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15. 하이힐에 관심 있는 (15/70)



〈 15화 〉15. 하이힐에 관심 있는

유빈이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카톡을 통해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유빈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은 걸 보게 될 것 같아 거부 버튼을 눌렀다.

카톡에서  선배를 차단했다. 페이스북에서도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의 친구신청을 받아줬던 게 후회됐다. 다시 페이스북 앱을 켰다. 그런데 또 로그아웃돼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이메일 주소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런데 유빈의 계정은 삭제돼 있었고 페이스북 가입을 유도하는 페이지로 넘어갔다.

유빈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진을 삭제하기도 전에 사진이 사라졌던 것도 이상했고, 갑자기 계정이 없어진 건 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빈은 계정 삭제를 요청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은 계정 삭제를 요청하더라도 14일 동안 유예 기간을 뒀다가 그동안 로그인하지 않으면 삭제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빈의 계정은 불과 몇 분 사이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도  수 없었다.

다시 카톡이 울렸다. 또 사진을 보고 자신에게 성매매를 요청하는 사람일까 봐 조마조마하며 확인했다.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였다. 자신을 하이데스라고 소개했다. 잊지 않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유빈의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자신이 할 말로 넘어갔다.

- 네 SNS 계정들은 내가  삭제했어. 페이스북에 올라갔던 사진은 내가 지우기 전에 5분 정도 노출됐었는데 그동안  사람은 많진 않을 거야. 그리고 방금 너랑 카톡한 그 사람이 그 사진 유포하려고 시도하길래 막았어. 그 사람 휴대폰에서 네 사진 삭제했고. 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은 직접 삭제해.  정도는  수 있지? 그리고 네가 가입한 메신저 앱들에서도 다 탈퇴했어. 바이버, 와츠앱, 라인 많이도 가입했더라. 틱톡은 왜 썼어? 난 카톡도 탈퇴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필요한 것 같으니까 그냥 둔다. 프로필 사진이랑 상태 메시지 틈틈이 확인하고 이상한  올라오면 지워.

또 하이데스라는 사람한테 도움을 받았다. 유빈은 누군지 궁금했지만 지난번에 누구냐고 물어봤다 아무런 답장이 없어서 다른 질문을 던져 보았다.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이번엔 답장이 왔다.

“네 수호천사라고 생각해.”

하이데스의 답장을 받은 유빈은 카톡으로 전화를 걸었다. 물어볼 게 너무 많았다.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또 메시지만 보냈다간 저번처럼 무시해버릴  같았다. 발신음이 가고 유빈은 하이데스가 전화를 받아주길 고대하면서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하이데스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는 자동으로 끊어졌다.

유빈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시도해 보았다. 다시 발신음을 들으며 속으로 전화를 받아달라고 빌었다. 하이데스가 받았다.

“왜.”

막상 통화가 연결되자 유빈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슨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하이데스의 목소리가 왠지 익숙했다. 벙어리가  유빈에게 하이데스가 다시 물었다.

“왜?”

유빈은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해요. 수호천사님.”

하이데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감사해야지. 너 지켜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일 당장 집안에 있는 모든 형광등 바꿔. 등만 바꾸지 말고 내부 구조까지 다. 거기에 카메라들이 설치돼 있어. 내가 손봐서 지금은 찍히는 영상들이 전송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없애버리는 게 좋을 거야. 이미 찍힌 것들은 내가 지웠는데 지우다 보니까 백업된 흔적이 있었어. 완전히 지워지진 않은  같아.”

그렇게 하이데스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들었고 자기 할 말도 다 했으니 됐다는 듯, 전화를 뚝 끊었다. 유빈은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했지만 전화를 끊은 사람한테 다시 걸어서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무언가를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하이데스의 건방진 말투와 미성의 남자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만난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꽂고 고민해 봤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도대체 누굴까?’

해커라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본명도, 나이도, 사는 곳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이데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유빈을 지켜주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지만 그 방식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자기 멋대로 유빈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속해서 게시글을 삭제하고, 심지어 계정 전체를 지워버리기까지 했다. 아직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 외에 다른 SNS 계정과 카카오톡을 제외한 모든 메신저 계정도 지웠다고 했다. 유빈은 부탁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었다. 결과를 빼고 과정만 본다면 스토커랑 별반 다를 게 없어보였다.

하이데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자 그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 그토록 유빈을 괴롭히던 몰래카메라의 위치를 말해줬었다. 유빈은 머리를 들어 형광등을 쳐다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위치였다. 형광등의 빛에 가려 카메라가 있더라도 사진이나 영상이 찍힐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이 집을 수색했을 때도 그런 생각으로 형광등까지 뒤지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유빈은 고등학교 선배가 보내 준 사진을 다시 열어보았다. 구역질이 났지만  참으며 사진의 촬영 각도를 살펴보았다. 정확히 침대 위쪽 형광등에서 자신을 내려다본 구도였다. 하이데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집에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위치를 알고 나니 유빈의 행동은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하이데스가 지금은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유빈의 공포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이데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말을 모두 믿기도 어려웠다. 형광등의 위치를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침대, 책상, 부엌, 화장실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닿는 곳은 몰래카메라가 볼 수 있는곳이라고 생각하니 집안 어디에도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유빈은 침대 위의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카메라 너머로 스토커와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았다. 시선을 돌렸다. 유빈은 회사에서 입던 옷을 그래도 입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샤워도 하고 싶었지만 선뜻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직접 형광등을 해체해볼까 고민했지만, 유빈은 등을 교체할 줄만 알았지, 한 번도 내부 구조물까지 뜯어내 보거나 직접 설치해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깊은 밤에 밖에서 들어오는 빛도 없이 불을 끄고 암흑 속에서 형광등을 통째로 뜯어낼 자신은 없었다.

불을 끄고 옷을 갈아입으면 어떨까도 고민해봤지만 저렇게 형광등 바로 옆에서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라면 빛이 없어도 촬영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언젠가 방송에서 봤던 적외선 카메라가 생각났다. 답을 찾을 수 없는 괴로움 속에, 생각이 흘러 근처 사우나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어떨까 사는 생각마저 떠올랐지만 그곳에서 만날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웠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많은 사람들을 의심했다. 또 그 중에 스토커 혹은 스토커에게 고용된 사람이 있을까 봐 무서워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유빈은 찝찝하지만 그냥 자기로 했다. 불을 껐다. 오늘의 일 때문에 내일의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 * *

다음 날 유빈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회사 대회의실로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중에는 더러 아는 얼굴도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간단한 눈인사가 오갔다.

유빈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계속 대회의실로 입장했다. 유빈은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되짚으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 자신과 페이스북 친구로 연결돼 있던 사람이 있었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오늘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어제 자신의 계정에 올라갔던 사진을 본 사람이 없길 간절히 빌었다. 그때 유빈의 눈길을 끄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김덕기 상무였다.  상무의 차가 자신을 따라왔던 일이 떠올랐고 유빈은 자신도 모르게  상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상무도 그 시선을 눈치 챘는지 유빈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유빈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답했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고 심플하고 직관적으로 디자인된 발표 자료에 유빈의 유려한 말솜씨와 능숙한 발표 기술이 더해졌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청중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김 상무와 눈이 마주쳤다. 유빈과 김 상무 둘만 인식할 수 있었던 짧은 정적이 흘렀고, 프레젠테이션이 계속됐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질의응답 시간이 찾아왔다. 유빈은 몇 개의 질문에 전체적인 발표 내용과 연관 지어 적절한 답변을 하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며 청중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다 다시  상무와 눈이 마주쳤다. 김 상무가 마이크를 켜고 발언을 시작했다.

“김덕기 상무이사입니다. 재무팀 민유빈 대리의 훌륭한 발표  들었습니다. 더 질문하실 분 없으시면 오늘 프레젠테이션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민유빈 대리, 점심시간 후에 상무실로 잠깐 들러주세요. 신발 예쁜  신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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