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57. 면회 (57/70)



〈 57화 〉57. 면회

유치장에서 아침을 맞은 유빈은 한형석 형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분명 어젯밤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겠다고 했다. 철창에 기대고 앉아 유치장 바깥을 배꼼이 내다보았다. 많은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한형석 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빈이 갇혀있는 방으로 간수가 다가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손짓을 이해하지 못한 유빈이 간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간수가 굳은 표정과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로 가라고.”

유빈이 뒤를 돌아보니 같이 갇혀있는 다른 사람들이 뒤로 멀찍이 물러나 벽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유빈도 그들을 따라 뒤로 물러섰다. 간수가 유치장 문을 열었다.

“민유빈 나와.”

유빈이 다시 간수를 쳐다보았다. 나오라고 할 거면 왜 뒤로 물러서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빈이 유치장 밖으로 나오자 간수는 다시 문을 잠그고 유빈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간수가 유빈을 데리고 곳은 면회실이었다. 간수가 유빈을 의자에 앉히고 면회실을 나갔다.

잠시 후 한 늙은 남자가 한쪽 다리를 절며 들어와 구멍이 뚫린 면회용 창문을 사이에 두고 유빈 앞에 앉았다. 갑자기 낯선 사람과 마주하게  유빈은 면회실 한구석에 놓인 의자와 책상을 바라보았다. 면회를 감시하는 사람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비어있었다. 늙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밀환이라고 하네. 저 자리 비어있는 건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긴히 자네에게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내가 부탁했네.”

유빈이 두 손을 주먹 쥐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문은 이미 잠겨있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유빈을 보며 밀환이 말했다.

“자네랑 케빈을 도와주러 왔어. 너무 경계하지는 말게.”

케빈의 이름을 듣고 놀란 유빈이 밀환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케빈이랑은 어떻게…….”
“한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일세. 검은 십자가라는 교단 교주이기도 하고. 들어 봤나?”

유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그냥 편하게 교수님이라고부르게. 케빈은 말이야, 우리 교단 단원이었어.”

밀환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검은 십자가가 얼마나 대단한 교단인지,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 자신이 검은 십자가 교단을 운영하면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극복했는지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빈은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스토킹 이후에 몸서리치게 혐오하게  해킹이라는 단어가 자꾸 언급되는 것도 거슬렸다. 그 나이대의 노인들이 으레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저 묵묵히, 가끔 고개를 끄덕여 주며 밀환의 말을 듣는 척했다.

유빈의 제스처를 오해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듣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무관심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밀환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좀이 쑤신 유빈이 앉아있는 자세를 바꾸려고 할 때 면회실 문이 열리고 제복 차림의 경찰 한 명이 들어와 밀환에게 인사했다.

“교수님 안녕하셨습니까. 면회 시간이  되어서요.”

밀환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경찰에게 부탁했다.

“이 총경. 오랜만이네. 경찰 서장 일은 할 만하고? 이런 자리 마련해줘서 고맙네. 이따 우리끼리 밥이라도 같이 먹지. 조금만 기다려줄  있겠나? 아직 할 말이 남았네.”

이 총경이라고 불린 경찰은 밀환에게 되도록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당부하고 면회실을 나갔다. 유빈은 아직도 밀환이 자신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했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유빈의 바람대로 밀환이 유빈이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대단한 우리 교단을 케빈이 배신하고 나가버렸어. 자네 때문에. 케빈이랑 같이 우리 교단으로 들어올 생각 있나?”

유빈이 멍한 표정으로 밀환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없었다. 그렇게  설명을 들었지만 교단에 들어간다는 게 무엇인지, 들어간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이상한 교단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지금 케빈 어디에 있어요? 저랑 같이 잡혀 왔는데 그 뒤로 본 적이 없어요.”

밀환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처럼 갇혀있네. 자네가 케빈을 설득해서 우리 교단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내가  다 무사히 나올  있게 손을 쓰겠네. 자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케빈은 자네를 구하려다 어쩔 수 없이 총을  것이고.  말 맞지 않나?   감옥에 있을 사람들이 아니잖나. 방금 나간  총경 파워풀하다네. 우리 교단에 도움을 많이 주고 있어. 잘 생각해보게나. 다음에 다시 오겠네.”

일어서는 밀환을 향해 유빈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어떻게 자신과 케빈의 사정을 그렇게 속속들이 꿰고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저 남자가 누구인지, 정말 자신과 케빈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밀환은 유빈의 외침을 뒤로한 체 자리를 떴다.

*



수연이 밀환의 집에 왔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집안의 불은 꺼져있었다.

“아빠. 나 왔어.”

역시 대답은 없었다. 불을 켜고 오랜만에  집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서재에도, 안방에도 밀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식탁 의자에 걸터앉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유빈은 더 이상 그 아파트에 살지 않는 것 같았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던 창식은 지금까지 전화도, 문자도 주지 않았다.

가장 걱정되는 건 역시 케빈이었다. 예전엔 수연이 전화했을 때 받지는 않았어도 신호음은 갔었는데, 어제부터 케빈의 휴대폰이 꺼져있었다. 답답했다. 밀환에게 물어봐야 할  너무나 많았다.

시계를 확인한 수연은 밀환이 강의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밀환이 돌아왔을 때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 수연이 독립하기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종종 하던 일이었다.

슈퍼에 가서 재료를  오고 두부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였다. 비어있는 밥솥을 확인하고 쌀을 넣어 안쳤다. 같이 먹을 만한 밑반찬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냉장고를 열었지만, 변변치 않았다. 다시 슈퍼에 가서 나물 몇 종류를 사와 무쳤다.

다시 식탁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밀환에게 전화를 해볼까 망설이고 있을 때 전화벨이울렸다. 창식이었다.

“응. 오빠. 연락한다더니 왜 이렇게 늦었어.”
[수연아. 미안. 잠깐 우리 회사로 와줄래? 저번에 말했던 거, 네가 해줄 일이 생겼어.]
“뭔데? 민유빈 그 계집 에랑 관련된 거야? 아니면 케빈 오빠?”
[둘 다. 일단 지금 와봐. 중요한 일이야.]
“알았어.”

수연은 밥상이 차려진 식탁 위에 쪽지를 남겼다.

- 엄마가  것만큼은 맛없겠지만 미원 많이 넣었어.  잠깐 나갔다 금방 올게. 혹시 늦으면 아빠 먼저 먹어.

프로텍에 도착한수연은 항상 그랬듯 엘리베이터를 타고 부회장실을 향해 바로 올라갔다. 비서실 앞에서 잠깐 심호흡했다. 저번에 자신을 가로막았던 백 비서가 떠올랐다. 또 그러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비서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백 비서는 물론 아무도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요즘 프로텍이 비상 경영 체제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떠올랐다. 다들 바쁘겠거니 생각했다. 비서실을 통과해 부회장실로 걸어갔다. 부회장실에 도착하기 직전 비서실 전등이 모두 꺼지고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수연의 뒤에서 차가운 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읍!”

짧은 비명 뒤에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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