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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1부 꽃이 지는 밤 - 꽃이 지다(1) (91/109)



〈 91화 〉1부 꽃이 지는 밤 - 꽃이 지다(1)

[쏴아아아]



여전히 몽롱함에 취해 비몽사몽 중인 은영의 귓가에 물소리가 들려왔다. 샤워기 소리인 듯 했다.



'여기가...어디...'

누워 있는 몸 곳곳이 때때로 따뜻한 물에 적셔지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녀를 안고서는 몸을 씻기고 있었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천장으로 생각되는 벽과 조명 같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니 흐릿하게 보이는 건장한 실루엣, 검붉은 톤의 피부로 보아 영길인  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그 샤워실인가...'



아니었다. 조금씩 시력이 돌아오며 선명해지는 시야. 삭막한 회색 타일이 아닌 온화한 베이지색 타일. 그녀의  화장실이었다.

'돌아...왔네...'

은영은 그녀가 어디에 누워 있는지, 누가 자신을 씻기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매부..."


은영의 발을 씻기고 있던 영길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흐흐, 일어났네요 처남댁."

영길이 샤워기를 들고 발에 한번 뿌려주고서는 몸을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은영이 영길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원하는대로... 하니까 좋았어요?"

은영의 어조는 차분하지만 늘어지지 않았고, 소리는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려들어가지도 않았다.

영길로서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이지적인 모습이었다. 맑은 눈망울, 선명한 눈매, 고아한 얼굴.

"..."

영길이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은영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고는 천천히 주물렀다. 영길의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고 좌우로 살짝 움직일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보드라운 살덩어리들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사르르 흔들렸다.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에요... 그냥 그게 궁금했어요."

영길에게 답을 듣기 포기한 은영이 말을 이었다. 영길이 젖가슴을 쓰다듬던 손을 스윽 아래로 내려 그녀의 음모가 있던 둔덕을 스쳤다. 그리고 갈라진 틈새를 훑었다.

정액과 애액에 범벅이 되었던 그녀의 사타구니는 그 모든 일이 꿈이었다는 것처럼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털   없이 수줍게 닫힌 틈새는 언뜻 순결해보이기까지 했다.



"으읏..."

갑작스런 자극에 허리를 움찔하면서도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은영을 보던 영길이 그녀를 일으켰다.

"마저 씻고 나와요. 처남댁. 나가서 바람이나 쐬며 이야기 합시다."



영길이 먼저 화장실을 나가고, 닫히는  사이로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은영은 말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였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화장실 안에는 그녀의 옷가지가 없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번진 화장으로 엉망이 된 얼굴.



세안을 마치고 찬물을 가볍게 틀어 온몸을 적신 후, 전신타올을 몸에 감고 화장실을 나왔다.

시계를 보니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은 고요했다.


습관처럼 가족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데 시어머니 방에서 평소라면 들려야  숨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까 언뜻 들었던 말, 시어머니와 연수가 집을 비웠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안 계셨구나...'

은영이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데 무심결에 시선을 돌리다가 맞은  방의 살짝 열린 틈새로 자신을 훔쳐보던 한 쌍의 눈과 마주쳤다.

연재였다.

자신이 훔쳐보는 것을 은영이 눈치챈 것을 깨닫자 당황한 연재가 우당탕 소리와 함께 넘어지며 뒤로 주저앉았다.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나동그라진 연재의 모습이 드러났다.

은영이 연재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젖은 알몸에 수건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조명이 켜져 있지는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얇은 수건 너머로 그녀의 묵직한 젖가슴과 탐스러운 유두는 물론이고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부분이 은은히 비치고 있음을 연재는 알아볼 수 있었다.

"연재야. 괜찮아? 조심하지 그랬어."

-...선, 선생님...


몸은 이미 성인 이상으로 커버린 남조카가 자신을 여자로 생각하며 훔쳐보고 있던 상황.

그러나 은영은 별달리 몸을 애써 가리지도 않고 태연하게 연재를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전의 은영이었다면 기겁하며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은영은 고작 이런 것으로 놀라기에는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연재의 눈이 흔들리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좇았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방.

깊이 잠든 재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륵]



재준을 깨우기 싫었던 은영이 창가의 커튼을 젖히자 서늘한 달빛이 방안 가득 쏟아졌다.

재준은 아침 출근할 때 옷 그대로 침대에 대충 걸쳐져서는 때때로 코를 골며 깊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후우....커어억! 후우...."

재준이 숨을 내쉴 때마다 진한 술 냄새가 은영의 코로 밀려왔다. 재준에게서는 좀처럼 맡기 어려운 진하고 역한 알코올 냄새.



은영이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재준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재준은 술이 약하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가 원해서 술을 마실 때는 은영과 단 둘이서 분위기를 위해 가볍게 한 잔 하는  뿐이었다.

그런 재준이 술로 인사불성이 되어서는 괴로운 듯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은영이 손을 뻗어 재준의 볼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오빠."



그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바보 같은 사람. 하지만 정작 그녀가 필요할 때에는...



'...아니, 아니야.'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저런 남자들과 몸을 섞은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할  있을까.

처음에는 분명 억지로 당해 괴로웠는데 이제는 그녀도 내심 어느 정도 즐기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나쁜 년이지...'

은영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녀는 정신을 잃고 잠든 재준의 옷가지를 하나 하나 벗겨내서는 잘 개어 정리했다. 옷장에서 재준의 잠옷을 꺼내서 입히고는 침대  구석에 구겨져 있던 이불을 끌어와 잘 덮어주었다.

"오빠 바보...곧 겨울인데 이불도 안 덮고 자면 감기 걸....흑...."

갑자기 그녀의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좀 태연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울 자격도 없어 나는...'


은영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오히려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울 자격이 없다면 웃음이라도 지어야 하니까.



[나와요]



부르릉 진동소리에 돌아보니 영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그와 이야기하기로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가야지.'



은영이 가슴에 손을 얹자 타올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어느새 드러난 새하얀 나신이 서늘한 달빛을 받아 요요로이 빛났다.

극한의 아름다움, 순결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요사스러워진 그녀의 몸. 허벅지 사이, 털 한올 없이 매끈한 가랑이 안쪽이 언뜻 물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흐흐, 이제 오시네요 처남댁."

-...네.

 앞을 서성이던 영길이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오는 은영을 확인하고는 히죽 웃었다. 은영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흐흐...그나저나 옷이...?"

-...이상할 게 있나요?

은영은 얇은 원피스에 적당한 힐을 신고 롱코트 하나만을 어깨에 걸치고 나왔다.

무릎보다 살짝 올라간 정도 길이의 연한 하늘빛 코트 원피스와 두툼한 질감의 블랙 롱코트.



"처남댁 좀 춥지 않겠어요? 흐흐"

-...아?

원피스 아래로 은영의 맨다리가 늘씬하게 뻗어 있었다.

서늘한 가을 밤이라 추위를 느낄 법도 한데 은영은 스타킹을 따로 신지 않았다.

'...당신이 맨날 벗겨대는데 입어봐야 의미가 없을 거잖아.'



물론 은영으로서는 그러한 속내를 드러내기 싫었으므로 살짝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중얼거렸다.



"...시매부 덕분에 알몸으로도 돌아다녔는데 이 정도면 꽤 따뜻한 편 아닐까요."

-아...흐흐...그럼 좀 걸으실까요.


은영의 뼈 있는 한마디에 영길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 여성미를 강조한 그녀의 옷차림에 불만은 없었다. 순수하게 설렘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영길이 앞장 서서 걷자 은영이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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