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1부 꽃이 지는 밤 - 꽃이 지다(3)
"내가 나쁜 놈이긴 해요 흐흐... 나잇살 처먹고 마누라 멀쩡히 두고 나이 어린 처남댁을 존나게 따먹은 놈이죠 내가! 흐흐... 나도 내가 존나 천하의 개새끼인거 압니다. 안다고! 흐흐.."
-...시매부...
자조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영길을 보며 은영은 영길이 이야기의 끝을 맺기를 기다렸다.
"...날 끝까지 원망하세요. 처남댁...흐흐"
-...시매부...
영길이 기어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나도 끝까지 천하의 개새끼가 될테니까...흐흐..."
-...그러면...
은영이 예상한 결론이기는 했다. 다만 생각보다 덤덤한 자신에 그녀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관계라는 건가요..."
-처남댁. 뭐 우리가, 서로 연애하는 건 아니잖아요? 흐흐...
영길과 은영은 시매부와 처남댁의 관계였다.
"처남댁은 재준이 와이프, 나는 연수 서방. 그런데 서로 좋다고 짐승마냥 떡이나 치는 사이죠. 존나 미친 것처럼...흐흐..."
-...
은영이 영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영길의 말이 맞았다.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둘은 서로 몸을 섞는, 소위 '더러운' 관계. 애초에 살을 섞어서도 안 되었고, 더욱이 설렘을 느껴서는 안 될 관계였다.
이미 그들은 선을 넘은지 오래였다.
"...그런..거죠..."
-예. 어차피 뭐... 흐흐...
은영은 여전히 재준을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다만 그녀의 몸은...
'...혼란스러워...'
은영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영길이 그녀의 등을 받치며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서로 맞닿아 있던 둘 사이에 다시 거리가 생겼다.
"....그래도..."
은영이 망설이며 입을 뗼 듯 말 듯 하자 영길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더,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흐흐."
-...그러니까...
은영이 눈을 질끈 감고 겨우 입을 열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소중히 대해주세요..."
-그... 예에?
은영의 입 속을 계속 맴돌았던, 꼭 하고 싶었던 말.
영길이 순간 당혹해하다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은영을 바라보았다.
"...그것도 어려운가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은영의 시선을 끝까지 마주하지 못하고 영길은 위로 고개를 돌렸다.
보름달만 시리게 밝았다.
"흐흐...소중하게...소중하게라..."
영길은 은영의 말을 곰씹는듯 했지만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날이, 춥네요..."
은영이 천천히 몸을 당겨오며 영길의 품을 찾았다.
영길의 팔은 그녀의 등을 안아주지 않고 그녀의 원피스 앞섶의 단추를 하나 하나 풀어 내려갔다. 투박한 손이 닿음에 따라 얇은 실크브라 너머로 달덩이마냥 새하얀 젖가슴이 이따금씩 출렁이며 빛을 산란하는듯 했다. 얇은 브래지어 끈은 젖가슴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면서 은영의 젖을 한데 모아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은영이 영길의 허리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그녀의 젖이 영길의 가슴팍에 터질듯 짓눌렸다.
영길이 은영의 허리 아래로 손을 뻗었다. 허벅지의 보드라운 살결을 느끼며 더 깊이 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사타구니를 덮고 있는 보드라운 촉감의 얇은 천은 이미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천에 손가락을 걸어 옆으로 젖히자 열기가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뜨겁고 습한 늪지대에 닿았다. 용암처럼 뜨거운 물결이 영길의 손가락을 삼켰다.
"흐읏..."
은영의 속살은 이미 축축해져서는 끝을 알 수 없는 늪과도 같이 손가락을 집어삼키고 오물거렸다.
[찹...찹...찹...]
영길의 손가락이 그녀의 질구를 들락날락할 때마다 추잡한 물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은영이 그녀의 은밀한 곳을 희롱하는 영길의 손목을 잡고는 도리어 허리를 앞으로 바싹 당겨왔다.
"더...더....읏...."
영길의 손이 더욱 깊게 그녀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갔다. 질벽이 전율하며 손가락을 연신 휘감고 매달렸다.
투박한 손가락이 그녀의 질 내부를 거칠게 휘저으며 삽시간에 은영의 전신을 쾌락의 파도로 인도하고 있었다.
"흐윽...영길씨....으윽..."
영길의 팔을 감싸안고 소중한 곳을 내맡긴 은영의 담담한 얼굴, 빛을 잃은 눈가로 투명한 액체가 한줄기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야심한 새벽,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놀이터.
청초한 미인이 스스로 사내에게 몸을 열고 쾌감에 허덕이는 처연한 광경.
밤하늘에 떠오른 달만이 숨죽이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연재는 애써 책을 보려다 결국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와 타협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었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었다.
그런데 인기척에 돌연 잠이 깨었다가 샤워를 마친 은영의 뇌쇄적인 모습을 보고 말았다.
공부를 하려 할 때면 미친듯이 몰려오던 잠이 다 어디로 갔는지 너무나 쌩쌩했다. 연재는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며칠 전 꿈만 같았던 은영과의 정사가 뇌리에 떠오르며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너무도 착하고 배려심 있는 담임선생님이지만 집에서는 그리 가깝지 못한, 사람이 이보다 더 예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여신이지만 욕정을 감히 품어서는 안 되는 가족.
그러나 자신의 첫경험을 이끌어준 여자. 김은영.
'하필 훔쳐보다 걸리다니...'
은영과 눈이 마주친 후 후다닥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덮었지만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왜 자신은 비겁하게 훔쳐보았단 말인가. 수치심에 발버둥치고 싶었지만 그나마도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 싶어서 차마 하지도 못하고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후회만 하고 있었다.
[딸깍]
현관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닫히는, 작은 소리가 연재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지? 누가 들어왔나? 이 시간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세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숨죽인 채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바깥의 움직임을 살피는데 거실을 오간다든가 하는 인기척은 없었다.
몇 분을 더 기다렸지만 더는 인기척이 없자 연재가 살금살금 밖으로 걸어나왔다.
여전히 어둡고 조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길연수 내외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지만 방은 텅 비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내일 오는데 아빠는 아예 안 들어온건가...?'
자신이 잠든 새에 영길이 들어왔다가 방금 전 나간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망나니 아빠라도 이 꼭두새벽에 굳이 집을 나갈 이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설마...'
연재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고 믿으면서도, 연재는 어느새 소리죽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푸우우....푸우우..."
재준과 은영의 방 앞. 방문은 아주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재준의 듣기 싫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지...아닐거야...'
연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틈새로 가져다댔다.
커튼이 젖혀져 달빛이 환하게 비추이는 침대 위에는 아까와 달리 이불을 덮고 세상 모르고 잠든 재준, 그리고 옆에는 곤히 잠든 은영이
없었다.
'...선생님이 나갔다고?'
샤워까지 한 은영이 이 새벽에 집을 나간다? 그럴 리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갈 곳도 딱히 생각하기 어려웠다.
황급히 몸을 돌려 뛰듯이 현관으로 향했다.
은영의 신발이 없었다.
"선, 선생님..."
연재가 황망한 표정이 되어서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생님에게 별일이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오만 생각이 연재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왜...왜 나가신 거지...'
잠이 오지 않아 바람이라도 쐬러 간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영길마저도 집에 없다는 사실이.
재준은 술에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져 있다는 사실이.
잊지 못할 그날 밤이 떠오르는 상황에 연재의 온몸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선생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