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 통금 10시, 대답? (3/70)



〈 3화 〉3. 통금 10시, 대답?



다음  유빈은 입술을 깨물며 일어났다.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지하철에서 보자는 스토커의카톡은 무시하기로 했다. 자동차를 타고 출근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우체국에 들러 스토커가 보낸 택배 상자를 통째로 반송했다. 그리고 온라인 주문 대신 직접 호신용품점에 가서 전기 충격기와 캡사이신 스프레이를 구매했다.

퇴근 시간이 됐지만, 스토커의 손길이 미치는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마침 유빈이 속한 재무팀 회식 날이었다. 오랫동안 머무를 요량으로 회식에 참여했다.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회식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지난번 큰 계약 성사 건으로 재무팀 팀장님이 한우를 쏜다고 하셨고 모두가 환호했다. 법인 카드로 결제할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구태여 그걸 지적해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은 없었다.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술잔을 채웠다. 건배를 외치고 술잔을 비우고 다시 채웠다. 몇 바퀴가 돌고 나자 재무팀 직원들은 각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빈의 옆에 앉아 있던 입사 동기 미정은 이번 계약 성사에 유빈이의 공이 컸다며 부러워했다. 유빈은 적당한 미소를 지어주며 흘려들었다. 유빈에겐 계약 성사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건배가 서너 번 더 돌자 미정이는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하나 둘씩 자리를 떴고 회식 자리에는 술을 사랑하는 상사들과 그 상사분들께 아부 한번 떨어서 라인  번 타보려는 부하직원들, 그리고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빈이 앉아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주식으로 넘어갔다. 재무팀 차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본인이 주로 투자하는 종목인 컴퓨터 보안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꺼냈다. 유빈은 컴퓨터 보안이라는 말에 지난번 스토커에게 해킹당했던 자신의 컴퓨터를 떠올렸다. 팀장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한 회사가 엄청난 자금 손실을 감수하면서, 심지어 편법까지 저질러 가면서 인수합병을 감행하여 컴퓨터 보안 업계의 통일을 노리고 있다고 하셨다. 그 뒤로 공정거래라든지 반독점법이라든지 하는 복잡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주가가 오르느냐 마느냐 아니면 떨어지느냐 하는 유빈의 관심사와는 먼 이야기로 주제가 흘러갔다.

유빈의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다. 컴퓨터 보안이라는 말에서 해킹당했던 컴퓨터로 이어진 생각은 애써 무의식 저편으로 밀어 두었던 스토커로 이어졌다. 마셨던 술이 깼다. 유빈이 소주병을 집어 들어 자신의 잔에 따르려는데 옆에서 부장님 장단을 맞춰 주던 오 대리님이 유빈의 손목을 잡았다.

“유빈 씨, 괜찮아?  마실  있겠어?”

유빈은 또 거짓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한 잔 더 주시겠어요?”

그렇게 유빈은  대리님의 잔을 받았다. 그리고 직장 회식이 으레 그렇듯 대리님의 술을 받은 유빈은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의 술을 차례로 받아 마셔야 했다. 유빈은 버티기가 힘들었다. 토하고 싶었다. 적당히 안주를 집어먹는 척한 뒤,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다.

유빈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치마를 내린 뒤 변기 위에 앉았다. 토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머리를 움켜쥐고 망설이고 있을 때, 바깥에서 나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렸다. 뚜걱뚜걱. 남자 구두소리였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서도 들려서도 안 되는 소리였다.

유빈은 바짝 긴장했다.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고, 여자 화장실에는 유빈 혼자 있였다. 유빈은 화장실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했다. 이상은 없었다. 남자 구두 소리가 유빈의 옆 칸에서 멈췄다. 그리고 옆 칸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유빈은 소름이 돋는 팔을 쓸어내리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변기에서 일어났다.

유빈이 미처 치마를 다 올리지도 못했을 때 그녀의 위쪽에서 화장실 전등을 가리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남자가 옆 칸 변기를 딛고 서 그의 얼굴을 유빈이 있는 칸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윤곽선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얼굴엔 여드름인지 종기인지  수 없는 붉은 반점들이 잔뜩 돋아나 있었고, 눈은 가로가 아닌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악마 같은 남자의 모습을 본 유빈은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순간 남자가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다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자신의 목을 가로로 그었다. 남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조용히 해. 아니면 죽어.’

유빈은 너무 무서웠다.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남자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 수도 없었다. 남자가 팔을 뻗는다면 유빈의 얼굴에 손이 닿을 거리였다. 남자는 서서히 유빈이 있는 칸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유빈은 가방에 넣어두었던 전기 충격기가 생각났다.

‘다 넘어오기 전에 꺼낼 수 있을까? 꺼내다가 실패하면 진짜로 나를 죽일지도 몰라.’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유빈이 가방을 흘끔 쳐다보았을 때 남자는 이미 칸을 넘어와 유빈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남자가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한 손으로 유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입술을 유빈의 귀에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야. 나한텐 아무것도 물어볼 생각하지 말고 그냥 들어.”

징그러운 입술 주름이 귀를 기어 다니는 느낌에 유빈의 온몸이 소름으로 뒤덮였다. 유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눈물이 터져 나왔고 고개는 끄덕여졌다.

“지금 집으로 들어가. 오늘부터 네 통금시간은 밤 10시야.”

유빈은 저항 한  못 해보고 자꾸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자신의 목이 야속했다.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집에 들어가면 네가 받았던 선물이 다시 도착해 있을 거야. 내일부터 그걸 입고 다니는 거야.”

선물이라는 말에 유빈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설마 그 하이힐과 이상한 팬티?’

남자의 실뱀같이 얇고 징그러운 입술이 계속해서 유빈의  위에서 더러운 춤을 추었다.

“잘 들어. 너는 오늘 죽을 수도 있었어. 네가 살아있는 건 나를 보낸 사람이 너를 살려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야.”

유빈은 남자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죽음과 삶 사이에서의 선택은 명확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눈에서 눈물은 더욱 펑펑 쏟아져 나왔고, 차마 삼킬 수도 없었던 침과 함께 그녀의 입을 막고 있는 남자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남자는 유빈의 귀에서 입술을 떼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오늘 내 일은 끝났고 네 입에서 손을 뗄 거야. 소리는 지르지 않는  좋아. 그랬다간 너는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야. 집에 가고 싶지? 대답?”

남자가 손을 뗐다.

“네.”

유빈은 그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침과 눈물로 범벅이  손을 유빈의 가슴팍에 문질러 닦고는 화장실 문을 열고 유유히 사라졌다. 유빈은 억울했다. 왜 그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고 싶었다.

유빈은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토커에게서 온 메시지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반복되는 오타를 수정해 가며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 살려주세요.

답장은 빨랐다.

- 집에 들어가.

유빈은  묻고 싶었다. 대체 누구냐고, 자신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원하는 게 뭐냐고. 이 스토커가 원하는  줘버려서라도 이 악연을 끊고 싶었다. 하지만 유빈이 한 번 더 메시지를 입력할 기회는 없었다. 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 통금 시간 밤 10시. 이미 많이 늦었다. 더 늦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유빈이 집에 도착하자 문 앞에는 지난번에 받았던 것보다 훨씬 큼지막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가지고 들어온 유빈은 떨리는 손으로 포장을 뜯어냈다.  안에는 하이힐 한 켤레와 유빈의 국부로 들어갈 남자 성기 모양의 돌기가 붙어 있는 검은색 팬티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개수가 달랐다. 이번엔 3개였다. 유빈이 넋 놓고 상자 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카톡이 울렸다.

- 속옷은 여러 벌 필요할 것 같아서 조금 더 넣었어. 입어봐. 마음에  거야.

유빈은 선물 받은 옷을 입고 다니라고 했던 화장실 치한의 말이 생각났다. 입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팬티를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번에 분명히 두 눈으로 확인했다. 조작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불빛을 내면서 진동하는 기능도 있었다. 저런 걸 자신의  안에 넣고 싶지 않았다.

불현 듯 화장실에서 엄지를 치켜세우고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던 악마 같은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어야만 했다. 유빈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눈물을 삼켰다.

‘이걸 입지 않으면 죽는다.’

유빈의 머릿속은 폭풍 같은 고민에 휩싸였지만, 생존 본능에 그녀의 손은 멋대로 움직여 걸치고 있던 옷을 하나하나 벗겼다. 어느 세 딜도(모조 남성 성기)가 달린 팬티 하나가 나체가  유빈의 손에 들려있었다. 유빈은 딜도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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