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1부 친구
영길이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택시를 잡아타고는 으슥한 골목 바로 앞에서 내렸다. 시간이 벌써 저녁 7시다. 영길은 숨을 한번 가볍게 몰아내쉬곤, 주위를 한번 슥 살피다가 이내 익숙한 발걸음으로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잠자코 얼마를 걷자니, 네온사인이 그득한 요란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성인용품'
과연. '역시나 네놈 답다‘ 는생각이 영길의 머릿속을 옭아맸다. 그러면서도 가게 앞에 말끔히 주차되어있는 '렉서스'를 보고는 부러움에 괜히 혀를 내둘렀다. 예나 지금이나 차라면 정말 사족을 못 쓰는 놈이다.
"아저씨... 여자친구한테 정말 이거 매기면 뿅 갑니까?"
-뿅가는게 뭐야. 질질 싸지 질질싸. 이거 한방이면 구멍이란 구멍에서 물이란 물은 말라 비틀어질때까지 흘러 나오지
"우와. 죽이네. 아저씬 이런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입닥치고 살거냐 말거냐 이 어린노무시키야
영길이 조용히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싶은 총각하나가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남자와 마주하고 서서 떠들고 있었다. 영길이 벌써 들어와 있는데도, 두 사람 다 영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벙찐 표정의 영길이 인사를 건네려다 포기하고 잠시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라복에 스타킹 그리고 각종 자위기구, 콘돔. 그리고 여성용 자위기구들 뭐 대략 그런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의 바이브레이터 하나를 손에 집어든 영길이 유심히 그것을 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다시 대화가 들려왔다.
"아저씨. 뭐 그런건 없어요? 막.. 그 먹으면, 갑자기 일시적으로 남자 좆이 말자지가 되는 뭐 그런..."
-말자지로 맞아본적 있냐?
"없습니다."
-그럼 그만 꺼져
"예"
한동안 죽이 맞아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던 '어린' 손님은, 주인장으로부터 무언가를 건네받고선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길이 가게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그게 . 새끼 장사 잘 되나 보다?"
-미친. 이게 잘되는거냐? 손님이래뵈야 존나 저따위 어린 새끼들만 맨날 꼬인다. 후우. 그나저나 갑자기 연락도 없이 왠일이냐?
"새끼야 그러니까 그게. 친구 만나는데 그게 이유가 필요하냐? 연락도 없이 올수도 있는거지..."
-아 그러셔? 그래서 저번에 니네 집에 불러서는 그렇게 개차반마냥 매몰차게 쫓아낸거여?
"그건 그러니까, 병신같은 니가 그러니까 우리 처남댁한테 실수를 해서리 어쩔수가 없는 뭐 그런"
-아 니네 줘남댁? 큭큭
영길이 조금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자, 가게주인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진짜. 그땐 취했었고. 뭐 이제와서 얘기지만, 여자 허리춤 좀 감싼게 그게 뭐 실수 축에나 들어가냐? 실수라고 하면 까까머리 고등학생 두 명이, 길 가던 여고생 하나 잡아서 날이 샐 때까지 돌리고 돌려줘야, 그게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그게 그러니까. 이 미친놈아. 입 다물어.
가게 주인이 연신 비릿한 미소를 날리며 -영길을 보며- 조롱하듯 말하자, 얼굴이 한껏 달아오른 영길이 신경질적으로 가게주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가게주인이 영길의 손바닥을 피해서 다시 무언가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큭큭 병신. 기억나냐? 우리 진짜 담날에 담임인가 뭔가하는 인간한테 진짜 좆털리도록 맞았잖아. 운이 좋게도 나는 소년원에 잠시 다녀오는걸로 끝나고 너는 정학 맞는걸로 끝나고.
아씨발 생각해보니 또 억울하네 이거. 큭큭. 보지는 둘이 같이 쑤셨는데, 왜 나는 소년원이고 너는 정학이냐고. 씨발 왜 나만!"
-그게 그러니까 임마. 뭐 그건 조금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게 그러니까
"큭큭. 됐어 됐어 임마. 흐흐. 그나저나 나갈까? 술이나 한잔 하게?"
-아니 그러니까 그게.. 음. 오늘은 좀 힘들거 같다. 어차피 술마시러 온것도 아니고, 어디 갈데가 없는 틈에 그러니까 그게 그 뭐시냐 그래 발걸음 닫는대로 찾아온게 여기다. 크. 뭐 그냥 얘기나 하자.
"씨펄놈. 내일은 뭐 해가 서쪽에서 뜬다냐? 왠일로 술마시자는 소리를 안해? 흐흐"
술 생각이야 절실하긴 했지만, 지금 또 한 잔 들이켰다간 정말이지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거라 생각했다. 영길은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다가, 가게주인 남자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그래, 그러니까 요즘 뭐 좋은 물건 들어왔냐? 그러니까 그게 아까 어린애랑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뭐 죽이는거라도 있는거 같던데?"
-음?
오돌도돌한 자위기구를 매만지던 주인이 고민을 하는 듯 싶다가, 겨우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 죽이는거? 큭큭. 있지 있어."
-그냐? 그게 그러니까 뭔데? 아까 들어보니깐 무슨 구멍이란 구멍에선 물이 마를때까지 어쩌구 저쩌구 그러니까 그러더만 흐흐.
"크크크큭. 병신 존나 훔쳐들었구먼. 그게 말이다. 바로 이거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연신 자신을 바라보는 영길에, 가게 주인이 데스크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영길이 데스크 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빨간색인지 주황색인지 도통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용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그거냐? 그러니까 그. 여자한테 매기면 밤새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
-미친 놈아 여자가 무슨 정수기냐? 밤새도록 틀면 물이 나오게?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렇다는 거지 병신아. 대관절 뭐냐 이게?"
-이게 임마. 얼마전에 은밀하게 구한 최상급 '최음제'라는 거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브라질인가 태국인가 뭐 암튼 외국에서 들어왔다는데 이게 진짜 효능이 죽여준다는거 아니냐?
"그러니까 그게 어떻길래!"
-뭐 효능이야 아까 다 훔쳐 들었잖아!. 여자가 구멍이란 구멍으로 질질 싼다는데 뭐 더 설명이 필요해? 게다가 이거 구해온 놈한테 전해들으니까 이게 뭐 그 외국애들 상대로 만들어져서 국내에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최음제보다 그 뭐라더라 강도? 그래 뭐 여자를 미치게 하는게 장난이 아니라는거야."
-넌 그러니까 그게 사용하는거 본적은 있냐?
"아니 아니. 나도 전해 듣기만 했어. 그 뭐냐 이런 가게에 '당골'이라는 표현 붙이는게 존나 우습긴 하지만, 주기적으로 여길 찾는 떠중이들이 몇 있거든. 아까 니가 훔쳐본 그 애기도 거의 2주 마다 한번씩 오는 꼴통새끼고. 큭.
그래서 나도 시험삼아 이빨까서 그 자식들한테 이 약을 몇 개 좀 팔아봤는데 말야. 나중에 이 새끼들이 단체로 몰려와서는 몇 통씩 더 달라고 하는 통에 죽는줄 알았다. 큭큭"
-아 그래? 그러니까 그게. 존나 효능이 있는거냐?
"그렇다니까. 내가 언제 이런쪽으로 빈말하는거 봤냐? 내놔 새끼야"
영길이 데스크 위에 놓인 주황색 용기를 만지작 거리자, 가게주인이 영길 손에 들린 용기를 뺏어 들었다. 영길이 아쉬운 마음에 가게주인을 훔쳐봤다.
"왜 아쉽냐? 한 통 주까? 내가 이거 한통 주면 넌 나한테 뭐줄래 병신아?"
-병신. 그러니까 난 임마. 이것만 있으면 그런것쯤 필요없다 그러니까 큭큭
그렇게 말하면서 영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물건을 맨손으로 한번 꽉 쥐더니, 잔득 만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가게주인이 씨팔 씨팔을 연발하며 영길에게 말했다.
"하긴 뭐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니 좆이 존나 크긴 하지. 아니 어떤면에선 부럽기도 해 큭큭. 일단 굵기가 후우. 너 존나 기억하냐? 우리 고등학교때 그 아다년 돌려먹을때 내가 그년 질 안에다가 가득 싸놓구나서 니가 잔득 서버린 니 자지를 꾸역꾸역 그년 보지에다가 밀어넣었을 때!
그년이 진짜 미친 괴성을 지으면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큭큭. 아다년 주제에 뭐 그렇게 미쳐서 발광하냐? 난 진짜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불끈불끈 선다. 무슨 다른 사람 하는거 보는것만으로도 이렇게 큭큭"
-미친놈아 그러니까 그게 임마. 아가리 닥치라고 그러니까!
영길은 잿빛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괜히 왔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이 주황색 용기를 높이 치켜 들면서 영길을 향해 소리쳤다.
"암튼, 혹시 모르니까 몇 병 남겨 놓을게."
-그러니까 그게 실없는 소리 하지 마라. 후우. 괜히왔네 씨펄!
그렇게 대꾸하던 영길이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게주인은 손안에 들린 작은 용기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맛을 한번 다셨다.
성인용품점을 나와서 한동안을 정신없이 걸어가던 영길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방금 전 친구놈과 나누었던 얘기를 떠올려 봤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곤 집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영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집까지 걸어갔을 땐 11시가 조금 안되는 시간이었다. 집안 불이 모조리 꺼져있기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후우. 그러니까 그게 너무 어둡단 말이지.'
까치발로 거실 여기저기를 밝아대던 영길이, 겨우겨우 자신의 방문 쪽에 다가섰을 때였다.
[하아.. 하아...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