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18. 적극적 반항
유빈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박 대리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딜도는 진동하지 않았다. 유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박 대리님이 지근거리까지 가까워졌을 때도 딜도는 울리지 않았다. 박 대리가 유빈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빈 씨, 좋은 아침.”
유빈이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고 박 대리님은 선뜻 짐 싸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짐을 싸며 유빈의 인사 발령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갔다.
“유빈 씨, 승진 축하해. 영업 1팀 가면 내 입사 동기 한 명 있어. 황우현이라고, 대리야. 유빈 씨 이제 과장이니까 막 괴롭혀. 알겠지?”
유빈이 우물쭈물하다 대답했다.
“박 대리님, 사실 죄송해요. 박 대리님께서 먼저 승진하셨어야 했잖아요. 입사 연도도 저보다 빠르신데…….”
박 대리님이 손사래 치면서 대답했다.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그래. 둘이 있을 때는 앞으로도 반말 쓸 테니까 그것만 좀 봐줘. 갑자기 존댓말 하려면 어색하잖아.”
박 대리님이 씽긋 웃으셨다. 유빈도 마주 웃었다. 그러다 유빈의 눈에 박 대리님이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이 들어왔다. 평소에 박 대리님이 쓰시던 휴대폰이 아니었다.
“박 대리님 휴대폰 바꾸셨네요?”
박 대리님이 웃음을 띠고 대답했다.
“나도 얼리 어답터 한 번 해보려고 하나 장만했어. 요즘 TV 틀면 광고 나오는 그거야. 유빈 씨도 지금 휴대폰 쓴 지 오래됐지? 새로 하나 사. 요즘 싸고 좋은 거 많이 나오더라.”
유빈은 책상에 놓아둔 자신의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첫 월급 기념으로 샀던 휴대폰이니 쓴 지 3년쯤 됐다. 요즘 들어 부쩍 느려진 것 같기도 했다.
박 대리님은 영업 1팀으로 유빈의 서류가 든 박스를 옮기는 것까지 도와주고 다시 재무팀으로 돌아갔다. 유빈은 박 대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새로 배정받은 책상에 짐을 풀었다. 그러는 사이 영업 1팀 직원들이 한 명 한 명 유빈의 책상으로 찾아와 인사와 덕담을 나누었다.
“유빈 씨 재무팀에 있었다고 했지? 그쪽 일이랑 우리 일이랑 많이 다를 거야.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물어봐.”
“드디어 우리 팀에 홍일점이 생기네요.”
“잘부탁해. 커피 마시고 싶으면 내가 타 다 줄게. 사내 메신저 쳐.”
그런데 유빈의 맞은편에 유난히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있는 분이 계셨다. 유빈이 흘깃 그의 목에 걸려있는 사원증을 확인해 보니 황우현 대리라고 쓰여 있었다. 박 대리님이 자기 입사 동기라고 하신 그분이었다. 유빈의 시선을 눈치 챌 법도 하건만 마치 유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일에만 집중하고 계셨다.
유빈이 자리에서 일어서 황 대리에게 가 직접 인사를 드리려고 할 때 방금 인사를 나누었던 영업 1팀 동료가 유빈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저 친구 남중 남고 공대 나왔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9서클 대마법사래. 왜 우리 회사 2년 전에 사내 체육대회 종목에 짝 피구 넣은 다음부터 체육대회 날마다 비 왔잖아. 저 친구가 그런 거래. 여자랑 눈 마주치면 마력 소진될까 봐 저러고 있는 거야. 민 과장이 이해 좀 해줘”
그러고는 혼자 킬킬대며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유빈은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다. 박 대리님이황우현 대리님을 괴롭히라고 했던 말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아 괜히 웃음이 나왔다. 황 대리님과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간부 회의를 마치고 나오신 영업1팀 팀장님이 유빈에게 말했다.
“민유빈 과장 승진 축하하네. 영업 1팀으로 오게 된 것도 축하하고. 이번 주는 특별한 업무지시 없을 테니까 영업1팀 업무 파악 잘하고 재무팀에서 하던 일 인수인계 확실히 하게. 일하는 것보다 인수인계가 더 중요한 거야. 이따 저녁에 재무팀, 영업1팀 합동 회식 있으니까 꼭 참석하도록 하게. 지금은 잠깐 상무님께 가보겠나? 자넬 찾으시네.”
유빈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상무실로 향했다. 유빈이 결코 오지 않길 바라던 시간이었다. 상무실에서 또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스토커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상무실로 들어갔다. 유빈이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상무실을 울렸다.
‘짝.’
김 상무가 갑자기 유빈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유빈은 다짜고짜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어리둥절해서 상무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유빈에게 돌아온 건 사과가 아니라 반대쪽 따귀였다. 유빈은 겉으로는 부하 직원의 능력을 높이 사 승진시켜주는 척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성추행을 일삼고 폭력을 행사하는 김 상무의 행동에 진절머리가 났다.
김 상무는 한 번 더 손을 들어 올렸다가내리며 유빈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했다.
“벗어. 지난번 업무 지시 제대로 이행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유빈은 김 상무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김 상무를 쳐다보았다. 김 상무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유빈이 눈을 질끈 감고 움츠렸다.
김 상무의 손이 유빈의 치마로 향했다. 유빈의 허리를 더듬던 손이 지퍼에 도달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잡아 내렸다. 유빈의 치마가 벗겨졌고 그 안에 감추어 놓았던 딜도 팬티와 꼬리가 드러났다. 김 상무가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유빈의 국부를 찬찬히 관찰했다. 딜도를 만져보고 꼬리를 쓰다듬었다.
유빈은 수치심에 다리가 떨려왔다. 마음은 상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치마가 벗겨진 상태에서 그럴 수도 없었다. 김 상무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유빈은 저항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김 상무를 완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건 이미 확인했다. 잠시 후 김 상무는 볼 걸 다 봤다는 듯 휴대폰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고 유빈의 몸에서 시선을 뗐다. 또다시 강압적인 명령이 이어졌다.
“잘 이행했군. 상의까지 다 벗고 소파에 앉아.”
유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손으로 국부를 가리고 물었다.
“저를 강간이라도 하시려고요?”
김 상무가 기가 막힌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나는 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짓은 하지 않아. 벗고 앉아.”
유빈이 고개를 가로젓자 김 상무는 다시 유빈의 뺨을 올려붙였다.
“벗어!”
유빈의 브래지어와 셔츠가 바닥에 떨어지고 그 위에 떨어진 눈물이 점점이 찍혔다. 김 상무의 지시대로 유빈은 소파에 앉았고 김 상무도 뒤따라 맞은편에 앉았다. 딜도와 꼬리까지 단 상태에서 남자 앞에서 벗고 있었던 유빈은 온몸이 위축되었다. 손을 들어 가슴과국부를 가렸다. 차마 김 상무의 눈을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유빈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김 상무가 물었다.
“개인적으로 물어보는 건데 자네 프로테크놀로지라는 회사 아나?”
‘프로테크놀로지.’ 줄여서 ‘프로텍’이라고도 불리는, 국내 백신 프로그램 시장을 독점한 유명한 회사였다. 유빈도 그 회사 백신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고 언젠가 재무팀 회식에서 팀장님이 프로텍이 인수합병을 통해 ICT 시장을 통일하려고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도 기억났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회사가 지금 자신의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 상무가 질문을 계속했다.
“프로텍 왕창식 부회장이랑 대체 무슨 사이인가?”
유빈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텍이 왕씨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고 경영되고 있다는 건 들어보았지만 왕창식이라는 이름은 처음이었다. 유빈의 대답에 김 상무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유빈에게 브래지어와 셔츠를 건넸다.
“다시 입게. 내일부터 매일 11시에 상무실로 와서 팬티랑…… 그 꼬리, 제대로 입고 있는지 검사 받게.”
김 상무한테서 옷을 받아 입고 치마까지 가져다 입은 유빈이 김 상무를 노려보며 말했다.
“왕창식이라는 그 사람이 저한테 이것들을 보내고 상무님한테 저를 감시하라고 시켰습니까?”
김 상무가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이만 나가보게.”
유빈이 지지 않고 대꾸했다.
“도대체 누굽니까!”
김 상무가 호통 쳤다.
“민유빈 과장 나가보게! 한 가지 조언하는데 목숨 잘 챙기게. 나한테도 그자한테도 절대로 반항하지 마.”
유빈이 나가자 김 상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을 노려보던 유빈의 매서운 눈빛이 떠올랐다.
‘벗겨놨을 땐 그렇게 고분고분하더니. 역시 여자는 벗겨놔야 해.’
김 상무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네. 입고 있었습니다. 네. 꼬리도요. 네. 사진 찍어놨습니다. 네.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