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1부 스튜디오(1)
반쯤 넋이 나간 듯 고개 숙인 은영이 영길의 손에 이끌려 어느덧 허름한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 옆 작은 공터에는 어딘가 익숙한 '렉서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성인용품''
"저의 소박한 가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큭큭큭"
'여, 여긴...'
성인용품점이란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은영이었다. 이런 몰골로 이렇게 들어오게 될 것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은영의 시야에 들어오는 물건들 하나 하나가 낯뜨거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밖에서는 도저히 입고 다닐 수 없는 천쪼가리들, 어디에 쓰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도구들까지. 은영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자 여기 보세요 여기! 큭큭"
은영이 황망한 표정으로 배봉을 보자 '찰칵' 소리가 들렸다. 맥 없이 팔을 들어 몸을 가리려 해보지만 영길이 뒤에서 은영의 팔을 부여잡았다. 영길에 붙잡힌 채로 은영이 체념하고 앞을 바라보자, 배봉이 여러 각도에서 연신 은영의 알몸을 찍어대기에 바빴다.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
만족할만큼 찍었는지 배봉이 큭큭대며 사진첩을 확인하다가 영길과 은영 쪽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었다. 무성의하게 쌓여있는 박스 옆의 회색빛 철문. 으슥한 가게에 숨겨진 공간이라도 되는걸까. 어두컴컴했다. 영길이 은영을 손목을 부여잡고는 철문 너머로 이끌었다.
영길이 불을 켜자 드러난 내부는 예상외로 넓었다. 비좁아보이는 가게였건만 이런 넓은 공간이 있을 줄이야. 데스크탑과 거울 달린 화장대 같은 것은 물론이고, 중앙에는 마치 스튜디오라도 되는것마냥 하얀 베일 같은 것으로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조명과 조명판, 전문가용 삼각대도 셋팅되어 있었다. 공간 한켠에는 심지어 씻을 수 있는 샤워실도 구비되어 있었다. 차라리 '스튜디오'라고 불러야 할 곳. 마치 이 스튜디오를 위해 바깥의 성인용품점이 있는 것 같았다. 은영이 주변을 파악하는 사이, 배봉이 어느새 가게 셔터를 내리고 와서는 철문을 닫고 잠금단추를 눌렀다.
[딸깍]
"흐흐 여길 와보는건 나도 오랜만인데 흐흐"
-큭큭 모처럼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시는데 청소도 해놨거든 큭큭
영길과 배봉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킥킥댔다. 이 스튜디오는 어쩌다 한번씩 사용하는 곳인듯 했는데, 영길이 한 구석에 기대어 있던 토퍼를 가지고 와서 스튜디오 중앙에 내려놓는 동안, 배봉은 어디선가 가져온 대포 같은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더니, 조명을 환하게 켜고는 조명판을 조정하고 있었다.
'나를 가지고 ...그럴 생각이구나...'
"줘남댁, 뭐해요 큭큭, 어서 가서 씻고 와야지."
-내, 내가 왜..?
"큭큭 줘남댁 똑똑하잖아? 이쯤 되면 알면서 뭘 그래 큭큭, 씹물이 말라서 찝찝할텐데 어서 씻고 오라니까."
은영이 소용없음을 잘 알면서도 혹시나 하여 영길을 바라보았지만, 영길은 턱짓으로 샤워실을 가리킬 뿐이었다. 은영이 잠시 도망갈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배봉의 스마트폰에 담긴 것들이 어떻게 될지도 걱정스러웠다. 은영은 고개를 떨구고 샤워실로 향했다.
옷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들을 몸에서 벗겨내는데 허벅지 사이로 허옇게 말라붙은 흔적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얼룩지고 번져버린 그 자국이 은영의 처지와도 같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은영도 성인이고 성적인 망상을 하지 않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처지에 놓일거라고는 생각은커녕 비슷한 상상이라도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차라리 꿈을 꾸는 것만 같은 느낌.
[쏴아아]
오래된 건물이건만 뜨거운 물은 잘만 나왔다. 낯선 곳에서 뜨거운 물을 맞으며 은영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반항해도 저들은 그것마저 즐기면서 자신을 농락할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소용없다면, 힘들게 저항하지 말고 쾌락에 몸을 맡기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평상시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테지만, 어제오늘 그녀가 겪은 일부터가 이미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섰다.
현실회피 혹은 자기기만. 비참한 결론에까지 은영은 도달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면...'
그게 자신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되뇌이면서 은영이 샤워를 마치고는 타올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는 알몸에 정장 상의와 스커트만 걸치고 샤워실을 나섰다.
"큭큭 줘남댁, 어차피 벗을건데 옷이라고 또 걸치고 나온거야? 쌔끈하긴 하네 큭큭..."
-처남댁 보지는 깨끗하게 잘 씻었어요? 흐흐
'당신들은...'
은영은 별다른 말 없이 무표정으로 그들을 지나 화장대로 향했다. 거울 너머에 선 자신의 모습은 이미 생각 이상으로 색정적이었다. 그녀가 입술을 짓씹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화장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싼티나는 화장품들을 집어들었다. 눈썹을 칠하고 아이라이너와 아이새도우, 마스카라를 사용해 눈매와 속눈썹을 강조하며 눈꼬리를 위로 길게 빼자, 큰 눈망울의 청순했던 인상이 누구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색기 가득찬 인상으로 바뀌었다. 음영을 더하니 오똑한 콧날과 턱선은 더욱 날렵해보였다. 빨간 립스틱으로 마무리. 은영의 지금 모습은 색기가 넘친다기보다는 차라리 요사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은영이 그들을 향해 돌아섰다. 은영의 변화한 모습을 보며 영길과 배봉이 킬킬댔다.
"어이 줘남댁! 제대론데? 창녀 저리가라야? 큭큭큭 나 흥분돼 미치겠는데! 큭큭큭
-우리 처남댁이 꽃단장하니 이렇게 쌔끈하구만 흐흐
어차피 자신은 비참하게 범해질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다면 은영 자신도 제대로 즐기리라 마음 먹었다.
"...이게 당신들이 원한 거잖아"
-흐흐 처남댁이 변했구만 변했어! 색기가 좔좔 흐르는구만! 흐흐.
영길이 은영에게 턱짓했다. 은영이 별다른 저항 없이 영길이 시키는대로 걸어가 스튜디오 중앙에 섰다. 사방에서 비치는 조명이 그녀의 전신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배봉이 큭큭대면서 카메라를 조정하더니, 은영의 시야가 하얘지면서 '찰칵'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딸깍]
배봉이 어떤 버튼 같은 것을 누르자, 배봉의 뒤로 거대한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리고 배봉의 카메라에 담긴 은영의 자태가 스크린에 비춰졌다.
"줘남댁, 이게 줘남댁 모습이야 큭큭. 더 꼴리는 포즈 좀 취해보라구, 다리 좀 벌려봐! 옳지! 큭큭.."
'싫, 싫어..'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의 음탕한 모습이 배봉의 카메라에 하나 하나 담기고 있다고 생각하자 은영이 수치심에 이를 앙다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견디기 쉽지 않았다. 스크린이 은영의 눈보다 살짝 위에 있다보니, 스크린을 바라보는 은영의 시선은 카메라에 담기기로는 살짝 턱을 들고 도도한듯 몸매를 과시하는 색녀의 자태 그 자체였다. 은영이 모멸감을 참아가며 배봉의 지시대로 어색하게 몸을 돌리거나 다리를 벌리거나 하며 십여 분이 지나자 그제서야 영길이 다가왔다.
영길이 씨익 웃으며 은영의 가슴을 꽉 쥐었다. 정장 상의가 구겨지며 단추 하나로 힘겹게 모여 가슴골이 강조된 그녀의 젖가슴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으응.."
영길의 손길에 의해 은영의 가슴골은 물론 밑가슴까지 찬 공기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스튜디오 안은 꽤나 서늘했는데, 그것이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이 달아올랐기 때문인지 은영은 분간할 수 없었다.
영길이 은영의 귓가에 음어를 속삭이며 천천히, 하지만 크게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처남댁...좀 흥분하셨네 흐흐
-...하아...하아...
오늘 여러 번 그의 손에 가슴이 주물러졌지만, 자극만큼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중년 남자의 기술이 좋은 것인지 그녀가 심리적으로 흔들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은영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은영이 다른 생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영길이 거칠게 은영의 입술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어찌 되어도 좋았다. 은영이 영길의 혀놀림을 받아내고 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배봉은 몸이 착 달라붙은 채 혀를 얽고 있는 두 남녀를 몇 컷 찍다가는 대형 캠코더를 다시 가져와 삼각대에 설치하고는 화면을 연결했다. 이제 스크린에는 두 남녀가 끈적하게 얽히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영길이 키스를 멈추고 다시 은영의 뒤로 돌아가서 귀를 핥으며 그녀의 전신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