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7. 꼬리, 애널 플러그, 사이즈 小
유빈은 머뭇거리다가 상자 포장을 뜯었다.
상자 안에는 유빈이 처음 보는 물건이 들어 있었다. 스페이드(♠) 모양의 금속 돌기의 아래에 동물의 꼬리처럼 보이는 털 뭉치가 길게 늘어져 달려 있었다.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없어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다시 카톡이 울렸다.
- 상자 아래에 설명서 있어.
상자에는 그 외에도 몇 가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더 들어 있었다. 유빈은 그 물건들을 해치고 상자 바닥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꼬리 애널 플러그 (사이즈: 小)’
애널 플러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유빈은 설명서를 읽어보았다.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 그 해괴한 물건의 사용 방법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사용 방법은 복잡하지 않았다. 스페이드 모양의 돌기를 항문에 삽입하면 털 뭉치가 유빈의 꼬리처럼 보이게 되는 물건이었다.
유빈이 항문 성교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무언가를 넣는 구멍이 아니라 무언가가 나오는 구멍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넣었다 뺐다 하기엔 더러운 구멍이었다.
자신의 항문에 들어갈 거라고 예고된 저 은색 돌기를 보고 싶지 않아 손으로 가렸다. 차가웠다. 혐오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살짝 손을 떼고 은색 돌기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유빈의 주먹 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저렇게 큰 게 자신의 항문에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시 손으로 덮어 플러그를 가렸다. 그러다문득 설명서에 적힌 말이 생각났다.
‘사이즈: 小’ 이게 작은 사이즈라니 유빈은 믿을 수 없었다. 스토커가 점점 더 큰 사이즈를 넣으라고 요구할 것 같아 두려웠다. 유빈의 정신이 아득해져가고 있을 때 손으로 덮어 놓았던 플러그에서 진동이 시작되었다. 유빈은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저게 자신의 항문에 들어가 진동까지 할 거라는 생각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카톡이 도착했다.
- 내일부터 저걸 넣는 훈련을 할 거야. 토요일이니까 온종일 할 수 있겠다. 아직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서 사이즈는 작은 걸로 준비했어. 꼬리는 담비 꼬리로 디자인했어. 너랑 잘 어울릴 거야.다른 물건들도 구경해 봐. 내일부터 써야 할 것들이야.”
유빈은 애널 플러그를 다시 넣고 상자를 덮었다. 이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항문에 무언가를 집어넣는다는 게 너무나 더럽고 혐오스러웠다. 게다가 ‘꼬리’라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동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유빈은 스토커의 말대로 딜도 팬티를 입고 다닌 자신을 저주했다. 이런 변태 같은 요구는 처음부터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그만두어야 했다. 유빈은 딜도 팬티를 벗었다. 그리고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샤워기를 끄자 화장실 밖에서 진동음이 들려왔다. 황급히 수건을 꺼내 몸을 닦고, 화장실에서 나와 어디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유빈이 덮어 두었던 상자였다.
유빈은 수건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다시 열어 보았다. 애널 플러그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 진동은 상자 안 다른 물건들에 전해지며 둔탁하게 바뀌어 집 전체에 울리고 있었다. 스토커는 유빈이 애널 플러그삽입을 거부하기로 한 걸 벌써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유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상자를 적셨다. 눈에 고여 있던 눈물도 상자로 떨어져 내리며 상자에 점을 찍었다.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 상자 옆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토커에게서 사진들이 전송되고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회식 날 화장실 칸을 넘어 들어와 유빈에게 죽음을 경고했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두 번째 사진부터는 유빈 주변의 인물들이 찍혀 있었다.
부모님, 여동생, 친구, 직장 동료들. 하나같이 도촬된 듯 사진 속의 인물들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고 촬영 각도도 이상했다. 지난 번 스토커가 보냈던 유빈과 유빈이 아는 사람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메시지를 떠올린 유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십여 장의 사진이 전송되고 나자 스토커가 메시지를 남겼다.
-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 확인해 봐.
그 뒤에 생략된 말은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
유빈은 머리도 눈물도 닦지 못한 채, 상자를 열어 물건들을 꺼내 확인했다. 다시 보아도 익숙해질 수 없는 동물의 꼬리가 달린 애널 플러그, 크기가 다른 딜도 5개, 러브젤 한 통,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가루가 담긴 커다란 물통 2개, 유빈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주사기, 두꺼운 유리로 된 큰 그릇 하나,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환자의 질을 벌릴 때 쓰는 새 부리 모양의 도구 (질경), 그리고 유빈이 입었던 것과 같은 딜도 팬티가 3장 더 들어 있었다.
유빈은 그중 그나마 가장 익숙하면서도, 크기 때문에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던 주사기를 들어 눈금을 확인해 보았다. 눈금의 끝에 500mL라고 쓰여 있었다. 이 주사기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딜도 팬티도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딜도의 크기는 그녀의 엄지손가락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입었던 과는 다른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엉덩이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 밤도 좋고 샤워도 했는데 조금 일찍 시작하지.
유빈은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것들이 뭔지 설명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스토커는 유빈의 의사는 어찌됐든 상관없다는 듯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 옷 입지 말고 통에 든 가루 그릇에 조금 붓고 그릇에 물 가득 채워 와.
옷을 입지 말라는 스토커의 메시지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밖에서 들려온 바람 소리 때문이었을까? 유빈은 여름 날 때 아닌 추위를 느꼈다. 유빈의 눈길이 박스에서 꺼내 놓은 하얀 가루가 든 통과 그릇으로 향했다. 마음은 스토커의 말을 듣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팬티에 달린 거대한 딜도를 삽입했던 그때처럼 공포에 질린 몸이 스스로 움직였다.
통 뚜껑을 열고 하얀 가루를 그릇에 부었다. 떨리는 팔 때문에 생각보다 가루가 많이 들어갔다. 입구가 좁은 통에 가루를 다시 넣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엌 싱크대에 가서 그릇에 물을 채웠다. 하얀 가루가 물에 녹았고 유빈은 조심스럽게 그릇을 들고 다시 상자 옆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다시 카톡이 울렸다.
- 주사기에 채워. 100ml.
유빈의 손이 주사기를 들고 꼭지를 물에 담갔다. 피스톤을 뒤로 잡아당기자 그릇의 물이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주사기를 처음 써보는 유빈은 제대로 조절하지 못했고, 100mL를 한참 넘은 눈금까지 물이 차올랐다.
스토커는 유빈의 행동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있었는지, 주사기에 물이 다 차오르고 그녀가 주사기를 그릇에서 빼자마자 카톡을 보냈다. 다음 지시는 상세했다.
- 1. 바닥에 누워서 천장으로 다리를 들어.
2. 주사기 끝을 항문에 넣어.
3. 피스톤을 밀어 넣어.
4. 액체가 다 들어가면 주사기를 빼.
5. 참아.
이제부터 내가 관장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유빈은 바닥에 누워 다리를 들었다. 유빈의 눈에 자신의 떨리는 발끝이 들어왔다. 하고 싶지 않았다. 항문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했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루가 섞인 물을 자신에 몸 안에 넣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스토커의 말을 따른다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것만 같았다.
유빈의 다리가 다시 내려왔다. 주사기를 내려놓았다. 휴대폰을 들고 카톡을 보냈다.
- 못 하겠어요.
답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빈의 여동생 사진이 전송되었고 상세한 프로필이 뒤따랐다. 그다음 대학생인 동생의 시간표가 전송됐다. 유빈은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다시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카카오톡 스크롤을 올려 스토커가 보낸 지시사항을 다시 확인했다. 다리를 올리고 주사기 끝을 항문에 갖다 댔다. 차가운 플리스틱이 닿자 유빈의 항문은 움찔했고 천장을 향한 다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유빈이 눈을 질끈 감고 주사기 끝을 항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주사기 끝이 유빈의 몸 안에 파묻혔다. 유빈이 다시 눈을 뜨자 떨리는 자신의 다리가 보였다. 주사기를 빼고 싶었다. 그럴 수 없었다. 스토커의 말을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다음 단계는 피스톤을 밀어 액체를 항문에 주입하는 것이었다. 유빈은 왜 이걸 하는 것인지 이게 무슨 결과를 낳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피스톤 끝으로 손을 가져갔다. 주사기는 길었고 피스톤에 손이 잘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머리 위로 젖혔다. 피스톤 끝에 손바닥을 대고 힘껏 밀었다. 처음에는 유빈의 항문이 이물질을 거부했고 몇 방울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와 유빈의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