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1부 학교에서(1)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여름이 완전히 지나갔다. 차츰 가을의 선선한 기운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을 끝내고 새로운 학기로 접어든 은영은, 짧지만 강렬했던 여름을 떠올리며 교무실 한 켠에 앉아있었다. 강원도에서 영길과 벌였던 일들 이후에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저 가끔씩 영길에게서 음담패설이 가득한 문자가 날아올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얼굴이 벌개져서는 남편 몰래 문자를 지우기 바빴다.
강원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은영이 한 것은,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하나 산 것이었다. 어짜피 영길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은영이 가족들 몰래 화장실에서 테스트를 했을 땐, 다행히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은영은 다음날에 다시 약국에 가서 남몰래 ‘피임약’을 하나 샀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가득 찬 얼굴로.
은영이 거실이나 주방에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할 때면, 영길이 자신의 뒤에 슬금슬금 다가와선 은영의 가슴과 엉덩이를 세게 주무르는 탓에 흠칫 놀라던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교무회의를 마치고 아침조회를 하기 위해 자신의 학급으로 들어선 은영은, 근 두 달만에 다시 만나는 녀석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웃었다. 뭐 어찌되었든 새로운 시작이란 항상 이래저래 설레는 법이니까.
새 학기의 첫날은 바쁜듯, 혹은 그렇지 않은듯 흘러갔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동료교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몇 시까지 근처 호프집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은영이 남편의 말을 듣고 서 있는데, 자신도 조금 있다가 출발할 거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은영이 시간을 확인하자 약속시간까지는 넉넉해 보였다. 은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학교를 빠져 나갔다.
"어이 흐흐 그게 처남댁!"
일전에 재준과 몇 번 가본적이 있는 호프집에 은영이 발을 들여 놓는데, 적막한 호프의 구석 자리에서 영길이 은영을 불렀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손을 흔들고 있는 영길쪽을 바라보던 은영이 주위를 살피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영길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아니지 그게 그러니까 흐흐 그러니까. 처남댁은 여기에 앉으셔야지."
영길의 테이블 앞으로 걸어들어간 은영이, 영길과 마주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영길이 벌떡 일어나 은영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옆자리로 잡아당겼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은영이 영길의 어깨를 잡고 겨우겨우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러니까 흐흐 처남댁, 한동안 안고 싶어서 죽는줄 알았어요 흐흐흐흐흐"
영길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은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붙여대고는, 아무렇지 않게 은영의 젖무덤과 허벅지를 연신 주무르기 시작했다. 이 황홀한 젖가슴은 여전한데 제대로 한번 빨아보지도 못하고. 벌써 오랫동안 은영을 안지 못했다. 금새 영길의 바지앞섶이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은영이 주위를 살피며 영길의 손을 막아섰다. 그러자 영길도 비릿한 웃음을 날린 채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은영이 여전히 무슨 영문인지 몰라 영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을 열고 재준과 연수, 그리고 시어머니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재준이 나란히 앉아있는 영길과 은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이지 않는 인상을 쓰며 테이블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은영을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자 영길이 기다렸다는 듯 술과 치킨을 시켰다.
영길의 주문이 끝나자 의아한듯 연수와 영길을 바라보고 있던 재준에게 연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큭. 오늘로써 제 남편, 인간 유영길이가, 짤리지않고 직장을 다닌지도 꼭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인간 구실 못한다고 맨날 타박만 하던 저로써도 이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만. 어쨌든, 첫 월급을 탄 제 남편 유영길이에게 축하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재준과 은영, 그리고 재준의 어머니가 차례대로 영길에게 박수를 쳐 보냈다. 이미 맥주 한잔을 들이킨 영길이 베시시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흐흐 그게 그러니까. 처음엔 조금 챙피하긴 했지만서도 흐흐. 그래도 계속 다니다보니깐, 할만하더라구요 흐흐. 그래서 오늘 이 자리만큼은 제가 그 뭐냐 흐 쏘는거니까. 마음껏들 드세요 흐흐흐. 아참참참 그게 그러니까..."
조금 취기가 서린 얼굴로 연신 떠들던 영길이, 자신의 자리 옆에 내려놓았던 -조금은 구질구질해 보이는- 쇼핑백들을 들어 올렸다.
"에. 그게 그러니까 흐흐. 그 뭐냐 첫 월급을 타면 가족들 선물을 사주는 거라고. 어디서 그러니까 주워 들었는데 흐흐흐. 저도 그냥 대단한건 아니고. 흐흐 흉내만 내봤슴다. 흐흐. 기쁘게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흐흐흐흐. 이건 우리 재준이꺼. 이건 우리 어머님꺼. 흐흐흐"
영길이 머리를 긁적이며 서툰 손놀림으로 가족에게 쇼핑백을 하나씩 나누어 줬다. 재준부터 연수 그리고 장모에게 차례대로 선물을 나눠주던 영길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은영을 비릿하게 바라보며 마지막 쇼핑백을 건냈다.
"그리고 흐흐 그게 그러니까. 이건 '우리' 처남댁꺼"
영길의 입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자 은영과 재준이 동시에 영길을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영길을 무시하고 쇼핑백을 부랴부랴 열어보는 은영을 바라보며, 재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부턴 정말 가까워진 것 같은데. 저 두 사람.’
쇼핑백에서 옷가지를 꺼내들던 가족들은 영길의 선물을 손에 들고선 영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다. 다만 쇼핑백을 열어본 은영은 조금은 촌스러운 색감과 게다가 어딘지 조금 짧아보이는 미니스커트가 조금 거북해 보였다. 게다가 쇼핑백 맨 아래에 구겨진듯 접혀있는 무언가를 가족들 몰래 들어 보았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이게 지금...’
T팬티라니. 은영은 붉은색 망사 T팬티를 손에서 허겁지겁 내려놓고는 얼굴을 붉히고 영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누이와 가족들의 눈치가 보여, 억지로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영길이 또다시 히죽히죽 웃어댔다.
몇 잔의 술을 더 들이키고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다. 진즉에 학교에서 돌아온 연재는 자기 방에서 자고 있는 듯 했다. 영길의 장모가 영길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건내곤 방으로 사라졌다. 영길내외와 재준내외도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은영이 자신의 엉덩이가 누군가에 의해 꽉 잡히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영길이 은영을 향해 윙크를 찡긋 한 뒤 연수를 따라 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영길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붉힌 은영도 재준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지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재준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침대위에서 일어나자니, 옆에 있어야할 은영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맡에 놓은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은영이가 어디 갔지?'
재준이 관자놀이를 눌러 만지며 천천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두컴컴한 거실 쪽을 쳐다보니 역시나 은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엌으로 걸어가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컵에 따라 들이켰다. 물 한잔을 쏜살같이 들이킨 재준은 물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화장실 앞에 다가선 재준이 무심결에 화장실 손잡이를 돌리려는데, 문이 잠겨있다. 그제야 헛기침을 한번 하고 노크를 하는데, 화장실 안에서 은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에 은영이니?"
-어.. 어.. 오.. 오빠. 나야. 나 안에 있어
"아 그래? 뭐 볼일 봐?"
-어? 어. 갑자기 볼일이.. 학... 조금 급해.. 우웁..서
"왜 그래? 속 매스꺼워? 등이라도 두드려 줄까?"
-웁.. 아니야.. 오빠.. 웁.. 괘.. 괜찮아. 그보다 먼저 들어가. 나도 곧 들어갈게
어쩐지 어색한 은영의 말투가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재준은 은영의 말대로 천천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연거푸 화장실을 훔쳐봤다.
재준이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있자니 거의 10분쯤 뒤에 은영이 들어왔다. 재준이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의 불을 키려고 하니까, 은영이 그런 재준의 손을 낚아채고는 그만두게 했다. 재준이 무슨 일인가 싶어 은영에게 말을 걸려다,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은영을 보며 역시나 그만두기로 했다.
선잠을 자다가 깬 재준이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정신을 겨우 차리고선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새벽 3시에 잠시 깬 것도 모자라, 은영이 왠일로 섹스를 요구하고 나선 탓에, 4시가 다 된 시간에 잠이 들어버렸다. 것보다, 그 강렬했던 움직임을 잊을 수가 없다.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 재준이, 고개를 돌려서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은영을 바라봤다.
“헉!!! 으... 은영아. 너 오늘.. 그렇게 하고 가려구?"”
일순간 잠이 깼다. 은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준이 은영에게 놀라 물었다. 그러자 무엇이 그렇게 불편한지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연신 다리를 교차하던 은영이, 화들짝 놀라며 재준을 바라봤다.
"어.. 어 오빠 깼어? 아. 이거. 어제 시매부님께서 선물해주신 옷인데. 마음에 들어서 한번 입고 가 보려고.."
-그.. 그게? 그 옷이? 네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평소에 즐겨 입는 은영의 옷차림을 잘 알고 있던 재준은, 의아하다는 듯 은영을 바라봤다. 영길이 선물해준 옷을 입은 채, 조금은 부끄러운 듯 서 있는 은영을 넋이 빠져라 쳐다봤다. 은영이 말없이 웃었다.
"그나저나 속은 좀 어때? 어제 새벽에 토하는 거 같던데."
-어? 어. 후우. 그래도 자고 일어났더니 많이 좋아졌어 오빠. 그나저나 오빠도 빨리 출근 준비해. 같이 나가게
왠지 조금 분주해 보이는 은영이 말을 마치자, 재준이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짧은 스커트 밑으로 아슬아슬하게 노출된 와이프의 하얀 허벅지를 슬쩍 훔쳐보며 욕실로 들어갔다.
방안에 누워있던 영길은 나머지 가족들이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에도 가만히 자리에 누워서는 히죽히죽 쪼개고 있었다.
‘어제 그렇게 알아듣게 얘기를 했으니까 흐흐흐’
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던 영길은, 자리를 털고 더벅머리로 밖으로 나갔다. 영길이 방문을 열고 나오자, 식사를 마치고 현관 앞에 서있던 연재와 재준 내외가 보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영길의 두 눈이 은영의 옷차림에 꽂혔다.
'하아. 그게 그러니까 흐흐. 역시나 내 안목도 죽지는 않았구먼'
영길이,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며 하얀 허벅지를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는 은영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은영의 두 얼굴이 잔득 붉어지더니, 재준을 끌고서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어보이던 영길이 아내 연수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올케는 무슨 유부녀가 그런 옷을 입고는.."
방안에 들어와서 방바닥에 엎드린 채 은영의 생각으로 히죽대던 영길의 옆에, 연수가 털썩 주저앉으며 은영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영길이 애써 시치미를 때며 모른 척하자, 한동안 연수의 흉이 그치질 않았다. 겨우 연수의 말이 그쳤을 때, 영길이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나 오늘 그러니까 연재네 학교에 좀 갔다 올까 하는데."
-에? 당신이 왜? 아니 왠일로?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도 귀찮다고 안 갔던 인간이.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이 사람아. 그건 이제 내가 그 뭐냐. 그 비지니스 때문에 바쁠 때였고 흐흐"
-비지니스는 무슨. 개 망나니같이 사느라 정신없을 때였지.
연수의 말에 입이 댓자로 나온 영길이, 연수를 노려보다 변명을 계속했다. 이제 새 인생을 사는거나 마찬가진데 늦게라도 연재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둥, 그래도 고등학교 정도면 국민학교나 중학교랑 다르지 않냐는 둥, 지금이 중요한 시기니 자신이 한번은 학교를 가 봐야 한다는 둥. 이래저래 듣기좋은 변명을 쉴새 없이 쏟아냈다. 그러자 연수가 귀찮아졌는지, 당신 맘대로 하라며 손사래를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영길이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가 이내 욕실로 뛰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