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1부 갈등(3)
시간은 흘러 은영의 학교도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영길과의 ‘그 일’이 있은 후로, 은영으로썬 영길과 그 어떤 관계적인 개선이 있을리 만무했지만, 은영의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건, 그날밤 이후로는 좋든싫든 ‘무거운 짐’ 하나를 마음속에서 덜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후우. 어쨌든 이젠 방학이다. 돌이켜보면 은영으로써도 꽤나 분주했던 한 학기였다. 그것이 집이든, 학교에서든.
토요일 아침. 전날 회식으로 모처럼 늦잠을 자고 뉘엿뉘엿 일어난 재준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아내 은영이 학교에 가는것도 지켜보지 못한 참이었다. 눈을 잔뜩 찡그리며 탁상위에 놓인 시계의 눈금을 확인하자니 벌써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난날의 과음으로 인해 심한 갈증을 느끼던 재준은 슬리퍼에 발을 구겨넣고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어... 어 매형."
재준이 한손으로 관자놀이를 꾸욱꾸욱 누르며 방문을 돌려 열자 마침 거실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는 영길의 모습이 보였다.
"어..그러니까 그. 그래 재준이. 어제는 그러니까 꽤 마셨나봐? 흐흐. 이야. 그러니까 그게 좋겠구먼 젊어서. 그러니까 젊었을 때 마셔둬야해 남자란. 그러니까 흐흐흐흐"
-아 예. 하하.
누나인 연수 식구가 재준의 집에 들어온지도 벌써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인 은영과 누나 식구들이 관련해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던 탓에 -그렇다고 해 봐야 짧막한 사건들은 모두 은영과 영길의 일이었지만 -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화가 오간다. 사실 재준으로썬 아내인 은영이 매형인 영길을 약간의 거리깜을 두고 대하는 바람에 이것저것 눈치를 살피며 누나 가족을 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한편으론 눈앞에 보이는 매형의 어쩐지 이런 '어리숙함'이 꽤나 친근하게 느껴지던 터였다.
"어제 모처럼 회사 회식이 있어서요. 매형도 지금 일어나셨나봐요."
-어 그래? 그러니까 그게. 그렇지. 정답. 흐흐흐흐.
재준의 물음에, 영길이 떡진 머리를 긁적이며 베시시 웃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영길도 매형을 따라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저기 그러니까 그게 재준이."
-예 매형 말씀하세요.
"저기.. 그러니까 그게. 음... 보니까 재준이도 아직 안 씻은 모양인데, 우리 그러니까 목욕탕이라도 가는거 어떤가?"
-목.. 목욕탕이요?
여전히 머리를 긁적이며 재준을 바라보며 서있던 영길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재준이 깜짝 놀라며 말을 받았다.
"어 그게 그러니까. 음. 그래. 아니 싫음 괜찮아. 난 그러니까 그게, 오랜만에 처남이랑 그러니까 남자들끼리 그러니까 목욕도 하고 그 뭐시냐 그게. 싸우나에 앉아서 또 이런저런 얘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리. 흐흐. 바쁘면 괜찮아 괜찮아"
-아... 아니에요 매형. 모처럼 목욕탕에 가는것도 좋을것 같네요.
"그래? 그렇지? 그렇지? 큭큭. 역시 재준이 그러니까 참 뭐냐 참 사람 좋아서 좋아. 흐흐흐흐. 내 들어가서 언능 준비하고 그러니까 나옴세~!!!"
-천천히 준비하세요 매형. 저도 준비할게요.
무언가 두서가 없어뵈는 대화가 한참을 오가자, 영길은 마치 솜사탕을 사먹기 위해 어머니에게 쌈짓돈을 얻어낸 몇 살짜리 어린아이마냥 방방 날뛰다가 이내 방으로 사라졌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재준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그냥 웃고 서 있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한낮인데다가 시간도 인적이 많을 수 밖에 없는 토요일 오후인 탓에, 재준과 영길이 나란히 동네 공중 목욕탕에 들어섰을 때에는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재준과 영길은 나란히 자신의 사물함으로 걸어가서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옷을 벗으려니, 어쩐지 재준이 영 불편한 기색을 만들어 보였다. 하지만 혹여라도 영길에게 그런 기색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의식하며, 재준은 영길의 옆에 서서 천천히 옷가지를 벗기 시작했다. 재준과 영길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몸위에 걸쳐진 거의 마지막 천조각인 팬티를 다리 아래로 내렸을 때였다. 슬금슬금 재준의 동태를 살피던 영길이 히죽 웃으며 나지막하게 재준에게 소리쳤다.
"어 이거 그러니까 그게 흐흐흐. 우리 처남 좆이. 완전 애기 좆이구만. 흐흐흐흐흐 귀엽네 그려 흐흐"
-네?
영길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재준이 자신의 사물함 앞에 얼어붙어서는 얼굴이 바짝 붉어진 상태로 영길을 올려다 봤다.
마침 영길과 재준의 곁에 있던 고등학생정도로 보이는 몇 명의 학생들과 영길 나이 또래의 몇 명의 남자들이, 재준과 영길을 번갈아 보는가 싶더니 이내 씩 웃으며 지나쳐 갔다. 재준의 얼어버린 표정을 가만히 보고 서 있던 영길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서둘러 부랴부랴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아.. 그러니까 아 영길이. 아니 아니 영길이는 나지 그러니까. 저기 재준이.. 나는 그 뭐냐. 남자들끼리는 친해지면 그 뭐시냐.. 좆이나 불알 얘기 많이들 하니까.. 나는 또 재준이랑 그러니까 좀 친해지고 싶어서 한 얘긴데.."
-아... 아 하하.. 아니에요 매형.. 신... 신경쓰지 마세요. 큭. 제.. 제 물건이 좀... 작긴하죠?
"어.. 어... 그러니까 솔직히 흐흐 그렇긴 한데.. 흐흐"
-...........
재준이 얼굴이 바짝 얼어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있자니, 아까 그 고등학생 무리가 다시금 킥킥 거리며 뒤에서 웃고 있었다. 재준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겨우 진정시키며 사물함의 열쇠를 잠가 닫고는 영길보다 몇발자국 앞서서 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재준으로써는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영길도 머쓱해 하면서 사물함을 닫고는 부랴부랴 재준의 뒤를 따랐다.
영길이 고개를 슬며시 돌리자니, 자신들 뒤에서 키득대고 웃고 있던 고등학생 남자애들 중에 한 녀석이 자신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영길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재준의 뒤를 밟았다.
"저기 그러니까 재준이.. 그게.. 아까 일은 그러니까 말이여.."
-아니에요 매형. 신경쓰지 마세요.
온탕에 앉아서 한동안 재준의 눈치만 살피던 영길이, 비굴한 목소리로 재준에게 말을 걸자, 재준은 영길쪽으로 눈을 돌리지도 않은채 지극히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재준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영길이 다시금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 주위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재준으로썬 기분이 썩 좋을리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페니스 크기'는, 재준의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남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자신의 성기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기죽어 살아왔던가?
한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재준이 중학생이었을 때, 친구들과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을 무렵, 같은반 친구녀석이 곤히 잠든 재준 몰래 치약으로 짓궂은 장난을 하는 바람에 중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재준의 '암묵적인' 별명은 '콩알'이라는 얄궂은 녀석이었다. 아직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성될 나이가 아니었던 재준으로선 별것 아닌것 같은 그런 놀림들이 남에게 말하지 못할 큰 상처가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때문인지 아내인 은영과 첫날밤을 보낼때도, 그리고 결혼생활 내내 아내와 성관계를 가지는 동안, 아내인 은영과 '정상적인' 성관계가 지속될 리 만무했다. 아내를 안고나서는 으레 은영의 눈치를 살피는게 버릇처럼 되어 있던 재준이었다. 다행히도 아내는 모르는듯 싶었지만.
온탕에서 제법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연신 재준의 눈치를 살피던 영길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온탕에 들어올때와 마찬가지로 어딘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는 재준을 따라 부랴부랴 일어날 뿐이었다. 깜짝놀라 재준의 뒤를 따르자니 영길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거대한 물건이 덜렁덜렁 거리며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재준은 영길의 물건을 애써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남자고 봐도 너무 크고 훌륭해 보이는 물건.
목욕탕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재준과 영길은 또 한동안 말없이 묵묵히 때를 밀기 시작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머리속에 계속 영길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바람에 재준은 곁눈질로 사람들을 의식함과 동시에 최대한 가랭이를 좁혀 자신의 물건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썼다. 재준이 고개를 약간 돌려 영길을 보니, 아까부터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영길과 거의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던 영길이 화들짝 놀라며 재준에게 말을 걸었다.
"어.. 그러니까 재준이. 왜. 등.. 등 밀어줄까?"
-네? 아니.. 괜찮은...
"아니여. 그러니까 그게 등 밀어줄게 흐흐흐흐"
그렇게 말하며 부리나케 일어나는 영길이 재준이 말릴 새도 없이 재준의 등뒤로 달려가 때를 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저기 재준이. 아까일은 다시한번 내가 그러니까 사과함세.."
-아. 매형. 정말 괜찮다니까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러니까 아니여. 그게. 후우. 아니 난 재준이를 정말 좋아해. 그러니까 알잖나 자네도. 나 어렸을적에 부모님 일찍 돌아가신거. 그러니까 그게. 가족이래봤자 연수랑 자네식구가 다 아닌가. 그래서 그러니까 아까 그게 나도 모르게 조금 친해졌다는 느낌에.. 아니지 그러니까 조금 친해질 생각으로 그 뭐시냐. 요즘말로. 그래 그러니까 '오버'를 했나보이. 미안하네 재준이"
재준은 자신의 등뒤에서 한동안 때를 밀던 영길의 목소리가 차츰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잊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재준이 영길을 좋아하는 데에는 영길의 순수한 성격 만큼이나 -물론 이건 다분히 재준의 생각. 아니 '착각'일런지도 모르지만- 다른 이유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영길이 아내인 은영과 같이, '외톨이'라는 사실이다.
"매형. 전 정말 괜찮습니다. 다시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자 저는 이제 됐으니까 이제는 매형차례에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재준이 나를 용서해 주는건가? 크흑. 그러니까 몸둘바를 모르겠구먼. 내가 진짜 그러니까 앞으로는 꼭 입조심 함세. 고맙네 재준이.
재준이 웃으며 바라보자 영길은 그제서야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목욕탕이 떠나가라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재준과 영길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재준이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영길을 진정시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쯤, 영길과 재준이 목욕탕을 빠져 나왔다. 걸어서 집까지 올라가려던 참이었는데, 재준이 은영의 전화를 받고 먼저 영길의 곁을 떠났다.
졸지에 홀로 남겨진 영길이 담배를 한 개 꺼내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주위를 살피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