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1부 갈등(2)
은영은 눈앞에 서있는 영길을, 거의 반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올려다 봤다. 얄궂다 혹은 짖궂다라는 말을 써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지금일 것이다.
"아.. 저.. 저 그게.."
-아 그게 그러니까 그래, 처남댁 흐흐흐흐
이래저래 혼란스러워 하는 은영과는 달리, 이내 그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쏟아내는 영길을 바라보고 있자니 은영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안정됨과 동시에 조금은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영길과 마주했다.
"시매부님. 어제 일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전 이제 괜찮습니다."
-네? 아 그게 그러니까. 후우. 그래요. 후우 뭔가 그건 처남댁,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만.
"!"
영길의 입에서 뜻하지 않은 말이 흘러나오자, 가까스로 안정을 찾았던 은영의 심장이 다시금 빨리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영은 이내 냉정해 지려 노력하며, 눈을 부릅뜨고 맞받아 쳤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실수하신건 시매부셨다구요. 물론 제가 경솔하게 화장실 문을 연 탓도 있지만요"
-아 그게 그러니까. 처남댁. 물론 그건 제가 잘못했다면 잘못한 거구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러니까 그래요 그건 어제도 그렇고 제가 사과드린 일이구요. 음. 그게 그러니까 제가 괜찮은건 뭐시냐 그...
"아 됐어요.. 그만...."
영길의 입에서 다음에 흘러나올 말이 무엇일지 직감적으로 알아챈 은영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끝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무언가를 작심한듯 비릿한 미소를 날리던 영일이 은영이를 향해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 그러니까, 제가 괜찮은건, 어제 점심에 재준이 와이프.. 아니 그래 그러니까 처남댁이 '훔쳐' 보신거 말이에요. 그러니까. 연수랑 저랑 그러니까 그게 흐흐 연재 방에서 흐흐흐 보셨잖아요?"
은영은 순간 둔탁한 무언가로 가슴을 얻어맞은듯한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간밤에, 그리고 지난 이틀의 시간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것. 사실이지만, 은영이 자신이 끝끝내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더욱더 자신을 억세게 몰아세웠던 것. 영길이 결국 ‘그것’을 베시시 웃으며 하나하나 토해내고 있었다.
"전 괜찮아요. 그게 그러니까 그래요. 뭐 사람이 살다보면 그게 이런저런 일도 있는거고, 특히 가족이 뭐냐 그게 그러니까 그래요 뭉쳐서 살다보면, '살부딪히며 사는거고' 그런거죠 뭐. 그게. 그래도 그게 놀랬어요. 흐흐. 문앞에서 처남댁이 딱하니 버티고 서있을때에는요"
-그게... 그러니까.
영길이 쉴새없이 떠드는 통에, 은영으로썬 애초에 갖고있던 일말의 냉정함들이 하나둘씩 허공속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분함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인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격하게 휩싸인 은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앞의 영길이 쏟아내는 다음 말들을 그저 묵묵히 듣고 또 듣는것 뿐이었다.
"그래도 그게 그러니까 신기하긴 하더라구요. 학교 선생님에다가 그게 그러니까 늘 정숙해 보이시는 처남댁이 또 몰래 그러니까 흐흐 그런쪽에 취미가 또 흐흐 있으실줄은"
-말씀 좀. 삼가해 주시겠어요?
"예? 아그게... 그러니까"
은영이 거의 울 듯 한 얼굴을 하고 영길을 올려다보자, 조롱하는 말투로 연신 은영을 자극하던 영길의 입이 일순간 굳게 닫혀 버렸다.
한참을 영길을 노려보고 서 있던 은영은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오..오해가 있으세요. 훔쳐본게 아니란 말이에요. 변명같이 들리실까봐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그래도 굳이 말씀드리자면, 어제 점심에 일이 있어서 집에 잠깐 들렸다가. 연재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에..... 무슨일이 있나 잠깐 그쪽으로 확인하러 갔던것 뿐이라구요."
-아.. 저기 그게 그러니까. 저는 그러니까... 미안합니다 그게.. 그러니까 선생님. 아니 처남댁.. 저기
"됐습니다. 그만 들어가지요"
간신히 나오려는 울음을 틀어막은 은영이 영길의 말을 잘라막으며, 몸을 휙 돌아서서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은영의 뒷모습을 영길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라봤다. 지난 새벽에 있었던 일 때문에 영길의 기분도 그다지 좋을리 없었던 탓에, 우연히 마주친 은영을 조금 골려주려다가 오히려, 상황이 이상해져 버렸다.
장난도 받아주지 못하나. 영길은 길바닥에 침을 퉷 하고 뱉어낸뒤 어슬렁어슬렁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