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부 불안(1)
남성의 옅은 신음소리가 영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놀란 토끼마냥 눈이 커질대로 커진 영길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기어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 소리 너무 커"
-미.. 미안.. 오랜만에 해서. 미안해..
영길이 재준의 방문에 귀를 대고 있으려니, 재준과 은영이 목소리를 낮춘채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서도 이내 문 너머에서, 돌연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영길은 왠지모를 흥분감에 사로잡혀서는, 천천히 자신의 왼손을 이미 잔득 발기해 있는 자신의 물건쪽으로 가져다 댔다.
'그러니까 그게... 후우... 이게 왠 횡재냐..'
영길은 어색한 자세로 주위를 살피며, 몇 분 동안을 재준의 방문에 귀를 댄채 서 있었다. 낮은톤의 신음소리와, 침태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영길의 흥분도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문너머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잔득 아쉬운 표정으로 서 있던 영길이 주위를 살피며 다시금 자신의 방쪽으로 걸어갔다.
영길은 방에 누워 혹시라도 아내 연수가 잠에서 깰까싶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곤 곧바로 자리에 누워 놀란 가슴을 천천히 쓸어 내렸다.
'그러니까 흐흐 그게 흐흐. 그렇게 귀여운 꼬추로도 할건 다 하는구나. 우리 처남 큭큭... 근데 토끼도 아니고 저런 와이프를 두고 저 정도밖에 안되는건가 큭큭'
"미.. 미안.. 너무 오랜만에 해서 금방.. 끝났네. 미안"
-아니야 오빠. 나 조금 피곤하네. 먼저 잘게.
재준의 방에선 방금 전 섹스를 나눈 남녀가 나란히 침대위에 벌거벗은채 누워있었다.
은영과 재준은 정말 모처럼 섹스를 나눴다. 시누이 부부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는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영길의 귀가가 늦어진 덕분에 재준이 먼저 용기를 내어 은영을 안아버렸지만, 모처럼만의 섹스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조루...일까. 남편을 등진채 돌아누운 은영은 솔직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하지만 그것보다...’
괜시리 입술을 꾸욱 깨물던 은영이 짧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남편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왜, 방금전 남편과의 섹스에서 영길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아니 조금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왜 영길의 우람한 남성이 떠올랐던 것 일까?
재준과의 관계를 포근함이라 생각하던 자신이 오늘은 따분함과 실망을 느꼈음에 은영은 괜히 죄스러웠다. 나도 더 뜨겁고 더 격렬하게...더 큰...
‘후우. 미쳤어 미쳤어. 빨리 자야지.’
은영이 침대위에 널부러져 있는 이불을 두 손을 집어들고, 그대로 머리위까지 당겨 덮었다. 재준이 은영을 훔쳐보다가 하릴없이 눈을 꼬옥 감아버렸다.
은영의 학교엔 어느덧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방학이 되면 막연하게 한결 여유가 생길거라 생각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은영은 거의 매일 학교에 나와 있었다. 한적한 교무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운동장을 지긋이 바라보던 은영이,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후우. 고민이고 뭐고. 이젠 아무 생각도 없다. 그저, 여름 다 가기전에 가족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오후 6시가 다 되었을 때, 은영이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왠일로 일찍 퇴근한 재준이 은영을 맞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던 은영이 거실쪽을 바라봤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 영문을 몰라 그저 재준의 손에 이끌려 거실쪽으로 걸어갔다.
"회사 선배중에 친척분이 강원도 어디에 펜션을 하나 가지고 계신대요. 경치좋구 목좋은 곳에 위치해서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인데, 시설도 시설이고 뭐 이것저것 따져놓다보니까 아무래도 하루 임대하는데에만 엄청 비싼 돈이 들어가나봐요. 근데 회사 선배가 일전에 저한테 신세진게 있는데 그걸 꼭 갚고 싶으시다고 하시면서 그곳에서 3일정도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와.. 근데 그러니까 그게 우리 처남 능력 좋구먼.
은영은 맞은편에서 호들갑을 떨고 앉아있는 영길을 한번 째려보다가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슬쩍 어깨를 으쓱해 보인뒤, 재준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선배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정확하게 말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고 하시더라구요 오늘. 그래서 말인데 누나 가족들도 집에 들어온지 벌써 2달이 넘어가고 하는데, 딱히 환영회랄까 뭐 그런 인사치례도 안하고 넘어갔잖아요? 이번 기회에 여행겸 환영회 겸해서 강원도에 다녀오는건 어떨까 해요. 마침 저도 아직 휴가계가 남아있고 연재나 집사람도 방학시즌이라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 매형이랑 누나만 괜찮다 하시면......"
-그러니까 그게. 무조건 갑시다!! 흐흐흐흐 무조건 무조건. 처남 최고야!
다시금 눈치없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영길을, 옆에있던 연수가 힘껏 꼬집었다. 그러자 영길이 사람의 신음인지 동물의 그것인지 알 수 없을 괴성을 질렀다. 지켜보던 가족들이 재밌어 하는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저 물끄러미 이를 바라보던 은영이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슬쩍 인상을 구겨넣었다.
"그럼 괜찮은 시간들 말씀해 주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금 빨리 다녀왔으면 해요. 괜찮으면 다음주 중으로. 아무래도 다음주 쯤이면 이번 더위가 최고조에 달할 것 같기도 하구 따라서 피서로는 제일 적합할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그게 나는.....
"당신은 그냥 빠져있어.
영길이 또 눈치없이 자리를 비집고 일어나려하자, 옆에 있던 연수가 영길의 바지춤을 잡고 막아섰다.
"그럼 다음주에 가는걸로 선배한테 연락할까요? 당신은 괜찮겠어?"
-아? 아 저도 마침 내일부터 교대로 근무하니까 다음주중이면 시간 뺄 수 있을것 같아요. 다음주에 가는걸로 해요 우리.
"좋습니다. 그럼 우리가족 첫 가족 여행은 다음주에 가는걸로 결정됐습니다!"
재준이 힘차게 얘기를 하고 나서자 나머지 가족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도 오늘은 일진이 좋네.’
그저 소원삼아 빌어봤는데, 정말 이루어질 줄이야. 은영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만족감에 연신 남편의 얼굴을 훔쳐봤다.
"오빠. 고마워."
-뭐가?
가족회의를 마치고 방에 들어선 재준에게 은영이 다가가 안기며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딱히 내색을 한것도 아닌데, 자신의 마음을 기가막히게 알아준 남편 재준이 마냥 고마웠다. 은영은 재준의 어깨를 감싸안고 재준의 입술을 훔쳤다.
그런데 그 순간 남편의 등뒤로 영길의 비릿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차. 문을 열어두었었나?’
은영이 재준의 몸에서 떨어지며, 금새 표정을 구기자 놀랄대로 놀란 영길이 부리나케 사라져 버렸다.
'긴장감이 조금 풀어지니 저 모양이야. 좀체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인간이야. 후우'
은영이 문을 닫았다.
여행을 간다는 기대감에 들떠서, 또는 더운 날의 열기가 몸에 돌아서. 불현듯 재준과 하고 싶었다. 당황하는 재준을 침대에 밀듯 누이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부드러운 사람,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러면 뭐 어떠랴. 은영이 몸이 뜨겁다. 퇴근하자마자 가족회의를 하느라 재준도 은영도 씻지 못해 땀내가 코를 괴롭히지만 상관없었다.
나긋하지만 분명한 손놀림으로 옷을 벗고 알몸이 된 은영이 재준의 옷을 벗긴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팬티를 벗겼을 때
"아."
귀엽다고 말해야 이 실망감을 감출 수 있을까. 영길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존재감에 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지난 며칠 계속된 야근의 피로 때문이라며 미안해하는 재준에게 은영이 애써 웃어보이지만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길,그 한심한 인간은 하나 잘난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떠올라서 남편에게 미안함을 들게 만드는지. 은영은 다시금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영길의 그것의 모습을 지워내려 애쓰면서 재준에게 말했다.
"나 여행 정말 가고 싶었었어, 고마워 오빠. 피곤할텐데 어서 씻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