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17. 인사발령 (17/70)



〈 17화 〉17. 인사발령

상무실을 나온 유빈은 김 상무의 비서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또래로 보였다. 서러움이 폭발했다.

‘저분은 평화로운 삶을 살고 계시겠지? 하루하루 목숨을 위협받는 나와는 달리 죽음은 아직 멀게만 느껴지실 테고,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없으실 테고, 퇴근 후에는 스토커의 변태 짓이 아니라 남자 친구의 달콤한 애무를 받겠지?’

유빈의 눈물을 본 비서는 말없이 휴지를 뽑아 유빈에게 건넸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여 감사 인사를 하고 자신의자리로 돌아와 짐을 챙겨 퇴근했다. 집에 돌아온 유빈은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형광등도 바꿔야 했고 상무님의 말을 따르려면 딜도 팬티를 빨고 애널 플러그도 씻어야 할지도 몰랐지만, 스토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유빈에겐 여유가 필요했다. 그녀가 안식할  있는 단 한 곳, 잠 속에 잠시 자신을 의탁했다.

유빈은 꿈을 꿨다. 모든 꿈이 그렇듯 그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꿈의 중간 무렵 유빈은 클럽에서 춤추고 있다. 유빈이 대학생 때 가끔 다니던 홍대 앞 클럽이다.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꿈속의 이미지는 선명하다. 번쩍이는 사이키 조명 아래에 사람들이 입고 있는 형형색색의 클럽 복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유빈이 현란하게 스탭을 밟는다.

흥이 오른 유빈은 스테이지 위로 올라간다. 점점 빨라지는 음악에 유빈의 몸이 반응한다. 스테이지 아래에서 사람들이 유빈을 쳐다본다. 유빈은 그 시선들을 즐긴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점에 꽂히고 있다. 유빈의 입고 있는 연두색 미니스커트 아래 딜도 팬티. 그 안에서 딜도는 사이키 조명보다 더 현란하게 빛나고 있다. 어느새 유빈의 항문에서 꼬리가 자라난다. 사람들이 열광한다.

유빈이 잠에서 깼다.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꿈의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은 꿈이었지만 결국 스토커 때문에 기분 나쁘게 끝나고 말았다.

유빈이 시계를 보았다. 언제부터 잤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간 정도 흐른 것 같았다. 비몽사몽  상태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카톡이 와 있었다. 유빈의 정신이  돌아왔다. 스토커였다. 그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 나 보고 싶은데 참느라 힘들었지?
- 나는 힘들었는데.
 좋은 일들이 조금 있었어.
- 신경 쓰지 마.
- 우리 다시 시작하자.

스토커의 카톡은 계속 이어졌다.

- 그동안 내 선물  안 입고 다녔어?
- 마음에 안 들어? 다른 걸로 보내줄까?

유빈이 떨리는 손으로 카톡을 보냈다.

- 상무님이세요?

스토커가 지체하지 않고 답장했다.

상무? 그게 누구야?
-아 팬텀유통 김덕기?
- 오늘 만났다며?

유빈이 다시 카톡을 보냈다.

- 하이데스님이세요?

스토커의 답장에 짜증이 묻어났다.

- 그게 누군데? 자꾸 재미없는 얘기하지 말고 우리 놀자.

유빈은 한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 누구신지 알고 싶어요.

스토커는 유빈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나?
- 너를 사랑하는 사람.
아주 많이.

유빈은  물어보려고 했지만 스토커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스토커의 괴롭힘이 다시 시작되었다. 관장하고 애널 플러그를 삽입하고 딜도 팬티를 입으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유빈은 거부하고 싶었다. 그녀의 몸에 플러그와 딜도가 들어와 진동하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스토커에게 길들여지는 자신이 싫었다.

스토커가 보내는 진동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자신의 몸이 미웠고, 며칠 전 스토커의 말을 따라 꼬리를 달고, 딜도 팬티를 입고 홍대 앞까지 갔던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끼쳐왔다. 하지만 못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을 때, 김 상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롱타임 30만 원짜리 창녀가 될 수도 있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자는 그럴 힘을 갖고 있어.’

유빈은 이미 창녀를 대하는 남자의 태도를 경험했다. 그녀의 사진이 들어간 성매매 광고를 본 선배는 그녀를 여자로도, 인간으로도 대하지 않았다. 10만 원, 20만 원을 부르며 돈을 내면 성욕을   있는 자판기 아니, 유료 변기처럼 대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20대 여성이 실종되었다더라, 그 숫자가 한 해에  명이다 하는 뉴스가 떠올랐다. 그녀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몇몇은 빨간 등 아래에서 그녀들을 성욕 해소용 변기로 대해 줄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고, 몇몇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랐다. 그중 한 명이 유빈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유빈은 체념한  스토커의 지시를 따랐다. 씻어서 도로 상자에 넣으면서 다시는 쓰지 않을 거라고 기뻐했던, 절대로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도구들을 꺼내왔다. 주사기를 자신의 항문에 꽂고 물을 주입했다. 뱃속의 변이 쓸려 나왔고 몇 번 반복했다.  들어가지 않는 질경을 억지로 항문에 삽입하고 고통을 참으며 항문을 벌렸다.

벌어진 항문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닦고 꼬리가 달린 플러그를 삽입했다. 엉덩이 부위에 구멍이 뚫린 딜도 팬티를 입고 꼬리를 밖으로 꺼냈다. 그렇게 유빈은 다시 스토커의 원격 애완동물이 되었다.

그런데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스토커는 더 이상 유빈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수시로 유빈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삽입에 성공했는지 아닌지 물어보고 유빈이 성공했다고 대답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요구했다.

유빈의 집에 설치된 몰래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하이데스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자신의 사진을 스토커가 어떻게 확인하는지 똑똑히 보았던 유빈은 최대한 자신의 얼굴이나 집이 나오지 않게 조심해서 사진을 찍어 보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스토커의 끝없는 요구를 받아낸 유빈은 녹초가 되었다. 조금은 익숙해졌길 바랐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점심까지 거른 상태라 배가 고팠다. 배달 음식을 주문할까 했지만 지난번 자장면 배달부와 있었던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꼬리를 가릴 수 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치마를 입고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도시락과 주스를 사서 돌아왔다. 언제 진동이 울릴지 몰라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집에 돌아온 유빈은 다시 시작된 악몽에 눈물과 함께 편의점 도시락을 삼켰다. 목이 너무 메어 오면 주스를 마셨지만 도시락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스토커는 이따금씩 장난감을 갖고 놀 듯 유빈의 딜도와 플러그를 진동시켰고그때마다 삼켰던 음식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입을 틀어막고 참았다. 유빈이 반찬 하나를 집어 입에 넣자 앞뒤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젓가락을 놓고 입을 막았다. 골반 전체가 흔들리다가 살과 근육을 뚫고 빠져나와 버릴 것만 같았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유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신음과 반찬이 새어 나왔다. 손가락이 눈물과 침으로 젖어 들었다. 제발 멈춰달라고 울면서 기도했지만 진동은 점점 강해졌고 결국 유빈은 화장실로  먹었던 것을 토해냈다.

배고픔과 두려움, 계속되는 진동, 그리고 골반과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유빈은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기상 알람이 울렸고 부스스한 눈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유빈의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어쩔  없이 준비를 시작했다.

퉁퉁 부어버린 얼굴을 차가운 물로 씻어서 가라앉혔다. 딜도 팬티 위에 팬티를 한  덧대 입고 싶었지만 꼬리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팬티에 생리대를 붙이고 싶었지만 했지만 딜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생리대를 팬티 바깥쪽에 뒤집어 붙였다.

입고 잤던 검은 치마가 꼬리를 완전히 가리는지 거울 앞에서  번  확인했다. 어제 감지 않은 머리가 여기저기 눌려있었지만, 도저히 머리를 다시 감고 말릴 기운이 없어서 뒤로 넘겨 묶었다.

브래지어를 꺼내 입고  위에 색이 짙은 셔츠를 입었다.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보았다.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눈 밑의 다크서클은 깊게 패여 있었고 다크서클만큼이나 볼도 흉하게 안으로 파여 있었다. BB 크림을 발라보았지만 얼굴에 짙게 스민 피곤한 기색은 가려지지 않았다. 화장을 조금  짙게 할까 고민했지만 무의미한 일인  같았다. 하이힐을 신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한 유빈은 뜻밖의 상황을 마주쳤다. 유빈의 단독 인사발령이  있었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했고 재무팀에서 영업 1팀으로 발령 나 있었다. 어제  상무에게 들은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급하게 진행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빨라도 다음 정기 인사이동 시즌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유빈은 급하게 재무팀 팀장님께 가 이유를 여쭈었다. 하지만 팀장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셨다. 그저 상무이사님의 특별 발령이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유빈에게 축하의 말씀을 건네셨다.

“민유빈 대리, 아니 이제  과장이라고 불러야지. 축하해. 상무님이  과장 지난번 태스크 포스(Task force) 계약 성사 건이랑 어제 프레젠테이션 아주 좋게 보셨나봐. 상무님께서 영업 1팀이랑  프로젝트 하나 기획하고 계시다던데 거기  과장 중용하실 것 같더라. 이따 올라가서 상무님께 감사 인사드려. 영업 1팀 생활 잘하고. 민 과장 없이 앞으로 재무팀 꾸려가려니까 걱정이네. 인수인계 확실히 해주고 가끔 업무 협조 요청할 테니까 와서 좀 봐주고 그래.”

그 뒤로 옆에서 듣고 계시던 차장님과 과장님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유빈은 억지로 웃으며 감사하다고 답했다. 축하 인사에서 하나같이 김덕기 상무는 유빈을 잘 챙겨주는 좋은 상사가 되어 있었고 유빈은 상무이사의 은혜를 받은 복받은부하직원이 되어있었다. 유빈은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꾹 눌러 참았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부하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김 상무의 정체를 폭로해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유빈은 자신의 책상으로 와 비품실에서 가져온 상자에 영업1팀으로 가져갈 자신의 서류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러다 멀리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 대리님이 보였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딜도 팬티로 이어졌다.   대리님이 가까워지면 딜도가진동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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