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2화 〉62. 상상의 실체화 (62/70)



〈 62화 〉62. 상상의 실체화

유빈은 대답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하더라도 다시 전기 자극이 시작될 것 같았다. 창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유빈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잤구나? 좋았어? 좋았냐고! 대답해!”

유빈이 대답하지 못하자 창식이 일어서서 하의를 벗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유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유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똑바로 봐. 내 것이  크지?”

페니스 끝으로 유빈의 얼굴을 찌르며 다시 물었다.

“아니야? 내가 더 작아?”

유빈의 침묵에 창식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폭주했다.

“대답하라고. 누가 더 큰지!”

유빈이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주인님 게 더 커요! 제발 꺼주세요.”

창식이 전기 자극 강도를 높였다.

“진짜로 캐빈이랑 잤구나?”

전기 자극의 강도가 끝까지 올라갔다. 유빈의 이마에 땀에 맺혔다.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비명이 터져 나오고 바닥에 쓰러졌다. 유빈의 처절한 비명에도 창식은 자극을 멈추지 않았다.

“더러운흔적 깨끗하게 지져줄게.”

* * *

같은 시각, 창식이 회사 일을 등한시한 채 던젼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아래층에서는 프로텍 직원들이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캐빈의 디도스 해킹 이후 연일 터져 나오는 회사에 비판적인 기사에 프로텍 주가는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시중에풀리는 프로텍 주식을 회사에서 매입하는 방식으로 주가 방어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경영지원팀에서 고성이 오갔다.

“방금 2천 주 추가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매입할수 있어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서두르세요. 오늘도 하한가 맞으면 우리  퇴근 없습니다.”

퇴근이 없다는 끔찍한 선언을 하는 경영지원팀 팀장님께 필문이가 쭈뼛거리며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팀장님. 말씀하신 보고서 출력해 왔습니다.”

보고서 제목을 흘깃 본 팀장님이 필문이에게 앙칼지게 소리쳤다.

“재작년 보고서를 뽑아오면 어떡해요! 다시 뽑아 오세요!”

필문이가 머쓱하게 보고서를 흘깃 보더니 얼른 다시 집어 들며 말했다.

“팀장님! 오늘 블라우스 예쁘십니다. 쉬엄쉬엄하세요. 어제도 맞았고, 내일도 맞을 하한가 오늘이라고 안 맞겠어요? 퇴근도 좀 하시고요. 하하.”

팀장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정필문 사원, 지금 그게 회사 직원으로서 할 말입니까? 나가세요. 당장. 나가!”

팀장님의고함에 필문이가 후다닥 자리를 뜬 필문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레벌떡 다시 돌아왔다.
“팀장님, 큰일 났어요. 밖에 소액주주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있어요. 회장님이랑 부회장님을 뵙겠다고……. 지금 언론홍보팀에서 막고 있는데, 주가 관련 이야기들이 계속나오니까 경영지원팀에서 인력을 좀 보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팀장님이 다시 필문이를 쏘아보았다.

“그럼 가서 도와드리지 나한텐 왜 왔어요? 정필문 사원은 경영지원팀 아닙니까?”
“팀장님, 그게 저…….”

팀장님이 화를 참으려는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몇 번 젓더니 말했다.
“알았어요. 같이  봅시다.”

몇 시간 뒤 경영지원팀 팀장님과 필문이가 동시에 회사 휴게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일 폭락하는주가에 성난 사람들을 달래고, 작전 세력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지난 디도스 공격 사태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여론 악화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주식을 매입해 주가 방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 위기상황에서 소액주주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프로텍의 주가가 회복될 거라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까지 했다. 왕창식 부회장을 꼭 만나야겠다는 사람들에게는 곧 경영진과 주주들 간의 간담회를 주선하겠다는 지키려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화난 소액주주들은 겨우 돌려보냈지만 팀장님과 필문이에게 남은 것은 피로와 지킬 수 없는 약속뿐이었다.

필문이가 멱살이 잡혀 풀려버린 셔츠 단추를 잠그며 물었다.

“팀장님, 진짜 우리 회사 주가 회복돼요? 그럼 저도 몇 주 살까요?”

팀장님이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失笑)하며 대답했다.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알면 내가 출근을 왜 하겠어요?”
“그런데 아까 회복된다고 장담 하셨잖아요?”
“정필문 사원, 회사가 위기일 때 직장인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거예요.”

팀장님의 말처럼 프로텍은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예측할 수 없는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여론 악화와 주가 폭락 뿐만 아니라, 백신 사용자들이 이탈하면서 실제적인 매출에도 타격을 입고 있었다. 원활한 자금 유동성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결정해야 할 왕창식 부회장은 디도스 공격 이후 회사 일에서 손을 떼다시피 한 채 요즘은 출근도 잘 하지 않는  같았다.

게다가 기술팀  상황도 좋지 않았다.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던 왕창식 부회장이 자취를 감춘 뒤로 기술팀은 서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와해 직전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다.

캐빈이 날려버린 업데이트 서버의 복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고, 디도스 공격 이후에 프로텍백신을 노리고 만들어진 바이러스와악성코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왕창식 부회장이 무리하게 확장해놓은 사업들이었다.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 시장을 넘어 IT 업계를 통일할 기세로 각종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들을 인수했지만, 한창 사업의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할 시기에 결정권자가 사라져 버리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새로 인수된 사업부에서 기록하는 적자는 그대로 프로텍에 전가되었다.

결국 왕창식 부회장의 부재가 회사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 왕창식 부회장이 돌아오든,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자리를 대신해 이 사태를 수습할 누군가가 있어야 했다.

팀장님이 필문이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정필문 사원, 소문 들었어?”

축 늘어져 있던 필문이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네? 무슨 소문이요?”
“회사에 그런 소문이 있더라고.사실 저번에 디도스 공격 맞으면서 우리 회사가 이렇게 된 거잖아. 그런데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사람이 부회장님 가족 중의 한 명이고, 이게 왕무택 회장님 사후에 프로텍 후계 구도랑 연관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부회장님 내연녀가 개입돼 있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튼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어.”

필문이가 흥미롭다는 듯 되물었다.

“부회장님 결혼 안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웬 내연녀가 있어요?”
“내연녀든, 여자 친구든. 아무튼 내가  이야기를  해주냐면, 어제 들은 이야기 중에  여자가 정필문 사원 친구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누구 짚이는 사람 없어?”

필문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려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대답했다.

“유빈이요? 민유빈? 걔가 부회장님 여자 친구래요? 그러고 보니까 유빈이도 요즘 연락 안 되네요. 그런데 부회장님은 여자 친구를 사귀면 출근을 안 하시나요? 일보다는 사랑, 순정파이신가?”

팀장님과 필문이가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

* *

자신이 창식의 여자 친구라는 소문을 꼭대기 층의 유빈이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빈은 최고 강도로 지속된 전기 자극에 기절해 있었다. 창식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태연하게 유빈의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안정적이었다. 유빈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며 다음 조교를 준비했다.

벽장에서 관장 도구와 꼬리를 꺼내왔다. 물에 가루를 섞어 관장액을 만들고 그 옆에 대용량 관장용 주사기를 놓았다. 관장 후에 유빈의 항문에 삽입될 담비 꼬리를 높이 들고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리모컨을 조작해 진동을 켜보았다.

위아래로 색이 맞는 ‘V’와 앞에는 전기 딜도 팬티, 뒤에는 진동 플러그, 플러그에서 길게 늘어진 담비 꼬리까지, 창식이 오랫동안 생각해온 유빈의 모습이 실제로 구현되고 있었다.

쓰러진 유빈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상상 속의 유빈을 떠올려보았다. 앞으로는 상상하는 대신 실제로 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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