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1부 아무렇지도 않아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고 눈 앞의 남자를 확인한 재준이, 영길의 얼굴을 보고 차를 세웠다. 영길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건낸 재준을 향해 영길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재준이 반듯하게 주차가 되어 있는 렉서스 쪽으로 다가가자, 은영이 보조석에 앉아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으.. 은영아..”
재준이 차문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은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조금 무표정한 얼굴에 재준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은영과 재준을, 영길이 불안한 얼굴로 쳐다봤다.
영길의 렉서스는 견인하기로 하고, 세 사람이 나란히 재준의 차에 다가가 앉았다. 차 안 가득 진득한 공기가 내려앉아서는 쉬이 가시질 않았다. 가끔 재준이 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무슨 말인가를 건넸지만, 은영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한동안을 더 달리다 보니, 목적지인 팬션이 눈에 들어왔다.
재준이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 안으로 차를 몰아 들어가자니, 영길의 눈에 아내인 연수와 장모, 그리고 연재가 나란히 들어왔다. 가족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은영과 영길이 차례대로 시간을 확인하자니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다. 영길이 팬션앞에 차를 세우자, 은영이 먼저 곤란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영길 또한 조금은 죄송한 표정으로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수고많았네 유서방. 후우 얼마나 걱정했는데. 애미야 너두 수고많았다. 많이 힘들었나보네 우리 애미."
-네? 수..수고는요 뭘. 고생은 시매부님께서 다 하셨는데요.
은영과 영길을 바라보며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던 재준이 어딘지 얼굴이 잔득 상기되어 있는 은영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서서는, 은영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고 이마를 짚었다. 은영이 반사적으로 몸을 흠칫했지만, 기어이 짧은 쉼호흡을 한번 하고 가만히 재준의 손을 받아들였다.
"열이 조금 있네? 왜 그래? 감기걸렸어? 몸살인가?"
-어.. 아 아니야. 나도 잘 모르겠어. 딱히 아픈덴 없는데..
은영이 자신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뻔뻔할 정도로 거짓말이 흘러나왔다. 영길이 힐끔힐끔 은영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연수가 영길에게 다가와 눈을 흘기며 뭐라고 하자, 재준의 어머니가 다가와서는 그런 연수를 다그쳤다.
"먼 길 오느라, 애미가 몸살이라도 난 모양이네. 그나저나 유서방이랑 애미 오면 간단하게 식사할 요량으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피곤한것 같으니 어쩌나?"
-흐흐 거시기. 배가 고픕니다 장모님. 흐흐. 옷만 갈아입고 나와서 바로 밥 먹겠습니다. 처남댁도 그러실거죠?
영길의 말에 은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자 나머지 가족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은영을 바라봤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자니 말문이 터억 막혀버렸다. 재준이 대신 무언가를 말하려 하자, 영길의 표정을 살피던 은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괘.. 괜찮아요 어머니. 후우.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올게요.. 저.. 저도.. 배 고파요.”
재준이 은영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고, 이와 대조적으로 영길이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은영을 바라봤다.
"나 괜찮으니까 오빠도 나가서 식사준비해. 짐만 내려놓고 나도 금방 나갈게."
은영이 남편의 품에 기대 배정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재준이 그제야 은영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팬션에 들어오고나서 연신 주위를 살피던 은영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늑한 팬션의 분위기에 잠시 취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직도 저릿한 자신의 하복부 때문에, 정신이 어질했다. 잔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재준이 은영의 옆에 가서 앉았다.
“정말 괜찮은거야?”
-응. 거.. 걱정하지마 오빠. 잠깐 피곤해서 그런가봐.
“무리하지 않아도 돼. 어머님께는 내가 말씀드릴테니까 피곤하면..”
-아니야 오빠. 배고파. 금방 나갈게. 옷.. 갈아입게...
“어 알았어. 흐흐. 아 근데 은영아.”
-어?
“혹시, 다리도 다쳤어? 아까 보니까 쩔뚝대면서 걷던데.”
남편의 말에 은영의 몸이 굳어졌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가 남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은영을 쳐다보던 재준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은영은 그런 재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신기한 노릇이다. 남편을 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그러긴 커녕 거짓말에 거짓말이 꼬리를 물었다. 한참동안 자리에 앉아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커텐을 쳤다.
“말도 안돼..”
텅 빈 방 안에서 츄리닝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던 은영이 자신의 ‘보지’를 보고선 넋이 나가 버렸다. 영길이 가져가 버린탓에, 아까부터 줄곧 츄리닝 바지 하나만 걸친채 걸어왔다. 덕분에 남편이 오기 전까지 영길과 줄곧 실랑이를 벌였지만, 끝내 팬티는 돌려받을 수 없었다. 오히려 영길이 몇 번이나 허리춤으로 쑥 손을 넣어 속살을 휘저어버리는 통에 정신을 놓을뻔 했다.
“너무... 너무... 아찔해....”
은영이 서둘러 짐가방에서 팬티를 하나 입었다. 다리를 벌리는데, 그곳이 너무 아려와서 잔득 인상을 썼다. 자신의 츄리닝을 다시 챙겨 입고는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은영은, 침대위에 걸터앉다 천천히 다시 츄리닝 바지와 팬티를 벗기 시작했다. 얼굴이 다시 붉어져서는, 천천히 가랑이를 좌우로 벌렸다. 거웃한 음모를 드러내고 있는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훔쳐보면서 다시금 탄식을 내던졌다.
‘정말이지, 너무 아프고.. 크고.. 단단한 그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자신의 보지를 바라보며 다시금 영길의 얼굴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어둑한 숲속에서 연신 허리를 흔들어대던 자신의 모습과, 차라리 애원하듯 영길의 목덜미를 잡고 늘어지던 자신의 얼굴이 혐오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은영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천천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의식적으로 자신의 걸음걸이를 고쳐 걸으려 노력했다.
단촐한 식사가 겨우 끝난것은 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은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지켜보던 영길은, 끝끝내 자신의 눈을 피해 음식을 씹어 삼키는 은영을 보며 식사 내내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쌓인 피로탓에 졸음이 밀려오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연수와 함께 팬션으로 들어갔다.
"쯧쯧. 저렇게 술이 약해서야. 후우.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아주 그냥 비틀비틀.."
-그게 그러니까. 술때문이 아닐지도.. 모르.. 그게 그러..
"뭐라구?
재준의 품에 기대어 비틀거리는 은영을 바라보며, 연수가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영길이 무의식중에 연수의 말에 대꾸를 했다. 약간 취한 듯 보이는 연수가 영길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추궁하기 시작했다.
"너... 너 인간.. 좀 수상해. 아까부터. 응?"
-그게 그러니까 뭐..가
"아까 올케랑 무슨일 있었어?"
연수의 입에서 은영의 이름이 나오자 영길은 당황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켜 넘겼다. 영길이 느끼기에, 연수의 몇 안되는 장점 중의 하나는 유달리 '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지막 사업이 망하기 전에도, 연수가 '촉이 안좋다'며 자신을 말릴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게 영길이었다.
영길이 얼굴을 붉힌 채 잔득 긴장하고 서 있자, 연수도 수상하다는 말을 연발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팬션안으로 발을 들였다.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영길은, 등을 적시고 있는 식은땀을 겨우 쓸어내리며, 천천히 팬션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은영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머릿속에서 지워내지 못했다.
"은영아 힘들었지? 피곤할텐데 빨리 자"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위에 털썩 쓰러저버린 은영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재준이, 실내등의 불빛을 조금 은은하게 바꾸곤 천천히 은영의 곁에 다가갔다. 은영은 한사코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시누이 탓에 맥주를 두 잔이나 삼켜넘긴 터였다. 덕분에 아무리 기억 속에서 밀어내려고 해도, 영길의 훌륭한 몸놀림과 ‘남성’이 끝끝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약기운이 아직까지 떨어지지 않아서인지, 식사중에 재준이, 자신의 허벅지며 다리며 할것없이, 이곳 저곳을 만져대는 통에, 아까부터 자신의 허리아래가 다시 조금씩 뜨거워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러지? 왜 이러는거야?'
가만히 눈을 감고 돌아누운 은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재준이, 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천천히 은영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은영의 입으로 재준의 말랑말랑한 혀가 슬그머니 들어와 농밀한 타액의 교환이 계속됐다. 이어 채 벗겨지지 않은 은영의 트레이닝복 안으로, 부드러운 재준의 손길이 스며들자, 은영은 아무말 없이 재준의 손을 받아들였다.
“콘.. 콘돔 안 가지고 왔는데..”
-그냥... 하아.. 그냥 해도 돼 오빠..
재준은 은영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콘돔없이 했던 날이 없던건 아니었지만, 은영이 선뜻 먼저 이렇게 말하는건 기억에 없다. 재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은영의 옷을 벗겨냈다. 은영은 재준의 손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했기에.
펜션에서의 이틀째 아침이 밝아왔다. 지난 밤, 흥분속에서 벌인 두 번의 섹스로, 잔득 잠에 취해있던 은영을 재준이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은영을 바라보며 재준이 바닥에서 무언가를 슬금슬금 집어올렸다. 은영이 슬쩍 바라보니, 잔득 구겨져 있는 휴지가 재준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아 어제...’
재준의 손에 들린 휴지를 바라보고 나서야, 간밤의 일들이 떠올랐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끝나버린 재준과의 섹스. 재준의 작은 물건이, 영길이 지나간 자리 위에 들어왔을 때 솔직히 은영은 공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직 가시지 않은 약기운 때문에 거의 반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재준의 허리위에 감고 꼭 감아버렸었다. 덕분에 재준의 사정이, 평소보다도 더 빨리 끝나고 말아 버렸다. 자신의 보지안에 울컥울컥 쏟아지는 재준의 뜨거운 정액을 느끼며 눈을 감은 것이, 은영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은영아. 나가자.”
-으.. 응. 좀.. 씻고 오빠
“아.. 그.. 그래.. 그럼 나 먼저 나가 있을게..
재준이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먼저 문을 나섰다. 그런 재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은영이 욕실로 들어갔다.
‘나.. 나 너무 뻔뻔하고... 아무렇지도 않은게.. 이상해...’
쏟아지는 물줄기에 의지한 채 은영이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마땅하고, 수치스러워야 하는게 당연한데, 눈물은 커녕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것보다, 생전 처음 느껴보았던 아찔함, 아픔, 그리고 전율... 그리고 영길......몸 안의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지르던 그 기억. 기억 속의 순간과는 다르게 평온한 지금의 감각이 어색하고 벗어버리고 싶은 어떤 안달감 혹은 욕망.
이것만이 더 강렬하게 은영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