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38. 사냥 실패 (38/70)



〈 38화 〉38. 사냥 실패


유빈이 경기를 일으키듯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창밖의 사람이  곳을 향해 손짓했다. 룸 머리로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든 사람들이 유빈의 차를 향해 걸어오는  보였다. 유빈은 차의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유빈의 차에 도착한 사람들이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번의 덜커덕 소리에도 문이 열리지 않자 흥분한 사람들은자기들끼리 괴성을 지르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뱀파이어 찾았어! 교주님한테 데려가자!“
”문 열어! 끌어내려!“
”안 돼. 안에서 잠갔어.“

급기야 사람들은 유빈의  여기저기를 두드리고 계란을 던지기 시작했다. 투척되는 계란이 늘어날수록 삼아 사람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한 명은 차를 두드리는 소리를 반주(伴奏) 삼아 기분 나쁜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유빈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에 사람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급하게 차에서 비켜섰다. 유빈의 차가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도로 위에서 유빈은 멀리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할  없었다.

하지만 계란 범벅이 되어 닦이지 않는 자동차  유리는 유빈의 시야를 가렸고 도심은 유빈의 시야만큼이나 답답하게 막혀있었다. 뒤차는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오는 것만 같았고 양옆의 차에서 갑자기 달걀이 날아올 것만 같았다.

쉼 없이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그럴수록 불안감만 증폭될 뿐이었다. 유빈은 도망칠 수 없다면 숨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근처 대형 마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유빈이 차에서 서럽게 울고 있을 때 지하에 숨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유빈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황이 반복되었다. 한 남자가 또 유빈의 창문을 두드렸고 유빈의 얼굴을 확인한 다음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뱀파이어 찾았어. 얼굴 확인했고 차에 계란 뒤덮인 것도 맞아. 봉문동 사거리 케이마트 지하주차장 3층. 지하에 숨어있었어. 뱀파이어다워.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 빨리 와. 이 년만 잡으면 검은 십자가 간부 자리는 우리 거야.”

유빈은 정신이 멍해졌다. 기사에서도 사람들의 말에서도 계속 검은 십자가라는 말이 나왔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없었다. 전화를 끊은 남자가유빈의 자동차 보닛(Bonnet) 위에 올라와 앉았다. 유빈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유빈이 눈을 피하자  사람은 보닛을 쾅쾅 두드렸다. 당황한 유빈이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시동을 걸려고  때 전화가 걸려왔다.

왕창식 부회장이었다. 케빈은 왕창식 부회장이 스토커라고 했다. 케빈을 믿을  있는 건 아니었지만 왕창식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유빈이 휴대폰을 들고 망설이고 있을 때 남자가 앞 유리를 두드렸다. 놀란 유빈은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받았다.

“유빈 양. 상황이 급박한  같으니 제 말  들으세요. 유빈 양과 관련해서 나온 기사들 읽었습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국와 메이버가 해킹당했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프로텍 백신을 전력 가동해서 완전히 해결한 상태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저번에 뵀을  말씀해 주신 스토커 이야기 오늘에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힘든 일을 겪고 계셨더군요. 제가 그동안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래도  들어주세요. 저희 형 케빈은 검은 십자가라는 이상한 종교에 빠져있습니다. 성경은 읽지만 교회나 성당에는 나가지 않고요, 뱀파이어를 잡으러 가야 한다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오늘 유빈 양이 당하신 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저번에 유빈 양께서 제게 말씀해주셨던, 그리고 오늘 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 스토커는 저희 형 케빈이 맞습니다. 피하세요. 제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어디이신가요? 제가 지금 당장 모시러 가겠습니다.”

유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스토커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 유빈이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자 왕창식 부회장이 다그쳤다.

“유빈 양. 어서요!”

보닛 위의 남자와 다시 눈을 마주친 유빈이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봉문동에 있는 케이마트 주차장이요. 지하 3층에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왕창식 부회장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유빈이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고급 세단 하나가 내려와 급정거했다. 보닛 위의 남자가 바닥으로 펄쩍 뛰어내려갔다. 유빈은 남자가 부른 검은 십자가 교인들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이드 미러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차에 열쇠를 꽂았다.

세단에서 세 명의 남자가 내렸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유빈이 안도하며 차 열쇠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왕창식 부회장과 태식, 필문이가 유빈의 차를 향해 걸어왔다. 태식은 왕창식 부회장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유빈을 위협하던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주먹을 불끈  태식을 옆에서 필문이가 말렸다.

“선배님 살살 하세요. 살살.”

태식이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았고 남자는 부리나케 자신의 차로 달려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유빈이 차에서 내려 왕창식 부회장과 태식에게 꾸벅 인사했다. 필문이와는 눈인사로 대신했다. 상황 파악에 능하지 않은 필문이의 입이 나불거렸다.

“야 민유 너 지금 대박이야. 우리 동기들 중에 제일 유명해.  나중에 졸업식 날 알고 보니까 유진그룹 3세였던 걘 빼고.”

태식이 필문이의 팔을 툭툭 쳐 주의를 주었다. 필문이가 조용해지자 왕창식 부회장이 말했다.

“유빈 양, 일단 상황이 급박한 것 같으니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왕창식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일행은 세단에 탑승했다. 태식이 운전을 맡았고 유빈은 조수석에, 왕창식 부회장과 필문이가 뒷좌석에 탔다. 차는 들어올 때만큼이나 빠르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유빈은  들이닥칠 광신도들에 자신의 차가 무슨 짓을 당할지 걱정되었지만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말없이 왕창식 부회장의 지시를 따랐다.

세단은 프로텍 본사에 도착했고 왕창식 부회장은 태식과 필문을 자리로 돌려보냈다. 돌아가면서 필문이가 또 싼 입을 나불대다가 태식한테 귀를 잡혀 끌려갔다.

“에이! 민유. 이따 내가 거하게 한턱 쏜다.  덕분에 내가 부회장님 눈에 들었어어. 선배니임.”

왕 부회장과 유빈은 회장실에서 다시 독대했다. 프로텍 부회장이라는 직함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11전전 중학생이었던 유빈 앞에서 말주변 없이 쭈뼛대던 대학원생은 이제 없었다. 왕창식 부회장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 갔다.

“먼저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저번에 미쳐 드리지 못했던 말이 있습니다. 15년전 유빈 양을 처음 뵀을 때 많이 설렜습니다. 조금  나은 단어를 찾자면 깊이 연모했습니다. 연구실로 돌아가서 유빈양이 어렸을 때 출전하신 피겨스케이팅 경기 영상들을 보면서 더욱 설렜고요. 그리고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연모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열 살이 훌쩍 넘는 나이 차이에, 그때 유빈 양은 너무 어리셨잖아요. 감히 좋아한다고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언론에 알려지기라도 했다간 아버지 회사에 큰 누가 될 게 뻔했죠. 대기업 후계자라는 이 자리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도 못 하게 만들더라고요.”

갑작스러운 고백에 유빈은 당황했다. 설렘보다는 스토커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게  발 더 성큼 다가왔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유빈을 바라보며 왕창식 부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년 사이 회사 일이 바빠서 잠깐 유빈 양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찾아오셨을 때 다시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11년 전 그 사랑스러웠던 아이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곤경에 처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마친 왕창식 부회장은 눈동자를 옆으로 스윽 굴려 유빈의 기색을 살폈다. 입술을 물어뜯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지만 거짓말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유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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