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9. 오피스 와이프 (39/70)



〈 39화 〉39. 오피스 와이프

“감사합니다. 그런데 필문이랑 태식 씨는 오늘 어떻게 같이 오시게  건가요?”

거짓말을 추궁당하지않았다는 기쁨에 왕창식 부회장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유빈 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회사 일을 보다가 오늘 같이 유빈 양을 모시러 갔던 정필문 사원이 유빈양과 대학 동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 따로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를 두셨더군요. 그러다 저희 회사의 촉망받는 인재인 이태식 대리와도 유빈 양께서 구면인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유빈 양의 사적인 관계까지 너무 깊숙이 파고들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유빈은 속으로는 필문이라면 그녀에 대해 별의별 이야기를 신나서 떠들었을 거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 속마음을 여기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개의치 않으셔도 돼요. 저희 그냥 친한 친구예요.”
“다행입니다.”

왕창식 부회장이 자신의목적을 위해 한 발 더 다가섰다.

“유빈 양 지금 거처하고 계신 곳은 어디이신가요? 조금 전 주차장에서 만났던 남자도 위험해 보였고 유빈 양 차도 많이 망가져 있더라고요. 당분간 저희 회사에 머무르시면 어떨까 합니다. 경비만큼은 완벽하다고 자부합니다.”

유빈이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도와주신다는 말씀 감사해요. 그런데 그 전에 실례지만 여쭤볼 게 있어요. 11년 전 그리고 몇 달 전 저한테 자위 도구를 보내신 분 정말 부회장님 아니시죠?”

왕창식 부회장이 단호하게 거짓말했다.

“맹세코 아닙니다. 그런데 11년 전 말고 얼마 전에도 그런 물건을 받으셨다고요? 정말 파렴치한이군요.”

왕창식 부회장의 강경한 태도에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던 유빈은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왕창식 부회장이 탁자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열쇠 하나를 꺼내 놓았다.

“저희 프로텍 사옥 펜트하우스 열쇠입니다. 이 건물 꼭대기 층입니다. 머무르시기에 나쁜 환경은 아닐 겁니다.”

유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 건물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검은 십자가 신도들의 공격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유빈은 열쇠를 받아들고 왕창식 부회장 비서의 안내를 받아 펜트하우스로 들어갔다.



*

유빈을 펜트하우스로 들여보내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창식은 허리를 뒤로 젖혀가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유빈이 드디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11년 동안이나 자신의 피를 말려온 뱀파이어 같은 여자였다.

유빈이 들어온 이곳은 자신의 회사였다. 자신의 여자를 채가려던 캐빈은 접근할 수 없었다. 유빈과 소개팅했던 태식이 신경 쓰여 일부러 유빈 앞에 데려갔지만 둘의 사이는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다. 프로텍으로 오는 길에 일부러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혀놓았지만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제 유빈과 자신의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즐거운 상상이 펼쳐졌다. 유빈의 마음을 먼저 얻을까, 몸을 먼저 얻을까 고민됐다. 아랫도리가 불끈거리며 당장이라도 펜트하우스로 올라가 유빈의 옷 아래 열려 있는 탐스러운 열매들을 따 먹으라고 재촉했지만 신사답게 행동하기로 했다.

유빈의 몸만 얻으려고 했다면 이렇게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처리할 필요도 없었다. 언젠가 수연이 그랬던 것처럼 간단히 납치할 수도 있었다. 유빈이 프로텍에 찾아왔을 때 그럴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유빈의 몸과 마음을 모두 얻기 위해서.

‘여자 마음을 어떻게 갖지?’

창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자신이 유빈에게 연모한다고 말했는데도 유빈의 반응이 시큰둥했던 게 떠올랐다. 프로텍 후계자라는 지위와 그에 따라오는 권한을 이용해 수많은 여자들과 몸을 섞어왔다. 여자들과 체액을 나누는 자신만의 방식도, 장소도, 도구들도 갖고 있었지만  번도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한 적은 없었다.

창식이 마음까지 갖고 싶었던 여자는 유빈 단  명이었다. 그런데 방법을  수가 없었다. 전광판에 띄운 영상에서처럼 회개하라고 윽박지르며, 11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려줄까도 생각해 봤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겁을 줬다간 기껏잡은 뱀파이어가 도망쳐 버릴 수도 있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구속하고 싶었다. 인터넷 창을 열어 메이버 검색 창에 입력했다.

여자 마음 갖는 방법

창식이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을 찾으려 페이지를 넘기며 끙끙거렸다. 유빈의 몸을 떠올리며 마음 대신에 몸을 먼저 갖는  어떠냐는 다리 사이의 유혹을 견뎌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여비서가 들어왔다. 창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백 비서,  잠그고 들어와 봐.”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부회장님. 지금 근무 시간입니다.”

왕창식 부회장은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흘깃 보더니 손짓으로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비서가 문을 닫자 창식이 짤막하게 다시 지시했다.

“문 잠가.”
“부회장님. 퇴근하고 던젼에서 모시겠습니다. 밖에…….”

왕창식 부회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긴 내 회사고 네 몸은 내 건데 무슨 문제 있어?”

왕창식 부회장의 고함에 호칭이 바뀌었다.

“문제없습니다. 주인님.”

백 비서가 손을 뒤로해 조심스럽게 문을 잠갔다.  비서는 프로텍에서 두 가지 일을 맡고 있었다. 하나는 부회장실 직속 비서, 다른 하나는 부회장 직속 노예.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왕창식 부회장을 모셨다.

그녀가 왕창식 부회장을 처음 만난  입사 직후 기술3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반복되는 야근과 쌓여가는 피로, 잦아지는 실수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여느 신입사원이 그렇듯, 그녀의 작은 실수 하나는 나비 효과처럼 팀에 엄청난 업무 부담으로 돌아왔고 그때마다 팀장님께 쓴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 날도 팀장님께 불려가 호되게 질책당하고 야근이 확정되어 시무룩하게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때 그녀에게 사내 메신저로 쪽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발신자는 왕창식 부회장이었다. 자신의 집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녀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실수가 부회장에게까지 알려져 징계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죄송하다고 말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왕창식 부회장이 그녀에게 내민 것은 그녀의 업무와는 상관없는, 그녀의 사생활이 담긴 서류였다.

취업 준비생 시절부터 활동하던 SM 인터넷 동호회에 그녀가 올린 글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서류를 넘겨보며 왕창식 부회장이 그녀가 저지른 업무 실수를 지적하려고 부른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여전히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감추고 싶었던 M 성향을 회사에서, 그것도 아주 높은 분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왕창식 부회장이 구태여 이걸 서류로 만들어 그녀에게 보여주는 의도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류를 돌려드리자, 왕창식 부회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자신은 S 성향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노예가 되라고 했다. 회사 급여 외에 노예로서 받게  용돈도 제시했다. 용돈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큰 액수에 놀라면서도, 그녀는 용기를 짜내어 역제안을 했다.

노예가 되는 대신 기술3팀에서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부탁했다. 야근과 질책으로 점철된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다. 왕창식 부회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낮에는 부회장 비서로, 밤에는 노예로 일하게 되었다.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비서실 일은 기술3팀 일보다 훨씬 쉬웠고, 밤에 하는 일은 업무라기보단 오히려 성향에 맞는 취미생활이었다. 두둑하게 쌓여가는 통장 잔고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처럼 왕창식 부회장이 비서실 업무 시간 중에 비밀스러운 곳이 아닌 회사에서 관계를 요구할 때였다. 주인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치마 걷고 이리 와.”

 비서는 몸에 밴 듯 치마를 걷어 올리고 주인님이 앉아있는 의자 앞으로  팬티를 내려 엉덩이를 보여주었다. 허리를 굽히고 어깨를 들어 주인님이 은밀한 구멍들을 잘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왕창식 부회장의 시선이 백 비서의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훑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동그랗게 모여 있는 백 비서의 엉덩이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얇은 허리에서 벌어지며 내려와 치골 선에서 쫙 벌어졌다가 그 아래로 조금씩 좁아지면서 사과 모양을 그리는 유빈의 엉덩이와 달랐다.

유빈의 엉덩이골이 끝나는 지점에 보지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미쳐 차오르지 않은 허벅지 살이 그리는 작은 삼각형도 백 비서의 엉덩이에는 없었다. 보지에 밀착해 있는 허벅지 살이 아름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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