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32. 저장된 영상, 만남 (32/70)



〈 32화 〉32. 저장된 영상, 만남


같은 시각 아직까지 퇴근하지 않고 있던 왕창식 부회장이 김덕기 상무의 휴대폰을 울렸다. 늦은  걸려 온 전화에 짜증을 내던  상무는 왕창식 부회장의 번호가 찍힌 걸 확인하고 황급히전화를 받았다.

“부회장님. 이 밤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왕창식 부회장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팬텀 유통에 있는 민유빈 관련 자료 전송해. 입사할 때 제출했던 이력서부터 최근에 처리한 업무 파일까지 다.”
“부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정직상태라 회사 데이터베이스에 접근이 안 됩니다.”

왕창식 부회장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럼 해킹해! 그것도 못 뚫어?”

김 상무의 목소리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케빈이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를 제가 어떻게 뚫습니까…….”
“됐어!”
“부회장님 그런데 저번에…….”

왕창식 부회장은 김 상무를 무시하며 전화를 끊어버렸고 김 상무는 귀에서 휴대폰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전화를 끊은 왕창식 부회장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11년 전부터 갖고 싶어 했던 여자가 자신의 회사가 아닌 증오하는 형, 케빈의 회사에 있다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창식에게 케빈은 그런 존재였다. 자신이 갖고 싶어 하던 걸 항상 먼저 채갔다.

어딜 가나 아버지 이름만 대면 모든 걸 가질  있었지만 형만은 예외였다. 케빈보다 고작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형에게 우선권을 주었고, 자신은 장난감도 옷도 심지어 애완동물도 케빈이 싫증을 느낄 때쯤에나 만져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들이 유빈에게 그대로 투사되었다. 유빈도 자신이 먼저 가지려고 했었다. 유빈을 먼저 만난 것도, 유빈을 자신의 회사에 먼저 데려오려고 했던 것도 창식이었다. 프로테크놀로지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그때까지 유빈을 잊지 못했던 창식은 인사과에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유빈을 스카우트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때도 아버지는 경영권을 그런 사적인 용도로 쓰면  된다고 불같이 화를 내셨다. 창식은 갖고 싶은  가질 수 없다면 경영권이 무슨 소용이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럴 거면 당장 프로테크놀로지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차가운 대답만 들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아버지 때문에 놓친 유빈을 케빈이 팬텀 유통으로 데려갔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케빈을 좋아하던 수연을 두고도, 자신이 갖고 싶었던 여자를 채가는 형을 용서할 수 없었다. 반드시 유빈을 되찾고 케빈을 파멸로 몰아넣을 거라고 다짐했다.

창식은 휴대폰을 들어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핫라인으로 왕무택 회장 전담 의사에게 연결되었다.

“아버지 상태는 어떠신가요?”

전화기 너머로 의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아직 의식 없으십니다. 저희 의료진들이 협심해서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늦은 밤에 통화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창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이상 케빈에게서 자신의 것을되찾아 오는 걸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자신의 집무실 문을 응시해보았다. 내일 저 문으로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유빈이 들어올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입가의 미소가 얼굴 전체로 번져갔다.

업무용 컴퓨터를 끄고 금고에서 개인용 노트북 컴퓨터를꺼내 유빈의 사진과 동영상이 저장된 폴더를 열었다. 유빈이 어렸을 때 참여했던 피겨스케이팅 대회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수십장의 사진이 넘어가고 컴퓨터 화면에 유빈의 집에 설치했던 몰래카메라로 촬영한성숙한 유빈이 등장했다.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실 문을 잠그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바지를 내렸다.

억눌려있던 페니스가 솟구쳐 올랐다. 사진에 슬라이드 쇼를 걸어 자동으로 넘어가게 설정하고 자지를 손으로 감아쥐었다.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아래. 슬라이드 쇼에 맞춰 손을 움직였다. 다시 수십장의 사진이 지나가고 화면에 유빈이 후배위 자세로 딜도를 빼려고 낑낑대는 사진이 떴다.

반대 손으로 슬라이드 쇼를 멈췄다. 유빈의 탐스러운 엉덩이 그리고 그 중앙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멈춘 슬라이드 쇼와는 달리 손의 리듬은 빨라졌다. 리듬이 급격하게 느려졌고 어느샌가 반대 손에 들려있던 휴지에 정액이 분출되었다.

자위를 끝내자 혼자만 즐긴 것 같아 유빈에게 미안해졌다.

‘같이 즐길 때가 좋았는데. 어쩌면 내일 …….’

유빈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케빈이 유빈을 데려가면서 위치추적 어플이 같이 지워졌지만, 방법은 있었다. 유빈이 사용하는 이동 통신사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했다. 보안이 걸려있었지만 비웃으며 몇 개의 코드를 입력해 간단히 무력화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컴퓨터 백신을 사용하는 보안 프로그램을 뚫는   맞는 열쇠를 들고 문을 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유빈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고 위치를 추적했다. 잠시 후 지도에서 유빈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평소와는 다른 위치가 검색되었다. 지도에서  위치가 어디인지 들여다본 창식은 분노하며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케빈의 집이었다.



* * *




다음  회사에 출근한 유빈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왕창식 부회장에게 약속 장소를 바꾸면  되겠냐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스토커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찝찝함에 약속을 취소할까 했지만 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방 속에 챙겨둔 휴대용 전기 충격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같이 넣어 둔 다른 물건들도.

퇴근 시간이 지났고 왕창식 부회장과 만나기로 한 저녁 7시가 가까워졌다. 프로테크놀로지 본사 건물 앞에 차를 세우자마자 경비원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유빈을 맞이했다. 친절하게주차 장소를 안내하고 부회장실 앞까지 에스코트했다.

부회장실 앞에서 경비원이 노크하자 왕창식 부회장의 비서분이 마치 귀빈을 맞는 것처럼 인사하며 유빈에게 부회장실을 안내했다. 유빈은 뜻밖의 환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비서가 열어준 문을 통해 부회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유빈은 왕창식 부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유빈이 왕창식 부회장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억 속에서 11년  그 남자의 얼굴을 캐내 비교해보았다. 너무 오래돼 흐릿해진 기억 때문일까 같은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닮은 것 같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그렇게 못생기고 볼품없지 않았다. 왕창식 부회장은 유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10년쯤 전이었나요? 그때 제가 뵀던 분이 맞으시군요. 비서실 통해 이름 듣고 혹시나 하고 있었습니다.그때 아름답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네요.  얼굴은 많이 바뀌었죠? 회사 경영 시작하면서 이곳저곳 손봤습니다. 어색해 마시고 들어와서 편히 앉으세요.”

의문이 해소된 유빈은왕창식 부회장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온화하고 예의 바른 말씨에 걱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정말 스토커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잠시 후 비서가 다기(茶器) 세트를 들고 들어와 탁자에 놓고 가벼운 인사를 한  나가셨다. 왕창식부회장은 주전자에서  잔을 따라 유빈에게 건네고 두 번째 잔은 자신의 앞에 두었다.

유빈은 찻잔을 받아들고도 입에   없었다. 수연의 집에서 커피를 마신 후 기절해서 납치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왕창식 부회장이 긴장한 유빈을 보며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유빈에게도 권했다.

“국화차입니다. 캐모마일(Chamomile)이라고도 많이 부르더군요. 마셔보세요. 기분이 한결 나아지실 거예요.”

유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납치사건 이후에 생긴 차(茶)에 대한 트라우마는 꽤나 컸다. 같은 주전자에서 따른 차를 왕창식 부회장이 방금 마셨다는 사실을 되뇌어봤지만 찻잔을 움켜쥔 유빈의 양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유빈의 찻잔을 바라보던 왕창식 부회장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국화차가 마음에  드시면 다른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커피도 준비되어 있고요.”
“아니에요. 저도 캐모마일 좋아해요.”

유빈도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찻잔을 내려놓을  손이 미세하게 떨리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유빈의 동작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살피던 왕창식 부회장이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자리가 불편하시면 다른 곳으로 옮겨도 괜찮습니다. 아직 식사 전이시면 저녁 같이 하는 것도 좋을  같고요.”

유빈이 찻잔에서 손을 떼 깍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예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왕창식 부회장의 태도, 갑자기 떠올라버린 납치당했던 기억, 스토커에 대한 공포가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