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0. 서두르고 있었다
천장을 보던 유빈의 시야가 흐려져 왔다. 잠에 들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유빈은 눈을 깜박여 시야를 회복하고 나가기 전 침대 위에 던져두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꽤 많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 휴대폰 가지고 나가.
- 민유빈!
- 휴대폰 왜 놓고 나가!
유빈이 조깅하러 나가기 전에 왔던 메시지들이었다. 유빈은 스토커가 왜 이렇게 휴대폰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메시지는 계속 전송되고 있었다.
- 옷 벗어.
- 다시 시작해야지.
- 빨리.
카톡 너머로 스토커의 초조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유빈은 지금까지 스토커가 이렇게 서두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유빈이 답장했다.
- 이따 다시 연락주세요. 샤워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돼요.
사실이었다. 유빈의 옷은 땀에 절어 있었고 아침도 점심도 못 먹었다.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에 파니니를 먹기로 했던 계획은 어디선가 칼을 들고 나타난 남자 때문에 무산되었다.
스토커의 답장이 도착했다.
- 안 돼. 밥 먹을 시간 없어. 샤워만 하고 나와. 빨리.
유빈은 거부하려고 했다. 너무 배고파서 손가락을 움직여 카톡을 보내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스토커는 유빈이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진 하나가 전송되었다. 계천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봤던 사진과는 다른 새로운 사진이었다.
남자는 칼을 뽑아 들고 혀를 내밀어 날을 핥고 있었다. 계천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 죽음의 두려움이 유빈을 엄습했다. 단순히 죽일 거라는 말을 듣는 것과 실제로 살해당할 뻔했던 건 다른 차원의 공포였다.
더 이상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고 손은 멋대로 움직여 스토커가 말했던 대로 옷을 벗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또 카톡이 잔뜩 와있었다.
- 관장부터 다시 해.
- 300mL만 빨리.
- 5분만 참아.
죽음의 공포는 관장의 공포보다 컸고 유빈은 어젯밤의 기억을 되짚어 주사기에 물을 채우고 항문을 통해 자신의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5분을 기다렸다 변기에 앉았다. 어제 완전히 장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도 몇 개의 덩어리가 나왔다. 손을 씻고 휴대폰을 보니 역시나 스토커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 싸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 꼬리 세워서 그 위에 항문 대고 앉아. 아파도 엉덩이가 바닥에 닿게 앉아.
유빈은 꼬리가 달린 애널 플러그를 바닥에 세워보았다. 뒤에 꼬리가 달려 있어 잘 서지 않았다. 쓰러지려는 플러그를 손으로 잡았다. 그 위에 항문을 대고 앉는 상상을 해 보았다. 반복된 관장으로 항문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것 자체는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애널 플러그를 넣는 건 자신이 없었다. 유빈의 주먹 반 만한 크기의 플러그 머리는주사기 입구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컸다.
플러그 끝 부분을 손으로 꼭 붙들고 그 위에 쪼그려 앉아 항문을 대 보았다. 금속의 차가움이 느껴졌고, 유빈은 흠칫하며 다시 일어섰다. 플러그가 따뜻해지길 바라면서 손으로 금속 부위를 쥐었다. 잠시 후 손바닥에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시도해 보았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플러가는 차가웠다.
흠칫 놀라 다시 일어서려다가 무게중심을 잃었다. 유빈은 엉덩방아를 찧었고 플러그는 유빈의 항문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하지만 충분히 벌어지지 않은 항문에 플러그 전체가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플러그가 튕겨지듯 다시 빠져나왔다. 항문이 찢어진 것 같았다. 유빈은 바닥을 보았다.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휴지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항문에 댔다 뗐다. 피가 배어 나왔다. 다시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었다. 스토커에게 카톡을 보내려고 했지만, 이미 유빈이 실패한 것을 지켜보았는지 스토커가 먼저 카톡을 보냈다.
- 안 돼?
- 차근차근 하자. 차근차근.
- 2번 딜도 가져와서 세우고 그 위에 앉아.
유빈은 2번 딜도가 뭔지 고민했다. 스토커는 어제처럼 조곤조곤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았다.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었다. 고민하던 유빈은 어제 상자에서 꺼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5개의 딜도가 보였다. 2번딜도는 그 중 두 번째로 굵은 딜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스토커가 시키는 대로 딜도를 세웠다. 조금 전 항문이 찢어졌던 고통이 생각나 상자에 들어 있던 젤을 열어 딜도 끝에 바르고 그 위에 항문을 댔다.
유빈은 심호흡하고 엉덩이를 내렸다. 체중에 항문은 벌어졌고 딜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한 번 찢어졌던 항문이 다시 찢어지는 고통은 극심했고 유빈은 딜도를 넣은 채로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유빈이 숨을 몰아쉬며 헉헉대고 있었음에도 카톡은 다시 울렸다. 항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일어설 수도 없었던 유빈은 네 발로 기어가 카톡을 확인했다.
- 잘했어.
- 말 안 해줬는데 젤도 쓸 줄 아네.
- 2번 딜도 뽑고 4번 아니 5번 딜도로 다시.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고통이었다. 유빈은 스토커가 말한 가장 굵은 딜도를 흘깃 보았다. 애널 플러그와 비슷한 지름의 5번 딜도는 도저히 항문에 넣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타협을 시도해야 했다. 유빈이 답장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면 안 될까요?”
스토커의 답장은 빨랐다.
- 안 돼.
- 내가 도와줄게. 딜도 말고 질경 넣어봐.”
유빈은 질경이 뭔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다시 카톡이왔다.
- 새 부리처럼 생긴 거.
- 쇠로 된 거.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산부인과에 갔을 때 의사가 질 안 쪽을 관찰하기 위해 질에 삽입하고 벌리던 그 도구였다. 유빈은 질경을 가져와 양손으로 꼭 쥐었다. 몸 안에 차가운 것을 집어넣고 싶지 않았다. 질경을 양손으로 꼭 쥔 채 유빈이 고민했다.
질경을 삽입하기 위해선 이미 항문에 있는 딜도를 빼야 했다. 어떤 자세로 빼야 덜 아플지 고민하다가 관장할 때처럼 누워서 다리를 천장으로 든 자세를 취하기로 했다. 딜도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딜도는 쉽게 빠지지 않았고 넣을 때와는 달리 장이 뒤집혀 빠져 나오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다. 조금씩 빼야 했다.
한참 후 빠져나온 딜도를 본 유빈은 아연실색했다. 딜도는 온통 피범벅이었다. 급하게 휴지로 항문을 막았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피로 뒤덮인 딜도는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화장실 세면대에 던져 놓았다.
유빈은 화장실에서 나와한 손으로는 항문을 막고 있는 휴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았다.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 바닥에 놓아두었던 질경을 다시 바라보았다. 질경은 다시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항문에 넣을 자신이 없었다. 질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잔뜩 찢어져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항문에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스토커에게 다시 카톡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또 자신 아니면 소중한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질경을 다시 손으로 잡았다.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젤을 발랐다. 그리고 심호흡하고 그 위에 앉았다. 다시 심호흡하고 체중을 이용해 질경을 항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익숙해지기 힘든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이 또다시 몰려왔고, 유빈은 옆으로 쓰러졌다. 닦아 놓은 바닥은 다시 피에 젖었지만, 질경은 항문 안으로 들어갔다. 유빈은 네 발로 기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카톡이 와 있지 않았다. 대신 항문에 삽입된 질경이멋대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빈은 깜짝 놀라 질경을 만져 보았다.
‘이것도 원격조종 되는 거야?’
고통은 점점 심해졌지만 유빈은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눈으로 직접 봐야 했다. 네 발로 기어 거울 앞으로 가 자신의 항문을 보았다. 진짜로 질경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고 거울로는 피가 범벅된 자신의 항문 안쪽이 보였다.
질로 피가 스며드는 것도 보였다. 유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게 거울만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벌어지던 질경이 확장을 멈췄고 카톡이 울렸다. 여전히 고통 때문에 일어설 수 없었던 유빈은 이번에도 네 발로 기어가서 확인해야 했다.
- 꼬리 넣을 준비해.
유빈은 그만하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꼬리를 넣는다면 이게 마지막 단계일 것이었다. 그것이 소중한 무엇이기라도 한 것처럼 꼬리에 달린 애널 플러그를 양손으로 붙잡아 데우고 젤을 발랐다.
피가 날 것을 알았기에 휴지도 미리 준비했다. 유빈이 준비를 마치자 질경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확장할 때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작아졌다. 질경이 원래 크기로 돌아오자 카톡이 왔다.
- 빼고 넣어.
- 빨리.
유빈은 질경을 빼고 애널 플러그를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위로 항문을 대고 앉았다. 이미 질경에 한껏 확장되어 있던 항문 안으로 플러그가 쏙 들어갔다. 다시 피가 났고 유빈은 준비해 뒀던 휴지로 재빨리 닦았다.
스페이드(♠) 모양의 애널 플러그 머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항문은 다시 수축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줄어들 때 쯤 스토커가 카톡을 남겼다.
- 잘했어.
- 빼지 마.
유빈은 빼지 말라는 말은 굳이 안 했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걸 잡아당겨 빼려고 했다간 플러그의 머리가 다시 항문을 찢어 엄청난 고통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뺄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