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1부 다짐(2) (56/109)



〈 56화 〉1부 다짐(2)

"흐흐 처남댁..."

-앗!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은 은영이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주친 것은 영길이었다. 심장이 떨려왔지만 은영은 잠시 심호흡하고 눈에 힘을 주어 말했다.


"시매부, 이제 우리 그만 원래대로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

-흐흐, 그게 무슨 말이당가? 우리가 찐하게 뒹군게 하루 이틀인가 흐흐...


[짝!]


은영이 자신의 엉덩이로 향하는 영길의 손을 쳐냈다. 아랑곳하지 않고 안아오는 영길을 황급히 뿌리쳤다. 그리고는 영길에게 냉정을 찾으라는듯 냉장고를 열어 물병을 꺼내서는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이제 그만해요, 시매부. 나는  가족을 지킬거에요. 시매부도 형님 생각해서라도 정신 차리세요."

-흐흐...



영길을 뒤로 하고 성큼성큼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영길이 중얼거렸다.

"흐흐 가족은 무슨...물 틀어놓고 씹질 오지게 하더만 흐흐..."




여운에 취해 있었던 재준이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러 간 은영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기에 의아하기도 했지만 하체에 남아있는 체액이 말라붙는 서늘한 느낌이 찝찝해서이기도 했다.

잠옷을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서려는데 거실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영길이었다. 영길이 화장실 앞에서 흐흐거리며 서 있었다. 재준은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서서는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이윽고 아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다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아내가 가까이 다가서는 매형을 뿌리치는 등 짧게 실랑이하고는,  들리지 않았지만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어둠 속에서도 아내의 당황한 표정이 잘 보였다. 재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요즘 매형과 은영이 사이가 좋아진 것이 아니었나, 저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할 거리가 뭐가 있을까. 은영이는 대체 뭘 그렇게 당황한 것일까, 그보다 매형과 은영이 저렇게 거리가 가까웠던 적이 있었는가, 재준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오빠, 안 씻어?"

-어? 어어...샤워 좀 오래 걸렸네?

"...아? 응. 때  밀다가.."


'때를 밀었다고?'



씻으러 가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재준이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은영은 처음으로 자신의 물건을 빨아주었다. 자신도 은영이 첫 여자였기에 비교할 대상은 없었으므로 확신은 없었지만 체액이 묻은 물건을 그렇게 쉽게 빨 수 있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이 표현이 써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능숙했다'. 자지. '자지'란 표현을 은영이 쓴 적이 있던가...

재준이 고개를 흔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좋은 것만 생각하자. 오늘은 오랜만에 달달하게 데이트한 날이니까. 재준이 샤워기를 집어들었다. 아까 자신이 씻을 때와 같이 물기 하나 없는 때밀이수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면서.



어느새 수요일이 되었다.

학교는 여전히 분주했다. 중간고사 문제와 정답에 대한 아이들의 문제제기도 대충 마무리된듯 했다. 강남의 8학군 같은 곳은 똑똑하신 학부모들이 많아서 길게는 열흘까지도 걸린다는데, 여기는 학생도 학부모도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형식상 지나가는 절차와도 같았다. 그 때문인지 예전에 낸 문제를 재탕하는 얌체 교사-이를테면 박 선생 같은-도 적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직장인인 은영의 입장에서는 나쁠 것은 없었다.

지난번에 알아듣기 좋게 이야기한 덕분인지 날파리들도 꼬이지 않았다. 은영은 역시 자기 행동하기 나름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시어머니께서 봉사활동 가는 곳에 시누이 내외가 따라간다고 했다. 어쩐 일인가 싶었더니, 저 멀리 지방 어디서 분교 확장공사를 하는데 일손이 필요하단다. 연수가 영길의 등짝을 쳤는지 어쨌는지, 여튼 시어머니와 시누이 내외 셋이서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온다고 했다.  그래도 불편한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다니, 이번 주는 어쩐지 좋은 일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은영이 싱긋 웃었다.

빨리 일에 집중하고 재준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중간고사 뒷처리는 슬슬 마무리 되어가고 있고, 학부모 상담이야 영혼 없이 이야기를 흘려들으면 될 일이고. 반 아이들 상담도 슬슬 끝날 것 같다. 이번에 상담할 학생은, 어디보자...



"선생님 27번 유연재입니다."

-...아, 연재 앉아.

지난 일 이후로 가뜩이나 말이 없어진 연재였다. 연재가 왜 그런지도 알고 있고,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아는 은영으로서도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가족을 지켜야 하고, 또한 지금은 연재의 담임으로서 이 자리에 있다. 사적인 감정은 접어둬야 한다고 되뇌이며 은영이 연재를 바라보았다.


"이미 말했지만 지난 일들은 잊어도 돼. 지나간 것이니까 어쩔  없고, 앞으로를 잘 하면 되는거니까."

-...예.

"이전 학교 성적을 보니까  준수했었으니 앞으로도 잘하면 될거야. 고2면 아직 희망은 있어. 기말고사까지 잘 마무리하자."

-...선생님은, 괜찮으신가요? 지나간 일을,  잊을 수 있어요?

연재의 흔들리는 눈빛에 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미  깊숙이 새겨진 기억들. 지워버릴 수 있을까. 아직도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기억을, 욕구를 자신은 다 잊었다 할  있을까. 내가 다 잊을 수 있을까. 영길과 배봉의 광기에 찬 눈빛을, 짐승 같은 교미를, 쾌락에 휩쓸려 기꺼이 허리를 흔들어대던 자신을... 애액을 흩뿌려대고 끝없이정액을 받아내던 이 가랑이는 여전히 남자를 갈구하는데, 나는 지워낼  있을까...

은영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숨을 내쉰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연재가 말한 것은 과거 정학의 기록이리라. 자신은 연재의 담임으로서 상담을 해주어야 했다.


"이미 기록된 것을 지워내기는 쉽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뛰어넘을  있지 않겠니? 정학이 작은 기록은 아니지만 연재가 스스로 질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은 언젠가는 알아줄거고, 노력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어. 포기하지 말자."

-....노력해볼게요.

"그래, 화이팅! 좀 있다가 종례 때 보자!"


이만하면 담임으로서 역할은 다 한 것 같았다. 어디보자... 연재가 전학생이니 마지막인가? 은영이 후련한 마음에 키보드 엔터 키를 탕! 치고는 탕비실로 향했다. 시원한 아이스 커피가 땡겼다.

그리고, 교무실을 나서는 연재의 눈빛은 죽어있었다.

'선생님,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선생님도, 저도, 그리고 모두가.'



마침내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고 종례시간이 되었다. 종례를 마치면 퇴근할 수 있고, 재준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H고등학교의 교무실은 2층에 있었고, 고3 교실은 1층, 고1 교실은 3층과 4층, 고2 교실은 4층과 5층에 있었다. 그리고 은영이 담임을 맡은 반은 5층 복도 가장 끝에 있어서 꽤 긴 시간을 걸어가야만 했다. 나이 어린 여교사라고 얕보는건지 매번  곳 담임을 맡긴다고 투덜거리며 은영이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뭔가 아이들의 시선이 찜찜했다.

H고등학교는 남자고등학교-이른바 '남고'로 여선생이 별로 많지 않았고, 20대 여선생은 더더욱 흔치 않았으며, 소위 '남고의 꽃'이라 할만한 미모의 여선생은 은영이 유일했다. 당연히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아이들의 시선이 징그러웠지만 은영도 올해로 3년차인지라 적응되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시선은 무언가 '불쾌했다'.

"아! 죄송합니다!"

-누가 복도에서 뛰랬어, 조심조심 다녀.


5층에 다다라서 반을 향해 걷는데 뒤에서 어떤 아이가 달려오다가 자신을 스치고는 넘어졌다.  부딪힌 것은 아니라 은영이 밀려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는데, 저 아이의 손이 엉덩이에 닿은 것 같았다. 넘어졌으면 아플텐데 히죽대는 것도 그렇고. 이상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어느 학교에나 그렇듯 이 학교에도 몇몇 질나쁜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   명이었다. 어린 녀석이 윙크는 무슨. 기싸움에서 밀리면 절대로 안 된다. 은영이 주둥아리에 피리를 단 놈을 마주보며 윙크해주고는 지나갔다. 뒤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오늘따라 다들  이리 잠 못 잔 것들마냥 시들시들해, 야동  적당히 봐라 이것들아."

-와우!  야동도 알아요? 캬캬캭

"너네 같은 아가들이 뭘 알겠니, 대학이나 가서 뭘 하세요, 어휴"

-킥킥킥킥


영길이 은영에게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그것이 도움이라 표현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성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성적인 농담을 던지게 되다니, 은영이 으쓱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없지? 야자 안 한다고 놀기만 하지 말고. 대학은 가야 여자랑 데이트를 하지. 선생님은 남편이랑 데이트하러 간다. 내일 보자!"

'오늘 좀 괜찮았던 것 같아.'

은영이 힘 있는 걸음으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 담탱이 볼때마다 꼴린다...개꼴린다.."

-큭큭 담탱이가 오늘 야동 이야기할때  쌀뻔 했잖아.

"담탱이 남편새끼랑 데이트한대 씨발."

-데이트면 섹스 아니냐, 존나 폭풍섹스? 아 남편새끼 개부럽네

"은영이년 보지에다가 자지 한번만 박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진짜...그때 찍은 거 몇 번을 봐도 좆꼴려. 어우..."

은영의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런데 대부분 음습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로, 은영에 관한 것이었다.

-나 옆반에 친구새끼한테 영상 보여줬더니 그 새끼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더라 큭큭, 은영이 보지가 그렇게 예쁠줄 몰랐다고,  없냐고 하던데.

"야, 우리 한번 더 할까? 저년 치마 한번만 입고 와보기만 해라 큭큭"


은영이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은밀한 부분을 담은 영상은 학교 전체로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

'선생님, 괜찮지가...않아요.'

말없이 아이들을 지켜보던 연재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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