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50. 핏기를 머금은 줄 (50/70)



〈 50화 〉50. 핏기를 머금은 줄

무슨 의미였을까? 평소에 왕창식 부회장이 자주 하던 말은 아니었다. 유빈에 대한 왕창식 부회장의 광적인 집착을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오늘 백 비서를 죽이겠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백 비서는 유빈처럼 도망쳐버릴까 생각했지만 좋은 방법이 아닌  같았다. 어디로 도망가든 왕창식 부회장은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백 비서가 공포에 떨고 있을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왕창식 부회장이 보낸 문자인가 싶어 서둘러 확인했지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문자의 첫머리에서 발신인지 자신을 소개했다.

지밀환 교수입니다. 긴히 드릴 부탁이 있는데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비서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도움을 청해야 했다. 왕창식 부회장의 지도교수, 왕무택 회장의 친구, 프로텍 초기 설립자 중 한 명. 이 사람이라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답장 탭을 누르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 오늘 프로테크놀로지 사옥 맨 위층 펜트하우스 옆에 있는 공간으로 와주세요.

펜트하우스 옆에 있는 공간, 던젼. 왕창식 부회장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오늘 백 비서가 갇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어쩌면 왕창식 부회장의 말처럼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곳이었다.

다시 백 비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기대와는 달리 지밀환 교수가 아니라 왕창식 부회장이 보낸 문자였다.

- 5분 준다. 그 안에  앞에 낯짝 내밀어.

백 비서의 얼굴이 굳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회사로 돌아갔다. 부회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백 비서는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죄송합…….”

하지만 백 비서의 첫 사과가 끝나기도 전에 왕창식 부회장이 백 비서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 뒤로 왕창식 부회장은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해 가며 한참동안 백 비서를 구타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백 비서가 옆으로 쓰러졌다. 장발인 그녀의 머리가 얼굴을 뒤덮었다. 왕창식 부회장은 그러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백 비서의 머리채를 잡고 던젼으로 끌고 올라갔다.

백 비서가 옷을 벗고 모시겠다고 애원했지만 왕창식 부회장은 그대로 백 비서를 틀에 결박했다. 그리고 단도(短刀)를 가져와  비서의 옷을 북북 찢어발겼다.

옷이 하나씩 찢겨 나갈 때마다 공포에 사로잡힌 백 비서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옷이 하나씩 찢겨 나가고 살갗에 칼날이 스칠 때마다 왕창식 부회장이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은 농담도, 과장도, 비유도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라는 것이 느껴졌다.

옷이 모두 찢겨 나간   비서가 왕창식 부회장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초식 동물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을지 고민하는 맹수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으로 왕창식 부회장은  비서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유두를 낚싯줄로 묶었다.

음핵에도 낚싯줄을 감으려고 했지만 긴장과 공포에 음핵이 쪼그라들어 낚싯줄이 잘 묶이지 않자 음핵에 진공컵을 씌우고 공기를 빨아들였다. 백 비서의 음핵이 강제로 팽창했다. 왕창식 부회장은 만족스러운 맹수의 표정으로 백 비서의 가장 예민한 부위에 낚싯줄을 감았다.

왕창식 부회장이 다음 작업에 착수하려고 할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려는 일을 방해받은 왕창식 부회장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잠시 후, 눈이 가려져 잔뜩 민감해진 백 비서의 귀에 던젼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백 비서는  시간째 허리를 펴지도 못하는 상태로 유두와 음핵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 속에 방치돼 있었다.




*

끼이익-.
털썩-. 턱-.
터걱터걱-.
끼이익-.

백 비서의 귀에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무언가를 던지고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갔다. 열렸던 문이 다시 닫혔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안대가 씌워진 눈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왕창식 부회장이었을까?

“주인님?”
“부회장님?”

대답 대신 귀 바로 옆에서 쉿-.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왕창식 부회장이 아닌  같았다. 백 비서는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입술에 촉촉한 무언가가 닿았다. 침입자는 꼼꼼하게  비서의 입술에 알 수 없는 액체를 발랐다. 백 비서는 누군지 알고 싶었다. 안대를 벗겨달라고 말하려고 입술을 벌렸다.
침입자가 급하게 제지했다.

“안 돼. 입술 움직이지 말게.”

 비사가 입을 다물었다. 귓불에 침입자의 숨결이 느껴졌다.

“방금 자네 입술에 바른 거 맹독이네. 절대로 삼키지 말고 왕창식이 오면 키스하게. 명심하게. 왕창식이 죽어야 자네도 살고 나도 사네. 자네 꼴을 보아하니 왕창식한테 심하게 당했구먼. 우리 여기서 깔끔하게 끝내는 걸로 하세.”

침입자가  비서의 안대를 벗겼다. 백 비서의 눈이 빛에 적응하자 지밀환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지밀환 교수가 백 비서의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점심에 문자 주고받았던 지밀환 교수일세. 성공하면 나한테 전화하게. 해독제를 줌세.”

백 비서는 허리와 유두, 음핵의 통증을 견디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독이 발라져 있는 입술로 왕창식 부회장에게 키스해서 그를 제거한다. 성공하면 지밀환 교수에게 해독제를 받는다. 실패하면?’

 비서는 지밀환 교수에게 반문하려고 했지만 독이 발라져 있는 생각에 함부로 입술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밀환 교수가 다시  비서의 눈에 안대를 씌웠다. 시각이 가려지고 청각이 예민해졌다. 터걱터걱-. 덜컥-. 턱-. 걸음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닫혔다. 지밀환 교수가 던젼을 나갔다.

어둠과 고통 속에서 백 비서의 시간 감각이 왜곡되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없었다. 왕창식 부회장이 던젼으로 돌아와 백 비서에게 폭언을 내뱉었다.

“아직도 버티고 있나? 꼴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건 소중한가 보지?”

 비서는 침착하려고 애쓰며 왕창식 부회장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주인님, 한 번만 키스해주세요. 부탁드려요.”

창식이 백 비서의 턱을 잡아 올리고 안대를 올렸다. 갑작스럽게 마주친 시선을 당황스러워하며 백 비서가 고개를 돌렸다. 왕창식 부회장이 백 비서의 턱을 잡아당겨 억지로 눈을 맞췄다.

“다시 말해봐.”

백 비서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키스해 주세요.”

창식의 시선이위에서 아래로 백 비서의 얼굴을 스캔했다. 좁아진 미간, 굳은 눈가, 떨리는 입술 끝, 경직된 턱. -거짓말할 때 또는 숨기는 게 있을 때 나타나는 표정. 얼굴 근육 몇 개도 마음대로  움직이는 하등 동물. 창식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우월감.

백 비서가 떨리는 입술을 내밀었다. 창식도 입술을 내밀었다. 이대로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비서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다음 순간 턱을 쥐고 있던 창식의 손이 백 비서의 뺨을 올려붙였다.

백 비서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낚싯줄이 끊어질  당겨졌다. 유두에서 느껴지는 격한 고통에 백 비서가 숨을 헐떡였다. 매듭이 풀어졌길 바라며 가슴을 내려다보았지만 단단하게 묶인 매듭은 오히려  안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기울어진 몸을 가운데로 옮겼다. 입에서 제어할 수 없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서의 정면에 자신의 몸에 연결된 나온 낚싯줄이 고정된 갈고리가 보였다. 시야가 흐려지며 갈고리의 개수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두 개, 네 개, 다시 두 개.
그러다 사라졌다.

창식이 도로 안대를 내리고  비서를 그대로 방치해둔 채 던젼을 나갔다.

신음 소리가 작아지고 백 비서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입가에는 입술에서 흘러든 독을 거부하듯 한 줄기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 비서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멍든 얼굴이 바닥에 닿았다. 핏기를 머금은 낚싯줄이 예민한 부위들을 해방시키며 튕겨져 나갔다.



*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창식이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힌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허리가 점점 뒤로 넘어가고 발이 책상 위로 올라갔다.늘 앉던 의자였지만 평소보다 뒤로 더 많이 젖혀지는  같았다.

의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의자 전체가 뒤로 기울어지다 바닥에 닿아있던 바퀴가 공회전했다.

의자가 창식을 끌어안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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