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7일차
우리는 줄리가 어떤 페널티를 받게 될지 궁금했다.
여태까지의 페널티는 게임 한정 단발성인 조건들이었는데 줄리는 다음 시험까지 일주일동안 받게 된다.
솔직히 발정이나 취기같은 종류의 페널티를 7일 내내 받으면 정신이 나갈 것이다.
여기서 그런 종류를 원할 것 같지는 않다.
해도 어쩔 순 없다. 봐야 알겠지. 뭐.
제한시간이 끝나면 줄리가 여기로 올 줄 알았는데 4단계까지 마저 시키는지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덩달아 30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잠시 후 줄리가 우리 곁으로 나타났을 땐 축하 안내나 영상도 나오질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시무룩해 보였다. 두려움이나 무서움도 섞여있었다.
[모두가 시험을 통과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습니다! 참 안타깝네요!]
MC의 목소리가 나오자 줄리는 더 위축되었다. 마리는 덩달아 떨리는 모양인지 줄리 눈치를 엄청 봤다.
과연 페널티는 뭘까 궁금해하자 바로 말해줬다.
[줄리가 다음 시험 전까지 받게 될 페널티의 종류는 바로 '의상교체' 와 '여성력 기르기' 입니다!]
의상 교체는 바로 이해가 됐는데 여성력 기르기는 무슨 페널티일까. 불안한 기운이 싸하게 내려왔다.
[줄리는 7일간 '마이크로 비키니'를 착용한 채 지낼 것입니다! 와! 여러분! 벌써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나체는 아니라 다행인 걸까? 오히려 더 수치스러울 수 있다. 그냥 비키니도 쪽팔려서 못 입고 다닐텐데 줄리는 마이크로 비키니를 입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1회 이상 자위'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줄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나머지 사람들도 다 얼굴이 경직되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우리가 따로 각방을 쓰는 것도 아니고 여기 녹화되는 것 뻔히 아는데, 이런 페널티를 준다는 것이 너무 악질이었다.
"그. 그걸 어떻게 해?"
줄리가 소리치자 다시 MC의 말이 나왔다.
[저희는 여러분께 충분한 자유시간을 준다고 자부합니다. 줄리의 생체 기록은 정확히 측정 중이기 때문에 확실한 절정이 끝나면 통과 알람이 갈 것입니다.]
더 수치스럽다. 몰래 이불속에서 자위를 하더라도 절정을 하면 알람이 온다는 뜻 아닌가. 줄리가 울상이 되었다.
"여기서 자위는 절대 못해!"
나였어도 저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줄리의 심경에 충분히 동의한다.
구경거리로 만들다 못해 스스로 창피한 짓을 하게 만든다는건 정말 너무하다.
[하거나 안하는 것은 사실 줄리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페널티 항목이기 때문에 매일 1회 이상을 지키지 않는다면 벌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자위를 하지 않으면 개조 항목이 하나 늘어나버린다. 그녀는 지금 외통수에 빠졌다.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다.
줄리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이 많아보였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의 개조는 없었지만 다들 재밌게 시청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내일의 새로운 게임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MC 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방으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개조받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의 짐은 더 무거워졌다.
다들 침대에서 고개를 들어 서로를 살펴본다. 그러다가 우린 결국 줄리를 쳐다봤다.
줄리는 고개를 숙여 몸을 확인하더니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옷은 갈아입혀진 모양이다.
과연 그녀는 오늘 자위를 하고 넘길 수 있을까. 우리는 그걸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때 줄리가 꼼지락거렸다. 내가 제일 가깝기 때문에 먼저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줄리. 왜 그래요?"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지금 보니 풀 메이크업처럼 보이지만 개조로 직접 변한거라 티가 난다.
"나... 화장실."
이건 노린걸까? 줄리가 괴로워 하는 것은 알겠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네요."
"아냐. 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리를 비비 꼬다가 결국 화장실로 갔다.
줄리가 일어나서 가는 동안 우리들은 자는 척을 해줬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지만 최소한의 배려였다.
눈을 살짝 떠서 관찰하니까 엄청난 모습이었다.
살오른 엉덩이에 비키니 뒤쪽은 거의 먹혔다. 끈이 없었다면 안 입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소변을 참기 위해 다리를 꼬며 걷는 줄리의 엉덩이가 굉장히 부각되었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앞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의는 삼각형으로 유두만 딱 가리는게 나쵸과자 하나 크기만했다.
하의도 크기는 비슷비슷 했다. 앞만 세모 모양으로 살짝 가리고, 허리랑 뒤쪽은 끈으로 된 형식이다. 색은 상하의 다 하얀색이라 살짝 비치는 느낌도 들었다.
옆을 보자 마리는 넋이 나갔다. 자는 척 하기로 한 암묵적인 룰도 까먹었는지 열심히 쳐다봤다. 가슴만 작을 뿐 완전 섹시한 여성이라 내성이 없는 마리에겐 치명타인 모양이다.
줄리는 눈을 꼭 감고 결심을 했는지 팬티를 내리며 양변기에 앉았다.
머리카락이 등에 걸리는지 손으로 잘 정리해서 어깨에 걸쳤다.
쪼르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소리가 증폭되며 퍼졌다. 우리는 서로 민망해졌다.
휴지로 뒷처리까지 한 줄리는 재빠르게 자신의 침대로 갔다.
얼굴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모습을 보니 어마무시하게 창피한 모양이다.
한동안 적막이 이 곳을 감돌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행동해줘야 할 듯 해서 그녀를 그대로 두고 나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나머지 애들도 눈치를 보다가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움직였다.
사이트에는 통과한 4명의 영상이 등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줄리의 영상은 없었다. 그녀의 팬들이 슬퍼하는 댓글을 잔뜩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의 실력이나 피지컬을 가지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진이나 영상이 자세하게 올라오니까 2차 창작물도 엄청 많았다. 이 사이트에 제한없이 올릴 수 있게 해줘서 더 욕망을 푸는 모양이다.
줄리가 자위하는 영상이 올라가면 엄청 증가할게 뻔했다.
더 이상 보기가 싫어서 금방 끄고 나왔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갔다.
차라리 시끄럽게 피아노를 쳐주면 줄리가 자위하기 괜찮지 않을까?
슬쩍 줄리를 보자 아직도 이불 안에 있다. 지금은 관심을 주지 않는게 현명할 듯 하다.
피아노 근처에 못 보던 것들이 있어서 살펴보자 악보였다. 전에 살짝 뭐라 했던 것 같은데. 이곳은 내가 투덜대는 소리를 은근히 잘 들어준다.
새로운 게임기나 책도 가져다 주는 걸 보면 우리 취미에 대한 의견은 잘 반영해준다. 나름의 복지 시스템이란 걸까.
다른 곳에 아예 관심을 끄고 피아노나 쳐야겠다.
무슨 악보를 갖다줬을까 봤더니 베토벤의 비창이었다. 뜻이 좀 비극적인게 그래서 다른 악보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2악장은 듣기만 하면 괜찮은 음악이니까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예전에 유명한 곡들은 다 손을 댔어서 연습 몇 번 하니까 생각이 났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자 제니퍼가 옆에 와서 구경한다.
보여주기로 했었는데 잘됐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때 느낌을 살려 천천히 감정을 담아 치기 시작했다.
진짜 오랜만에 집중해서 피아노를 치니까 향수가 확 느껴졌다. 그나마 취미로 계속 피아노를 쳐서 다행이지 중학교 때 이후로 하나도 안쳤으면 절대 못한다.
막상 치는거 멋지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중간중간 실수할까봐 소극적으로 해버렸다. 아쉽다.
그래도 곡이 끝나자 제니퍼는 박수를 쳐줬다. 언제였는지 엘리스도 와서 구경중이다.
마리는 컴퓨터를 하던 중에 박수를 쳐줬다. 줄리는 아직도 이불 속에 있다.
"잘 치시네요. 멋져요."
"고마워. 실수 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제니퍼가 칭찬을 해줬다. 치긴 쳤는데 뭔가 쑥스럽다. 쓸데없는 재롱 부린 기분도 들었다.
"잘치네. 아까 저기 서랍에 다른 악보도 있던데."
"아? 진짜?"
엘리스도 날 칭찬해주며 다른 악보의 존재를 알려줬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나는 일어나서 말해준 서랍으로 갔다. 말해준 대로 몇 개의 악보가 더 있었다. 연습을 하긴 해야겠지만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시 피아노에 앉자 제니퍼가 옆에 왔다. 괜히 찔려서 먼저 말했다.
"연습해야 해서 지금은 못 들려줄걸?"
"괜찮아요. 구경만 해도 재밌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을 했다.
그 때 미세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줄리가 결심을 한 모양이다. 이를 꽉 깨문 것 같지만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흡. 흣."
괜히 머쓱해져서 손가락에 더 힘을 주며 연습했다.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었다.
피아노를 치다가 실수를 해서 멈췄다. 고개를 돌려 제니퍼와 얼굴이 마주쳤는데 붉어져 있었다. 제니퍼도 줄리의 신음을 들은 모양이다.
그녀는 우물쭈물 하더니 결국 말을 안했다. 줄리 얘기라면 잘 참았다.
그 길에 주위를 둘러보니 엘리스는 무시하며 게임중이고, 마리는 계속 힐끔대며 줄리가 있는 침대를 쳐다봤다. 궁금함을 참기 힘든 모양이다.
내가 멈춰서 조용해지면 더 큰일이니까 끊임없이 피아노를 쳤다. 잠시 후 알람이 나왔다.
"크흣."
[줄리가 자위 1회를 마쳤습니다.]
줄리의 억눌렸지만 쾌락섞인 신음과 함께 저 소리가 나오자 다른 사람들이 더 뻘쭘해졌다.
잠시 후 줄리가 있던 이불이 조금씩 들썩거렸다.
"흑."
그녀도 결국 자위를 하긴 했지만 상당히 서러운지 입을 틀어막고 훌쩍거렸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피아노를 계속 쳤다.
우리들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고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기분 탓인지 음란한 냄새가 나는 느낌이었다.
찝찝함을 무시하고 안대를 쓴 뒤 잠을 청했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까지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줄리의 손은 다들 잠들면 그 때 씻으려나.
"에휴."
심각한 상황에 괜한 걱정이다.
이 해답없는 막연한 불안함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