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7일차
7일차
아침이 되자 변함없이 내가 먼저 일어났다. 알람음은 이제 모두가 신경쓰지 않았다.
솔직히 아침이라고 알려주니까 아침 이라는거지 창문도 없어서 모르겠다.
예전에 우주인이 되기 위한 과정중에 한 달 동안 한 공간에서 버티는 시험이 있다고 들었다. 굳이 그런 것도 시험보나 생각했는데 일주일만에 이해 해버렸다. 엄청 답답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자 벌써 두명의 머리카락이 알록달록하다. 다들 똑같은 단체복을 입고 있으니까 여자 합숙소 같았다.
아마 다들 첫날과 비교하면 어마무시하게 변했겠지. 사이트 들어가서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양치를 하는데 머리카락이 걸리적 거렸다. 나는 엘리스가 알려준 서랍에서 머리끈을 꺼내 묶었다. 대강 머리 위로 올려 묶어놓은 것 만으로도 엄청 편해졌다. 제니퍼도 양치할 생각인지 이쪽으로 비틀대며 걸어왔다.
이 때 MC의 말이 나왔다.
[오늘은 중간검사 날입니다! 아이돌이니 만큼 7일 단위로 시험을 보게 되니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그 대신 개조는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치루는 시험은 짜증나지만 7일마다 개조는 없다는게 더 좋게 느껴졌다. 더 변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여기도 휴일이 있었다. 시험을 보니까 휴일로 보기엔 그런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분들은 다음 시험 전까지 페널티가 있으니 조심해주세요!]
뜬금없는 날벼락에 어이가 없었다. 좋은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다음 시험까지 페널티라는 뒷 말이 따라왔다. 기분이 다시 가라앉았다. 오늘도 휴일은 아니었다.
늘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몸을 일으켜 듣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시험일까요?"
제니퍼가 묻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앞에 아이돌 얘기 하는거 보면 관련된 종류 아닐까?"
"쉬운 거였으면 좋겠네요."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말에 나는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난지 한 시간이 지나자 MC의 말이 나왔다.
[자! 그럼 시험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우리는 개인 방으로 이동했다. 다 같이 할 줄 알았는데 개인전이라 의외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작은 하얀 방은 똑같고 별 다른 건 없었다. 잠시 후 MC는 어떤 시험인지 설명해줬다.
[아이돌에게 기본이 되는 것들은 뭘까요? 얼굴? 몸매? 아니죠! 바로 춤과 노래입니다! 저희는 매번 일주일 마다 노래, 춤, 체력, 연기력! 이렇게 네 종류로 아이돌의 조건이 되는 것들을 테스트 하겠습니다.]
이제와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게 너무 뜬금없었다. 어떤 아이돌이 벌거벗은 채 매달려 개조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건지 모르겠다.
뭐 어차피 시키는대로 하긴 하는데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매주 한 종류씩 보는건가?
[총 4시간동안 4단계를 통과하면 됩니다. 각 단계에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잘 분배해야겠죠? 철저히 개인전이며 4시간 안에 통과하지 못하면 페널티입니다!]
4가지를 다 보는게 매주 있다는 거였다. 춤에 3시간을 쓰고 나머지를 1시간 안에 하는 식으로 해도 된다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 무난하게 할 수 있을 듯 하다.
[1단계는 노래입니다. 정확한 음정을 측정해주는 기계가 앞에 나타나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세요!]
작은 방 앞쪽에 노래방 기계가 나타났다. 무슨 첨단 기술이 나올 줄 알았는데 노래방 기계가 나와서 웃겼다.
마이크를 잡고 테스트를 해봤다.
"아...아!"
목소리가 바뀌니까 음정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힘든 미션이네. 큰일 났다.
내 목소리 키에 맞는 노래 찾기도 까다로워졌다. 이 목소리는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지?
"아아아아아!"
고음으로 목소리를 쫙 올려봤는데 굉장히 잘 올라갔다. 이렇게 호쾌한 노래부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가수가 된 기분이었다.
음정을 테스트 해보자 어제 피아노를 오랜만에 쳐본게 도움이 됐다. 무난하게 여성 C키로 노래를 골라 부르면 될 듯 하다.
내가 자주 부르던 노래를 여성 C키로 바꿔서 불러봤다.
생각보다 음색도 좋았다. 나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심취해서 열창을 하고 말았다.
막상 다 부르고 나니 창피함이 확 올라왔다. 내가 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부르는 장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누구나 쪽팔릴 것이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점수를 기다렸다. 딱 나타난 점수는 64점이었다.
나는 띵 하고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잘 불렀다고 생각했는데 간신히 60점을 넘긴 점수라니. 더 자괴감이 들었다.
기다렸지만 아무 말 없었다. 60점대는 통과를 못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훨씬 더 자극적인 노래를 불러봤다. 보통 노래방은 신나면 점수를 잘 주니까 선택했다. 종류는 락으로 지르는 부분이 많은 노래였다.
고음이 잘 올라가니까 너무 신났다. 이야아! 하면서 가수의 애드립 부분도 따라했다.
아까보다 더 몰입해서 열창을 했다.
노래가 끝난 후 숨을 몰아쉬며 점수를 기대했다.
59점
어이없는 점수에 입을 쩍 벌렸다.
너무 고음이 많은 노래를 부른 모양이다. 음정이나 박자를 나도 모르게 틀렸나. 이번엔 잔잔한 노래를 골랐다.
음정과 박자를 놓치지 않게 조심하며 나긋하게 불러봤다. 이번에도 내가 듣기엔 좋았다.
너무 심취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노래를 마쳤다. 쓸데없이 점수나오는게 긴장이 됐다.
70점이었다.
나는 나름 만족했다. 그런데 1단계 통과 점수가 몇 점일까. 설마 100점은 아니겠지? 그럼 나는 페널티 확정이다.
한 곡 더 불러봐야하나?
[세리아 1단계 통과. 2단계는 춤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춤을 외워서 바른 자세로 따라하세요.]
크으! 70점이 커트라인인 모양이다. 우리에게 얼마나 기대가 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름 음정 박자 정확했는데 점수가 너무 짰다. 다들 초짜인데 팍팍좀 주지. 그러다 다른 사람들 통과도 방송으로 나오는지 궁금했다.
이번엔 노래방 기기가 들어가고 큰 티비가 나왔다. 이런 비싸보이는 장비가 확확 생기고 들어가는게 신기했다. 하긴. 우리가 여자로 개조당하는게 제일 신기하다.
영상에선 어떤 춤 강사처럼 보이는 여성이 나와 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건강해 보이는 레게머리 흑인 여성이었다.
"이번에 배워볼 춤은 전 세계에서 핫한 바로 그 춤이죠? 처음부터 차분히 해볼까요?"
나는 이게 뭔가 싶어서 멍하니 쳐다봤다. 흑인이 우리나라 말을 엄청나게 잘했다.
그녀는 허공을 손으로 찌르고 한바퀴 빙 돌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찌르고 도시는 거예요. 아셨죠?"
"..."
내가 아무 말 않자 그녀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대답!"
"?"
진짜 나한테 말하는건가? 내가 손가락으로 날 가르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아씨 한테 하는 말 맞아요."
나는 진짜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녹화영상일 줄 알았는데 일대일 교육방송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어떡해. 너무 귀여워!"
"...?"
이건 뭔가 싶어서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는 바로 정색했다.
"여기를 이렇게 찌르고 도시면 됩니다. 아셨죠?"
"네."
"그럼 해보세요."
"네? 네."
똑같이 찌르고 돌았다.
"와우. 잘하셨어요. 그 다음은 팔을 돌리고 쫙! 내려주시면 됩니다."
"네."
나는 시키는대로 따라했다. 옛날에 어머니가 하시던 에어로빅이 생각났다. 어릴적 따라갔다가 형형색색의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흔드시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허리가 너무 굽었잖아요. 허리도 쫙 피고 팔도 쫙쫙! 네~ 잘하셨어요."
따라서 쭉쭉 뻗었다.
"왼쪽 다리를 굽히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뻗기! 네! 좋아요!"
다리를 굽히며 뻗었다.
별로 안 따라 한 느낌인데 땀이 많이 난다. 내가 헉헉대자 그녀는 말했다.
"잠시 쉬었다가 하죠?"
"헉. 헉.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말했다. 너무 뜬금없이 트레이닝을 받자 약해진 몸에 힘이 없었다. 진짜 앞으로 피곤해도 운동을 하고 자야겠다.
뒤에 보자 언제 갖다줬는지 물통이 있었다. 그대로 물을 한모금 마신 뒤 털썩 앉아서 쉬었다.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마리 1단계 통과. 2단계는 춤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춤을 외워서 바른 자세로 따라하세요.]
다른 사람 통과도 알람이 나오는 모양이다. 놀랍게도 두 번째는 마리였다. 역시 개조 때 비명지르는 걸로 봐서 메인보컬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자! 다시 오세요!"
"...네."
가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섰다. 그녀는 박수를 짝짝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차피 대상은 나 하나지만.
토막토막으로 나눠서 춤을 총 20동작을 가르쳐줬다.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그녀는 4개의 동작에서 5개의 동작이 한 번에 이어지며 부드럽게 춰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해봅시다!"
"그 전에 질문 하나만 드려도 괜찮나요?"
"네. 어떤 건가요?"
나는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저희가 있는 위치를 아시나요?"
"아뇨?"
그녀는 즉답했다. 너무 대답이 빠르자 허탈해졌다.
"그럼 어떻게 춤을 가르쳐 주시는지..."
내가 묻자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ts프로젝트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제가 많은 댄스 트레이너 중에서 선택이 된거죠! 세리아한테 투자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당첨되다니 믿을수가 없어요!"
그녀가 나에게 투자했다는 쓸데없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저렇게 좋아한 모양이다.
"춤을 가르쳐 줄 수 있냐 묻기에 바로 알겠다고 했죠. 지금도 꿈만 같아요! 아 어떡해. 저는 세리아를 응원해요. 진짜 너무 아름다워요."
"아...그. 네."
겨우 6일만에 이런 몰입을 하다니 살짝 무섭다. 지금 자세히 보니까 입모양이랑 소리가 따로 노는게 실시간 통역되는 모양이다. 자잘한 부분에서도 계속 놀라운 기술력이 보인다.
"그럼 다시 시작할까요?"
"알겠습니다.
[엘리스 1단계 통과. 2단계는 춤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춤을 외워서 바른 자세로 따라하세요.]
다시 춤을 시작하기 전에 말이 나왔다. 엘리스도 되게 노래 잘 부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통과하는게 오래걸렸다. 보통 잘난 사람들은 노래 잘 부르지 않나? 목소리 바뀐 영향이 큰 듯 하다.
신경을 끄고 춤 선생님의 말에 따라 동작들을 이어서 춤 추기 시작했다. 하면서도 이걸 왜 하고있는지 이해가 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