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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2일차 (5/94)



〈 5화 〉2일차

벌써 30분 남았다. 이제 마리가 가위바위보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또다시 안절부절 못했다.


"그럼 저 어떤거 내죠? 상의를 하긴  건가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줄리가 말했다.

"엘리스씨께는 미안하지만 우리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어? 서로에게 수비 때 주먹을 내주는 것으로 하지. 응?"

그도 급해지니까 반말이 나왔다. 나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계속 존대하기엔 좀 그랬나보다. 그런데 엘리스한테는 왜 존대하는건지 참.

"그런식으로 한 명 등쳐먹으면  달 동안 볼  있으시겠어요?"


나도 모르게 쏘아붙이자 그는 몸을 움츠렸다. 그러더니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때 제니퍼가 일어서더니 멀찍히 떨어진 엘리스에게 갔다. 나도 모르게 따라 일어나서 걸어갔다. 저 나머지 둘은 지금 반  정신을 놓은 것 처럼 굴어서 말이  통해 보였다. 우리가 가자 둘이서 뭔가 쑥덕거렸다.

나와 제니퍼가 다가서자 누워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제니퍼는 내가 따라온 것을 보고 왜 따라왔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저랑 손 잡죠?"

제니퍼는 다짜고짜 누워있는 엘리스에게 손을 내밀며 동맹을 요청했다. 그리고 나 한번 엘리스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기 둘은 솔직히 도움 안돼요. 차라리 벌점 몰아주고 우리끼리 계속 승점을 먹죠?"

"아니.  가위바위보 안짠다니까? 난 이미 다 잃었어. 하고싶지 않아."

클리 자지의 효과가 생각보다 컸나보다. 사람이 의욕을 상실해 보였다. 나는 한마디 거들어줬다.


"또 뭘 잃을지 몰라요."


"..."


그러자 제니퍼가 말했다.

"그럼 말만 하고 갈게요. 생각 바뀌면 말해줘요. 무조건 여기 둘에겐 가위 낼게요. 어차피 순서로 따지면 마리 다음부터 나, 엘리스씨, 세리아씨 셋만 점수 맞추면 무서울게 없을걸요?"

그는 내 눈치를 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먼저 승부하는게 불편하더라도 믿어 주세요. 어차피 셋만 점수 맞추면 상위권은 되잖아요. 나머지 둘이 따로 움직이면 엘리스씨 당신 말처럼 운적 요소도 포함되어있고."


멀리서 눈치보던  다 여기로 달려왔다. 무슨 얘기를 둘이서 나눈건지 몰라도 다급해 보였다.


줄리가 열심히 빌었다.


"제..제가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습니다. 미안해요.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제발 꼴지만 안하게 해주세요. 제발"


마리도 열심히 빌었다.

"저...저도요. 저도 죄송해요. 제가 뭘 불편하게 했나요? 학교에서 애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잘 몰라서 죄송해요. 빼고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솔직히    비는지 이해가 안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명을 조지는게 아니라면 운빨 게임이다. 방어하는 셋을 딱 세판으로 넘긴다 해도 나머지 한 명과의 가위바위보에서 몇 십 판 하면 꼴등이다. 기회를 조금 더 주는 승부밖에 안되는데 뭘 짠다는 것인가.

이미 엘리스는 똑똑한건지 무식한건지 몰라도 초반에 판을 깸으로써 다들 불안한 확률에 미쳐가고 있다. 그가 속으로 큭큭 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도 머리가 아파왔다. 성공했다면 성공한 것이다. 다 좆돼보라는 심보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뒤돌아서다 마리가 제니퍼에게 주먹을 보여주는 장면을 봤다. 정말 포기하지 않고 징하다. 씹덕이면 여자가 되고싶어 할 줄 알았는데 ts는 싫은가 보다. 아니면 얼굴 그대로 여자가 될까봐 두려운  같다. 사실 그렇게 되면 나도 두렵겠지만 아이돌을 만든다는데 씹창난 얼굴의 남자를 여자로 만든다고 장사가 되겠나?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 다시 알람음이 울렸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마리! 앞으로 나와주세요!]

마리가 앞으로 나오고 제니퍼, 엘리스, 나, 줄리 순서대로 섰다. 마리는 팔을 엇갈라 잡으며 뒤집더니 양 손 사이를 열심히 살펴봤다. 옛날에 내 친구가 손 주름으로 가위바위보 한다 했던게 생각났다.


[가위! 바위! 보!]


아까 슬쩍 봤던 대로 제니퍼가 주먹을 내주길 바란건지 그는 보자기를 냈다. 하지만 제니퍼는 매정하게도 가위를 냈다.


[한  적립!]

마리는 세상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이 씨발놈아! 주먹 내기로 했잖아! 아! 욕!"


[마리씨는 벌점 1점 적립입니다.]


"아...안돼!"

그는 벌써 울상이었다.

[자! 가위! 바위! 보!]

이번에 마리는 주먹을 내고 제니퍼도 주먹을 냈다. 무승부라서    해야했다.

"이씨..."

마리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씨 까지는 욕설로 안쳐주는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그가 한 판  적립 된건 기억 안나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랍게도   더 비기고 지다가 다섯 판 째에 이길 수 있었다.


"앗싸! 넌 두고보자."

마리는 제니퍼를 노려본 뒤에 엘리스를 거쳐 나에게 왔다. 나랑 엘리스에겐 뭔가 제시한것이 없는지 그냥 가위바위보를 했다.


엘리스에게선 두판, 나에게서 세판을 소비한 그는 마지막으로 줄리에게 가서   만에 끝냈다. 아까 둘이 짠게 확실했다. 주먹을 내주기로 했나보다.


[마리 누적 열 한 판! 이제 10분간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제니퍼 시작하겠습니다.]

마리는 제니퍼를 죽일듯이 쳐다봤다. 자신이 욕한 것 까지 제니퍼 탓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나중에 냉정히 생각하면 본인의 잘못이 맞았다는걸 알 것이다. 모르면 걸러야겠지.

엘리스는 마리를 보며 벌써 계집애처럼 군다고 혀를 쯧쯧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한테 어떻게 굴었는지 궁금했다. 하긴 잘생기고 돈많으면 꼰대같아도 사귈 맛 나긴 하겠다.  내 여자에겐 따듯하지 이런건가?


분위기가 뭔가 주먹을 쓸  있다면 쓸 기세라 살짝 소름돋았다. 이정도로 어제 밤이 무서웠던 건가? 아니면 여자가 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싶었다.

이쯤 되니 내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 처하자 계속 냉정해지고 차분해졌다. 제니퍼도 프로게이머 지망생이라 그런지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에 비해 엘리스는 너무 마이웨이고 줄리는 이기적, 마리는 애같았다. 같은게 아니라 애가 맞나?

다들 쉬고 마리는 분을 씩씩 거리며 삼키자 10분이 금방 지나갔다.

[자 그럼 제니퍼는 앞으로! 나머지도 다들 오시고!]


마리, 엘리스, 나 줄리 순서대로 섰다. 마리는 또 손을 꼬고 열심히 봤다.


[가위! 바위! 보!]


제니퍼는 주먹 마리는 가위를 내며 단판에 끝나버렸다.

"악! 안돼!"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제니퍼는 씩  번 웃어주고는 엘리스 앞에 섰다.


[가위! 바위! 보!]

MC 몬 말에 맞춰 제니퍼는 주먹 엘리스는 가위를 내줬다. 또 단판에 끝났다.


"말도안돼!"

마리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가  앞에 서더니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런 그를 보고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러자 그도 살짝 웃었다. 사실 딱히 뒤통수를 치고 싶지 않았다기 보단 나머지 둘이 너무 짜증나게 굴었다. 나도 가위를 내줬다.

그는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는  했지만 슬쩍 삐져나온 웃음이 보였다. 그리고 짜지않은 줄리마저 두 판 만에 이겼다. 운이 좋았다.


[오호! 이거 놀랍군요! 제니퍼 겨우 다섯 판! 1등 제니퍼! 꼴등 마리입니다.]

역시나 2등으로 안쳐주고 꼴등으로 쳐준다. 처음 제니퍼 의견대로 했으면 다들 벌점 4점씩 처먹고 피똥쌀 뻔 했다.

10분간 쉬라는 말이 나오자 마리는 눈에 뵈는게 없는지 나랑 엘리스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우리가 하자고 할 땐 눈쌀을 찌푸리더니 왜 제니퍼 저 새...사람 말은 들어준 거예요? 네?"

방금 자연스럽게 우리를 사용했다. 줄리랑 짰다고 우리라 하는거 보니 딱 애 같았다. 얘는 좀 벌점을 맞아야 정신 차릴 게 분명했다. 내가 때릴 수는 없으니까.


엘리스는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계속 아무말 않자 눈쌀을 찌푸리며 마리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냥 가위바위보 한거야. 뭘 알지도 못하면서 손가락질은?"

누가보면 여기가 10살 넘게 차이나 보였다. 천연덕스럽게 연기도 잘했다. 엘리스가 그 성격에 당연히 제니퍼를 말할  알았는데 아마 처음 운으로 하겠다고 발설한 것이 걸려서 숨기는  같다.

"...진짜요?"

그는 의심 섞인 눈초리로 나랑 엘리스를 보다가 별 소득 없이 줄리 옆에 가서 앉았다. 너무 대놓고 편을 나누자 웃겼다. 오히려 줄리가 마리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금방 10분이 지나고 엘리스가 앞에 섰다. 그리고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마리는 또 팔을 꼬고 열심히 손 주름 수를 확인했다.

[가위! 바위! 보!]

또 단판만에 졌다. 마리는 무릎을 꿇고 OTL자세를 취했다. 좌절 자세 정말 오랜만에 보네. 제니퍼랑 나는 당연히 가위를 내줬다. 이쯤 되니까 줄리랑 마리도 눈치를 챘다.


여기서 조금 반전이 있었던게 줄리와 엘리스가 무승부를 많이 해버렸다. 무려 4판이나 지체되어 7판의 판수를 받았다.


[자! 제니퍼 5, 엘리스 7, 마리 11로 진행중입니다. 점점 흥미로워 지는데요? 두근두근 합니다!]

내 차례가 왔다. 막상 내가 앞에 서니 마리는 반쯤 포기한 표정이었다. 이미 벌점 2점 확정에 욕설 1점 추가까지 생각하니 암담한 모양이다. 그래도 열심히 팔을 꼬고 손주름을 확인한 뒤 구령에 맞춰 가위바위보를 했다. 역시 징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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