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1부 갈등(1)
이번에도 시간이 모든것을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다음 날은 은영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식탁위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은 가족들은 식사 내내 별다른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영길은 방안에 틀어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은영내외와 연수가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에 방문을 열고 -더벅머리를 한 채로- 슬금슬금 기어나왔다. 문 앞에 서있던 은영과 영길의 눈이 -마치 지난날처럼- 갑작스레 마주치자, 영길이 먼저 은영을 보고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이내 은영이 애써 그것을 외면한 채 서둘러 문밖을 나섰다. 그런 은영의 뒷모습을 영길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학교에 도착한 은영은 교무실에서의 아침일정을 마친 채, 자신의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지난밤 자신에게 닥쳤던 일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간밤에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보려 애를 써봤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지난 저녁, 집에 들어가기전에 학교에서 그토록 오랜시간을 생각했건만, 간밤에 또 다른 일이 ‘추가’되는 바람에 오히려 그 생각의 무게가 왠지 더 무거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저기 선생님."
앞으로 영길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혹여라도 영길이 억울한 마음에 연수나 재준에게 자신이 몰래 훔쳐봤단 얘기를 흘려놓는건 아닐까? 고민 아닌 고민에 사로잡힌 은영은 그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런 고민의 사이 사이에는, 지난밤 너무나도 선명하게 지켜봤던 영길의 ‘남성’이 은영의 뜻과는 상관없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그럴때마다 은영은 눈을 질끈 감은채로 애써 그런 생각들을 지워버리려 무던히 애를 썼다.
"저기 김은영 선생님.!"
-음?
은영은 졸린탓인지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떠 자신의 이름이 불리우는 쪽을 향해 넌지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언제 왔는지, 자신이 맡고 있는 학급의 반장 녀석이 은영의 곁에 다가와 서 있었다. 은영이 생각처럼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연신 꿈뻑이며, 반장아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장아이의 시선은 은영의 가슴쪽에 꽂혀 있었다. 여름이라는 날씨탓에 은영이 출근길에 일부러 사이즈가 넉넉한 상의를 고른 탓도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생각에 잠긴탓에 거의 무방비하게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에 반장녀석이 다리를 비비 꼬며, 연신 은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졸린눈을 겨우 뜨고 반장을 바라보던 은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가슴골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반장을 응시했다.
그러자 얼굴을 붉히며 한참동안이나 은영의 가슴을 훔쳐보던 반장녀석이, 침을 한번 꼴깍 삼키며 은영에게 아침 조회여부를 물었다. 아차 싶었던 은영은 교무실 시계를 한번 힐끔 쳐다보면서, 출석부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학급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오늘도 어제랑 같이 힘든 하루가 되겠구나.'
출석부를 챙겨 복도를 걷던 은영의 머릿속엔, 여전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야 오늘 김은영 진짜 존나 죽이더라"
-김은영? 누구? 담탱이?
"야 씨발 남자학교에 여자이름 가진애가 또 있냐? 씨발 담임 말이야 담임. 와. 아침에 진짜 좆꼴려서 죽는줄 알았다니까?"
-뭔데?
아침에 은영의 젖가슴을 몰래 훔쳐봤던 반장녀석이 1교시 수업이 끝나자 마자 주위애들에게 둘러싸여 나름의 무용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반장녀석의 입에서 익숙한 은영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던 연재가 흠칫 놀라 반장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보니까, 그년 상태 메롱이더만. 아침에 무슨일 있었냐?"
-야 말도 마라. 밤새 잠도 못잤는지 아까 아침에 교무실에 들어가서 몇번을 불러도 졸고앉아서는 대답이 없는거야. 씨발 짜증이 나서 흔들어 깨울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크게 불러 깨우니깐 그제서야 눈을 간신히 뜨는둥 마는둥 하면서 나를 올려다 보는게 아니겠어?
"그래서? 그래서?"
-나도 짜증이 난 상태라 무표정하게 좀 야렸지. 근데 씨발. 바로 그 순간!
반장아이가 갑자기 피치를 높이며 책상을 한번 크게 두드리자 주위에 몰려들었던 적지않은 녀석들이 숨을 죽이며 반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반장과는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연재도 내심 반장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올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젖가슴이 따악!! 하고 보이는거라!"
-오~~~~~
"와아. 나 진짜. 김은영 가슴이 좀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정작 존나 가까이서 보니까, 이건 완전 신세계야. 하얀색? 실크였나? 암튼 레이스 달린 브라자랑 커다란 젖통이 캬아. 아주 그냥 죽인다 죽였어."
-아 씨발 존나 좋았겠네~ 담탱이 빨통 죽여주잖아. 못해도 B컵 정도는 되어 보이던데?
"몰라 몰라. 크기는 딱봐도 존나 커보여, B가 뭐냐 D는 될걸? 중요한건 존나 그 뽀얀 피부다. 와 진짜 나 보는것만으로도 쌀뻔했어 진짜. 캬캬
아맞다. 씨발 젖통도 젖통인데, 졸린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존나 꼴리더라 진짜. 은영이 앞에서서 빨딱 서 버린 자지 안 들킬려고 존나 몸 비틀고 난리도 아니었다."
-큭큭 병신. 와 근데 존나 부럽다. 담탱이가 존나 학교선생치곤 개예쁘긴 한데, 꾸미질 않아서. 몸매를 좀 드러내줄 필요가 있는데 맨날 꽁꽁 싸매고 다니니까. 아 난 그년 엉덩이나 한번 꽉꽉 짜봤음 좋겠어. 작년 체육대회때 츄리닝 차림으로 온거 보고 나 진짜 집에서 그년 생각하면서 딸딸 존나 쳤잖아. 무슨 학교 선생 엉덩이가 그렇게 탱탱하냐? 왜 선생하는거야? 모델이나 야동배우 했으면 어우.
"병신. 캬캬캬캬. 존나 남편새끼 부러워 죽겠다. 존나 맨날 할거 아니야? 별에 별거 다 해봤겠지? 막.. 있잖아. 존나 조신해보여도 알고보면 존나 허벌창인거 아니야?"
-캭. 그럴지도 모르지. 큭큭큭
"큭큭 씨발 그 눈빛으로 내 자지를 빨아준다 생각해봐, 존나 미칠 것 같다. 그거 아냐? 담탱 허리도 존나 얇아. 내가 여자 좀 따먹어봐서 아는데 그런 년들이 존나 걸레라니까. 자지 한번 넣으면 자지러진다. 아 씨발 따먹고싶네."
-내 자지 빨게 시키고 왼손으로는 젖통 쥐어짜고 오른손으로는 보지 쑤셔대고...와 미친다, 은영아, 은영아!
또래 남자애들이 반장을 둘러싸고는 은영을 주제로 연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은영이 몸담고 있는 학교가 남자학교인데다가 학군내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은 축에 속하는 아이들이 몰려있는 탓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으려 해도 어쩐지 저속한 느낌을 쉬이 떨쳐낼 수는 없었다. 한편 멀찌감치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연재는 반장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책상위에 고개를 파묻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심장이 떨려오기에, 애들몰래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했다.
어떻게 지나간 건지도 모를 하루가 은영의 곁을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은영이 야간자율학습 담당 교사인 탓에, 정말이지 천근만근인 몸으로 감독을 했다. 이따금씩 은영이 졸린눈으로 교탁위에서 눈이라도 붙일 요량이면, 어김없이 반장녀석과 조금 불량해 보이는 녀석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영을 힐끔 바라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개중에 한명이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는 자신의 성기 위에 가져다가 앞뒤로 흔들며 자위하는 포즈를 잡으니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조용하게 ‘병신’을 외치며 웃었다. 용기 있는-성욕에 미친- 녀석들은 일부러 교탁 옆을 지나가며 눈 감은 은영의 가슴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가끔씩 들리는 질나쁜 웃음에 영문도 모르고 깬 은영이 할 수 있는거라곤 조용하라고 힘없이 이야기하는 것 뿐이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연재로썬, 아버지에 대한 마음과, 그리고 은영에 대한 죄스러움에 차마 은영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이윽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학교에서의 은영의 역할도 모두 끝이 났다. 교무실 한켠에 놓인 자신의 책상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은영이 다시 한번 눈을 꼭 감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학교에서 조금 더 있다가 늦게 들어갈까? 오늘 만약 집에서 영길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다시한번 순서없이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은영은 아무도 없는 공간속에서, 짧은 한숨을 쏘아 올리며 현관앞 계단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매고 다시금 생각에 잠겨 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덜어내도 시원찮을 판에 잡다한 생각들이 쌓여서는 고통만 늘어날 뿐이라니. 그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 뿐이었다.
집 앞에서 은영이 얼마간을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잠겨있으려니, 은영의 머리 앞으로 뚜벅뚜벅하는 발걸음소리와 함께 이내 기분 나쁜 검은 실루엣이 드리워졌다. 은영은 내심 ‘설마’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상대를 확인했다.
"아.. 그래.. 그게 그러니까. 저기 처남댁."
-아....