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40. 공모자들, 분열
왕창식 부회장의 시선이 백 비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멍 자국으로 옮겨갔다. 지난주에 자신이 던젼에서 만들어 준 멍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왕창식 부회장의 상상 속에서 유빈의 엉덩이에 멍이 더해졌다. 하얀 엉덩이가 붉은색으로, 초록색 멍으로, 그 다음은 보라색으로 더럽혀졌다. 참을 수 없이 성욕이 끓어올랐다. 백 비서에게 다시 주인님의 명령이 내려졌다.
“돌아서 빨아.”
백 비서가 돌아섰을 때 왕창식 부회장은 이미 하의를 벗고, 멍든 유빈의 엉덩이를 생각하며 발기된페니스를 내놓고 있었다. 백 비서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려 주인님의 귀두를 삼키고 혀로 천천히 애무하기 시작했다. 백 비서의 입술이 성기의 뿌리를 향해 갈 때 왕창식 부회장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여자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백 비서는 주인님이 자신의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말인 줄 알았다. 성기를 입에 문 채로 위로 올려다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백 비서와 눈이 마주친 왕창식 부회장이 갑자기 성기를 백 비서의 목젖까지 밀어 넣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백 비서는 능숙하게 턱을 벌려 앞니가 페니스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혀뿌리로 주인님의 귀두를 받아냈다. 왕창식 부회장이 백 비서의 뒤통수를 누르며 자신의 성기를 백 비서의 목구멍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내일 출근하기 전에 머리 단발로 잘라.”
부족한 공간에도 열심히 움직이던 백 비서의 혀가 멈췄다. 직감적으로 조금 전 자신이 프로텍 펜트하우스로 안내했던 유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발이었다. 왕창식 부회장은 지금껏 백 비서에게 한 번도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육체적 관계에 충실한 주인과 노예 사이일 뿐이었다.
‘지금 그 여자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냐고 나한테 물어본 거야?’
회사 내에 자신 외에도 왕창식 부회장의 밤 시중을 드는 여사원들이 몇 명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창식 부회장이 회사 밖에서 만나는 여자들과도 종종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지만, 때로는 모르는 척하면서 때로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왕창식 부회장이 요구할 때면 늘 그에게 복종하며 관계를 가져왔다.
하지만 방금 왕창식 부회장을 애무하고 있는 자신에게 너무나 태연하게 다른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 태도에 지금까지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며 모멸감으로 다가왔다.
혀뿌리로 귀두를 애무하면서도 토하지 않으려고 해왔던 지금까지의 오랜 훈련이 무색하게 백 비서는 헛구역질을 하며 왕창식 부회장의 성기를 뱉어냈다. 왕창식 부회장이 감정을 삭이며 다시 입에 성기를 넣으려는 백 비서의 턱을 움켜쥐었다. 왕창식 부회장의 입에서 확인사살용 총알이 발사됐다.
“방금 펜트하우스로 들어간 아이 예쁘지? 나 그 아이의마음을 갖고 싶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줘. 너도 여자니까 알 거 아냐.”
백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턱을 잡은왕창식 부회장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그 여자의 마음을 갖고 싶으시면 저를 만나시면 안 돼요.”
왕창식 부회장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태연하게 물었다.
“왜?”
답답한 마음에 백 비서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민유빈 씨가 다른 남자 자지 빨면 기분이 어떠시겠어요?”
왕창식 부회장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나는 그 아이의 마음을 갖고 싶은 거지, 그 아이가 나를 갖길 바라는 게 아니야.”
“제가 부회장님을 애무하고 있는 걸 보면 민유빈 양이 부회장님께 마음을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유빈이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네가 애무해 주는 게 좋은데 유빈이는 싫대? 왜? 아까 펜트하우스 데려다주면서 물어봤어?”
백 비서가 느끼던 모멸감과 답답함이 공포로 바뀌었다. 업무 이야기를 하거나 육체적 관계를 나눌 때는 볼 수 없었던 왕창식 부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결여돼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한다는 유빈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유빈이 느낄 만한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밖에서 지밀환 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반갑지 않은 이름에 왕창식 부회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사정하기도 전에 백 비서가 애무를 멈추고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대답했다.
“이만 나가보고, 교수님 5분 후에 들어오시라고 해.”
백 비서가 나간 뒤 바지를 추켜올린 왕창식 부회장은 머리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 백 비서가 한 이야기, 한 여자를 좋아하면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다.
방금 인터넷을 뒤적거릴 때도 분명 그런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전히 그 말은 창식에게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2:1, 심지어 3:1로 관계를 가질 때도 여자들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도 부인이 두 명이었잖아?’
소유하는 자와 소유당하는 자로 이루어진 창식의 세계에서 사랑과 질투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에게 사랑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질투는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이 노릴 때 드는 감정이었다. 그에게 소유당하는 사람이 느껴야 하는 사랑은 그에 대한 복종이었다. 복종해야 하는 사람이 질투를 느낀다는 건 창식으로서는 받아들일 수없는 생각이었다.
*
잠시 후 부회장실로 들어온 지밀환 교수가 탁자 옆에 놓인 의자를 쭉 끌어당겨 그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제자님. 바쁘신가?”
창식은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쓰며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 지밀환 교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지밀환 교수를 응시했다.
지밀환 교수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제자님 바쁘시냐고 여쭸습니다. 여비서랑 사무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합니까? 스승님을 이렇게 오래 밖에 앉혀놔도 되는 겁니까?”
지밀환 교수의 조롱기 섞인 말에 창식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짧게 끊어 대답했다.
“바쁩니다.”
창식의 싸늘한 대답에 애써 미소를 지으려던 지밀환 교수의 얼굴이 어색하게 굳었다. 굳은 표정을 애써 수습하며 말했다.
“바빠도 이쪽에서 먼저 거래 조건을 이행했으면 이젠 자네 차례지.”
창식이 턱을 괸 손을 바꾸며 대답했다.
“무슨 거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밀환 교수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관자놀이에 힘줄이 튀어나왔다.
“내가 민유빈을 오갈 데 없는 아이로 만들어서 자네한테 넘겨주면 자네는 나한테 프로텍 백신 관리 권한이랑 등기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자네가 소포를 보내라, 카메라를 설치해라 하는 통에 민유빈 스토킹 계획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정말 모르나?”
창식은 지밀환 교수의 말을 튕겨내듯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게 제가 시킨 것들이나 잘하시지 유빈 양 페이스북에 롱타임이니 숏타임이니 하는 사진은 왜 올리셨습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제 여자를 데려가라고 광고하셨던 겁니까?”
지밀환 교수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창식의 뚱한 얼굴을 노려보았다.
“저번에…….”
“네. 저번에 말씀하셨죠. 그렇게 하면 유빈 양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거라고 하셨나요? 그때 저는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그런 일을 하시면 안 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됐습니다. 같은 이야기 반복하지 마시고, 그때 유빈 양한테 접근해서 교수님 때문에 죽어야 했던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람의 명복이나 비십시오.”
잠깐의 정적 후에 지밀환 교수의 언성이 높아졌다.
“프로텍 백신, 내가 만든 걸 자네 아버지가 무참히 빼앗아갔어. 그리고 지금은 자네가 무단 점유하고 있지. 돌려주게나.”
창식이 팔짱을 끼며 차갑게 대답했다.
“도대체 프로텍 백신 관리권한은 왜 필요하신가요? 대학원생 때부터 교수님께서 입에 달고 사셨던 그 지긋지긋한 신 놀음 저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 실력을 갖고 해킹으로 신이 되시겠다고요? 오늘 NBS랑 메이버 해킹하실 때도 제가 보안 시스템 무력화해드려서 성공하셨던 건 알고 계셨습니까?”
“그건…….”
말을 끊으려는 지밀환 교수의 시도에도 창식의 비난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세상에 비웃음당할 소꿉장난, 운영하시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나 가서 하십시오. 해킹으로 신이 될 수 있는 사람, 있을지도 모르지만 교수님은 아닙니다. 케빈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증오하는 형이지만 해킹 실력만큼은 교수님보다 몇 수 위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