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1부 불알친구
"네. 여보세요?"
-어 처남댁. 흐흐 난데. 오늘 밤 시간 되나?
은영이 천천히 전화기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길은 언제부턴가 처남댁이라는 지칭을 제외하곤, 은영에 대한 일말의 존칭도 붙이지 않았다.
곤란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은영이, 영길에게 남편과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길이 은영의 말을 단칼에 자르곤, 당장 호프집으로 오라고 소리쳤다.
"그게 그러니까 흐흐. 어이 처남댁. 흐흐 아니. 나 오늘 오랜만에 그 뭐냐 비번이요 비번. 흐흐. 마누라도 없고 집안이 텅텅 비었으면 같이 놀아야지...흐흐 그게 그러니까 뭐냐 서운하게 스리"
영길이 수화기 너머로 고함을 치는 통에, 은영이 잠시 전화기를 귀에서 떼었다가 다시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영길이 재준이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당황한 은영이 한동안 앞을 보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운전도 하지 못하고, 은영은 말없이 차 안에 앉아있었다. 슬슬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남편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은영아. 미안한데. 지금... 호프집으로 와. 외식은 다음에 하자'
결국 영길이 남편을 구워삶았구나. 은영은 한숨을 푹 쉬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은영이 집 근처 호프 앞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로 마주 보고 나란히 앉아있는 남편과 영길의 모습이 보였다. 은영이 조용히 다가가서 재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자, 조금 뾰루퉁한 표정을 보이던 영길이 맥주잔을 들어, 맥주 한 모금을 목구멍 뒤편으로 넘겼다.
은영이 재준을 슬쩍 바라봤다. 재준이 어색한 미소를 보내왔다. 보아하니 남편도 지금 이 자리가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슬쩍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봤다. 벌써 맥주 한 잔씩을 들이킨 모양이다. 영길이 그런 은영을 바라보며 영길이 씨익 웃었다. 그리곤 재준이 미쳐 말릴 틈도 없이 맥주 피쳐와 소주 한 병을 또 시켰다.
"그게 그러니까 재준이. 흐흐흐. 남자는 다 필요없어. 그저 그 힘! 흐흐. 그리고 술... 그리고 흐흐.. 그리고..."
은영이 호프에 들어온 지도 벌써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슬슬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영길이 재준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랭이를 힘껏 벌렸다.
"그ㅡ게 그러니까 그 흐흐 이 우람한 '좆'!!"
영길이 재준과 은영을 번갈아가며 살피다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한 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잡아내는 시늉을 하자, 은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재준이 곤란한 표정으로 영길을 저지하고 나섰다. 영길이 웬일로 호탕하게 웃어보이자, 은영이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은영의 눈치를 살피던 영길이, 재준에게 또다시 술을 권하고 나섰다.
"하.. 그게 그러니까.. 재준이 너 임뫄. 넌 참 좋겠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매형?
조금씩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재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영길을 바라봤다.
"넌 그러니까 그게. 흐흐. 우리 그 예쁜 처남댁이랑. 그 뭐냐 흐흐 맨날 빠구리 뜰 거 아니냐 흐흐흐"
-매형. 많이 취하셨나 봐요.
영길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한 재준이 잿빛을 구겼다. 그런 재준을 바라보던 영길이 다시금 히죽히죽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연신 분주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화장실에 갔던 은영이 다시금 자리로 돌아왔다. 재준이 시간을 슬쩍 확인하고서는 영길의 눈치를 살피며 그만 일어나자고 했지만, 웬일인지 옆에 있던 은영이 당황하며 조금 더 있자고 말했다. 재준이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은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길이 고개를 숙이고 키득키득 웃었다.
"아참... 그게 그러니까. 연수가 그 장모님이랑. 그 뭐냐. 목간통? 흐흐흐 거기 가버려서, 내가 짝이 없잖수? 그래서 내가 그 뭐시냐 그 불알친구 하나 불렀는데 괜찮겠어? 아 마침 저기 오네 흐흐흐흐"
영길이 말을 마치고 호프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은영의 눈에 일전에 본 적이 있는 우락부락한 인간이 배시시 웃으며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재준역시 일전에 자신의 와이프에게 무례를 범했던 경험이 있는 영길의 친구를 알아보고 잔득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다들 한 번씩 본 적 있지? 그게 그러니까 일전에 흐흐"
-안녕들 하십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정배봉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남자가 재준 내외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넸다. 재준과 은영이 엉겁결에 인사를 받았지만 둘 다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주앉은 은영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던 정배봉은 침을 한번 꼴깍 삼켜 넘겼다. 그러자 은영이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정배봉이 합석한 술자리는 그 후에도 1시간 여나 더 이어졌다. 재준이 싫다며 거절했지만, 영길과 배봉이 연신 술을 권하는 통에, 재준은 가뿐히 한계 주량을 넘어서고 있었다. 힘겨운 몸을 겨우 가누고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은영도, 마주앉은 정배봉이, ‘처남댁 일전에 미안했다’라는 말과 함께 익살스럽게 말을 건네오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술자리를 앉아있자니, 테이블위에 적지 않은 술병이 쌓여갔다. 만족한 듯 미소를 교환하던 배봉과 영길이, 2차에 가자며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쓰러져있는 재준을 부축하고 나섰다. 배봉이 무턱대고 재준을 부축하고 먼저 문을 나서자, 재준의 옆을 따라 걸으려던 은영의 손을, 영길이 낚아챘다. 재준을 살피면서도 자신의 팔을 꼭 잡고 있는 영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영길을 바라봤다.
“흐흐. 그게 그러니까. 흐흐. 처남댁. 우리는 2차가서 재미나게 놀아야지.”
-저.. 적당것 하세요!
“왜 그럴까? 흐흐 그게 그러니까, 한동안 안아주지 않아서 서운했던건가? 흐흐. 요로코롬 만져주면 풀릴까나?”
-누, 누가 봐요!
"흐흐 배봉이도 있는데 내 체면 좀 살려줘 봐 처남댁, 알아듣게 말했으면 말야, 응? 흐흐
-아니 이게 무슨...
영길이 술냄새를 풍기며 은영의 엉덩이를 꼭 잡았다. 은영이 주위를 살피며 영길을 밀어내려 했지만, 언제나처럼 영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다 배봉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배봉이 씨익 웃었다. 은영이 시선을 피했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따라, 영길과 배봉, 그리고 재준내외가 천천히 걸었다. 호프집을 나와 술 몇 병을 더 사서는 집까지 천천히 걸어가던 중에, 배봉의 부축을 받고 걷던 재준이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모를 뿐더러, 영길의 품에 기대 걷고 있는 은영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영길의 왼손이 은영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손은 은영의 엉덩이 쪽으로... 입을 열어 따져보려고 했지만, 우락부락한 손이 힘껏 재준의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통에, 그저 끌려가듯 천천히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재준이 배봉의 품에서 쓰러지며 거실에 고꾸라졌다.
"자!! 2차 왔어요 2차!! 정신들 차려요 2차!!"
배봉과 영길이 겨우 심호흡을 한번 하고 크게 너스레를 떨며 재준을 쇼파 앞에 기대어 앉혔다. 은영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재준의 옆에 다가가려 했지만, 영길이 은영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자리 옆에 앉혔다.
간신히 고개를 든 재준이 영길을 바라보며, 더 이상은 피곤해서 안되겠다며 들어가겠다고 말했지만, 영길이 잽싸게 재준을 자리에 앉혔다. 잔득 취해있는데다가 이미 기준량을 훨씬 초과해 버린 재준이 영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이미 들어와 있던 연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순식간에 거실에 적막이 흘렀다. 자신의 아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영길이 -마치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연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황하고 있는 건 은영도 마찬가지였다.
“야!! 흐흐. 연재야!! 흐흐. 너 요 앞에 피씨방에 좀 가 있어라.”
-네... 네?
“흐흐. 그게 피씨방에 가서 오락이라도 하고 오라고 임마!”
-다.. 다 늦은 시간에?
“그.. 그만하세요!!”
연재를 다그치고 나서는 영길을, 은영이 말려 세웠다. 이 사람이 무얼 하려는지 뻔히 보인다. 은영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영길은 끝내 연재를 향해 윽박지르며 소리쳤다. 그러자 연재가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