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46. 해커들의 대화
케빈의 손이 창식의 어깨에 처음 올라간 것은 아주 오래전, 창식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독살했을 때였다. 창식이 강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안 케빈은 창식에게 사과하라고 윽박질렀다.
창식은 자신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창식은 강아지한테도, 형한테도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몰랐다. 결국 둘 사이에서 주먹다짐이 오갔다. 그 당시 케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았던 창식은 흠씬 두드려 맞았다.
그때 처음 케빈이 창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강아지한테 사과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창식은 지금처럼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케빈의 눈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강아지에게 사과했다.
창식은 그렇게 강아지를 죽이는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배웠다. 그 뒤로도 창식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케빈의 손은 창식의 어깨 위로 올라갔고, 창식은 자기보다 강한 동물에게 복종하는 약한 동물처럼 케빈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창식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 하지 말라고 요구한 행동이 곧 창식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창식은 때로는 형에게, 때로는 아버지에게, 가끔은 스승이었던 지밀환 교수에게 요구받은 제약들이 싫었다. 그 행동들에 대한 감정적, 도덕적 거부감은 없었다.
언젠가 자신이 형보다, 아버지보다 더 강해진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 형이 집을 떠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의식불명으로 자리에 누우셨다. 그리고 창식은 프로텍 경영권을 잡았다. 이제 창식의 세계에 자신보다 강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창식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갖고 싶었던 여자를 스토킹하고, 거기에 스승을 이용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 다시 나타났다. 자신의 것이어야 했던 여자를 갖는 것을 방해했다. 그리고 힘의 원천이었던 프로텍을 뭉개놓았다. 형의 손이 다시 어깨에 올라와 있었다. 창식은 저 먼 어린 날로 퇴행(退行)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케빈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케빈이 창식과 억지로 눈을 맞추며 질문을 되돌려줬다.
“유빈 어딨어?”
유빈의 이름을 듣자 창식의 눈빛이바뀌었다. 어린 날 형에게 두드려 맞던 아이에서 프로테크놀로지의 경영자로 돌아왔다.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케빈의 손을 잡았다. 무섭도록 꽉 쥐었다. 어깨에서 서서히 들어내 바닥을 향해 뿌리쳤다. 형제 사이의 오랜 관습이 깨졌다. 창식이 케빈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 멧돼지처럼 돌진해 케빈을 벽에 밀어붙이며 괴성을 질렀다.
“민유빈 건들지 마!”
케빈이 창식의 가슴팍을 밀쳐 떼어내며 말했다.
“어디 있는지 말해. 아니면 프로텍도, 너도 내일로 끝이야. 네가 지금까지 프로텍 백신 이용해서 유빈 스토킹한 거 언론에 터지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업데이트 서버 관리자 권한 나한테 넘어온 거 아직 보고 못 받았어?”
한쪽 팔로 책상을 짚고 기대선 창식이 비웃듯이 대답했다.
“고작 업데이트 서버 관리자 권한으로 뭐하려고? 업데이트 서버따위 와이핑하고 새로 구축하면 그만이야. 내가 프로텍 배신으로 민유빈 스토킹했다는 증거가 어딨지? 백신 메인 소스 코드라도 땄나? 언론이 전 국민이 사용하는 백신 업데이트 서버 해킹해서 악성코드 뿌리는 해커의 말을 믿어줄까, 프로테크놀로지 경영자의 말을 믿어줄까?”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창식의 말에 케빈이 입을 다물었다. 창식의 말은 사실이었다. 케빈이 프로텍 백신 메인 소스 코드라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창식이 백신을 악용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창식의 입꼬리 한쪽이 스윽 올라갔다.
“나가. 이 회사도 민유빈도 건들지 마. 다 내 거야.”
케빈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듯 물었다.
“내 도움 없이 오늘 피해 복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창식의 대답은 냉정했다.
“필요 없어. 꺼져.”
케빈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창식의 집무실을 나갔다.
“유빈 네 거 아니고, 내 여자다. 형수님 잘 모시고 있어라.”
케빈이 나간 뒤 창식이 미친 듯이 날뛰며 집무실 집기 몇 개를 부쉈다. 생애 최초로 형을 꺾었다는 기쁨이었는지, 유빈을 노리는 케빈에 대한 분노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
복잡한 심정으로 회사 로비를 서성이던 이태식 대리의 눈에 케빈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모두가 정장을 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청바지 차림에 터덜터덜 걷는 케빈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해커의 직감이었을까,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케빈에게 다가가 스쳐 지나가듯 자신의 해커네임을 짧게 뱉었다.
“메이페어.”
케빈은 못 들은 척 두 걸음을 더 걸었다. 이태식 대리가 자신의 직감이 틀렸나보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케빈이 걸음을 멈췄다.
“하이데스.”
등을 마주하고 있던 둘이 동시에 돌아 눈을 마주쳤다. 케빈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회사 바깥을 몇 번 가리켰다. 나가서 이야기하자는 수신호였다. 둘은 회사 옆 편의점 앞에 차려진 파라솔 아래에서 마주 앉았다. 케빈의 손엔 맥주가, 이태식 대리의 손에는 캔 커피가 들려있었다.
케빈이 맥주 반병을 한 번에 비우고서는 이태식 대리에게 물었다.
“메이페어가 프로텍에서 일한다는 말이 진짜였어? 도대체 왜? 그 실력에, 유명세에, 왜 왕창식 같은 놈 밑에서 일해?”
이태식 대리도 캔을 따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유명한 해커면 누가 밥 먹여 주나요.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있을 때 취직해야죠,”
대기업 정규직 사원 이태식 대리가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선 커피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케빈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메이페어가 왕창식 지시받고 이 밤에 출근해서 디도스 방어나 하고 있는 거 알면 소르에서 해커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겠다.”
이태식 대리가 동의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태식은 대학생 시절 하이데스 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이름을 날리던 해커였다. 악의적인 해킹보다는 목적 없는 장난으로 해킹을 즐겼다. 가장 재밌었던 장난은 일요일마다 하나씩 프로텍 백신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공개했던 것이었다.
프로텍 기술팀 직원들이 메이페어가 공개한 해킹 방법이 통하지 않게 백신 프로그램을 보완하느라 밤을 샜다는 이야기, 이번 주에 공개된 방법을 막느라 저번 주에 공개되었다가 겨우 수습한 방법이 다시 통하게 만들어 버린 한 여직원이 울면서 기술팀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해커들 사이에서 지금도 회자되었다.
그러다 반쯤은 부모님의 압박에, 반쯤은 친구들이 하니까 따라서, 영어시험보고, 자격증 따고, 자기소개서 쓰고 프로텍에 입사했다. 프로텍을 가장 괴롭히던 해커 메이페어가 프로텍에서일한다는 걸 다른 해커들이 알면 케빈의 말처럼 통곡을 할 일이었다. 물론 회사에 이태식 대리가 메이페어라는 건 비밀이었다.
태식이 우울한 화제를 돌려보려고 다른 말을 꺼냈다. 궁금하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하이데스님은 유빈 씨랑 어떤 사이세요?”
케빈의 눈빛이 사납게 바뀌었다.
“네가 유빈을 어떻게 알아?”
“아니……. 저는 그냥 예전에…….”
“예전에 뭐?”
케빈의 사납게 변한 태도에 태식이 주춤했다. 유빈과 소개팅했다는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유빈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태식에게 하이데스는 경쟁하고 싶지 않은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예전에 대학교 같이 다녔던 후배예요. 조금 전에, 그러니까 하이데스님이 디도스 공격 시작하시기 전까지 같이 술도 마셨고요.”
케빈의 눈이 이글거렸다.
“술을 왜 마셔? 둘이서?”
태식이 점점 움츠러들며 대답했다.
“셋이서요. 유빈 씨 친구도 같이요.”
케빈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서 지금 유빈은 뭐한대?”
“글쎄요. 프로텍 건물로 들어가시던데 거기서 뭐 하시는지는 모르겠네요.”
케빈이 탁자를 짚고 벌떡 일어섰다. 편의점 앞 파라솔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유빈이 거기에 왜 가는데?”
태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희 부회장님이랑 볼 일이 있으신 것 같던데요?”
케빈이 느닷없이 태식의 멱살을 잡았다.
“유빈이랑 창식이가 같이 있어?”
태식이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저… 저는 잘 몰라요. 일단 이것 좀 놓고…….”
태식이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케빈이 머쓱해하며 태식의 멱살을 놓고 말했다.
“유빈이 번호 있어?”
“네.”
“전화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