. 손에 땀이 나며 살짝 떨렸다.
확실히 사람이 많으면 더 유리할 것 같다. 그래도 제니퍼는 게이머 출신이니까 더 잘하지 않을까? 기대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해도 기대가 된다.
많은 도형들이 사방에서 나타나는 것은 예상보다 더 정신없었다. 네모에 세모에 동그라미에... 자세히 보니까 큰 도형 안에 작은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움직이는데다 조건이 2개라 찾기가 까다로울 것이란 생각이 바로 들었다. 정말 각양각색이었다.
그 때 MC의 목소리가 나왔다.
[1번 목표! 노란색 동그라미에 빨간 별!]
고개가 확확 돌아가며 목표를 찾았다. 이게 가만히 있어도 찾기 힘든데 계속 움직이자 그 놈이 그 놈 같았다.
탕!
큰 소리가 갑자기 나자 나는 흠칫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제니퍼가 목표를 찾아 쏜 소리였다.
[1번은 제니퍼가 득점합니다! 바로 2번 목표! 남색 동그라미에 초록색 세모!]
제니퍼가 진짜 빨리 찾았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집중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눈을 굴렸다. 천장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총을 쐈다.
탕!
옆을 맞으며 처리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쏘는게 어려웠다. 차라리 K2나 m16이었다면 백발백중 이었을텐데! 제니퍼는 어떻게 잘 쏜건지 이해가 안 갔다.
다시 침착하게 조준해서 쏘려고 하자 목표가 사라졌다. 한 번 기회를 놓치니까 사라지나보다. 다음엔 신중하게 해야겠다.
열심히 목표를 찾는 도중에 MC가 말했다.
[2번은 엘리스가 득점합니다! 바로 3번 목표! 초록 네모에 파란 네모!]
이번에도 벽에있는 목표 모양을 발견했다. 재빠르게 쏘려다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
과녁 앞까지 가서 벽에 총구를 붙인 채 쐈다.
탕!
[3번은 세리아가 득점합니다! 바로 4번 목표! 갈색 세모에 검은 별!]
다시 가운데로 돌아가 열심히 찾았다. 계속 알록달록한 모양을 집중해서 봤더니 어질어질 했다.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기분이라 눈을 똑바로 뜨고 집중했다.
[4번은 줄리가 득점합니다! 바로 5번 목표! 보라 동그라미에 하얀 네모!]
역시 여럿이서 찾으니까 금방 찾는 모양이다.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식은땀이 났다. 심지어 몇 번 목표가 끝인지를 모르니까 긴장을 풀 수도 없었다.
먼저 보라색을 열심히 찾았다. 그렇게 찾으면 동그라미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네모 아니고, 동그라미! 그럼 안에 있는 색이 하얀지 찾았다. 하얗다! 하지만 하얀 동그라미였다.
탕!
제니퍼가 총을 쐈다.
"아잇!"
놓친 모양이다. 확실히 총으로 멀리있는 것은 쏘기가 힘들다. 크기가 그리 크지도 않아서 까다롭다.
나처럼 총구를 대고 쏘면 놓칠 일이 없을텐데.
그녀를 쳐다보자 천장을 보며 아쉬워 하고 있었다. 그렇군. 나였어도 천장이면 어쩔 수 없다.
다시 보라색 동그라미를 찾고 작은 모양의 색이 하얀 것을 찾는다. 제발... 제발!
찾았다!
바닥쪽에 있었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 총구를 대고 쐈다.
탕!
이걸로 끝이었으면 좋겠다.
[5번은 세리아가 득점합니다. 바로 6번 목표! 노란 네모에 검정 동그라미!]
끝이 아니었다. 나는 한 숨을 쉬며 다시 집중했다. 노란 네모. 노란 네모.
한참을 찾아봐도 너무 보이질 않았다.
다시 탕 소리가 들렸다.
[6번은 제니퍼가 득점합니다. 1라운드 승리는 4점을 먼저 취득한 제니퍼와 세리아가 가져갑니다! 2:3으로 불리한 경기였음에도 승리했네요!]
"이야!"
"예스!"
나와 제니퍼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진심으로 웃음이 나왔다. 이 승부욕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제니퍼가 말했다.
"세리아."
"응?"
"우리 계속 팀 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순발력 게임'에 제니퍼는 뛰어났다. 같이 갈 수 있다면 계속 가는게 옳았다.
그래도 체력적인 부분이 큰 순발력 게임이었다면 무조건 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인원수를 무시할 순 없다.
"다음 고를 때 무조건 두번 서고 한 번 앉기 할까요?"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니퍼 버스 받고 공동1등 해야했다. 나와 제니퍼, 두명이 확고하게 팀이라면 저쪽 셋이 완전한 팀이 아닌 이상 무조건 이득이었다.
심지어 저쪽은 이제 페널티도 받고 무조건 분열할 것이다. 게임이 꽤 유리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