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5일차
정신은 들었지만 눈을 뜨기가 너무 싫었다. 벌써부터 스트레스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후우."
한숨을 내쉰 뒤 눈을 떴다. 상체를 간신히 일으키자 컴퓨터 앞에 엘리스가 앉아있었다.
그는 날 힐끔 보더니 계속 컴퓨터를 보며 말했다.
"일어났냐? 몸은 좀 어때."
인터넷으로 뭐 중요한거 보나 싶다. 나는 생각없이 답했다.
"그지같아."
역시 이정도는 욕설로 안쳐줬다. 욕을 할 순 없어도 기분이 더럽다는 것을 보고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다리를 살짝 움직였지만 걸리는건 없었다. 하반신이 엄청 허전했다.
바라보지도 않고 손을 얹어보자 아무것도 없이 밋밋한 가랑이였다. 슬쩍 손을 움직이자 작게 뽈록 튀어나온 클리자지만 만져졌다. 만져질 때 몸에 소름이 돋는게 엿같다. 다들 이런 기분이었구나.
고개를 내려 내 가랑이를 쳐다보자 붉은 스포츠 바지다. 결국 나에게도 이 옷이 입혀졌다.
바지를 살짝 들어 보니 깨끗한 가랑이에 엄지손가락 한마디 만큼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냥 큰 클리토리스였다. 털도 없어서 더 수치스럽다.
한숨이 나왔다. 여태 발악한게 너무 의미없이 느껴졌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어서자 허전함이 몇 배로 느껴졌다. 바지와 가랑이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은 아무리 곱씹어봐도 엿같다.
거울 앞으로 걸어가려다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크기는 쥐톨만한 이 클리자지가 생각보다 예민하다. 내가 포경수술을 안해서 그런 모양이다.
스포츠 바지에 귀두 쓸리는 느낌을 받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나마 발정 페널티나 개조당할 때 자극을 생각하면 일도 아니었다. 다시 일어나서 거울 앞으로 간 뒤 얼굴을 확인했다.
"와."
나름 아끼던 내 얼굴은 없어졌다. 아주 흔적을 찾기 힘들게 바뀌었다. 공을 들였다고 한 만큼 엄청 아름다운 얼굴이긴 했지만 이렇게 기분이 더러울 수가 없다.
내심 여기서 제일 못생기더라도 난 내 얼굴의 흔적이 남기를 바란 모양이다.
허탈한 마음이 날 찾아왔다. 허전함과 허탈함. 아주 세트로 날 괴롭혔다. 물론 거울속의 내 얼굴은 쌩얼인걸 감안하면 진짜 엄청 예쁜거다. 근데 내 얼굴이면 이게 무슨 소용일까.
내 얼굴을 굳이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난 눈을 감았다.
예전 생각이 났다. 군대 가기 전에나 군대 안에 있을 때는 가끔 여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이쁜 여자. 선후임들과 그런 얘기로 떠들면 정말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난 여자가 진심으로 되고싶어 한 적은 없었다. 그런 것들은 그저 푸념일 뿐, 난 그대로의 내가 좋았다. 누군가와 결혼해서 아이의 아빠가 될 거라 막연히 생각해왔던 내가 이상한건가? 누구나 그렇지 않나?
이렇게 정체불명인 누군가의 의도로 내가 성별이 뒤바뀔 거라고는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한적 없었다.
심지어 군대도 제대 했다. 이것도 생각보다 억울했다.
다시 눈을 뜨고 얼굴을 아무 생각없이 매만지며 한참을 보다가 다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탈출하게 되면 정말 몸을 돌려줄까. 이 몸에 익숙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남자라고 발버둥쳐도 이미 남성인 나는 죽은게 아닐까.
여기서 가장 무서운 점은 그래도 계속해서 1등을 하려고 발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내 얼굴을 개조할 때 1등 메리트로 가장 예쁜 얼굴을 준다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 내가 탈출하기위해 버티는 행동들이 다 예쁜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그게 제일 억울했다.
그렇다고 1등을 포기하고 놓을 수도 없다. 그러면 무조건 5년계약에 빚더미 확정이니까. 5년동안 여성으로 활동하면 남자로 버틸 자신이 없다.
도대체 이 일을 왜 꾸민 걸까. 겨우 5일만에 5명중 3명이 완전한 여성이 되었다. 이미 나와 엘리스도 여성이나 다름이 없다.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게 무엇일까. 자신들의 기술력 홍보? 단지 재미?
나는 슬픈 마음을 애써 훌훌 털어내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도 결심은 변함이 없다. 이 엿같은 곳에서 꼭 버틸 것이다.
애써 담담한 척 하며 아직 컴퓨터를 보는 엘리스에게 갔다.
"후."
"좀 추스렸냐?"
그가 날 보지도 않고 말했다. 컴퓨터로 뭘 이렇게 열심히 보나 했는데 그냥 인터넷 뉴스였다. 읽어보니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런가보다 하고 나는 솔직히 말했다.
"그래. 생각보다 힘드네."
"큭. 난 첫 날 당했다고."
그건 그렇네. 나는 각오라도 했지만 그는 적응도 하기 전에 성기를 잃었다. 상실감이 어마무시 했을 것이다. 근데 이정도 얘기하면 원래 쳐다보지 않나.
"그건 알겠는데 왜 계속 안쳐다봐? 뭔 문젠데?"
그는 우물쭈물 하다가 말했다.
"...안 쳐다봐야 너 같으니까 그렇지. 너는 진짜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내가 살짝 대리만족하고 있었나보다."
어이가 없다. 사실상 너 때문에 변한거 아니냐? 너가 1등해서. 웃기는 놈이다.
"그래도 계속 안쳐다보면 좀 그렇다? 내 얼굴 변한 거니까 너보다 내가 더 허탈하고 속상해. 너도 네 얼굴 변할 때 허탈했을 거 아냐."
그는 끝까지 날 쳐다보지 않고 갸우뚱 거렸다.
"흠. 난 생각보다 전이랑 비슷해서 기분만 나쁘고 그만 이었는데?"
"이런..."
이것도 맞네. 잘났다 임마.
"그래서 끝까지 안볼거야?"
"적응 되면 알아서 볼께. 걱정하지 마."
내가 기분 나쁘다는데 이기적인놈 보소.
대화하는 소리에 깼는지 제니퍼가 일어났다.
그가 덮고있던 이불을 치우고 앉자 나랑 엘리스는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흐음."
제니퍼는 검은색 여성용 팬티에 흰 색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있었다. 누가봐도 엿먹이는 복장이었다. 나와 엘리스는 둘 다 러닝셔츠에 붉은색 스포츠 바지라서 아직 다들 이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제니퍼."
"네?"
"너 아직 남자 맞지?"
나도 모르게 물어봤다.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니퍼는 내 예상과 다른 대답을 했다. 당연히 남자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뭔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손으로 꾹꾹 누르던 그는. 아니 그녀는 자신이 여성용 팬티와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있는 것을 보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이런 이씨!"
제니퍼는 벗지도 못하고 그대로 이불을 덮었다. 엄청 창피한 모양이다. 하긴. 나 같아도 창피하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꿈틀거렸다. 자세가 팬티 속을 확인하는 모양새다.
잠시 후 희미하게 흑흑대는 소리가 들린다. 웅크리고 누워서 우는 것 같다. 진짜 내 가랑이에서 여성기가 만져진다면 나도 울어버릴거다.
나와 엘리스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제니퍼가 조용히 말했다.
"세리아."
"응?"
내가 답하자 제니퍼는 이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놀랐는지 입을 쩍 벌렸다. 이제서야 내 얼굴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르킨다. 이녀석이 버릇없게. 쯧.
"어. 세리아. 얼굴? 응?"
"어. 바뀌었어. 엄청나지?"
내가 멋쩍게 대답하자 그녀는 입을 뻥긋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네. 아. 그. 네..."
그의 볼이 빨개지자 나는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왜 부른거야?"
"...저 화장실."
굉장히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여태 잘 사용 했잖아. 게다가 이제 앉아서 쌀 수 밖에 없을텐데 뭘 봐달라는 걸까.
"음..."
그렇다고 제니퍼에게 '너 이제 서서 볼 일 볼 수도 없잖아.' 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대신 돌려 묻기로 했다.
"뭘 해주면 될까?"
"그냥 앞에만 서 있어 주세요."
"그래."
그녀는 침대에서 후다닥 뛰쳐나오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멋쩍게 따라가서 화장실 앞에 뒤돌아 섰다. 여자친구한테나 해주던 짓거리를 하고있으니 우스웠다. 그 와중에 엘리스는 딴청피우는 중이다.
결국 예상대로 양변기에 앉아 소변을 누는 모양이다. 크게 쪼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빨개진 제니퍼가 상상됐다. 나는 혹시나 하고 말해줬다.
"너 이제 터는 거 안되니까 휴지로 닦아야한다."
"아. 맞네."
그냥 팬티를 입으려 했나 보다. 이제야 두루마리 휴지가 덜덜 거리며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양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손을 황급히 씻은 뒤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자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고마워요."
"그래."
딱히 힘내라거나 괜찮냐는 말을 묻고싶지 않았다. 오늘 성기가 작아지고나니 확 체감됐다. 나도 결국 변한다는것. 나는 남자라는 것을 계속 자각하고 상기해야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그러면 저들의 가치관이나 생각까지 강요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성별이 여자로 바뀌었다고 그녀라고 칭하는게 맞을까.
잘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여성인데 남자로 칭하는 것도 웃기는거 아닐까? 정신적으로 남자라고 주장한다면 '그'라고 칭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 제니퍼가 눈을 떴을 때 내가 '남자가 맞냐?'고 묻자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대답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제니퍼는 혼란을 겪고 있다. 나처럼 단호하게 남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저게 정상인 걸까? 내가 비정상인가? 머리가 아프다.
남은 중요하지 않다. 몸이 여자로 변해가도 나는 계속 남자로 남을 것이다. 나만 남는다 해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