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4일차 (14/94)



〈 14화 〉4일차

오히려 칠하지 않는게 중요했다. 빙고를 외칠수록 손해인 게임. 게다가 빙고 한줄에 4점 감점이면 모두 빙고 달성 시 32점 감점이다.

그나마 자기 숫자를 부르지 않는 이상 최대 8개 칠해진다. 가운데가 안 칠해지면 빙고는 4개지만 다른 구석이 칠해지면 5개, 그냥 옆에 하나만 남으면 6개다.

잘못하면 운 없이 1라운드만에 빙고 2줄은 달성할 수 있겠다. 심지어 따라오는 행동 페널티가 뭘까.


 칠해지고 작은 숫자들이 다 사는게 좋아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1, 2, 3, 4 살아남아도 14 하나 살고 빙고 하나 있는거랑 같다. 18에 빙고 2개도 같다.


생각해보면 오히려 내 숫자를 들키지 않는게 중요해 보이지만 죽이는게 더 빠르다. 반대 전략이라니.


확실히 팀 먹고 담구기도 살리기도 가능한 전략이다. 거기에 페널티는 뭘지 계속 궁금하다.

나는 아무렇게나 숫자를 집어넣었다. 빙고 페널티는 어차피 다 받게 된다. 2부터 10까지 넣었다.


나는 여기서 까일 수 있는 제일 높은 숫자들 최대 10개를 다 뺐다. 어차피 다들 높은 숫자를 칠해 없애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해 봤다. 너무 아무 생각 없으면 당한다. 다들 이렇게 안하지 않을까?  착각일 수 있지만 계속 생각해봐야 했다.

아니 1부터 4가 다 살아도 10 하나 사는거랑 차이가 없다. 페널티가 무서워서 포기하기엔 너무 단 열매였다.


그렇다고 12부터 20까지 넣기에는 너무 많이 까일 것 같다. 빙고 3줄만 되어도 12점 감점이다. 이렇게 보니까 작아보인다.


가운데 넣을 숫자도 중요했다. 가운데가 칠해지면 빙고 밭이었다.

큰수를 다 넣고 만약 나랑 같은 전략을 짠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대성공이긴 한데 너무 도박이었다.

아! 별 생각 안하고 게임하려 했는데 벌써 머리가 아프다. 다들 큰 숫자들을 선택할 것이 뻔했기에 3개정도 뺀 17부터 9까지 쭉 넣어봤다.


아니면 내가 지지 뭐. 18부터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은 등수 받아가라고 해야겠다.

이정도면 평범해 보였다. 여기서 한  더 꽈서 11을 8로 바꿨다.

만약 위에서부터 깎는다면 1라운드에 11을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숫자는 위 20에서부터 썼을  걸리는 숫자라 골랐다.

운 없어서 죽으라면 죽어야지 별 수 있겠나. 심리전으로 포장한 운빨겜 같다. 제발 나와 같은 전략을 짠 사람이 있기를!


17, 16, 15
14, 8, 13
12, 10, 9

나의 표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앞이 가려졌다.


다시 눈을 뜨자 다들 둥그렇게 앉아있었다.

[1라운드 시간 1시간 드립니다. 게임 시작!]

역시나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다들 적극성이 보여서 다행이었다. 공동 3등이 3명이라 더 그런 모양이다.

매번 그랬듯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20부터 내림차순으로 큰 숫자들부터 썼습니다."


"...저도요."


마리가 내 의견에 동조했다. 나는 마리를 보고 말했다.

"내가 고른 숫자인지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11을 쓸게."

"그럼 저는 10 쓸게요."


흠. 10은 버려졌다. 마리는 나를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진한 여고생같은 표정으로 날 보지 말아줘. 계속 내 1등 댓글 생각나니까.

어제 게임하는거 보니까 마리도 영악한 놈이다. 믿을 수 없다.


그러자 엘리스가 말했다.


"그럼 난 20 쓸 수 밖에 없어. 난 위에서부터 안썼거든. 그리고 마리 너는 얘를 믿냐? 이렇게 대놓고 둘이 편 먹겠다면 당연히 통수맞지."


그래그래 잘한다. 나는 담담한 척 말했다.

"뭐. 마리가 나를 믿든 말든  11 쓸거야. 알아서 하라고."

그러자 제니퍼가 엘리스에게 갔다.


"저는 19 쓸게요. 저도 좀 낮게 썼거든요."

줄리는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


"난  안할게. 너희끼리 잘 고민해봐."


그러더니 우리에게서  걸음 떨어졌다. 무슨 작전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는 그에게 가서 설득했다.


"그러지 말고  짜요. 괜히 이상한 숫자 쓰다가 꼴등 하면 단독이에요. 이제! 네?"


챙기는 건지 협박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다섯 사람중 한 사람은 꼴등이다.

확실한건 숫자 초반부를 쓴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줄리가 초반부를 썼다면 엘리스에게 붙어서 나랑 마리를 견제하는게 맞았다.  숫자에 대한 메리트가 꽤 크니까.

"나는 운에 맡겼어. 너무 머리쓰고 팀짜는건 나랑 안맞아."


줄리는 손사레를 치더니 마리를 달래서 나에게 보냈다. 이 게임이 운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것도 맞지만 전략의 힘이 0인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잠시후 제니퍼가 다가가자 마찬가지로 줄리는 그를 돌려보냈다.

나도 다 떠보려 했는데 초반부터 팀을 갈라버리자  수 있는게 없어서 마리를 떠보기로 했다.

"내가 11 안내면 어떻게 할거야?"

"네? 왜요? 설마 20부터 안쓰셨어요?"


"아니. 난 11 낼건데 너가 20부터 안 썼을 까봐 묻는거지."

"에이. 그런 질문을 왜 해요. 이거 16 하나만 살아도 7,8 산 사람보다 이득이니까 무조건이죠. 세리아도 같은 생각 아녜요?"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같은 말을 해도 얼굴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


예뻐져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변할 미래가 두려워서 집중이 힘들었다.

난 말을 바꿨다.


"그냥  11 말고 7 없애야겠다."

"엥? 왜요?"


"말 그대로 그냥? 다들 7 썼을 것 같아서."

그는 아무 말 않다가 우물쭈물 말했다.


"...그냥 11 해주시면 안돼요?"

"왜? 7 썼어?"

"네. 비밀이예요. 거짓말 한 건 진짜 죄송해요."


음. 그대로 7 쓰면 죄책감 엄청나겠는데 나도 발등에  떨어져서 쓰고 싶다.


"흠. 그럼 5 쓸게."

"네. 알겠어요. 그럼 저는 그대로 10 쓸게요."


손해봤다. 나도 솔직하게 11 써달라고 할까. 그런데 이걸 말하면 내가 20부터 안썼다는게 들킨다. 이미 마리도 20부터 쭉 안썼다는게 나한테 들켰다.

"너 숫자 무작위로 썼어?"

"아뇨? 그냥. 한 두개 바꾼거예요. 그 중에 7이 있어서 부탁드린 거구요. 안쓰실거죠? 제발요."

그가 손을 싹싹 빌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떨어져 앉았다. 그러자 잠시  제니퍼가 나한테 왔다.

"세리아. 진짜 20부터 쭉 썼어요?"

"왜? 응. 별 생각 하기 싫어서 그냥  썼어."


그는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팔꿈치로 툭툭 쳤다.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우리 동맹하죠? 상위권 동맹."

내가 그를 쳐다보자 제니퍼는 먼저 딜을 제시했다.


"서로 칠하지 않았으면 하는 숫자 구간이라도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해요. 저는 10부터 15사이 빼주셨으면 해요. 진짜. 솔직하게."

"그래. 나도 그 구간 뺄게. 11 쓰지 말아달라는 거잖아."


"좋아요. 불가침 영역으로 정한 거예요. 진짜 지키기죠?"


"진짜 지키기로 할게."

그가 내 손을 펴더니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너가 애냐. 내가 받아주자 주먹으로 내 주먹을 툭툭 치고는 일어났다.

다들 열심히 다니는데 줄리는 계속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일지 정말 궁금했다. 정보 없으면 지는 게임인데. 진짜 포기한 것은 아니겠지.

벌써 한시간이 지났다.

[개인방으로 이동합니다!]


눈 앞이 안보이더니 개인방으로 옮겨졌다. 무슨 원리로 이렇게 시야를 차단하고 이동하는데 느낌도 안날까. 하긴 개조도 하는데. 나는 괜히 목에 있는 띠를 만졌다.


앞에 홀로그램으로 숫자가 1부터 20까지 뜨고 아래는 내 빙고판이 떴다.

[10분동안 숫자를 골라주세요! 고르지 않는 것은 안되며 선착순입니다. 다시 선택하는 것도  되며 중복도 되지 않습니다!]


처음엔 20이 떴다. 예상 가능한 숫자였다. 바로 픽한걸 보면 엘리스가 누른 모양이다. 솔직히 누가 누르던 간에 높은 숫자가 차례로 나오기만 하면 좋겠다.


그 다음 숫자는 11이었다. 살짝 띠용했다. 누군가가 11을 눌러주다니. 누굴까. 그 다음엔 내가 5를 눌렀다. 그러자 5가 떠올랐다.

다음엔 10이 떴다.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숫자 하나만 남았다. 그 마지막 숫자는 놀랍게도 9가 나왔다.


이거 숫자들을 보자 누가 뭘 눌렀는지 감이 안잡혔다. 내가 게임의 중요 포인트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7, 16, 15
14, 8, 13
12, - , -


벌써 나도 2개가 칠해졌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인가?


[첫 빙고 주인공이 나왔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엘리스!]


참 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처음은  엘리스가 가져가는지 모르겠다.

[행동 페널티가 처음 붙기 시작하는군요! 뭘까 기대가 되는데요! 두구두구두구! 첫 빙고 달성 행동 페널티는 바로 탈의입니다!]


다시 시야가 암전되고 눈을 뜨자 다들 둘러 앉아 있었다. 혼자 다른 사람이 있었다. MC의 말처럼 엘리스는 벌거벗고 있었다.

"..."

그는 다리를 딱 붙이고 앉아서  팔로 무릎을 감싸고 있었다. 벌거벗고 쭈구리 자세를 한 엘리스를 보고있자 그는 소리를 빽 질렀다.


"뭘 쳐다봐! 남자 몸 처음봐!"

마리와 제니퍼는 딴청을 피웠지만 나는 그냥 쳐다봤다. 그가 나를 죽일듯이 쳐다봤다. 솔직히 우리 옷이나 벗은거나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욕 안하게 조심해라."


"걱정꺼! 말 안해줘도 안할거니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