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5일차 (23/94)



〈 23화 〉5일차

그 때 줄리가 일어났다.

그도 일어나서 자신이 입은 여성용 팬티와 스포츠 브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찬가지로 엄청 수치스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다 줄리는 눈 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에  깜짝 놀랐다.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는 경험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놀리는게 아니고 나도 그런 경험은 없다.

"미쳤구만."

자조적인 웃음을 보이던 줄리는 그대로 팬티를 들어 음부를 확인했다. 너무 대놓고 확인하자 제니퍼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줄리!  보여요!"


그 소리에 놀란 줄리는 뭔가 하고 제니퍼를 바라봤다.

"우리밖에 없잖아."

뜬금없이 그렇게 말하는 줄리에게 내가 말했다.

"다 녹화 중이예요."


"아! 맞다."

순간 까먹었나 보다. 이걸 어떻게 까먹을 수 있지? 좀 덜렁대는 성격인가보다. 나는 제니퍼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했다.

"줄리."

"응? 무슨 일이야."

여기서 이상하게 긴장이 됐다. 설마 줄리도 이상한 대답을 하진 않겠지.

"남자 맞죠?"

"당연하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줄리는 '그'라고 칭해주기로 했다. 제니퍼는 이 말을 또 하는 날 보고 아직도 혼란스러운 눈치다.

엘리스는 내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았는지 짜게 식은 표정으로 날 봤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질문을 왜 해? 그게 중요해?"

"중요해."


난 즉답했다. 엘리스는 기가 차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겨우 5일차에 3명이 생물학적 여자가 됐는데 버티려고? 적응하는게 더 빠를걸?"


엘리스는 그런 마인드인가 보다. 너는 여성기 달면 바로 그녀로 부른다. 소심하게 다짐한 후 차분하게 말했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만큼 무서운게 없어. 너무 잘 적응했다고 쳐봐. 그러다 여자로 계속 살고 싶어지면? 탈출하기 싫어질  아냐. 안그래?"

"뭔 말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냐. 난 당연히 탈출 할거야. 따지면 여기서 내가 여성 경험도 제일 많은데 무슨 소리야.   설명   들었어?"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안그래도 복잡한 생각들 때문에 계속 올라오려는 화를 참았다.


"여태까지의 경험은 중요하긴 하지만 그건 전혀 이유가 되지 못해. 만약 너처럼 많은 여성 경험을 예로 들었을 땐 보통 여성과 마음을 주고받는 교제보다는 쾌락이 주가 된다 보기 쉽지.


너가 쾌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여자로서 쾌감이  크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절대 탈출 못해. "

"그건 말 그대로 쾌락이 중요할 때고 난 그럴 일 전혀 없어. 남성으로써 여성에게 접근했을 때 얻는 쾌감이 더 좋아. 그래서 많은 여자를 만나 본 거고 성행위는 그 과정에서 따라온 부가적인 것 뿐이야."

그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너가 그렇다면 다행이지. 내가 좀 예민하게 받아치는 것 같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초반에 게임할 때 내가 말했었듯 시작점이 중요해.

처음을 잘 맺어서 우리가 게임을 열심히 하는 것 처럼 이건 중요한 포인트야. 네 눈에 내가 남자인걸 계속 상기하는게 꼴보기 싫을 진 몰라도  그렇게 생각해.

이건 단지 이 생활에 익숙해지기 전에 경계하는  뿐이야. 모두가 다 변해가는데 자신이 남성이란 것을 계속 자각하는걸 잊게 된다면 누가 알아주겠어?


 생각을 안하게 되는게 무의식중에 여성인걸 인정하는거야. 여자가 되는 것의 시작점이라고. 그게 싫은  뿐이고. 난 끝까지 남자로 남아서 탈출 할꺼야."


묵묵히 듣던 엘리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꼴보기 싫다고 했냐? 그것까진 아니거든? 참나. 어이없어서.

니 말은 잘 들었어. 그래. 그런데 남성으로 남는게 그렇게까지 중요하냐? 어짜피 개조당하는데 그렇게 고민하고 괴로워 하면 스트레스만 받는거아냐.

탈출 하는  만으로도 고민인데. 응?  걱정해서 해준 얘기 가지고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야겠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걱정해주는거 좋지. 하지만 내 얼굴을 봐. 지금  처음 본다고 생각하면 넌 나를 남자로 봤을까? 절대 아닐걸. 내가 남자라 주장하면  정체성에 대해 고민중인 외모가 아까운 여성으로나 보겠지.


사회에선 남들의 시선이 중요해. 하지만 여기는 아니야. 우리가 뒤바뀌는걸 모두가 봤지. 하지만 이 문제를 너가 가볍게 생각하고 넘기는 순간 끝나. 이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취급하면  스스로도 여자가 되고 말거야."

그는 어이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남자로 남는게 무슨 의미인데."


"내 정체성, 가치관, 과거. 모든게 내 남성성에 담겨있단 말이야. 쉽게 버릴  있겠어?"

내 진지한 얼굴을 보고 살짝 얼타던 엘리스는  발진했다.

"그럼 어쩌라고! 내가 지금 버틸  있는 방법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노력하는 거야. 그렇게 하나하나 의미 부여하며 괴로워하면 너만 힘들걸? 그건 너나 해! 난 내가 알아서 하니까!"


"그래서 '내 생각엔' 이라고 말한거잖아. 처음에 너가 꼬투리 잡던 내 질문에 대한 요지를 물어봐서 설명한 것 뿐이야. 왜 대답해주니까 화를 내는데?"


내 말을 듣던 그는 팔짱을 끼고 나를 삐뚜룸하게 쳐다봤다. 잠시 아무  없다가 나즈막하게 말했다.

"...그래 너 잘났다. 꼭!  버텨서 남자로 탈출해라. 근데 나도 1등 해서 탈출할 거거든? 내가 탈출하면  그 생각을 갖고 5년을 버틸 수 있을까? 나랑 2점밖에 차이 안나는거 기억해라. 응?"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봤다.


나는 그를 신경도 안쓰고 줄리를 봤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물어본 질문이 이런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겠지.

"별거 아니예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래. 알겠어."

다들 성별이 뒤집어졌는데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반응이지.


  마리가 깨어났다. 아니면 이미 일어나 있어놓고 눈치 보던 걸지도 모른다.

"흐읏!"


기지개를 펴는 마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굉장히 기세좋게 신음을 질렀다. 여태 처음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뀐 머리카락이나 골반을 살펴본다.

"오호."


우리가 다 보고있는데 팬티까지 들춰서 여성기까지 꼼꼼히 살펴봤다.

놀라긴 했는데 너무 행동이 거침없이 적극적이고 빨라서 다들 아무말 못하고 지켜봤다. 그가 살펴보다 말고 뒤돌아 우리를 봤다.

"에? 다들 왜 그렇게 보세요?"


얼굴이 바뀐걸로 울던 애가 맞나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정신이 나갔나?


"괜찮은거...맞지?"


줄리가 묻자 마리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이제 그냥 저를 완전히 받아 들이려고요. 전부터 계속 생각해 봤는데 저는 바뀌기 전보다 지금이 더 좋은  같아요."


그가 활기차게 말하자 나는 골치가 아파졌다. 살짝 우려했던 반응이었다.

마리가 오히려 여성이 된 자신을 맘에 들어하기 시작했다. 여기있는 사람들 중 생각이 바뀌어서 적극적으로 개조되려 한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긴 했지만 설마 했다.

이렇게 금방 나올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 다 나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의 스포츠 브라도 살펴보고 머리카락도 매만졌다. 지금 보니까 머리가 트윈테일로 묶여있다. 이 와중에 댓글대로 됐다.

"개조는 아프긴 하지만 점점 나쁘진 않은 것 처럼 느껴져요."

마리는 자신의 푸른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어떤 핀트가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확실히 예쁘긴 하잖아요. 그죠?"


오히려 당당한 마리의 모습에 나와 아까까지 싸우던 엘리스도 넋이 나갔다. 저렇게까지 적응할 거라곤 상상 못한 모양이다. 물론 나도 몰랐다.

그녀의 텐션은 사그라 들 기미가 안보였다. 이젠 거울을 보며 포즈도 잡기 시작했다.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할 듯 하다.

나는 넋이 나간 엘리스를 옆으로 치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순순히 물러났다.

인터넷에  다른 기사 없나 살펴보는데 토토나 도박에 빠졌던 사람들이 우리 승부로 돈을 건다는 기사가 있었다. 내가 필사적으로 하는 게임이 누군가에겐 놀이나  버는 수단이 된다는게 우스웠다.

-저렇게 애쓰면 뭐하냐 이번 경기 3등인데.
-덕분에 미친 예쁜 얼굴 얻었잖아. 솔직히 부러움. 알고서 열심히 한거 아님?
-쟤도 이제 정배 아님. 게임 개못함

이런 댓글들도 달렸다. 순화해서 보긴 했지만 훨씬 더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말들도 많았다. 성적인 말들은 엄청 넘쳐났다. 원래 남자였던 사람들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나보다.

-세리아 바뀐 얼굴 보니까 갑자기 개꼴린다.   싸고 옴.
-엘리스랑 세리아 보빔 빨리 보고싶다.
-마리가 가짜성기로 세리아 교배프래스 하는거 보고싶다. 여자 되기 전에 하면 오히려 좋아.
-세리아가 나한테 펠라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나랑 관련된 댓글들만 추렸는데 이정도였다. 상상을 초월하게 많은 글들이 달렸지만 화낼 힘도 없었다. 난 오늘 개조된 얼굴인데도 이만큼 댓글이 달렸으면 다른 사람들은  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여자가  저 셋은 대놓고 성기가 까졌다. 그리고 사이트에 들어가면 우리 몸 곳곳을 자세히 볼 수도 있는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전 세계에서 프라이버시가 제일 밑바닥이 되어버렸다.


조금 더 인터넷을 뒤져보자 승부 분석표나 우리의 가치를 점수로 매기는 사이트도 생겼다. 어이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 사이트에선 마리의 가치가 제일 높고 내가 제일 떨어졌다. 많이 개조  수록 가치가 높다는 걸까?

플레이 방식이나 재밌는 장면들을 편집해놓은 영상도 있었다. 거기엔 내가  본 장면들도 있어서 신기했다. 그러나 계속 보고싶지는 않았다.

창을 닫고 옆을 보자 마리가 생각보다 가까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내가 떨떠름하게 묻자 마리는 씩 웃었다.

"그냥요. 예뻐서?"

나는 소름이 쫙 돋으며 얼굴이 굳어버렸다. 이게 진짜 미쳤나.

"우욱. 그런  하지 마라. 미안하지만 칭찬이어도 오그라들고 별로야. 진짜 하지마."

내가 손사래를 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마리는 모든 것에 솔직해지기로 생각했나보다. 적응이 안됐다.

엘리스도 나에게 쫓겨난 후 게임 중이었는데 게임하다가 이 대화를 들었나보다. 기겁을 하면서 마리를 쳐다봤다. 오히려 마리는 우리를 보고 정말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이었다. 자기도 며칠 전엔 얼굴 바뀐거로 울어놓고 까먹은 모양이다.


"세리아는 여자되는걸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심지어 여기서 제일 예쁜데. 여자혐오라도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도 여자 좋아해. 여자친구도 있었어. 단지 내가 여자 되는게 싫을 뿐이야."


"예쁜 여자로 지내는게 아무리 봐도  나은데..."

야! 그건 너무한 말 아니냐? 나는 더이상 마리의 폭주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대꾸를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수면안대를 썼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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