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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1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2) (16/109)



〈 16화 〉1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2)


“처남댁! 그게 그러니까 빨리 타요!!! 흐흐”


-저.. 저는..


영길은 한달음에 집까지 달려왔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창문을 내려서는 은영에게 소리쳤다. 혹시라도 은영이 사라졌을까봐 노심초사했건만, 다행히도 은영은 집 앞에서 서 있었다. 은영이 머뭇거리며 차에 올라타지 않자, 영길이 은영을 재촉하며 말했다.


“처남댁!!! 식구들 다 기다려요!! 더 늦기 전에 그게 그러니까 흐흐. 갑시다!!”

은영은 입술을  깨물며 차문을 열었다.




너무 힘겹게, 정말 힘겹게 은영을 차에 태운 영길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찌되었든 은영과 함께 강원도에 내려가게 되었다는 점에서, 설레임과 더불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하는 영길이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한참을 달리는 동안에도 차안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다. 태생이 수다스러운 영길로써는 정말 이것만큼의 고역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아무말없이 앉아있는 은영에게 다짜고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 저기. 혹시 휴게소가 있을까요?"

-네? 그게 그러니까. 휴.. 휴게소요?






한참을 하릴없이 운전에 집중하던 영길의 귓가에, 돌연 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영길이 조금 놀란 눈치로 보조석에 앉아있는 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은영으로썬 긴장감이 돌연 훅하고 풀려서인지 심한 요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영길이 그런 은영의 눈치를 보다가 렉서스 차량에 달린 네비게이션을 슬쩍 쳐다봤다.


"어.. 그게 그러니까. 한 10분? 15분정도 더 가면 휴게소가 있을거 같은데요."

-아 그래요? 그럼 잠시 휴게소에 들렸으면 하는데요


"아.. 그게 그러니까 그래요. 처남댁 원하시는 대로 하지요. 흐흐흐흐. 그게 그러니까 오줌 마려우신가 보다"



대화를 이끌어 가려고 일부러 웃으면서 얘기를 건넸지만, 은영의 표정이 다시금 좋아보이지 않았다. 영길은 아차싶어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10분여를 더 달리자 조그마한 휴게소가 눈에 들어왔다. 휴게소에 차를 댐과 동시에 은영이 자동차 문을 열고는 영길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다 사라졌다. 영길은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은영의 뒷모습을 머리를 긁적이며 바라봤다.


'후우. 그러니까 그게.  그래도 어찌됐든 이렇게 같이 내려가고 있으니까. 후우'



사라지는 은영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영길이, 뭐라도 마실 요량으로 천천히 휴게소 자판기 쪽으로 걸어갔다. 자판기 앞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한장을 꺼내서 집어넣던 영길은 동시에 바지주머니속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바지주머니에 들어갔던 자신의 손바닥에서, 담배와 함께 다른 무언가의 차가운 촉감이 전해져 왔다. 담배와 ‘무언가’를 동시에 꺼내 살펴보던 영길이 그저 묵묵히 손안에 들린 물건을 바라봤다.


'이게 아주 죽이거든? 특히 탄산이랑 섞어 마시게 하면, 여자가 아주 죽어난다 죽어나 큭큭.'


'이게 임마. 여자몸 구멍이란 구멍에서 물이 마를때까지 끊임없이 새어나오게 하는 마법의 약이라니까 큭큭큭'






우락부락한 친구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물끄러미 용기를 살펴보던 영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붙인채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계속 용기를 살펴본다. 주위를 살피며 침을 꼴깍꼴깍 넘기던 영길이 주머니속에서 역시나 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더 꺼낸다.





‘이게 그러니까, 흐흐 그렇게 대단한가? 흐흐. 괜히 궁금하구마..’



담배를 입에 물고 야릇한 생각에 잠겨있던 영길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죽을 지경이었다. 갈색 용기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자판기 뒤 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몸을 숨켰다.



“어 오빠. 나 지금 내려가고 있어. 어? 물론.. 가.. 같이.별다른 일? 없어 그런거. 그냥 빨리 내려갔으면 좋겠다. 날도 덥구. 솔직히 ‘그 사람‘이란 계속 같이 내려가는게  불편하기도 하구. 암튼, 금방 내려갈게. 너무 걱정하지 말구.”



영길은 자판기 뒤에 숨어서 은영이 통화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러면서도 내심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 이라니.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건가. 츄리닝 차림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은영을 바라보며 영길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뭐.. 그렇단 애기지? 후우. 거시기. 흐흐. 그게 그러니까.. 섭섭하구마.”




담배를 다시 한모금 빨아들이곤 영길은 한숨을 내 쉬었다.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놓고서 은영을 따라 렉서스로 걸어가려는데, 여전히 손에 들린 갈색병이 신경이 쓰여 발걸음을 멈췄다. 연신 애꿎은 갈색병을 만지작 거리던 영길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기어이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더 꺼냈다.


[치익]



탄산이 흘러나오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사이다  뚜껑이 열리자,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던 영길이 자신의 손에 들린 붉은색 용기의 뚜겅을 조심스레 돌려 열었다. 알 수 없는 흥분감에 사로잡힌 영길은 짧은 쉼호흡을 뱉어내고 나서, 용기에 담긴 액체를 반쯤 사이다에 타서는 흔들었다.




‘흐흐. 그게 그러니까.. 구.. 궁금항께!!’




행여나 누가 볼새라, 영길은 양손에 사이다를 움켜쥐고 잰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돌아갔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 들어와서 계시네요? 처남댁"

-예. 담배 피고 오시나봐요?

"네. 그게 그러니까 흐흐. 그나저나 이것  드세요"


영길이 사이다를 내밀었다. 그러자 은영이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영길이 끝까지 권하고 나서는 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이다를 건네받았다. 그러면서도 ‘따져’ 있는 사이다  뚜껑을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게 그러니까. 흐흐 날도 덥고 하니까, 뭐라도 들이키는게 좋겠다 싶어서. 흐흐. 드세요~ 저도.. 흐흐. 꿀걱!”



사이다를 들고 멀뚱멀뚱 서 있는 은영을 향해 영길이 어색하게 말했다. 영길이 먼저 은영을 보며 사이다 한모금을 넘기자, 그제야 은영도 사이다 한모금을 목구멍 뒤로 넘겼다.


‘옳커니!! 흐흐흐’




은영의 모습을 훔쳐보던 영길이, 안전벨트를 매고는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수록 점점 애가 타는 쪽은 영길이었다. 곁눈질로 보조석에 앉은 은영을 수시로 살폈지만, 은영은 그냥 말없이 눈을 감고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새끼. 죽이는 약이라더니. 그러니까 그게  골탕 먹이려고 수면제를 준거 아니야? 아이 하여튼 이 병신새끼 그러니깐.'





운전대를 꼭 붙잡고 성인용품점 녀석을 씹어댔다. 특별히 무얼 기대한건 아니지만, 녀석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보니 슬슬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을 한 번 보니 한 두시간 더 달리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그 때 옆자리에서 컬러링이 들렸다. 반대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올려다 보는데, 아무리 눌러봐도 화면이 껌껌했다.

그제야 보조 배터리를 가지고 나온다는  깜빡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없이 옆에 앉은 은영의 전화기를 훔쳐봤다.



‘깊이 잠들었네? 처남댁? 흐흐. 잠깐만! 이새끼 이거. 혹시 수면제 준거 아니야? 이런 병신이!’



영길이 머릿속으로 성인용품점의 친구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씨팔을 외쳐댔다. 그 병신같은 자식이 약을 잘못 주었을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링이 이렇게 크게 울려대는데 이렇게까지 잠들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은영이 좀처럼 깨어나지 않기에 슬쩍 은영의 폰을 꺼내어 보니 재준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엑셀을 밟으려는데, 얼마가지 않아 컬러링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영길은 다시 엑셀을 밟고 앞으로 차를 몰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가 어딘지 자신의 지금 상태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음"



엑셀을 밟고 천천히 차를 모는데, 영길의 옆에서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영길은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서서 보조석을 바라봤다.





'뭐야? 그러니까  잠꼬댄가?.'

“하음.. 하아..”






깊게 잠들어 있는 듯한 은영의 얼굴을 보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영길이 다시금 앞을보고 운전을 계속 하려는데, 다시금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멈춰서서 침을 꼴깍 삼키던 영길이 은영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있는 은영의 허벅지가 왠지 -느낌인지는 몰라도- 바짝 붙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간편하게 차려입은 추리닝이 아주 바짝 조여들어 있다.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영길은, 혹여나 은영이 깨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앞과 옆을 번갈아가며 살피기 시작했다. 보조석에 앉아있는 은영의 다리가, 크게는 아니지만,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꼬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들어있는 은영의 얼굴을 살펴보자니, -역시나 기분탓인지는 몰라도- 볼이 조금 발갛게 달아올라있는 느낌도 들었다.


숨을 죽이고 은영의 상태를 살펴보던 영길이, 바지춤에 손을 넣고는 갈색병을 가만히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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