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 끝난 걸까 (12/70)



〈 12화 〉12. 끝난 걸까

유빈은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았지만 카톡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연결하고 화장실에 가서 입에 묻은 자장을 닦고 다시 침대에 누웠을 때 까지도 카톡은 오지 않았다. 피곤에 절어 있었던 유빈의 눈 커플이 스르르 내려왔고 아직 초저녁이었지만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유빈은 지진이 난 것 같은 기분에 잠에서 깼다. 항문에서는 플러그가 질에서는 딜도가 동시에 진동하고 있었고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휴대폰도 진동하고 있었다. 항문과 질의 진동은 그녀가 어떻게 할  없다는  깨달았기 때문일까? 유빈은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강렬한 자극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휴대폰을 먼저 집었다. 스토커가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 일어나.
- 일어나.
- 일어나.
일어나.

유빈이 답장했다.

- 일어났어요. 진동 꺼주시면  돼요?

세 곳의 진동이 모두 멎었다가 휴대폰의 진동만 다시 울렸다.

- 미니스커트 입고 상의도 예쁜 걸로 갈아입어.

잠이 덜  유빈은 멍하게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배가 아팠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유빈이 답장하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자 다시 질과 항문에서 진동이 울렸다. 배는 더욱 아파왔다. 유빈이 답장을 보냈다.

- 애널 플러그 빼고 화장실 가게 해주세요.

스토커가 답장했다.

- 뺐다 다시 넣을 거야?
- 아니야. 빼지 마. 미니스커트 입어.

유빈의 몸이 스르르 일어나 검은 치마를 벗고 연두색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미니스커트는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의 선을 간신히 가릴 정도로 짧았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꼬리는 밖으로 노출되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옷장으로 가 펑퍼짐한 티셔츠를 벗고 하얀 블라우스로 갈아입었다.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리자 복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장실에  변기에 안고 싶었다. 그 전에 항문에 박힌 플러그를 빼야 했다. 하지만 유빈은 어떻게 빼야 하는 건지도 알  없었다. 방법을  것 같은 스토커에게 부탁해보려고 휴대폰을 들었지만 이미 스토커가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 차타고 홍대 주차장 골목으로 가. 어딘지 알아?

유빈이 반사적으로 답장했다.

- 네.

어딘지 알고 있었다. 대학생 때 자주 놀러 가던 곳이었으니까. 유빈은 씻지도 않은 채 하이힐을 신고 밝은 옷과 어울리지 않는 좀비 같은 걸음으로 집을 나와 차에 탔다. 운전하는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배가 아픈 것도 자신과는 상관없어진  같았다. 그저 스토커가 시키는 대로 차를 몰아 홍대 주차장 골목에 도착했고 운 좋게 비어 있는 자리에 차를 댔다. 스토커에게 카톡을 보냈다.

- 차 위에 올라가서 꼬리 흔들면서 춤 춰봐.

같은 메시지를 세 번째 읽고 나서야 유빈은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고 뺨을 때려 정신을 깨웠다. 이건 따라서는  되는 지시였다. 지하철에서의 악몽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그녀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했고 그때 하이데스라는 사람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유빈은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사람들은 홍대로 몰리고 있었고 그 사람들 앞에서 차에 올라가, 그것도꼬리를 흔들며 춤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딜도와 플러그의 진동이 켜지기라도 하면 유빈은  백 명의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사진이 찍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인터넷을 떠돌 것이다. 하이데스라는 사람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유빈은 어금니를 깨물고 답장을 보냈다.

- 안 돼요.

답장이 오길 기다렸다. 또다시 죽이겠다고 협박하더라도 이건 반드시 거절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읽었다는 표시도 뜨지 않았다. 유빈은 의아하게 느끼며 주차 요금을 냈다. 자신의 꼬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고 황급히 차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카톡을 기다렸다. 여전히 읽음 표시도 없었다.

지금까지 스토커가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뭐가 그렇게 다급하고 초조했는지 여러 개의 카톡을 한 번에 보내며 유빈을 재촉하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갔다. 10분, 20분, 30분……. 카톡은 유빈이 처음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대로였다. 유빈은 맥이 풀렸다.

‘스토킹이 끝난 걸까?’

유빈은 자신의 추측이 맞길 간절히 빌며,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 골목을 빠져나왔다. 어쨌든 스토커가 다시 같은 명령을 내리더라도 결코 따를  없었다. 유빈은 조심스럽게 홍대  인파를 해치고 도로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복통이 점점 심해져 왔지만 공중화장실에서 애널 플러그를  자신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스토커는 유빈의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유빈은 악전고투 끝에 플러그를 뽑고 대변을 보았다. 시원했다. 상쾌한 기분을 내기 위해 집을 청소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와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스토커는 유빈의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새로운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팬티를 입으려던 유빈은 자신의 손이 무심결에 딜도 팬티를 집어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딜도 팬티를 들고 있는 손은 자신의 손이 아닌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약 정말로 스토킹이 끝난 거라면 이제 입지 않아도  물건이었다.

혹시나 하고 한 번 더 카톡을 확인했다. 스토커는 카톡을 보내지 않았다. 딜도 팬티를 내려놓았다. 마치 오래 전에 친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느낌으로 예전에 입던 팬티를 꺼내 입었다. 잠옷을 입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유빈이 사는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한 남자가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적외선 카메라 영상으로 유빈이 잠들어있는 모습이 떠있었다. 남자가 흐뭇하게 웃었다. 남자가 키보드를 조작하자 화면에 유빈이 벗어놓은 딜도 팬티와 꼬리가 잡혔다. 남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뒤로 남자는 한참 동안 어려 대의 컴퓨터와 다른 기기들을 조작하다 컴퓨터를 끄고 유빈이 사는 아파트에서 빠져나갔다.

* *


다음 날 유빈은 기상 알람에 잠에서 깼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움직여 휴대폰을 집어 카톡을 확인했다. 통의 카톡이 와 있었다. 유빈은 긴장하며 카톡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토커가 아니었다. 대학생  어울려 다니던 친구가 보낸 안부 메시지였다.

유빈은 친구에게 답장하는 걸 잠시 미루고 자신이 스토커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스토커는 읽지 않았다. 유빈은 너무 기뻐 침대에서 일어나  안을 깡충깡충 뛰며 돌아다녔다. 한편으로는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간의 일들을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다.

유빈이 뜀박질을 멈췄다. 돌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스토킹이 갑자기 멈춘 이유를  수 없었다. 언제 스토킹이 다시 시작될지, 스토커가 무슨 계획을 짜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뒤쪽에서 전기에 대인 듯한 불쾌한 느낌이 올라왔다. 어제 플러그를 억지로 뽑아냈던 항문이 쓰라려왔다. 피가 많이 났었다.

어쨌든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유빈은 직장인이었다. 출근해야 했다. 세면대에서 얼굴과 머리를 정리했다. 옷을 갈아입을 차례였다.

딜도 팬티는 입지 않기로 했다. 팬티와 브라의 색을 맞춰 입고 그 위에 평소에 즐겨 입던 하늘색 치마와 흰색 셔츠를 입었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 앞에 서서 하이힐을 보며 잠깐 고민했다.

하이힐은 신기로 했다. 스토킹이 끝났다는 기쁨과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마음처럼 뒤죽박죽인 패션이 되었지만, 출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대로 출근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그런데 검은 고급 세단 한 대가 그녀의 집 근처에서부터 계속 유빈의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유빈은 룸미러와 사이드 미러로 흘깃흘깃 그 차를 쳐다봤지만 까맣게 코팅된 창문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토커가 이제 누군가를 보내거나 카톡을 보내는 대신 직접 따라다니기로  걸까?’

어쩌면 진짜 스토킹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가슴 한 구석에 있던 불안감이 커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워졌지만, 머리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출근 시간대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가 있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빈은 가슴의 말을 들어야 할지 머리의 말을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더 운전했고 사거리도 지났지만 그 검은색 세단은 계속 유빈의 뒤에 있었다. 유빈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룸미러로 비치는 검은색 세단의 번호판을 확인했다.

‘52 라 4416’ ‘52 라 4416’ ‘52 라 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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