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36. 강아지 죽이는 법 (36/70)



〈 36화 〉36. 강아지 죽이는 법

처음에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무택에게 접근했다. 백신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해 일했다. 프로텍이 자리 잡기까지 초창기 몇  동안 해가 뜬 후에 잠에 든 날이 해가 뜨기 전에 눈을 감은 날보다 많았다. 무택과 밀환의 사이는점점 돈독해져갔고 무택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자신의 둘째 아들 창식을 밀환의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으로 입학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로텍 백신이 전국 컴퓨터 보안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립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프로텍 백신을 사용할 무렵, 밀환이 신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면서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무택은 자신의 회사가 다가올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그것은 밀환의 욕망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둘 사이에서 끝없는 언쟁이 오가고, 밀환이 프로텍 백신을 해킹 툴로 사용한 것을 무택이 추궁하는 일이 벌어졌다. 밀환은 심하게 반발했고, 결국 밀환은 소량의 지분만을 나눠 가진 채 무택에 의해 프로텍에서 해고당했다.

프로텍을 떠난 밀환은 자신이 키우던 해커 조직에 검은 십자가라는 이름을 짓고 온 힘을 기울였다. 검은 십자가는 단순한 해커 집단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확립할 신과 신을 따르는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교리를 만들고 종교 단체로 변모시켜 나갔다. 스스로를 아직 신이 되지 못한, 하지만 신에 근접한 1대 교주로 칭했다.

그러던 중 밀환의 눈에 띈 해커가 있었다. 무택에게 쫓겨나다 시피 미국으로 떠난 무택의 첫째 아들 케빈이었다. 그 당시 케빈은 활동하면서 범죄 조직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해킹해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범죄조직들이 보라는 듯이 해킹 대회에 나가 자신의 해커명 Hideath와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이었을까, 케빈은 건들지 말아야 할 곳을 건들고 말았다. 미국 국가보안국(NSA)을 해킹해 자료를 빼낸 후 자신이 사용한 해킹 툴의 소스 코드를 국가보안국 이메일로 전송했다.  일로 케빈은 미국 내에서 범죄조직들에게도 정부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됐고 심각하게 한국행을 고민하고 있었다.

밀환은 케빈이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인연을 이용해 접근했다.   무택에게 내몰린 사람들이라는 동병상련도 있었다. 밀환의 접근을 받은 케빈은 해킹 기술을 이용해 새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검은 십자가의 교리에 동의했고 밀환의 인도를 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케빈은 검은 십자가 활동에 힘쓰며 교단에 충성할 해커들을 양성하고 자신이 직접 교단의 명령에 따라 해킹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교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무택에게서 미리 받은 약간의 유산을 이용해 팬텀 유통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나온 자금으로 검은 십자가 교단을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빈은 검은 십자가의 교리를 밀환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해킹 기술을 가진 자신들이  시대의 신과 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신이 아닌, 해킹 기술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선(善)한 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농담처럼 시작됐던 케빈과 밀환의 대립은 점점 심해져갔다. 교단 사무실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급기야 케빈이 교주로서 내린 밀환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밀환은 심각하게 케빈의 출교(黜敎)까지 생각했지만 해킹 실무와 교육, 자금 지원까지 케빈의 공헌은 지대했고 케빈의 도움 없이 교단을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에 와 있었다. 케빈과 밀환 사이의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 관계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 무택이 자리에 눕고 난  지밀환 교수가 창식과 함께 계획한 유빈의 스토킹이었다. 해킹 기술로 한 사람의 삶을 지속적이고도 잔인한 방법으로 망가뜨리는 것을 본 케빈은 격노했다.

“해킹 실력으로 신이 될 수 있다면 제가 교주님보다 훨씬 신에 가깝습니다. 신으로서 명령합니다. 당장 그만두십시오.”

하지만 유빈을 두고 창식과 은밀한 거래를 진행 중이었던 밀환은 케빈의 말을 들을 수 없었고, 케빈은 교단을 떠났다.


*



케빈이 자신의 집에 홀로 앉아 술을 따르고 있었다. 케빈이 앉아있는 넓은 거실에도, 수많은 방에도 아무도 없었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유빈과의 동거가 떠올랐다. 이 식탁에같이 앉아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지금 마시고 있는 술도 그때와 같은 술이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쓴  한 잔을 넘기자 행복했던 기억이 유빈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검은 십자가 교단을 배신하고 유빈을 도왔다. 그리고 유빈에게 진실을 말했다. 그런데 유빈은 자신을 의심하며 떠나버렸다. 하지만 마음껏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유빈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받아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해킹용 노트북 컴퓨터를 열었다가 닫았다. 수십 번 반복했던 동작이지만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갈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유빈의 휴대폰의 위치를 추적할 수도, 카메라 접근 권한을 획득해서 어쩌면 휴대폰을 보고 있을 유빈의 얼굴도 볼 수 있었지만 시도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유빈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넓은 집에 영원히 홀로 남겨질 것 같았다.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라도 해볼까 고민했지만 거절당한 남자에게 용건 없이 전화할 용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케빈은 유빈이 어디에 있든 안전하길 바랐다. 창식과 같이 있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창식이 유빈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창식이기 유빈에게 느끼는 감정은 11년 동안 갖고 싶어 했던, 하지만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장난감에 대한 갈망이었다. 창식은 자신이 원하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프로텍 회장님의 아들로 태어난 창식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쉽게 얻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들과 놀 때도 창식은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기필코 얻어내고야 말았다. 강제로 빼앗기도 하고, 자신의 힘이 부족할 땐 떼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면 좋았을 창식 주위의 어른들은 왕무택 회장에게 잘못 보일까 두려워, 혹은 창식을 빌미로 프로텍 수뇌부에 접근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창식의 요구를 어떻게 하면 빨리 들어줄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창식의 수법은 점점 교활해졌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을 때면 서슴없이 아버지의 이름과 직함을 대고 그 권위를 이용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땐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자신이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열등감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다른 아들과 경쟁해야 하는 창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창식의 어머니는 창식 주위의 뭇 어른들처럼 창식이 해달라는 것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머리가 굵어진 창식의 요구는 단순히 장난감과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하루는 초등학생이었던 창식이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울면서 사정했다.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자기가 은상을 받았는데 금상을 받은 친구가 자기를 놀렸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창식의 어머니는 곧장 창식을 데리고 교장실로 향했다.

약간의 촌지, 그리고 프로텍 회장의 명함과 창식의 시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는 은근한 암시가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창식의 답안을 다시 확인한 교장은 창식의 오답 하나를 정답 처리하여 금상을 수상한 학생과 동점으로 만들어주었다. 다음 날 공동 금상으로 다시 시상식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옆에서  말을 들은 창식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나만 금상이야.  상 받으면 안 돼!”

교장도 어머니도 당황했다. 잠시 후 교장과 어머니 사이의 눈빛이 교환되었고, 교장은 다시 시험지 뭉치를 꺼냈다. 금상을 받은 학생의 시험지를 찾아내어 몇 개의 정답을 오답 처리했다. 다음  다시 진행된 시상식에서 창식은 금상을 수상했고, 금상을 받았어야 할 학생의 상장은 박탈되었다.

그런 일은 창식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창식이 수석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보고 온 창식이 어머니에게 자신도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  말을 전해들은 왕무택 회장은 흔쾌히 강아지 한 마리를 사주었다. 그런데 그 강아지는 창식을 멀리했다. 오히려 케빈을 따랐다. 케빈과 뒹굴며 놀다가도 창식이 다가서면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했다.

그러던 어느  창식이 케빈 옆에 있는 강아지를 끌어당기려다 강아지가 창식을 할퀴는 일이 벌어졌다. 상처를 본 어머니는 다음  동물병원에 데려가 강아지 발톱을 정리하자고 달랬지만 화가 난 창식은 하루 종일 부루퉁한 얼굴로 강아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어디에선가 펜치를 구해와 강아지의 발톱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그 이후로 강아지는 노골적으로 창식을 적대했다. 그럴수록 창식의 학대도 점점 심해졌다. 강아지가 먹을 물과 음식을 몰래 버리기도 하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땐 강아지를 구타하기도 했다.

강아지도 참지 못했던 걸까, 결국 강아지가 창식의 손을 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극도로 분노한 창식은 인터넷 창을 열어 검색했다.

‘강아지 죽이는 법’

그리고 며칠 후 창식은 약국에 들렀고, 다음 날 강아지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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